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명혜망의 것은 대법제자 수련과정 중의 진귀한 자료이다.”(각지 설법 10-명혜망 10주년 법회 설법)
나는 사부님 설법을 공부하는 가운데 명혜망의 작용은 주로 두 가지 방면임을 알게 됐다. 수련생 간의 상호 교류와 중국공산당(중공) 박해 폭로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의 주요 수련 교류 플랫폼으로서, 많은 대법제자가 자신의 수련 중의 진귀한 것들을 글로 써서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는 것은 우리가 수련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며, 심지어 고비를 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내 경험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몇 년 전 우리 지역 악인들이 명단에 따라 사람을 납치했는데 나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하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즉시 이사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를 수소문했다. 내가 수련생에게 대법서적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어떤 수련생이 내게 난법(亂法, 법을 어지럽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수련생은 간단히 몇 마디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았다.
긴급한 상황에서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법과 대조해보니 자신에게 난법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상이 명확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대해 인식이 투철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밤새 명혜망을 열고 ‘난법’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많은 글이 나왔다. 나는 최근 몇 년간의 관련 글을 다운로드했다. 모두 수십 편 정도였다. 그런 다음 인터넷을 끊고 한 편씩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사상이 점점 명확해지고 점점 더 이해가 됐다. 나는 내 문제가 무엇이 난법인지 분간하지 못해서 무심코 강연을 들으러 가서 난법했고 돌아와서도 괜찮다고 생각한 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나는 글 중 하나는 ‘연설로 난법한 자에게 휘둘린 후의 심각한 교훈’인데, 글쓴이가 난법자의 말을 청리(淸理)하는 과정을 썼다. “저녁 6시 정념을 발할 때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면서 마음속으로 오늘의 교류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자마자, 내 왼쪽 다리 안에서 큰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와 내 머리 위로 나갔다….” 마지막에는 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나는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면서 사부님께 간청했다. ‘난법자의 말을 한 글자도 남기지 말고 모두 청리해 내보내주세요.’ 사부님께서 청리해 주셨고 약 두 달간의 시간을 거쳐 내 몸이 회복됐다.” 나도 자신을 청리하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어서부터 새벽 2시까지 명혜망 글들을 보았는데, 한 편씩 읽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다. 나중에 정말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느껴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핵심 부분에 대해 사부님께서 또 한 마디 일깨워주셨다. 잠에서 깬 후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수련생이 연설로 난법한 것이라면 형식 자체가 틀린 것이고, 내가 가서 들었다면 설령 상대방이 말한 것이 이치에 맞다고 느껴도 그것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난법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한 후 나는 난법자의 모든 말을 전면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비록 깨끗이 청리하지는 못해서 기억 속에 주입된 난법 언어가 가끔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찾았기에 이 공간에서 나를 박해하던 사악이 물러갔다. 표면적으로는 경찰도 더 이상 나를 계속 찾지 않았고 전화도 하지 않았으며, 주변에서도 물이 새지 않았다. 이전에는 비록 잡히지는 않았지만 사악이 여전히 온갖 방법으로 나를 찾으려 했고, 아니면 늘 물이 새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의 보호와 명혜망 수련생들 교류 글의 도움으로 한 차례 중대한 박해 사건이 해결됐다.
색욕심을 제거하는 문제를 말해 보겠다. 내 색욕은 지금 많이 가벼워졌지만 몇 년 전에는 비교적 심했다. 특히 남녀 간의 정이 그러했다. 이것은 항상 반복되어 제거하면 또 나오고, 나오면 또 제거해야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항상 남자 동료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업무상 정상적으로 협력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된 건지 색욕심이 생겼다. 나는 상대방이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상대방이 나에게 말하는 태도도 훨씬 부드러워져서 쌍방이 모두 이상해진 것이다.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해 색욕심을 제거했다. 때로는 원인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나의 어떤 생각이 바르지 못해서 불러온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어떤 남자 공장장이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개가 있고 정말 멋져 보인다. 마치 국가를 지휘하는 작은 대통령 같다.’ 며칠 후 색욕심이 짓눌러와서 다시 그를 보니 ‘제 눈에 안경’이라고 어디든 남다르게 보였다. 나중에 이 한 생각 때문에 생긴 것임을 찾아낸 순간 색욕이 해체됐고, 다시 그를 보니 평범하기 그지없고 특별한 게 없었다.
때로는 정말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색욕심을 아무리 해도 제거할 수 없어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명혜망 글을 검색해서 수련생들이 어떻게 고비를 넘었는지 보자.’ 관련 교류 소책자와 교류 글이 검색되는데, 역시 키워드를 입력해서 검색했다. 나는 한 편씩 읽으며 자신을 찾았는데 많은 경우 읽다 보면 이해가 됐다. 한참을 돌아 자신이 어디서 법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혹은 자신의 어떤 관념이 틀렸는지 등을 알게 됐다. 한번은 수련생의 글을 보면서 내가 색욕을 불러온 원인을 이해했는데, 수구(修口)하지 않고 이성과 잡담을 해서 불러온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마치 내가 많은 수련생과 교류하는 것처럼 제고가 매우 빠르고 고비를 넘는 속도도 빨라진다.
근본 집착을 제거하는 문제를 또 하나 들어보겠다. 예를 들어 내 근본집착은 ‘원만과 대자재(大自在, 큰 자유자재함)를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입문할 때 나는 매우 젊었다. 내 친척이 대법을 수련한 지 몇 년 됐는데, 설날에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우리 가족 전체에게 대법을 소개했다. 우리에게 대법서적과 수련 체험 책자 몇 권을 주었다. 나는 그때 무심코 수련 체험을 들고 보기 시작했는데, 아직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이 인상 깊었다. 두 명의 대법 소제자가 파룬세계(法輪世界)에서 노는 아름다운 경험을 쓴 것으로, 나로 하여금 동경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법을 얻어 수련하게 됐다. 나중에 간신히 깨달았는데 이것이 바로 근본 집착이고 원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본 집착에는 또 어떤 구체적인 표현이 있는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느꼈고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명확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생각했다. ‘다른 수련생들의 관련 글을 보자.’ 나는 ‘근본 집착’을 키워드로 관련 글을 검색했다. 읽고 나서야 발견했는데 일부 수련생들이 나와 상태가 매우 비슷했고 역시 원만에 집착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진작에 인식했다. 이치상으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원만에 집착하는 다양한 표현을 예로 들었다. 어떤 것은 매우 생동감 있게 써서 읽다 보면 나도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수련인에게는 수련인의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수련생들의 경험과 체험을 읽으면 근본 집착에 대한 내 인식이 훨씬 깊어지고, 제거하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물론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삼아 법 중에서 법리를 보고 자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이 정말 깨닫지 못할 때는 검색 기능을 잘 활용해 수련생들의 수련 체험을 참고하면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체험이며 층차가 제한적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이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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