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61세인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저는 1998년 몸에 병이 있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연공을 시작한 지 2주도 채 안 돼 병이 없어지면서 온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걸음걸이가 가뿐해졌고 가장 치료하기 힘들다는 불면증과 편두통에 위장병까지 나았으며 다른 질병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대법이 정말로 초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새벽 4시경이면 종종 연공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공장이 우리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음악 소리가 들리는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천이통(天耳通)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연공장에 가서 새벽 연공에 참여했습니다. 제2장 공법인 포륜(抱輪)을 할 때면 매번 수련장 전체가 붉은 빛으로 덮여 온통 붉게 물든 것을 보곤 했습니다. 가끔 꿈속에서 바다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수십 미터 밖으로 훌쩍 날아오르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수련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다들 제가 근기(根基)가 좋다며 기뻐해주었고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직장에서 일할 때나 집안일을 할 때나 몸에 활력이 넘쳐났고 이틀 밤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정신과 기운이 충만하고 늘 즐거워서 동료들이 “언제 봐도 싱글벙글한데 혹시 화낼 줄 모르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됐고 어디에서도 연공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수련생들과 연락이 끊기고 혼자 집에서 연공을 하니 예전 같은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연공 테이프마저 망가져 연공을 할 수 없게 됐고 가끔 책만 보았습니다. 비록 단체 연공 환경은 잃었지만 사부님의 법리는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수련 후 온몸의 병이 다 나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제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이 틀리지 않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님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7년 어느 날, 우연히 진상 지폐(대법 진상 문구가 적힌 지폐) 한 장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진상 지폐에 적힌 글자를 따라 돈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펜이나 분필로 벽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세계는 진선인(眞善忍)이 필요합니다’ 등의 문구를 썼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2011년 여름에 시골 친정집에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한 수련생을 만나 진상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그 수련생에게 “내 딸도 수련합니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수련생은 “우리집이 법공부 팀이니 나중에 따님을 데려오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수련생들과 접촉하게 됐고 수련생의 도움으로 대법서적과 연공용 MP3를 다시 구했습니다. 우리집에서 친정까지는 60km나 되는 거리였지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매주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고 당일에 돌아왔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저는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리며 겪은 몇 가지 작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 한번은 공원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는 “조심하세요. 여기 도처에 사복경찰이 깔렸어요. 며칠 전에도 어떤 여자가 여기서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니까 경찰이 잡아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시네요. 장차 복을 받으실 겁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은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하고도 말을 못 하게 하고 국민이 그것이 나쁘다고 하면 탄압하잖아요. 관리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돈으로 생명을 사 오기도 하죠. 1989년 ‘6·4’ 학생운동(천안문 사태) 당시 대학생들이 부패에 반대한 게 틀린 건가요? 저라도 대학생이었다면 참여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농민의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잃었나요. 그런데 외국인은 중국에 오면 대학 등록금이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장학금에 먹고 자는 것까지 다 대주잖아요! 중공은 대국이 어쩌니 하며 경제가 성장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집 한 채 못 사는 서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 큰시누이는 결혼 후 시아주버니와 방 한 칸에 칸막이를 치고 반 칸씩 나눠 살고 있고, 작은시누이는 결혼 후 8평방미터 남짓한 작은 단층집에서 근근이 살아요. 작은시누이 시아주버니 가족은 12평방미터 집에 살며 딸과 2층 침대를 쓰고요. 우리도 집 살 때 빚을 많이 졌는데 관리들은 누구나 집을 여러 채씩 가지고 있잖아요. 저우융캉(周永康)이 조사를 받을 때 집이 300여 채였고 횡령한 돈이 900억 위안이 넘었으며 수많은 여성을 해쳤습니다. 그는 (원흉) 장쩌민(江澤民)의 친척이자 파룬궁 박해의 앞잡이로 수많은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살해하거나 불구가 되게 했습니다. 선과 악에는 응보가 따르는 법이라 하늘이 악인을 징벌하고 있습니다. 저우융캉은 장쩌민이 죽기도 전에 자신이 감옥에 갈 줄 몰랐겠지만 이것이 바로 응보입니다. 선생님, 사악한 당을 멀리해야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는 “알고 있습니다. 이 당은 민심을 잃었으니 빨리 망해야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누군가 자신의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도와주었다며 제게 조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의 손에 만두가 들려 있기에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저도 그 만두 가게에 가서 만두 두 개를 사며 주인에게 삼퇴를 권해 탈퇴시켜 주었습니다.
2. 어느 날 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천재지변이 빈번한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이야기한 지 2~3분쯤 지났을 때 서쪽에서 키 큰 남성 두 명이 다가오더니 우리 곁에 서서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경험상 사복경찰임을 직감하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선생님, 퇴직금은 얼마나 받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얼마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언젠가 시장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퇴직금이 겨우 1800위안인데 이걸로 어떻게 사느냐고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화내지 마시라고. 돈 있는 사람들은 대하를 먹겠지만 우리는 배추랑 두부 먹으며 평안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요.” 곁눈질로 사복경찰들을 살피니 그들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끄덕이기도 하며 파룬궁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저는 남성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주었습니다.
3. 재작년 3월 ‘양회(兩會)’ 기간에 작은 정자에서 안정 유지 업무(維穩)를 하는 40대 정도의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비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혼자 나오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동료들이 힘들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와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며 중공의 부패부터 ‘장자석(藏字石)’, ‘천안문 분신(自焚)’ 조작 사건과 생체 장기적출 등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원이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제명당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묻자 ‘6·4’ 당시에 대학생에게 10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감시 카메라가 많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그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연루된 사람이 많아 광장을 지나가다 맞아 죽거나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고, 부상당해 지금까지 감시받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어 말했습니다. “하늘이 악당을 징벌하려 하기에 ‘장자석’이 나타난 것이니 가입했던 당·단·대(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하세요. 예전에 주먹을 쥐고 평생 악당에게 헌신하겠다고 맹세하셨죠. 머리 삼척 위에는 신령이 계셔서 그 맹세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왜 벼락에 맞아 죽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쁜 짓을 끝도 없이 했거나 중공을 위해 독한 맹세를 했다가 정말 벼락을 맞은 겁니다. 대학생이 절에 갔다가 불상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휴대폰으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중공의 무신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쳤습니까? 베이징에 왜 천단(天壇), 지단(地壇), 일단(日壇), 월단(月壇)이 있는지 아시나요? 옛날 황제들은 하늘과 땅을 경외했습니다. 중국은 줄곧 신주(神州) 대지로 불렸고 신불(神佛)을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악당이 집권한 뒤로 신불을 믿지 못하게 하고 하늘, 땅, 사람과 싸우게 했습니다. 지금은 독성 식품이 도처에 깔려 먹고 마시는 것 중에 안전한 게 없잖아요.”
그는 제 말에 매우 공감하며 삼퇴를 했습니다. 그는 “누님, 좀 걸을까요?”라며 계속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오해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겠습니다. 누님은 정말 말씀을 잘하시네요. 5월 1일이 지나야 돌아가니 다음에 또 뵀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만나면 또 이야기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인연이 있으면 분명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기쁘게 떠났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거의 매일 나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삼퇴하고 나서 매우 기뻐하고 감격해하며 제가 말을 잘한다고 칭찬했습니다. 어떤 이는 저와 포옹하고, 어떤 이는 허리 굽혀 인사하며, 어떤 이는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제 휴대폰 번호나 위챗 아이디를 달라며 연락하고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제게 깊은 위로가 됐습니다. 그들이 진상을 인정하고 진선인에 찬성하며 저를 칭찬할 때마다 제가 정진하도록 재촉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고맙습니다”,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안전에 주의하세요”, “우리 모두 평안합시다”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했습니다. 저는 중생이 구원받은 것에 기쁘고 중생의 선량함에 감동했습니다. 저는 진상 알리기에 정말 즐거움이 있음을 느낍니다.
사부님의 홍대(洪大)한 법리는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제 생명의 의미이자 즐거움이 있는 곳임을 깊이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일이기에 저는 사부님 말씀대로 행할 뿐입니다.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나가면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가서 행하기만 하면 반드시 수확이 있으며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안배해주십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5/504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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