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을 첫 자리에 두고 자신을 잘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87세 고령의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1995년, 행운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산후풍, 류마티스성 심장병, 철 결핍성 빈혈, 어지럼증과 두통, 불면증, 골증식증, 허리와 다리 통증 등 온몸이 병투성이였습니다. 큰며느리 소개로 저는 작은아들과 함께 시(市) 시청각교육관에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두 번 봤습니다. 겨우 두 차례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시고 관정(灌頂)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잘 몰랐고 그저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라고 느꼈습니다. 법공부 후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관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온몸의 병이 기적처럼 나았고 그 후로 몸이 가볍고 병이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작은아들은 22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심각한 뇌 외상을 입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아들은 종종 말썽을 일으키고 어른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작은아들은 환골탈태해 몸이 점점 건강해지고 성격도 밝고 쾌활해졌습니다. 우리는 함께 법을 알리고 연공했습니다. 대법은 정말 좋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글을 몰라 법공부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법공부 장소와 연공장에 나갔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매일 꾸준히 갔고 아침에는 연공하고 저녁에는 법공부를 했습니다. 점차 집 근처에 연공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집에 법공부, 연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보서(寶書)인 『전법륜(轉法輪)』도 모셨습니다. 단체 법공부 시간엔 저는 뒤에서 들었고 수련생이 읽으면 손가락으로 책 글자를 짚어가며 봤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저는 글자를 좀 알게 됐고 수련생들도 저를 도와 글자를 가르쳐 줬습니다. 저는 감히 소리 내어 읽지 못했는데 수련생들이 작은 단락이라도 한번 읽어보라고 격려해줘 한 글자 한 글자 읽었고 수련생들은 모두 저를 너그럽게 포용해 줬습니다. 지금은 사부님의 『전법륜』과 각지 설법을 유창하게 통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한 불법(佛法)을 얻었고 그때부터 사부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법을 얻기 전에 준비했던 묘지를 처리했고 며느리가 효심으로 저를 위해 수의를 준비하자고 제안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아이가 저를 위해 의료보험증을 만들어주려 할 때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수련해서 병이 없어.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셨으니 의료보험증이 필요 없어.”

대법은 정말 좋습니다. 저는 손녀에게 종이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제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풀을 발라 전봇대에 붙였습니다. 겨울밤은 추웠지만 저는 온몸이 따뜻했습니다. 그 몇 년 동안 저는 법광(法光) 속에서 행복과 기쁨에 젖어있었습니다.

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다

1999년 7월, 중공 악당 우두머리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전례 없는 잔혹한 박해를 시작했고 거짓말이 하늘을 뒤덮어 세인을 중독시켰습니다. 저는 많은 수련생과 함께 시청에 청원하러 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정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맹목적인 탄압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 베이징에 갔을 때 도중에 기차 안에서 경찰에게 제지당했습니다. 저는 현지로 납치돼 불법 구류 15일 처분을 받았습니다. 구류소 음식은 더럽고 형편없었습니다. 워워터우(옥수수 찐빵)를 먹고 언 배추국을 마셨는데 국에는 흙과 벌레가 있었습니다. 구류소에서 나온 후 저와 큰며느리는 다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습니다. 베이징 곳곳에는 청원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을 검문하는 경찰들이 있었고 우리는 발붙일 곳이 없어 하룻밤을 걸었습니다. 날이 밝아 우리는 신방판(청원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며느리가 그들에게 파룬궁 상황을 설명했지만 결국 우리는 불법 감금되고 현지로 송환됐습니다. 저와 며느리는 다시 구류 15일 처분을 받았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온 후 시의 신방판, 파출소, 가도(주민센터)에서 제게 더 이상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지 말라고 강요했습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자 그들은 매일 우리집에 와 소란을 피우고 감시해 저는 어쩔 수 없이 석 달 동안 유랑 생활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낮에는 집 뒤에 임시로 만든 작은 오두막에 숨어 있었고 밤에는 나가서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고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배포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길을 잃을까 봐 걱정돼 앞에서 길을 안내해 줬습니다.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려 동서남북을 모두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곳마다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티커(접착식)가 없어서 모두 풀을 발라서 붙였습니다. 동북의 겨울은 매우 추워 저는 풀을 병에 담아 가슴에 품어 따뜻하게 했고 주머니를 목에 걸거나 허리에 묶었습니다. 진상 자료를 붙일 때 제 손은 춥지 않았지만 솔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솔이 얼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번은 밤에 진상 자료를 붙이고 있는데 앞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피할 겨를이 없어 저는 허리를 숙여 기침하는 척하다가 그가 떠난 후 다시 붙였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사부님의 신경문을 배우며 점차 정법(正法) 노정을 따라갔습니다. 세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그 몇 년간 밤에 저는 자주 수련생들과 협력해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나중에는 낮에도 함께 나가 사람을 구했습니다.

전화로 중생을 구하다

2013년 우리 지역에 진상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 생겼습니다. 저는 휴대폰 4대를 샀는데 3대는 자동으로 진상 음성을 발송하고 한 대는 통화용이었습니다. 저는 퇴직 연금이 있어 경제적 부담은 없었지만 휴대폰 4대의 한 달 통신 요금은 수백 위안이었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저는 한 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협력해 매일 꾸준히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독한 추위나 무더위, 비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쉬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풀숲, 옥수수밭, 강변 숲에서 진상 전화를 걸었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멀리 떨어진 버려진 돼지우리에 가서 걸었습니다. 매일 3~4시간 동안 전화해 평균 10여 명을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시켰습니다. 수련생들이 어떻게 전화를 거느냐고 물으면 저는 평소에 전화하듯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많이 다니지 않아 진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매우 간단했으나 사부님의 도움으로 중생들은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중생이 진상을 이해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때마다 우리는 큰 위안을 느꼈습니다.

대면해 중생을 구하다

나중에는 전화카드를 살 수 없게 돼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매우 좋았습니다. 한번은 40대 남성을 만났는데 그에게 진상을 말하자 듣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가 너무 화가 난 것 같아서 저는 먼저 자리를 피했고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가 그에게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화내지 마세요. 저는 선생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선생님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중공의 당, 단, 대에서) 마음속으로 탈퇴하면 선생님은 아무것도 손해 볼 것 없고 하늘과 땅이 알고 선생님과 제가 압니다. 선생님은 꼭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세요. 복이 있을 거예요.” 그는 이 말을 듣고 웃으며 중공 악당 조직 탈퇴에 동의했고 진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저는 세 식구를 만났습니다. 저는 여자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제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 여자분은 제가 파룬궁 진상을 말하려는 것을 알고는 듣지 않고 저를 쫓아냈습니다. 저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고 그녀의 남편이 차 안에서 말을 걸며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복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평안하길 바라는데 호신부(護身符)를 드려도 받지 않네요.” 그는 급히 말했습니다. “주세요, 복을 주시는데 왜 받지 않겠습니까? 살아있는 보살님이 오셨네요.” 그는 기뻐하며 호신부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말했고 그는 진상을 이해한 후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70대 남성에게 진상을 말했는데 그는 듣지 않고 제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제가 꽤 멀리 걸어갔는데도 그가 뒤에서 계속 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주일 후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뜻밖에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저번에 그렇게 욕을 퍼부었으니 욕하면 반드시 업보를 치른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하는데 그는 왜 넘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하자마자 몇 걸음 걷지도 않아 제가 넘어졌습니다. 아주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저는 즉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악념을 품었고 법의 표준 요구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고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때부터 진상을 몰라 욕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면 저는 모두 선념(善念)으로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상을 이해한 후 두 손을 모아 제게 감사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평안하면 아주머니도 평안하고 우리 모두 평안합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 떠나갔어도 제게 손을 흔들어 감사함을 표했고 저도 급히 두 손을 모아 답례했습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중생들을 제 앞으로 보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하러 집을 나서기 전에 항상 사부님께 인연 있는 중생들이 진상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안배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저는 몇 번이나 경찰들을 만났는데 진상을 이해한 후 삼퇴에 동의한 사람도 있었고, 진상을 듣지 않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진상을 말하다 경찰을 만났는데 그는 화를 내며 듣지 않고 다시 말하면 신고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정말 경찰이세요? 선생님은 착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모두 착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저는 선생님 온 가족이 평안하길 바라고 선생님을 위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여기서는 잠시 경찰이지만 집에 가면 어떤가요? 집에 가서 가족에게도 경찰 노릇을 하시나요? 결국 평범한 서민이고 서민으로서 평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며 제가 옳은 말을 했다면서 당, 단, 대 탈퇴에 동의했습니다. 때로는 경찰들이 제게 안전에 주의하고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의 호의에 감사했습니다.

나이 든 분들은 대부분 삼퇴했기에 저는 학생들에게도 자주 진상을 말합니다. 작년 주말에 대학생들에게 진상을 말했는데 방학이라 정원에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한 명에게 말하고 가지 않고 더 말하고 싶었는데 결국 진상을 모르는 학생이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온 후 제게 집이 어디냐고 묻는 말에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느냐고 묻는 말에 저는 수련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머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자 저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이름이 뭐냐고 묻는 말에 저는 모른다고, 그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모두 사람들을 위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당시 갑자기 신고당해 저도 좀 무서워서 더 깊이 말하지 못해 유감을 남겼습니다. 그 경찰은 아마도 선량한 마음에서 제가 나이가 많은 것을 보고 도중에 저를 놓아주며 차에서 내리라 하고 천천히 가고 천천히 집을 찾아보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지 빙 돌아서 확인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때로는 경찰이 “나는 파룬궁을 잡는 사람인데 감히 나한테 말하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대담하지? 내 주머니에 뭐가 있는지 봐”라고 말하며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경찰 중에도 착한 사람이 있어요. 덕은 닦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가요.”

지금 저는 매주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역에 가서 진상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공안국, 검찰원, 법원, 구치소 등지에서 근거리 발정념을 할 필요가 많았고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수련생들과 함께 갔습니다. 2015년 장쩌민 고발 서명에도 참여했는데 장쩌민 고발 서명을 받으러 곳곳에 갔고 많은 중생이 서명했습니다. 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대법의 어떤 항목이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참여합니다.

가족이 대법의 혜택을 받다

남편은 몇 년 전 돈 버는 데만 신경 쓰느라 대법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악한 박해가 시작된 후 그는 저와 작은아들을 걱정하며 큰 압력을 받았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저와 이혼하라고 권했지만 남편은 말했습니다. “아내는 그저 신앙을 가진 것뿐이고 신앙을 가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웃들이 수군거릴 때도 남편은 여전히 저의 수련을 지지해줬습니다. 제가 중공 악당에게 납치됐을 때 그는 집을 지키고 밥을 지으며 대법서적들을 잘 보호하여 전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은 일을 그만뒀습니다. 제가 밤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나갈 때 그는 길을 안내하고 저를 보호해줬으며 현수막을 걸 때 제가 걸지 못하는 것은 그가 걸어줬습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한 장소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갈 때 남편이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저는 뒤에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서 조금 가다가 또 넘어졌습니다. 남편은 멈춰 서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일어난 후 우리는 계속 걸었습니다. 걷다가 남편도 넘어졌습니다. 남편은 일어난 후 제게 말했습니다. “가지 말자, 오늘은 안 좋은 날이야, 일이 순조롭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남편이 알아보니 우리가 어젯밤에 가려던 곳에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사무소가 막 설치됐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이 잠복하여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대법을 얻었고 때로는 저와 함께 진상을 알리고 저를 도와 내용을 보충해줬습니다. 5년 전 그가 89세 되던 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남편에 대한 정도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대법을 얻었으니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기에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토바이가 저를 들이받아 넘어뜨렸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은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계속 절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대법제자입니다. 선생님을 갈취하지 않을 거예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 그는 급히 말했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많은 구경꾼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왜 대법이 좋다고 외치지 않아요, 어서 일어나서 대법이 좋다고 외쳐요.” 그는 즉시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저는 말했습니다. “가세요, 모두 바쁘니 가세요. 저는 괜찮아요.” 잠시 후 한 수련생이 와서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집에 데려다 드릴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 저는 몸에 묻은 흙을 털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사부님 보호 아래 제 몸은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 팬데믹 때 큰아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매우 심하게 기침하고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폐렴이 됐습니다. 중공 악당의 극단적인 봉쇄로 밖에 나갈 수 없어 병원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끼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저는 아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평소에도 대법을 매우 믿었으며 이미 삼퇴했고 저와 며느리의 수련을 지지했습니다. 제가 일러주자마자 그는 즉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습니다. 몇 번 외치자 그는 기운을 차렸고 침대에 가서 쉬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은 기적처럼 회복됐습니다.

큰아들은 비록 수련하지는 않지만 대법 일을 하는 데 자주 도움을 줍니다. 자료 제작에 필요한 소모품을 구매해주고 집으로 가져오거나 밖으로 보내줍니다. 우리집은 법공부 장소인데 그는 수련생들이 우리집에 와서 법공부하는 것을 매우 지지하며 매번 열정적으로 대접하고 법공부 조건을 마련해 줍니다. 때로 날씨가 쌀쌀하면 창문을 제때 닫으라고 당부하며 수련생들이 추워할까 걱정합니다. 큰아들도 복을 받아 지금은 몸이 건강하고 아무런 병도 없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맺음말

가정생활에서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일만 하고 심성을 지킬 줄도 모르고 법공부도 적게 해 자신을 수련할 줄 몰랐습니다. 심성을 잘 지키지 못해 며느리와 갈등이 생기면 안으로 찾을 줄 모르고 항상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좋아졌습니다. 이제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돼 며느리와의 갈등에서도 안으로 찾으니 여전히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고 결국은 법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이제 저도 법공부 할 줄 알게 됐습니다. 저를 도와주고 함께 법을 공부한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넘어지고 깨지며 수련했지만 대법의 요구와는 아직 멀었고 수련이 뛰어난 수련생들과도 거리가 멉니다. 지금부터 저의 부족한 점을 반드시 보완해 되도록 빨리 법의 표준 요구에 도달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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