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59세로 수련한 지 28년 된 오랜 대법제자입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호 아래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저는 일찍이 베이징으로 가서 법을 수호했고 장쩌민(江澤民) 고소에 참여했다가 중공 악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류와 강제노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료점이 곳곳에서 꽃피우게 하셨을 때 우리집에도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웠습니다.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는 있지만 때로는 명예와 이익, 정(情)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연 있는 사람들을 많이 놓치기도 해 스스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고생스럽게 구하시며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고 헌신하셨는지 모릅니다.
대법 수련으로 몸과 마음이 혜택을 입다
1997년 정월 초하루, 저는 다행히 법을 얻었습니다. 이날은 제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자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날입니다. 둘째 형수님 댁에 가서 ‘전법륜(轉法輪)’을 배독(拜讀)했는데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가 저를 깊이 매료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고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인 줄도 몰랐습니다. 법을 얻기 전 남편은 저를 자주 ‘십부전(十不全, 열 가지가 온전치 못함)’이라 불렀습니다. 심장, 간, 폐, 위장, 각 관절 중 온전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뇌 혈액 공급 부족으로 어지러움이 생기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특히 산후조리를 잘못해 류머티즘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를 죽지 않는 만성 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침술, 민간요법, 한약과 양약을 써봐도 낫지 않았고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때로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이 팔을 그냥 잘라버렸으면 좋겠어요. 이런 고통은 더는 못 견디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허튼소리 마오, 차차 좋아질 거요”라며 달랬습니다.
신기하게도 연공 3일째 되던 날 포륜(抱輪)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 파룬(法輪)을 내보내 제 몸을 조절해주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풍차가 돌아가는 듯했고 팔꿈치에서 찬바람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즉시 절반 이상이 나아 통증과 마비 증상, 무거운 느낌이 사라지고 움직임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연공한 지 보름도 안 돼 몸의 각종 질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 제 병을 알던 사람들은 “이것은 정말 신공(神功)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세계관도 변했습니다. 정말 환골탈태해 더는 이기적이지 않게 됐으며 일할 때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니 친지들과 이웃들이 모두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우리집 식구 네 명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며 시댁의 많은 이들도 법공부를 합니다. 그 몇 년은 정말 법 안에 녹아들어 화기애애하고 즐거웠습니다.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의 정법을 돕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집단은 중공 악당과 결탁해 텔레비전과 신문을 미친 듯이 이용해 위대하신 사부님을 모함하고 비방하며 대법제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이고 이렇게 자비로우신 사부님인데 대법의 감화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심신에 혜택을 입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수련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는가. 얼마나 많은 타락한 이들이 수련을 통해 미망에서 깨어나 남을 돕는 사람이 됐으며 얼마나 많은 마약 중독자가 재산을 탕진했다가 수련을 통해 도덕적 품격이 고상한 사람이 됐는가.’ 이번 생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모님이 억울한 누명을 써도 자식으로서 정의를 위해 공정한 한마디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렇게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함이 중생을 은택(恩澤)을 베풀고 계시지 않습니까.
2000년 봄, 저는 몇 명의 수련생과 상의해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기 위해 베이징에 가기로 했습니다. 기차역 검표 중에 차단당해 돌아왔고 현지 공안이 우리를 데려가 구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했습니다. 저는 20일 동안 갇혀 있었는데 남편이 인맥을 동원해 2천 위안을 쓰고 저를 데려왔습니다. 돌아온 후 남편도 수련을 시작했는데 담배와 술을 끊었고 사계절 내내 앓던 심한 기침도 나았습니다. 아쉽게도 1년여를 착실히 수련하다가 세상 물결에 휩쓸리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다시 연공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2001년 섣달그믐 텔레비전 ‘초점방담(焦點訪談)’에서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을 방영했습니다. 제가 보니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고 우리집 어린아이조차 가짜인 것을 알 정도였습니다. 저는 다시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월 초열흘 아침, 남편이 저를 배웅해주어 10여 km를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마침내 다른 두 명의 수련생과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수련생은 천안문광장에 가기도 전에 경찰들에게 막혔으나 저는 지하철에서 경찰의 저지를 두 번 당하고도 이성적이고 교묘하게 빠져나왔습니다.
천안문광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악당의 혈기(血旗)가 올라가는 것을 본 후 저는 현수막을 꺼내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밝혀주십시오! 대법의 결백을 밝혀주십시오!” 저는 거듭해서 외쳤습니다. 마치 무아지경에 들어간 듯했고 감격의 눈물이 흘러 정말로 하늘과 땅을 감동시킬 만했습니다. 사복 경찰 두 명이 다가와 한 명은 제 입을 틀어막고 한 명은 현수막을 빼앗으려 했으나 저는 그의 손을 떼어내고 계속 외쳤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고 오직 힘껏 외쳐 광장의 모든 사람과 외국인들, 심지어 장쩌민 그 도둑놈까지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그는 제 쪽으로 달려왔고 곧 사복 경찰 두 명이 더 와서 저와 그 남자 수련생을 작은 흰색 차량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도 쉬지 않고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습니다. 차 안에는 저와 함께 온 여수련생이 슬프게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 커튼을 걷고 밖을 향해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습니다. 이때 경찰이 여수련생 두 명을 더 끌고 들어왔는데 경찰이 70대 노수련생에게 “이미 여러 번 왔으면서 왜 또 왔나?”라고 묻자 그녀는 “이번에는 이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또 오다니? 주저앉아!”라고 소리쳤습니다. 노수련생은 손에 현수막을 든 채 서서 말했습니다.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 악질 경찰은 현수막을 낚아챈 후 발로 노수련생을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또 다른 악질 경찰이 아주머니의 머리를 짓밟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저는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 즉시 고함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남자 수련생도 따라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경찰이 남자 수련생의 뺨을 세게 때리며 “외치지 마!”라고 하자 저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그분을 놓아주면 외치지 않겠다!” 그러자 경찰은 노수련생을 놓아주었습니다.
경찰차는 우리를 첸먼(前門) 파출소로 실어갔습니다. 안에는 10여 명의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은 진짜냐 가짜냐?” 우리는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입니다!” 경찰이 왜 가짜냐고 묻자 저는 말했습니다. “자살은 범죄입니다. 또한 이 몸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수련하겠습니까.”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홍음(洪吟)’을 외웠습니다. 경찰이 더 크게 외우라고 하자 우리는 목청껏 한목소리로 외웠습니다. 수련생들이 계속 들어와 20여 명이 됐는데 아이를 안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경찰은 대형 차량으로 우리를 공안국에 보냈고 다시 각 파출소로 배정했습니다.
저는 쑨춘(孫村) 파출소로 배정됐습니다. 경찰이 고향이 어디인지 집이 어디인지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고 진상만 알렸습니다. 그들은 저를 때리고 욕하며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사람이 아니라 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경찰은 저를 나무에 수갑 채우고 신발도 신지 못하게 했으며 외투도 없이 스웨터 한 장만 입힌 채 제 발을 눈 속에 묻고 한 시간을 서 있게 했습니다. 그들은 교대로 저를 감시하며 3~4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집 주소를 말하게 됐습니다.
정월 보름 우리 향(鄕)의 파출소 정·부소장이 저와 한 남자 수련생을 데리러 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베이징 기차역에 갔는데 기사가 요금으로 10위안을 요구하자 소장은 너무 많다며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실랑이를 벌이자 제가 10위안을 냈습니다. 경찰은 저와 남자 수련생의 손을 수갑 하나로 같이 채웠습니다. 역 안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기에 저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입니다. 베이징에 파룬따파가 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러 갔었습니다.” 이어 대법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습니다. 파출소 부소장이 말하지 못하게 했으나 저는 “제가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라며 계속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때 수갑이 헐거워진 것이 느껴져 움직여보니 손을 뺄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망가면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도망가면 경찰들이 돌아가서 어떻게 보고하겠는가? 상부에서 문책하면 어쩌나? 진선인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남을 배려해야지, 그만두자.’ 당시에는 이렇게만 생각했고 박해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수갑을 다시 채워달라고 했습니다. 부소장이 돈이 있느냐고 묻자 남자 수련생은 돈과 겉옷을 구치소 죄수들에게 다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제가 돈을 내지 않아도 그들이 우리를 데려갈 것을 알았지만 저는 주머니에 있던 100여 위안을 모두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돌아온 후 경찰은 저를 구치소에 28일간 가두었고 다시 2년간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내렸습니다. 또한 우리집 땅 5무(畝, 1무는 약 200평) 이상을 10년 기한으로 팔아버렸고 나중에 나온 직불금도 매입자에게 주었습니다.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힌 지 한 달여 만에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가호 아래 병업(病業) 상태로 처분보류돼 출옥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항상 제자 곁에 계심을 깊이 느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외침이 구류소에 울려 퍼지다
2009년 3월 어느 날 밤, 저는 A 수련생과 전신주에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다음 날 나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또 사람의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경찰에 납치됐습니다. 저는 협조하지 않았고 경찰들이 다급해져 저를 들어 올리자 저는 크게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당에서 탈퇴하고 평안을 지키세요!” 저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외쳤고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구경했습니다. 구류소에 도착해서도 그들이 저를 차에서 들어 내리려 하자 저는 쇠의자에 묶여 손발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도 쉬지 않고 계속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당에서 탈퇴하고 평안을 지키세요! 이웃 여러분, 모두 탈퇴하세요! 탈퇴해야만 건강하고 장수하며 아름다운 미래가 있습니다! 이것은 천상(天象)의 변화입니다!” 저는 쉬지 않고 외쳤습니다.
밤이 되자 다른 사람들의 휴식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외침을 멈췄습니다. 감옥경찰이 쇠의자를 열고 저를 내려주었는데 제 손발은 모두 멍이 들어 푸르스름하게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A가 이를 보고 울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연공하면 나을 거예요.” 그녀는 CCTV를 보고 감히 연공하지 못했으나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에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니 그들이 관할할 수 없고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십니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다음 날 아침 깨어나니 손발의 부기가 다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구류소가 이렇게 넓은데 어제 전한 진상을 중생들이 다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저는 다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감옥경찰은 다시 저를 쇠의자에 묶었습니다. 복도 벽에 스피커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어가 온 구류소 사람들이 다 듣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심문을 받고 돌아온 A가 말했습니다. “당신 목소리가 정말 커요. 저쪽 방에서도 아주 또렷하게 다 들렸어요.” 정오쯤 되어 제가 막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치자 남자 수용실에서 많은 사람이 일제히 “좋습니다!”라고 화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 그들이 또 일제히 “쩐싼런하오!”라고 외쳤고 다시 다 함께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감격하여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고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저를 따라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습니다. 목소리가 정말 우렁차서 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중생들이 구원된 것입니다.
점심때 같은 감방의 한 동생이 밥그릇을 들고 제 앞에 와서 말했습니다. “이리 오세요, 제가 먹여드릴게요. 고생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파요.” 그녀는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당원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단원인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저는 다시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요.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공산주의청년단과 소년선봉대를 탈퇴하세요.” 그녀가 CCTV를 쳐다보기에 저는 “괜찮아요, 저건 찍지 못하니 탈퇴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후에는 더 외치지 않았습니다. 구류소 안의 중생들이 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옥경찰은 제가 외치지 않자 저를 쇠의자에서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갈 때가 되면 당신 사부님이 가게 해줄 거요.”
한밤중에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들어와 감옥경찰과 싸우다가 쇠의자에 묶였습니다. 다음 날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저는 배식하는 아주머니께 부탁해 그녀의 밥을 챙겨가지고 가서 먹여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이 창백해져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여자가 경련을 일으켰으니 빨리 감옥경찰을 불러 풀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감옥경찰이 여기 없어요”라고 하자 저는 “그럼 빨리 열쇠를 찾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배식 아주머니가 열쇠를 가져왔으나 한참 동안 자물쇠를 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리 주세요, 제가 해볼게요”라고 했으나 저 역시 자물쇠 구멍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때 ‘나에게 공능(功能)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노란 머리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습니다. “열렸어요.” 보니 정말로 자물쇠가 열려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공능을 운용해 열게 해주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자 저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빨리 저를 따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세요. 우리 사부님께서 당신을 구해주실 거예요.” 저는 또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단원인가요?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고 평안을 보존하세요.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합니다. 진심으로 당신이 잘되길 바라서 하는 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어떤 이는 “당신이 계속 파룬따파하오를 외치니 우리도 감화돼서 따라 외치게 됐어요”라고 했고 어떤 이는 “당신들은 우리와 달라요, 남이 잘되게 하려고 여기 들어왔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요?”라고 묻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예요.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사방에 전해 장차 모두가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와 A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우리는 감옥경찰 두 명을 포함해 총 40여 명을 탈퇴시켰습니다. 불법 구류 15일 후 우리 둘은 불법적인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노동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삼퇴를 한 감옥경찰이 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당신 정말 대단하오! 당신 이름은 천 년 뒤에도 전해질 거요.” 저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역사가 우리의 이 빛나는 페이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노동수용소로 가는 길에 저는 계속 발정념을 했고 A에게도 발정념을 해서 그들의 강제노동에 협조하지 말자고 알려주었습니다.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면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해 A가 검사를 받을 때 저는 벽에 기대어 서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 이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야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으니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을 가지해주시고 제자를 보호해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생각을 마치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더니 곧바로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들이 들어와 저를 발로 차며 “무슨 연극이야? 방금까지 멀쩡하더니 일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이 욕하고 발로 차도 저는 실신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저를 들어 올려 각종 검사를 한 뒤 밖의 시멘트 바닥에 내던져버렸습니다. 동북 지방의 정월은 매우 추운데 외투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스웨터와 속옷이 다 젖혀진 채로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으니 추위로 몸이 떨려왔습니다. 저를 압송해온 한 경찰이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옷 입고 신발 신어, 얼마나 춥겠어.” 나중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시는 여기로 보내지 마세요. 오면 우리만 신경 쓰이니 데려가세요.” 잠시 후 경찰이 저를 끌어당기며 말했습니다. “일어납시다, 저쪽에서 당신을 안 받겠대요.” 그는 저를 차 옆으로 끌고 가 패딩과 신발을 입혀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말했습니다. A는 강제노동 1년을 선고받아 남게 됐고 저는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도 돌아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경찰이 우리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1만 위안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다시 구치소로 보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저는 ‘1만 위안 말고 5천 위안으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념이 부족했고 정말로 다시 갇힐까 봐 두려웠습니다. 공안국에 도착하자 남편이 인맥을 동원해 5천 위안을 쓰고 저를 데려왔습니다.
맺음말
10여 년 전 저는 꿈속에서 제가 지옥의 해골이 되어 음침한 검은 도랑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님의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저를 건져 올려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창세주의 제자이자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늘 제 곁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며 고비마다 넘기게 해주시는 것을 생각하면 행복감이 절로 샘솟습니다. 설령 전 세계의 모든 재산과 바꾼다 해도 금산(金山)을 준다 해도 저는 원하지 않으며 아쉽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대법만을 원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손을 잡고 사부님을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 고해(苦海)를 벗어나 원만(圓滿)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려 합니다.
지식 수준이 낮아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27/50398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2/27/50398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