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여 년의 정법 수련 과정에서 수많은 난을 겪고 매번 생사를 내려놓으며 저는 한결같이 걸어왔습니다. 어디를 가든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전했습니다. 아래에 제가 최근 사법 박해를 해체한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자비로 사람을 구하다
저는 비록 박해를 겪었지만 저를 박해하는 데 가담한 관련자들을 원망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 가엽게 느껴져 늘 그들이 구원받을 기회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작년, 지역에 수많은 사악한 전시판이 나타났고 수련생들이 협력해 그것들을 전부 제거했습니다. 이 일은 공안국 고위층의 주의를 끌었고, 그들은 다양한 수사 방식을 동원해 다른 수련생들과 저를 찾아냈습니다. 경찰은 불법 가택수색 후 저를 파출소로 납치했습니다. 저는 사악의 그 어떤 박해도 인정하지 않았고 경찰이 대법에 죄를 짓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파출소로 가는 길에 저는 경찰에게 계속 진상을 알리며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성립되지 않으며 결국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과정에서 여러분이 좀 수고하고 제가 좀 수고할 뿐이지,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흐지부지될 것입니다.”
나중에 정말로 그렇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은 제가 몇 시에 가서 몇 시에 떠났는지, 어떻게 전시판을 제거했는지 말하며 제가 길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그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가지 않았고 그것이 저를 속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누가 했든 그것은 정의로운 행동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바쁠 때 제게는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시 공안국에서 감독하는 사건이라 제가 탈출하면 그들에게 책임이 돌아갈 텐데, 저 때문에 그들이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찰에게 이 생각을 말하자 그들은 모두 제가 매우 착하다고 말했습니다. 처리 과정에서 경찰들은 저에게 욕설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고 수갑도 채우지 않았습니다.
파출소 대기실에서 새벽 1시쯤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당직 경찰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가 날이 밝아 그들이 일어났을 때야 화장실에 갔습니다. 파출소 경찰 대다수는 파룬따파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으며, 만나는 경찰마다 진상을 알리자 대다수 경찰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구치소로 보내기 전, 경찰은 제 휴대폰을 돌려주며 가족과 면회하게 해주었습니다. 더 다행인 것은 제가 오랫동안 끌어오던 아주 중요한 일의 결과가 마침 붙잡힌 당일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경찰이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저는 결과가 나온 줄도 모르고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저는 즉시 전화를 걸어 상대방에게 처리해야 할 일을 당부했습니다.
이전에 몇 번 붙잡혔을 때는 사건 담당 경찰이 휴대폰을 돌려준 적도 없었고 가족과 면회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이 선한 생각을 냈기에 그들 자신의 위치도 잘 정했습니다.
2. 선한 생각으로 박해에 반대하다
구치소로 가는 길에 경찰이 수련생 몇 명을 더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더는 사람을 잡지 마세요. 한 명을 잡으면 그 사람과 그 가정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자신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냥 전부 제가 한 일이라고 하세요. 제가 인정하고 안 하고는 제 문제이니, 그렇게 하면 여러분도 임무를 완수한 셈이 되지 않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실속을 챙기는데 당신은 왜 자신을 돌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두 대법제자가 한 일이며 누가 했든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사람을 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납치될 때부터 저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았고, 마음속에는 오직 제가 대법제자이므로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경찰이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계속 단식하며 박해에 반대했고,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든 적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 경찰의 그 어떤 요구와 명령에도 협조하지 않았으며, 진술을 거부하고 서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해 의사의 신체검사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전 제가 구치소에서 단식할 때 의사들이 저를 다 알게 됐기에 그들은 저를 수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수용을 거부한다”라고 했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은 제가 예전에 그렇게 오랫동안 단식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의사가 하는 말에 거짓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그들은 감탄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재차 상부에 지시를 구했고, 결과는 ‘그래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데리고 외부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여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다양한 방법을 쓰며 아주 긴 시간을 들인 끝에야 겨우 마쳤습니다.
다시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보내진 후 저는 사진 촬영에 협조하지 않았고 여러 번 실패하자 구치소는 여전히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경찰은 또 상부에 보고했고 그래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경찰은 제가 방심한 틈을 타 몰래 사진을 찍어 구치소에 전송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파룬궁을 잡지 말아야지, 너무 번거롭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정말로 그들이 이 일로 사람을 잡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구치소는 공안국 소속이라 수용하고 싶지 않아도 상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했습니다.
구치소 대기실에서 저는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조작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들이 끊임없이 범죄 혐의자들을 데려왔기에, 저는 새로운 무리가 올 때마다 외쳤습니다. 한 혐의자가 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저는 그를 데려온 경찰이 바쁜 틈을 타 그에게 당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습니다.
세 번째로 구치소에 갔을 때야 겨우 수용됐습니다. 처음 감방에 들어갔을 때 경찰 앞에서 방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구치소의 모든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것이고 번호를 대지 않으며 죄수복도 입지 않고 노동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수들이 저에게 어떤 조치를 하려 하자 저는 “당신들 누구든 감히 날 건드려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구치소에서 저는 연공과 정념을 발하는 외에 힘들면 누워 있었습니다(그들은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해서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저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가급적 그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고 많이 배려하며 선하게 대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삼퇴를 선택했습니다.
3. 관념을 바꾸고 사법 박해를 해체하다
며칠 후 구치소 경찰이 저를 강제 음식물 투입을 하러 데려갔고 저는 힘껏 저항했습니다.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바뀌며 10여 차례나 관을 삽입하려 했지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삽입할 때마다 관에 피가 묻어 나왔고 매번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이것은 구세력의 사악한 계략으로 저를 기선 제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계속 단식하는지 보려고 억지로 관을 삽입하며 계속 피를 흘리게 해 고통을 주었습니다. 제가 생사를 내려놓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채 박해에 반대한다는 이 일념을 굳건히 하자 기본적으로 견뎌낼 수 있게 됐고, 그들도 삽관을 포기했습니다.
단식 7일째 되는 날 호흡이 곤란해져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갑자기 가슴에 한 줄기 따뜻한 흐름(에너지)이 흐르는 것을 느꼈고,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후에 병원 간부들이 와서 자세히 검사한 후 식도관을 삽입했습니다. 투입이 끝난 후 그는 “어렵게 삽입했으니 관을 그대로 두고 하루 두 번 투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신속하게 관을 뽑아버렸습니다.
이후 수액을 주사하려 했지만 저는 역시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저를 눌렀고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저는 바늘을 뽑았습니다. 매번 수액 주사에 격렬히 반항하고 자꾸 바늘을 뽑자 나중에는 수액을 놓지 않았고 매일 두 번씩 음식물 주입만 했습니다. 감방에서 나오고 들어갈 때마다 저는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천리에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외쳤습니다. 음식물 주입과 수액 주사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고함쳤습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견디지 못하게 되자 대법제자를 박해하려던 사악한 요소들이 해체됐습니다. 불법 감금 11일 만에 구치소는 저를 석방했습니다.
음식물 주입 과정에서 여러 간호사가 교대로 했는데, 그중 한 간호사가 매우 부드럽게 해서 통증이 덜하자 제 마음속에 ‘그가 해주면 좋겠다’라는 잘못된 일념이 생겼습니다. 저는 즉시 생각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아프지 않으면 박해를 인정하고 아프면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며 아프든 안 아프든 모두 박해이므로 간호사가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이후 저는 관념을 바꾸어 누가 주입하든 고통 여부와 관계없이 확고하게 박해에 반대했고 기회가 되면 관을 뽑았습니다. 수련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얼마나 요란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실질적으로 제고되는가에 있습니다. 단 한 생각이라도 사악의 배치를 인정해서는 안 되며, 저는 오직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걸으며 사부님의 관리만 받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데리러 온 사건 담당 경찰은 “당신이 이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거주지 감시’로 변경하고 ‘처분보류’ 명목으로 석방했습니다. 저는 이런 형태를 바꾼 박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구치소가 당신을 다시 수용할 것 같습니까? 이미 형사 구류된 상태라 직접 석방할 수 없어 거치는 절차일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아 그들은 알아서 ‘거주지 감시’를 해제했습니다.
수속 과정에서 경찰은 제가 서명하지 않을 것을 알고 제 가족에게 파출소로 오라고 전화를 했지만, 저는 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저와 가족 모두 그 어떤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이 사람을 구하는 것임을 늘 명심하고 중생이 대법에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때 사부님의 가족이었으며 제 가족이 피동적으로 박해에 가담하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찰은 제가 젊고 착하며 도량이 크고 수준이 높다며, 중공에 의해 주입된 대법을 적대시하던 사상이 바뀌었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 “원래 당신을 엄하게 처벌하려 서류를 다 준비해 두었고, 이전 형기에 형기를 더 추가하려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를 전면 부정하고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으며 사악의 그 어떤 지시와 명령, 요구에도 시종일관 협조하지 않았기에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대다수 수감자는 대법을 인정하고 지지했습니다. 제가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하고 감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고, 그동안 묵묵히 생활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악한 요소는 이미 매우 적어졌으며 중생들도 점차 깨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두 감방 사람들도 하나같이 제가 젊고 착하며 교양이 있다고 말했고, 경찰조차 방 사람들에게 저를 좀 잘 대해주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가지(加持) 덕분이었으며, 그들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끼고 자신의 위치를 잘 정하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저에게 젊다고 과장해서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저는 그들이 아부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이번의 짧은 난을 겪으며 신기하게도 갑자기 10여 년은 젊어 보였고 피부도 아주 고와졌으며 얼굴은 백색 속에 광채가 났습니다.
제가 겪은 모든 것은 사부님의 홍대한 법력이 인간 세상에 나타난 것이며,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제자는 깊이 감격하며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맺음말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은 수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되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저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고 오직 사부님께서 시키신 일만 하며 일반인의 가상에 미혹되지 않겠습니다. 불법적인 ‘거주지 감시’ 기간에도 저는 경찰의 그 어떤 교란 행위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상징적으로 전화를 몇 번 걸어왔을 뿐이지만 저 또한 그들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대법과 중생뿐이기에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대법제자가 걷는 것은 신의 길인데 사람이 어떻게 신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박해받은 주요 원인을 찾았는데 바로 마음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악한 전시판을 여러 번 제거한 후 제게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시판 제거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뒤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법을 수호하는 것이 마땅한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서도 억지로 했던 것입니다. 대법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그런 추잡한 마음을 품고서 어떻게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었겠습니까?
교훈은 깊었으며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받지 않으셔도 될 고통을 또 많이 감당하시게 했습니다. 사부님께 죄송하며 제자는 반드시 이런 사람의 마음을 닦아버리겠습니다. 또다시 전시판을 제거할 때 고성능 카메라 아래에서 음성 인식 조명이 갑자기 밝아지는 상황이었지만, 저는 법을 수호하겠다는 생사를 내려놓은 순수한 마음으로 했습니다. 이후 약간의 방해가 있었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인류의 언어를 다 동원해도 사부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해서 착실히 수련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끝없는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9/5055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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