천국악단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다

글/ 토론토 천국악단 단원

[명혜망]

1. 토론토 천국악단의 설립

2005년 뉴욕 천국악단이 맨해튼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제 마음속에는 ‘토론토에도 천국악단이 세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 법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뉴욕 천국악단의 퍼레이드를 가까이서 보게 됐습니다. 정연하고 위풍당당한 대열과 거대한 에너지가 가득한 음악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토론토에 천국악단을 설립하겠다는 결심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법회가 끝난 후 저는 트럼펫을 한 대 사서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토론토에 어린 수련생 중심의 작은 밴드가 구성돼 정기적으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악기를 배운 어린 수련생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어른들의 선생님이 됐습니다.

2006년 4월 사부님의 비준을 거쳐 토론토 천국악단이 정식으로 설립됐습니다. 신청 인원은 순식간에 100명을 넘어섰고 나중에는 15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특별히 선생님을 보내주셔서 파트를 나누고 인원을 배치하며 연습을 지도해주셨고 수십 대의 악기를 토론토 천국악단에 기증해주셨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직접 차를 몰고 뉴욕에 가서 악기를 운반해왔는데 도중에 차량이 고장 났음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당시 우리 전체의 상태는 매우 순수했으며 헌신하면서도 아무런 원망이 없었습니다.

초기에 악단은 매주 두 번씩 집중 연습을 했고 불과 한 달 뒤인 2006년 ‘5·13’ 행사에서 토론토 천국악단은 정식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해 토론토 법회 기간에는 뉴욕 천국악단과 함께 캐나다 법회 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방대한 대열이 차이나타운을 지날 때 현지 중국인들에게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관람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2. 주류사회로 들어가 실천 속에서 성숙해지다

악단 설립 후 우리는 캐나다 주류사회의 퍼레이드에 참가 신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무대는 그해 6월의 ‘브램턴 플라워 시티 퍼레이드(Brampton Flower City Parade)’였습니다. 이 행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성대한 축제로 대형 퍼레이드, 현장 공연, 문화 전시 등이 포함됩니다. 당시 악단이 세워진 지 두 달도 안 됐고 주류사회 퍼레이드 경험도 전혀 없었으며 날짜도 임박했지만, 우리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정념(正念)으로 대하며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뜻밖에도 주최 측은 곧바로 신청을 승인했습니다. 이로써 토론토 천국악단은 캐나다 주류사회에서의 첫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 주최 측은 감사 편지를 보내왔으며 앞으로 매년 우리를 초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2006년 7월에는 몬트리올 국경일 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150명 규모의 위용 당당한 대열은 연도의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퍼레이드 종료 후 주최 측은 당일 퍼레이드의 최고상을 천국악단에 수여했습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악단은 총 34회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며 온타리오주 대부분의 지역 퍼레이드를 섭렵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10회 참가했으며 하루에 5회를 소화한 날도 있었습니다. 두 곳의 퍼레이드에 동시에 참여하기 위해 악단을 두 개 팀으로 나누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3.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기

곡의 난도가 계속 높아짐에 따라 리듬과 협조에 대한 요구도 커졌습니다. 악단원 대부분이 음악적 기초가 없었고 악보를 보지 못하거나 리듬감이 없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후기 연습은 눈에 띄게 힘겨워졌고 마치 병목 현상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음악적 기초가 있는 몇몇 수련생과 상의해 음악 이론 교육반을 개설하고 단원들의 기초 이론 지식을 돕고 기본기 훈련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당시 음악 지도 수련생과 심각한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는 새 곡 연습에 협조하지 않았고 이론 교육에도 소극적이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며 저를 좋지 않게 대했습니다. 오랫동안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자 결국 저는 그를 교체했고 그는 더 이상 악단 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됐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는 중국에서 갓 나온 수련생이라 속인의 명예욕이 강했고 ‘음악 지도’라는 직책을 매우 크게 여겼습니다. 모든 일을 자신의 동의를 거치려 했고 그렇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일이 지난 후 저는 그에게 악단 연습을 맡겼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수련의 문에 갓 들어선 그에게 그런 직책을 맡긴 것이 사실 그에게 좋지 않았고 집착심을 키우기 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악단 전체의 사기가 다소 흔들렸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 대립과 간격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 그에 대해 강한 원망심이 생겼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분명 제가 제고해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갈등 속에서 안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냉정하게 전 과정을 돌아보니 정말로 제고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첫째는 명예욕이었습니다. 단장으로서 저는 잠재의식 속에 자신을 높은 위치에 두고 ‘일은 내가 결정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의견에 마땅히 갖춰야 할 존중이 부족했고 그와 소통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충분한 사전 소통 없이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충돌의 씨앗이 됐습니다.

둘째는 질투심이었습니다. 그는 지도 경험이 풍부했고 실제로 일부 단원들은 그의 지도로 실력이 빠르게 향상돼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내면의 불균형을 불러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X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는 명백한 질투심이었습니다.

저는 점차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가 보여준 집착들은 바로 제 자신에게도 존재하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갈등을 빌려 제가 이런 사람 마음들을 똑똑히 보고 제거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악단을 관리할 때 더 이상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중대한 일은 반드시 파트장들과 회의를 거쳐 토론합니다. 이는 제 명예욕이 자라는 것을 막는 한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 함께 결정하기 위함입니다.

4. 병업 가상에 대한 정념의 대처

10여 년 전 제 윗니 잇몸에 작은 종창이 생겼는데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아 계속 방치했습니다. 2022년 6월 이 치아에 갑자기 심한 염증과 부기가 생겨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이 심했습니다. 마침 퍼레이드 시즌이었는데 마우스피스를 입에 대기만 해도 참기 힘든 통증이 몰려와 정상적인 연주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팀에 트럼펫 인원이 워낙 적어 제가 불지 않으면 전체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퍼레이드 참가를 견지했습니다. 고음을 불 때마다 잇몸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곡을 끊어가며 겨우 퍼레이드를 마쳤습니다.

치과 의사는 전문의를 찾아가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권했고 예약도 이미 잡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구세력의 박해임을 명석하게 인식했습니다. 제가 트럼펫 부는 것을 포기하게 하고 음악으로 사람 구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속인의 생각대로 처리한다면 이 박해를 인정하는 꼴이 돼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 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정말로 다시는 불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나는 20년 넘게 수련한 대법제자다. 이 치아는 거의 60년을 나와 함께했고 연주를 통해 중생을 구하는 형식에 참여한 지도 16년이 넘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이 치아를 보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며 엄숙하게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매운 음식이나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 고추 같은 양념은 열을 올리고 식초는 치아와 잇몸을 상하게 함), 질투심, 과시심, 색욕심 등 많은 집착심을 찾아냈습니다.

그 후 수련을 강화했습니다. 우선 법공부를 강화했고 매일 그날의 수련 상태를 평가했습니다. 하루 동안 만난 일들이 내 수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인식하고 제고했는지 돌아봤습니다. 다섯 가지 공법을 매일 연공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장시간 포륜(抱輪)을 100일 동안 견지했습니다.

치아와도 자주 소통하며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내 몸의 법기(法器)야. 이미 고에너지 물질로 전환됐으니 계속 함께 수련하며 중생을 구하자.’ 동시에 제 잇몸 염증을 일으키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발정념을 계속했고 그 배후의 생명들에게 선해(善解)에 관한 사부님의 법을 들려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잇몸 상태는 기본적으로 안정됐습니다.

지난해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앞두고 같은 부위가 다시 부어오르며 고름과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교란임을 인식하고 장시간 발정념으로 제거했으며 자주 한 시간씩 발정념을 했습니다. 동시에 명혜망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병업 고비를 넘긴 교류 글들을 읽으며 신심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비록 잇몸의 병업 상태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연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저는 2025년 8회의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 무사히 참가했습니다.

맺음말

천국악단에서의 이러한 경험들을 돌아보며 저는 깊이 체득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며 어떤 일이 나타나든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그 속에서 사람 마음을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역할과 책임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것은 명예·이익·정에 이끌리면서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할 때만이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악단 창단 20주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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