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해 온 26년 동안, 수많은 대법제자가 대법 사부님의 지도하에 자비로 중생을 구해왔습니다. 대법의 자비로운 감화 속에서 양심이 되살아난 경찰들도 적지 않았으며, 그들은 말없이 자기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대법제자들을 돕고 보호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선행을 실천했고,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이에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의 일부를 적고자 합니다. 선한 마음을 지닌 경찰 여러분께서도 함께 선행에 나서 대법과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하는 일을 멈추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복덕을 쌓아 다가오는 인류의 큰 재난 속에서 평안을 얻으며, 중공에 끌려가 함께 순장되는 길을 피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구치소장 “파룬궁에 감사합니다”
2000년 여름, 우리 지역의 대법 수련생들은 정부 기관 관계자들이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중공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현지 중공 정부에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공안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형사 구류됐습니다. 또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수련생들 역시 납치돼 형사 구류소, 즉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구류라는 검은 소굴 속에서 저희는 중공의 불법적인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고, 중공의 감방 규율을 외우는 대신 대법 경문을 외웠으며,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곧바로 일어나 연공했습니다. 그로 인해 감시하던 경찰들은 저희를 매우 거칠게 대했고, 물건을 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가족을 만나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경찰들에게 언제나 공손하고 예의를 지켰고, 주변의 누구에게나 선의로 대했으며, 같은 감방에 수감된 사람들에게는 더욱 세심하게 배려하며 돌봤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구금된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법을 위해 온 인연 있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낮에는 늘 감방을 깨끗하고 상쾌하게 청소했고, 밤이 되면 항상 나무판으로 된 통 침대에서 썩었거나 움푹 파인 자리부터 골라 잠자리에 들었으며, 결코 평평하고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옷이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옷을 나눠 주었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보태 주었으며, 생활용품이 없는 경우에는 모두 함께 나눠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늘 가족, 그중에서도 친자매를 대하듯 정성을 다했습니다. 반면 겨울밤에 목욕할 때 쓰는 뜨거운 물은 대부분 다른 이들이 먼저 다 써버렸고, 어떤 사람은 두 통이나 차지하면서도 저희에게는 조금도 나눠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끝까지 다투지도, 원망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상대를 헤아리며 참고 양보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감방 안의 사람들은 저희가 그렇게까지 정성껏 대해주는 모습을 보고 모두 먼저 나서서 파룬궁의 진상을 알고자 했습니다. 저희가 대법의 경문을 외울 때면 그녀들은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고, 어떤 이들은 종이와 펜을 가져와 저희가 암송하는 경문을 받아 적게 해주었으며, 함께 대법 경문을 배우기까지 했습니다. 구류 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몇몇 사람들은 저희가 앞서 세 차례 불법적으로 구금됐을 때 묵서해 두었던 대법 경문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의 큰 흐름도 시작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녀들에게 대법이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을 배우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었고, 대법을 수련한 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진 행복한 변화도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대법의 가르침 속에 담긴 사람됨의 도리를 알려주며,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도덕을 따르고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양심을 중시하고 효도를 실천해야 하고 자신과 남을 해치는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에 매우 깊이 공감하며 크게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원래는 말다툼과 몸싸움이 끊이지 않고 욕설이 난무하며 혼탁하고 어수선하던 감방이 점차 고요하고 조화로운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우애가 싹트고 서로를 헤아리며 보살피게 됐으며, 잃어버렸던 양심과 삶에 대한 열정도 되찾았습니다. 그녀들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을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특히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수공예 작업을 하던 중 작은 가위를 몰래 숨겨 두었다가, 한밤중에 두 차례 손목을 그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병원으로 이송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구치소를 지키던 경찰들은 늘 마음을 졸이며, 언젠가 막지 못해 인명사고가 발생할까 봐, 또 그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대법제자들과 접촉한 뒤, 저희의 권선(勸善)을 통해 대법 속에서 저희가 깨달은 이치를 들으면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하늘과 땅 사이에는 신이 존재하며, 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사람은 신께서 창조하신 존재이기에 생명은 지극히 소중하고 자살은 죄가 되며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일이라는 점도 전해주었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질러 죄를 지었다면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고 속죄해야만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다시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선과 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진심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게 됐고 마침내 자살하려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이후에는 마음 편히 판결을 기다렸으며 사람도 밝아지고 즐거워졌습니다.
감방 안 사람들은 한 무리가 떠나면 또 다른 무리가 들어왔지만, 누구나 대법의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파룬궁수련생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과 선하게 지내며, 사심 없이 돕고, 원망하지 않으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자비롭고 고귀한 품성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감시하던 경찰들은 감방 안에서 일어난 모든 상황과 변화를 하나하나 또렷이 지켜보고 있었고 모두 매우 기뻐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를 향해 거칠게 욕설을 퍼붓던 태도가 점차 마음에서 우러난 칭찬으로 바뀌었으며, 야간 근무를 서던 경찰은 새벽녘에 오히려 먼저 저희를 깨워 연공을 하도록 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여자 감방을 전담하던 한 여경은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계실 때는 저희가 마음을 놓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저희를 크게 도와주셨어요.”
구치소장은 저를 지정해 수공예 작업에 쓰는 작은 가위를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일이 끝나면 다시 거둬 작업 담당자에게 돌려주도록 했습니다. 그는 세 차례나 제 손을 잡고 “파룬궁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량한 감옥경찰들이 때때로 날 도와주다
2001년 초, 수련생들은 중공에 의해 납치돼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고, 저는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아 성(省) 여자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중공의 감옥이 ‘진선인’을 굳게 믿는 대법제자들에게 가하는 박해는 극히 잔혹하고 비인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종 악독한 박해를 겪는 과정에서 저는 분명히 보게 됐습니다. 실제로 중공의 사악한 명령을 집행하며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은 부직급에 해당하는 일부 경찰들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경찰은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정심을 지니고 자신의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는 악경(악한 경찰)도 있었지만 선한 경찰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사실 악경들 역시 중공의 억압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옥경찰들은 제가 어떤 경찰을 만나든지, 저를 전문적으로 박해하던 악경을 포함해 모두에게 먼저 안부를 전하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또한 경찰이 저에게 질문할 때마다 저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결코 중공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내용과 같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수감자들 가운데에는 1999년 7월 20일 이후에 수감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여러 구류소를 거치며 이미 대법의 진상을 알게 됐고, 어떤 이들은 파룬궁을 배우고 연공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중공 감옥이 아무리 세뇌하고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강요하더라도, 그녀들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대법이 좋다는 믿음이 남아 있었고, 감옥 안에서 조용히 입에서 입으로 그 믿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악경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이 저에게 동정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1년 설 기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감옥에서는 갑자기 중공이 대법을 모함하고 날조한 ‘천안문 분신’ 조작 영상을 틀어 중생을 세뇌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파룬궁은 수련자들에게 살생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 수련하는 사람에게 자살은 죄가 되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또한 영상에서 분신했다는 사람들은 진정한 파룬궁수련생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제 주변에 있던 바오자(包夾: 수련생을 24시간 감시하는 수감자) 수감자들이 몰려들어 집단으로 저를 폭행했고, 저는 다시 악경들에게 끌려가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모욕과 욕설을 당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모기장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근무 중이던 경찰이 제가 모기장을 걸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기에 물려 얼굴이 온통 붉게 부은 모습을 보고는 바오자 수감자에게 모기장을 가져와 제게 걸어주도록 했습니다.
재무를 겸해 관리하던 한 감옥경찰은 유독 저를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녀는 호의로 제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대신 사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감자가 트집을 잡아 저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수감자를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엄하게 꾸짖고 충분히 단속했습니다. 이 일은 주변 수감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됐고, 그 이후로는 저를 함부로 괴롭히는 수감자가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18일 동안 완전 독방 감금이라는 박해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이른 봄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우 추웠습니다. 박해를 주도하던 경찰은 당직 경찰에게 제가 솜저고리나 스웨터 같은 두꺼운 옷을 입지 못 하게 하고 얇은 옷만 입히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직 경찰은 오히려 제가 솜저고리를 입고 독방에 들어가도록 해주었고, 어떤 날은 새벽녘에 당직 경찰이 독방으로 찾아와 제가 춥지는 않은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18일간의 독방 감금이 끝나 저를 끌어내 비판 투쟁을 벌일 때였습니다. 악경은 단상 위에서 목이 쉬도록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모욕하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단상 아래에 있던 수감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열 명의 수감자를 무대에 올려 비판문을 읽게 했을 때도, 사람마다 목소리가 마치 모깃소리처럼 작아 누구도 또렷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주먹을 들고 ‘타도’ 구호를 외치라고 했을 때 역시 주먹을 든 사람은 거의 없었고 무슨 말을 외치는지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악경이 아무리 고함치며 포효해도 소용이 없었고, 옆에 있던 경찰들 또한 이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몹시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보였습니다.
반복적인 쪼그려 앉기 형벌 박해를 겪는 과정에서, 당직 경찰들은 때때로 한밤중에 몰래 저를 도와 이를 닦게 해주고, 머리를 감고 목욕하게 해주었으며, 갈아입을 옷도 챙겨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악경에게 알려질 때면 저뿐만 아니라 당직 경찰들까지 꾸중을 듣고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간이 저를 도와 세면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저는 인간의 선량한 본성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차례는 무려 반년 동안 이어진 쪼그려 앉히는 형벌 박해를 겪었습니다. 한여름의 혹서에서 시작돼 혹독한 겨울까지 이어졌고, 그 기간 저는 밤낮으로 앉을 수도, 설 수도, 걸을 수도,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눈을 감고 졸거나 세면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수없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겪었지만 제 몸 상태는 오히려 매우 좋았습니다. 반면 24시간 교대로 저를 감시하던 수감자들은 한 조가 병들면 또 다른 조가 병드는 식으로 차례차례 쓰러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생산과 생활 담당 경찰들은 때때로 저를 도와 세면을 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게 해주었으며, 또 감옥 형사과에 요청해 저를 생산 작업장으로 데려가 일을 돕게 하기도 했습니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인력이 모자라 반드시 제가 가서 도와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어떤 때는 며칠, 어떤 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남짓씩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며, 밤에는 목욕하고 잠을 잘 수도 있었습니다. 형사과의 승인 아래 이뤄진 일이었기에, 악경들 역시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후 악경은 저를 작업장 맨 뒤에 두고 계속 쪼그려 앉기 형벌로 박해하려 했지만, 감구장과 작업장 주임은 오히려 저에게 일을 하러 나오라고 했고, 악경도 더 이상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억울하게 선고받은 3년형기를 마치기까지 아직 반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시점부터 저는 더 이상 가혹한 형벌 박해를 당하지 않게 됐습니다.
요컨대 그 어두웠던 세월 동안, 중공의 검은 소굴 속에서 제가 고난을 겪을 때마다 선한 마음을 지닌 경찰들은 늘 조용히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였으며, 은사께서 이러한 형식을 통해 저를 보호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사부님의 자비는 경찰들의 양심을 감화시켜 일깨우고, 경찰 중생들을 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감옥 정치위원 “여러분은 잘못이 없으며 이곳에 오실 분들이 아닙니다”
중공 감옥은 저에 대한 고문 박해를 해제한 뒤 노역을 시키는 방식의 박해로 전환해, 수감자 한 명을 제 곁에 붙여 매일 함께 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오히려 저에게 비교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제가 마주치는 수감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다른 감옥경찰들과 감옥 지도부를 만날 기회도 더 많아졌으며, 감옥 지도부에 편지를 보내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저는 먼저 경찰을 찾아가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했고, 그 기회를 통해 그녀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전해주었습니다.
경찰들은 모두 선의로 저와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했고 제 속마음을 인내심 있게 들어 주었으며, 제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도 믿어 주었습니다. 한 경찰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밖으로 나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파룬궁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 맞지요?” 저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감옥 형사과의 한 간부는 파룬궁의 진상과 제가 억울하게 판결받은 실제 상황을 듣고 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고도 원망이나 미움이 없으시다니, 그런 마음가짐을 보니 정말 기쁩니다.” 심리 교육을 전담하던 한 경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마음가짐과 성품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안팎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파룬따파가 저를 이렇게 이끌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대법제자 박해를 전담하던 부감옥장이 저를 불러 대화를 나눌 때 그녀는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제 사람이니 반드시 제 배치에 따라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감옥장님, 저는 당신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파룬따파의 사람입니다.” 저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그녀는 같은 말을 다시 반복했지만 연속으로 세 차례 모두 저는 같은 말로 단호히 부인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매우 평온했고 조금의 원망이나 잡념도 없었습니다. 부감옥장 역시 저에게 시비를 걸거나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가 아직 대법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기자 저는 감구장에게서 종이와 펜, 봉투를 받아 부감옥장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에서 저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전했습니다.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으로서, ‘진선인’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도덕적 경지를 높여,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아름답고 덕(德)이 높은 대법이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제가 대법을 수련하기 전후의 삶의 변화, 대법이 제게 내려준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가정의 화목이라는 큰 복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제가 정부에 진상 편지를 보내게 된 본래의 취지와, 그로 인해 불법적으로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된 실제 상황을 전했습니다. 또 ‘천안문 분신’ 사건은 파룬궁의 요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자 대법을 파괴하는 일로서, 파룬궁에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진정한 파룬궁수련생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 헌법에는 공민의 종교 신앙의 자유가 명시돼 있으며, 제가 ‘진선인’을 믿고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린 일은 그들을 위한 일로서 합법적이고 정당하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사법기관이 저를 모함해 억울한 판결을 내린 것과, 감옥이 저에게 가한 가혹한 형벌 역시 모두 불법 행위임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옥 지도부가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나쁜 사람을 따라 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마무리했고, 저는 그 편지를 부감옥장의 우편함에 직접 넣었습니다.
며칠 뒤 어느 날 밤, 부감옥장이 숙소로 저를 찾아와 당직 사무실로 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저는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드렸고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앉으세요. 제게 편지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하는 동안 부감옥장은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이었고, 제 편지를 여러 번 반복해 진지하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제 편지가 정말 잘 쓰였다고 하면서, 제가 대법 사부님을 매우 존경하는 마음이 글 곳곳에 드러난다며 ‘사부님, 사부님’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특히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대학생이라 해도 이렇게 잘 쓰기 어렵다며 거듭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나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늘 진심으로 남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편지는 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른 지도부에서도 읽어야 하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산 작업장을 순시하는 한 경찰관이 눈에 띄었고, 오래된 수감자에게서 그 사람이 감옥 정치위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작업장에는 물량이 부족해서 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저는 기회를 보아 정치위원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치위원은 제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감자들은 대개 경찰관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오히려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하자고 하네요. 참 드문 일입니다.” 저는 제가 억울한 판결로 감옥에 오게 됐으며 자신은 죄를 지은 수감자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경찰관과 마음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매우 온화하게 웃으며 “그런가요?”라고 하며,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실대로 모두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전에 다른 경찰들과 감옥장에게 전했던 진심 어린 이야기들을 그대로 정치위원에게 전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진지하게 제 말을 들었고,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은 점점 엄숙해졌습니다. 그녀는 제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했고, 어떤 학대를 받았는지도 자세히 물었습니다. 저는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말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무거워졌고 저를 깊이 동정하는 모습이었으며, 이 모든 일이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잘못이 없으며 이곳에 오실 분들이 아닙니다.”
구류소 여경 “여러분은 나가서 파룬궁을 배우세요”
2015년 초였습니다. 넓은 거리의 야시장에는 인파가 가득했고 분위기는 무척 활기찼습니다. 제가 시민들에게 대법 진상 자료를 나눠 주고 있던 중,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보조경찰 여러 명에게 납치돼 거리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가는 와중에 한 보조경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파룬궁 자료를 나눠 주고 있었군요. 왜 저한테는 안 주셨어요?” 저는 “빼앗아 간 그 큰 가방의 진상 자료 안에 여러분 몫도 들어 있습니다. 어서 가서 가져가세요. 여러분이 저를 붙잡는 건 범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며, 곧바로 제 손을 잡고 있던 힘을 풀고는 형식적으로만 제 옷자락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보조경찰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이야기하며, 대법제자와 대법 진상 자료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권했습니다. 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파룬따파 제자입니다. 오늘 밤 이곳에 여러분께 진상 자료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선인을 배우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입니다. 천안문 분신 사건은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거짓 뉴스이니, 중공 장쩌민(江澤民) 깡패 집단의 유언비어와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공산당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모두 기억해주십시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저는 거리를 따라 계속 이렇게 외쳤고, 중공 경찰차에 납치돼 올라탄 뒤에도 멈추지 않고 말했습니다. 경찰들은 내내 저를 제지하지도 않았고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으며, 그저 조용히 제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한 뒤에도 저는 사무실에 있던 경찰들에게 다시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웃으며 반응했고, 어떤 이는 저에게 앉으라고 했고, 어떤 이는 물을 권했습니다. 이때 사복 차림의 형사 한 명이 와서 저를 사무실 옆의 넓은 방으로 데리고 가 조서를 작성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조서를 쓰는 데 협조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러 온 것입니다.” 그러자 그도 웃었습니다. 제가 진상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한편으로 기록하고 있었는데, 저는 다시 그에게 말했습니다. “함부로 적으면 안 됩니다. 대법제자를 해치면 안 돼요. 당신은 저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돕고 있습니다. 돕고 있어요.”
자정 무렵, 한 경찰이 몇 명의 보안요원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있으세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다 주고, 잠을 자고 싶다고 하면 담요를 하나 가져다주세요. 연공을 하고 싶다면 하게 두세요. 여러분도 돈을 받게 될 겁니다. 공산당 돈이니까 안 받으면 손해죠.”
다음 날 오후, 보안요원이 저를 파출소 사무실 안 한 책상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젊은 경찰이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앉으세요. 위에서 당신에게 행정 구류 15일을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서명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서명하지 않으실 테니 그만두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에 대한 납치이자 박해이므로 당연히 서명할 수 없다고 했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젊은이, 당신들이 말하는 ‘위’라는 존재는 바로 장쩌민이라는 마귀입니다. 그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절대 속지 마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그 젊은 경찰은 갑자기 분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쩌민이라는 이름은 말하지 마세요! 저는 그 세 글자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인간을 정말 증오합니다!”
저녁 식사 후, 파출소에서 저를 구류소로 끌고 가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저는 다시 방 안에 있던 모든 경찰들에게 파룬따파가 국가와 국민에게는 이로움만 있을 뿐 해로움은 전혀 없다는 진상을 전했고, 대법이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고 있는 장엄한 모습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중공을 도와 악을 행하지 말고, 선과 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니 자신을 위해 퇴로를 남겨 두라고 권했습니다. 경찰들과 보안요원들은 모두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고, 어떤 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한 경찰이 문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궁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다들 어서 와서 들으세요!” 방 안은 한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파룬따파 제자가 대법의 인도 아래 진상을 전해 경찰 중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구류소로 끌려가 박해를 받으러 가는 길에서도 저는 차 안에 타고 있던 네 명의 경찰에게 내내 장쩌민의 죄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매국노이자 소련 KGB 극동 스파이였으며, 그가 중국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외국에 팔아넘겨 온 추악한 흑역사를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은폐해 왔는지 말했고, 이 광대 같은 인물이 어떻게 ‘6·4’ 학생운동(천안문 사태)의 피를 밟고 올라 음험하고 교활한 술책으로 중공의 우두머리가 되었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아울러 이 인간 말종이 군을 부패시키고 국가를 부패시키며 소리 없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국민을 해치고 짓밟아 온 금수 같은 악행들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으로 태어난 두꺼비 요괴 장쩌민이 파룬궁의 ‘진선인’이 억만 중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것을 질투해, 파룬궁을 향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며, 육체적으로 소멸시킨다’는 반인류적이고 멸절적인 잔혹한 탄압을 어떻게 발동했는지도 설명했습니다. 또한 ‘천안문 분신’ 사건은 중공의 장쩌민 깡패 집단이 직접 연출한 것으로, 파룬궁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고 중국인들로 하여금 파룬궁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 꾸민 충격적인 음모라는 점도 밝혔으며, 이어 보시라이(薄熙來)와 저우융캉(周永康)이 어떻게 대법제자들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폭리를 취했는지, 이는 이 지구상에서 전례가 없던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사실도 말했습니다. 저는 또 중공이 어떻게 대법제자들을 모조리 제거해 단 한 발붙일 곳도 남기지 않으려 했는지 이야기했지만,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도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중공 경찰을 원망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그들 역시 중공의 억압과 협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이며,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그들 또한 구원을 기다리는 생명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전했고, 저는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이처럼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이 또 어디에 계시겠는가.’
이렇게 저는 계속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며, 구류소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는 도중 한 번은 신호등에 걸려 정차했을 때, 한 젊은 경찰이 제게 그만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운전하던 중년 경찰은 “그냥 말씀하게 두세요, 말씀하게 두세요. 그렇게 오랫동안 억울함을 당했는데 말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여경은 “말씀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네 명의 경찰은 대법의 자비로운 감화 속에서 진상을 마주하며 양심이 깨어났고 함께 삼퇴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구류소 경찰들에게 저를 나쁘게 대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그동안 제가 많이 고생했다면서 잘 쉬게 해 달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구류소에서 지낸 15일 동안 저는 사람들과 매우 원만하게 지냈습니다. 제가 진상을 전하자 그녀들은 모두 파룬궁이 좋은 것이며, 중공에 의해 억울하게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들은 개인 생활용품을 반입할 수 없고 구류소에서 지급하는 것만 사용해야 했는데, 그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반면 저는 생활용품을 가져올 수 있었기에 갖고 있던 물품을 모두 꺼내 함께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녀들은 깊이 감동하며 “파룬궁은 정말 좋네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길러내다니요”라고 말했고, 또 “공산당은 가장 어둡고 가장 나쁜 존재네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해치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필로폰을 흡입하던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이 가장 훌륭하며, 전 세계 곳곳에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홍콩에서 파룬궁의 대규모 퍼레이드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해주었고 전체 분위기가 매우 당당하고 위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파룬궁에 관한 진상을 많이 알게 됐다고 말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분노를 느끼는 것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생체 장기적출로, 이 일에 대해 전 세계가 중공을 규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약에 빠지게 된 것 역시 공산당이 사람들을 해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경찰이 여러 감방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고 안팎으로 대대적인 청소를 하게 했습니다. 모두 닦을 것은 닦고 씻을 것은 씻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이 걸레를 제대로 빨지 않은 채 계속 바닥을 닦아, 아무리 닦아도 바닥이 여전히 더러웠습니다. 저는 그 걸레를 받아 깨끗이 빨아 다시 바닥을 닦았고, 그러자 바닥이 말끔하게 정리됐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젊은 여경이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파룬궁은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고, 또 얼마나 잘합니까? 여러분도 나가면 파룬궁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제 눈에는 저절로 눈물이 고입니다. 중공 경찰들 역시 본래는 중국의 평범한 백성들이 낳고 기른 자녀들이며, 중화 염황(炎黃)의 후손이고, 모두 대법이 만들어 낸 생명들이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원래 대법의 제도를 기다리러 온 존재들이지, 중공의 붉은 마귀를 따라 대법을 박해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직도 중공에 협조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는 경찰 여러분, 부디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이미 현명하게 선택한 그 경찰들처럼 선량함과 정의로 돌아가, 중공의 붉은 마귀를 따라 함께 희생되는 길로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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