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의 결속력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이 몇 년간, 종종 타지 수련생들에게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보세요, 저 산속 대법제자들은 정말 결속력이 있네요. 손발이 잘 맞고 또 정체(整體,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요.” 이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닙니다.

1. 함께 성연(聖緣)을 맺다

제가 사는 곳은 산간 지역으로 구역은 크지 않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어 수련하는 인원은 많습니다. 1996년, 파룬따파가 작은 산간 마을에 전해지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속속 파룬따파라는 수련 단체에 들어왔습니다. 1999년까지 이 작은 산간 마을에는 이미 400명 가까운 사람이 잇따라 법을 얻어 수련했습니다. 그중에는 공장장, 교사, 엔지니어, 노동자,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법을 얻은 후 직장과 가정에서 보여준 높은 경지의 행동은 산간 마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세상 인심이 날로 타락하고 오직 이익만 추구하는 오늘날, 혼탁한 홍진(紅塵) 속에서 어떤 힘이 이 단체를 고상하고 순수하며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게 했을까요?! 사람들은 생각에 잠겼고 그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바로 대법제자들이 실제 행동으로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선념(善念)으로 생생하고 신기한 진실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직접 연출했습니다. 맑은 흐름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흘렀습니다. 제 남편의 직장 상사는 부서 정례 회의에서 “우리 여기에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내 업무가 편해질 텐데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수련인이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처신하며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은 숭고한 경지입니다.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의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생활의 홀가분함과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파룬궁 단체 속에 들어오면 그곳이 인간 세상의 정토(淨土)임을 느낄 것입니다.

대법 법공부를 통해 제 인생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게 됐고, 이 작은 산간 마을에 태어나 어머니, 남편, 아이 그리고 수많은 대법제자와 함께 수련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법공부, 연공, 홍법(洪法)을 하며 생명은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됐고, 매일 대법 속에 녹아있는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은 1999년 7월까지 지속됐습니다.

2. 함께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다

1999년 4월 24일 저녁, 산간 마을의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각자의 팀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집에는 20여 명이 법공부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보도원이었습니다.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작은 소리로 다른 보도원에게 말했습니다. “베이징에 일이 생겼대요. 베이징에 가서 정법(正法)해야 합니다.” 그러고는 돈을 좀 챙기고 옷을 입더니 저에게 얼버무리며 베이징에 간다고 말하고는 급히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그리 명확하지 않았는데, 저는 당시 대강 알아듣고 급히 말했습니다. “저도 갈래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빨리 운동장으로 가서 기다려요.” 법공부를 하던 수련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면서도 잇따라 나갔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둘 다 베이징에 갈 테니 대법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잘 봐주세요.” 8살 난 아이도 법공부를 했는데 아주 철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서둘러 베이징으로 가려는 걸 보니,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뵙든 정법을 하든 저도 가겠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저도 갈래요.” 그녀는 집에 들러 알릴 겨를도 없이 저와 급히 운동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정을 아는 수련생들은 모두 운동장에 가서 기다렸고, 어떤 이는 이미 차를 타고 먼저 떠났으며, 당시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련생이 차를 불렀고 우리는 읍내 기차역으로 직행해 베이징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에는 사람이 많아 좌석이 없었는데 어쩌다 자리가 하나 나면 다들 번갈아 가며 잠시 앉아 쉬었고, 어떤 수련생은 줄곧 십여 시간을 서서 갔습니다.

25일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우리 산간 마을의 파룬궁수련생 수십 명은 중난하이(中南海) 청원사무실 앞에서 만났습니다. 다들 조용히 앉거나 서 있었는데 졸리지도 않았고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으며 어떤 신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베이징에 도착한 대법제자가 얼마나 되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중난하이에 들어가 상황을 반영했던 파룬궁수련생 대표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총리가 우리의 청원을 받아들여 납치된 톈진 파룬궁수련생들을 석방하고 각지 파룬궁수련생들의 법공부와 연공을 허용하기로 했으니 다들 돌아가십시오.” 이 소식을 들은 현장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정말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만여 명이 질서 정연하고 조용하게 떠났습니다. 그날 밤 베이징 대법제자들이 우리가 묵을 여관을 구해 주었습니다. 고향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베이징에 오려 했는데, 우리가 상황을 설명하며 문제가 해결됐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26일, 모두 현지로 돌아왔습니다.

거의 3개월이 지난 7월 20일, 하룻밤 사이에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중국공산당(중공)은 전국의 힘을 기울여 파룬궁을 탄압했으며, 우리 사부님께서는 유언비어와 비방을 당하셨고 대법은 공격받았습니다. 우리 산간 마을 대법제자들은 현지에서 청원했으나 성과가 없었습니다. 백 명 가까운 이들이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실하고 확고한 마음으로 겹겹의 저지를 뚫고 베이징 청원사무실로 향해 대법의 결백을 회복시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12월 20일, 장쩌민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함부로 지껄이며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혜택을 입은 대법제자로서 사실을 말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믿었던 국가 정부가 중공 전 수괴 장쩌민의 음흉한 위세를 발산하는 도구가 돼, 이렇게 흑백을 전도하고 잔혹하게 파룬궁을 탄압하고 박해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국의 대법제자들은 납치, 구타, 형벌을 더욱 두려워하지 않았고 각지 대법제자들이 잇따라 상경하여 청원했습니다. 중공 중앙의 딴마음을 품은 몇몇 사람이 손에 쥔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을 탄압하고 박해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그럼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해 중공이 먹칠하고 모함하는 거짓말을 폭로해야 했습니다.

2000년 12월, 우리 산간 마을 대법제자 40여 명은 다시 한번 베이징으로 갔고, 일부는 천안문에 올라가 생명으로 법을 보호하며 대법이 결백함을 실증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서서 우리는 두 손으로 현수막을 높이 들고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켜달라!” 마치 아주 먼 옛날의 서약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고 우렁찬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광장의 관광객들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든 현수막은 빼앗겼고 대법제자들은 인간성 없는 경찰에게 흉악하게 구타당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는 대법제자들이 생명으로 법을 실증한 위업이 남겨졌습니다.

여러 차례 온갖 시련을 겪으며 산간 마을의 수많은 대법제자는 다시 뭉쳤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 한 편 한 편이 항로를 인도했고, 우리는 점차 성숙해졌으며 법리상에서 이성적인 승화가 있었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타파하는 중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해야 함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정법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자 모두 서로 협력하고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각종 방식으로 거짓말에 세뇌된 중생을 구하며 자신의 사명을 실현했습니다.

3. 고난 속에 있는 수련생과 함께 박해를 반대하다

중공이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를 거리낌 없이 잔혹하게 박해했기에 일부 대법제자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게 됐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집을 떠나 떠도는 대법제자들이 좀 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거리에서 한 수련생이 어떤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을 보았는데, 그 수련생이 저에게 소개하며 말했습니다. “이분은 모 지역 수련생인데 진상을 알리다 모함을 당해 경찰이 지금 추적 중이에요.” 제가 다가가 수련생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곳에 오셨으니 여기서 마음 편히 법공부하고 사람을 구하세요. 우리는 다 한 가족이고 여기가 바로 집입니다. 우리가 먹을 게 있으면 동수님이 드실 것도 있습니다.” 저는 즉시 500위안을 꺼내 수련생에게 쥐여주며 우선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도리를 풀어 그녀의 목에 둘러주었습니다. 수련생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언니.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니 정말 집에 온 것 같아요.”

이 몇 년간 종종 타지 수련생이 박해받아 집을 떠나 떠돌다가 수련생의 소개를 통해 우리 지역으로 오면, 우리 현지 수련생들은 절대 거절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다수는 홀로 사는 수련생이 타지 수련생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안정된 환경이 생기니 수련생들은 마음이 놓여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며 발정념을 해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그렇게 교란과 박해를 타파했습니다.

또 병업 고비를 겪는 일부 수련생도 우리 지역으로 와서 우리와 단체 법공부를 하고 서로 교류하며 발정념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집에서도 심각한 병업을 겪는 수련생 세 명을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40대 여성 수련생은 유방이 짓물러 고름이 흘러나왔는데 두꺼운 거즈를 대고 있어도 금방 흠뻑 젖었습니다. 저는 그녀와 큰 침대에서 함께 잤는데, 그때 막 겨울에 접어들어 창문을 닫아 놓으니 방안 가득 썩은 비린내가 진동해 저와 남편 모두 구역질이 났습니다. 그녀가 무척 미안해하기에 제가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여기서 마음 편히 지내면서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면 돼요. 우리도 수련하는 사람이라 개의치 않아요.” 남편은 하루 세 끼 그녀에게 입에 맞는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이 수련생은 배낭 하나를 가져와 옷가지와 용품을 담아두었는데, 가슴 부위가 짓물러 고름이 흐르는 바람에 그녀의 옷에서도 아주 짙은 비린내가 나서 저는 그녀의 배낭을 옷장에 넣지 않고 바닥에 두었습니다. 그녀는 그걸 보고 몹시 기분 나빠했습니다. 4일 후 그녀는 처리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저는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았는데, 제 자비심이 부족하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 수련생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타 성(省) 수련생은 부부가 현지 협조인이었습니다. 박해받아 여러 해 동안 집을 떠나 떠돌다 나중에 부부가 납치됐는데, 남편은 불법형을 선고받았고 그녀는 자궁암 진단을 받아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수련생의 몸 상태는 점차 호전됐습니다. 하지만 수련생들을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세 가지 일도 따라가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이 이미 3년이나 됐고, 수련생은 자신의 몸에서 또 출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른 수련생의 소개로 우리 지역에 왔습니다. 남편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분을 우리집으로 모십시다.” 첫날 밤, 그녀는 쉴 새 없이 피를 쏟아 화장실 휴지통이 금방 가득 찼고 또다시 방안 가득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절대 수련생을 싫어하지 말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자.’ 소식을 듣고 일부 수련생이 와서 그녀와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했습니다. 3일 후 출혈이 멈추자, 그녀는 정말 기뻐하며 외손자를 데려오려 하고 또 셋집을 구해 머물려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집에서 8일간 머문 후 빈집으로 가서 지냈습니다. 제가 가서 그녀와 교류하며 말했습니다. “언니, 지금 수련생들은 다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언니는 원래 현지 협조인이었으니 현지로 돌아가 협조 역할을 하고 수련생들을 찾아 정체를 형성해야 해요. 그게 언니의 사명이에요.” 아마 제 말투가 너무 강하고 자비가 부족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나 봅니다. 그녀는 당시 좀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슨 뜻이냐며 자기를 쫓아내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또 한동안 머물다가 병업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올해 봄, 이 수련생은 결국 근본적으로 박해를 타파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식을 듣고 저는 몹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수련생이 떠난 후 지속적으로 수련생과 연락하고 교류하며 수련생이 정념(正念)을 유지하도록 격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각종 상태가 나타난 수련생들이 우리 이곳으로 와서 ‘조정(調整)’하려 했는데, 우리 현지 수련생들이 교류하여 이런 현상을 중시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지역에 대한 숭배와 의존입니다. 특히 저 본인이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고 이성적인 각도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열정만 있고 정념과 자비가 부족하여 수련생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4. 박해받는 수련생을 도와 가을 추수를 하다

이 몇 년간 우리 현(縣)에는 박해받아 수감되거나 병업 고비를 겪는 대법제자들이 좀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봄 파종과 가을 추수는 가장 바쁜 계절이라 수련생들 집에는 일손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우리 현 수련생들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통계를 낸 후 수련생들 집의 추수를 돕기로 상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박해받는 수련생 가족이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사심 없는 경지를 보게 하려는 것으로, 이것 역시 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한 농촌 대법제자가 박해받아 형을 선고받았는데, 우리 수련생 수십 명은 도시락을 가지고 2년 연속 추수를 도왔습니다. 통상 며칠 걸려야 다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가서 하루 만에 다 끝냈습니다. 수련생 가족은 무척 감격했고 주위 이웃들도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목격했습니다.

또 시골 교사 수련생 한 분은 불법적으로 직장에서 파면돼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일용직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불행히 사망했습니다. 그때도 마침 가을 추수철이었는데 우리 산골과 현 소재지 대법제자 90여 명이 도시락을 갖고 바로 이 수련생 집 밭으로 가서 곡식을 베고 껍질을 벗기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수십 무(畝)의 밭을 하루 만에 전부 수확했습니다. 수련생 가족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대법제자는 너무나 좋습니다.” 주위 이웃들도 다 눈여겨보고 마음속으로 탄복하며 잇따라 부러움과 존경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이 몇 년간 우리는 박해받는 많은 수련생 집의 추수를 도왔고, 이런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법을 실증하며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진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수련생 가족에게 대법과 대법제자를 더 깊이 인식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들은 모두 진심으로 대법제자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대법 수련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요! 참 친절해요! 지금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곳에서만 여러분 같은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어요.”

우리 산골 대법제자들은 일을 할 때 정체가 아주 잘 형성돼 수련생 대다수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매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수련생이 납치되면 다들 알게 된 후 가장 빠른 속도로 수련생 집안의 대법 물품을 잘 정리했고, 그런 다음 일부 수련생은 가족과 함께 파출소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으며, 다른 수련생들은 24시간 조를 짜서 릴레이로 발정념을 했습니다. 수련생 누구 집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현장에 가서 전력을 다해 도왔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습관적으로 말합니다. “보세요, 파룬궁 팀이 또 왔네요. 그들은 참 친절합니다.” 명절 때면 수련생들은 사비를 털어 물건을 사서 불법 감금된 수련생 가족을 위로하러 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인데, 많은 수련생 가족이 처음에는 원망하는 상태에서 찬사를 보내는 태도로 바뀌었고 우리를 인정하며 고마워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대법제자의 선행을 보았습니다.

5. 진상을 알고 정의감 있는 변호사

우리 지역 부부 수련생의 타지에서 일하는 아들(수련생)이 납치됐는데, 그들은 아들이 있는 도시 파출소에서 우편으로 보낸 형사구류증을 받고서야 아들이 납치된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지만 집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어 어려워했고 수련생이 함께 가주기를 원했습니다. 협조인이 알고 나서 저를 찾아와 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접견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좋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 셋은 차를 타고 그 시로 갔습니다.

수련생 아들의 거처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고 열쇠가 없었습니다. 사정을 아는 수련생이 와서 당시 납치 상황을 좀 이야기해 주었고, 돌아가서 변호사 전화번호를 찾아왔으며 열쇠 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집은 이미 수색당해 온통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협조인 수련생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약속대로 만났습니다.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대법제자군요! 저는 여러분을 잘 압니다. 여러분은 모두 선량한 사람이라 저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순조롭게 위임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 오후, 변호사는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 아들과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변호사는 나온 후 매우 감격해하며 말했습니다. “당신 아들이 그렇게 우수하고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좀 소극적이고 자신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으며 두 분 노인을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했더군요. 제가 그를 한참 격려했습니다. ‘기운을 차려야 해요. 당신이 누구입니까?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당신은 아무 죄가 없어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의 모교 선생님들과 후배들 모두가 당신을 정말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우리 민족은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재능이 아주 뛰어나니 나가서 무엇을 하든 잘될 거예요. 자신감을 가지세요’라고 말입니다.” 변호사의 헌신적인 진술이었습니다. 수련생 아들은 기운을 차리고 정념이 생겼습니다. 접견을 마치고 변호사는 차에 우리를 태워 파출소로 가서 경찰이 압수한 컴퓨터 등 물품을 돌려받았습니다.

한 달 후, 이 정의로운 변호사는 또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 아들을 접견하고 2시간 넘게 교류했으며, 검찰원에 가서 좀 물어보겠다고도 했습니다. 변호사는 자기는 일찌감치 공산당의 사악함을 꿰뚫어 보았다며 자기 아이는 입당시키지 않고 당원인 사람과는 친구를 맺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전에 파룬궁수련생 사건을 대리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정의감 있는 변호사였습니다.

또 외진 농촌에 사는 한 수련생이 납치돼 우리가 차를 몰고 현지로 가서 수련생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현지 수련생은 그녀의 집에 가보았는데 그 수련생은 아직 억류돼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련생 가정 형편은 어려웠는데 노모는 두 눈이 멀고 귀가 먹어 수련생 남편이 수발들고 있었습니다. 현지 수련생이 그녀 남편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접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감히 서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좀 사서 그 수련생 집으로 갔습니다. 수련생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전날 밤 타지 시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온 뜻을 설명하자 수련생 며느리는 책임을 지게 될까 봐 위임 서명을 못 하게 했습니다. 제가 수련생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고, 어머니께서 가장 마음을 쓰시는 분도 바로 당신입니다. 어머니께서 박해를 받으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어머니의 건강이 어떤지 걱정되지 않으세요? 우리는 어머니를 직접 뵐 수 없지만 변호사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어머니께 말씀을 전해드리고 서로의 상황을 확인해 줄 수 있지요. 사람이 고난 속에 있을 때는 관심이 가장 필요한 법입니다. 가족이 자신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머니께 얼마나 큰 정신적 지지와 위로가 되겠습니까! 나중에 어머니께서 돌아와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 아들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면 어머니를 뵙기에도 훨씬 마음이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두 수련생도 그녀 며느리에게 진상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고 현지 수련생이 변호사 위임비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진심이 그들을 감동하게 했고 그들 부부는 마침내 위임 서명에 동의했습니다.

수련생 며느리가 또 말했습니다. “정말 절묘하네요. 우리가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오늘 헛걸음했을 거예요. 시아버님은 절대 서명하지 않으실 거거든요.” 우리가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신의 배치가 있다는 거예요.” 또 그들 부부에게 진상을 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수련생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하신 말씀을 믿어요.” 또 며칠 후면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니 가능한 한 빨리 접견해서 소식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신의 배치가 있으니 모든 게 다 소원대로 될 거예요.”

다음 날 아침, 저와 수련생은 8시 반에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해 찾으려던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그는 아주 흔쾌히 대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접견 시간을 예약하려는데 마침 휴일과 겹쳐 3일 후에나 가능했습니다. 변호사가 오늘 오후에 자리가 있는지 보자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마침 취소된 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또 너무 절묘했습니다. 정말 사부님의 배치였고 길을 다 닦아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비서 한 명 데리고 지금 바로 갑시다. 거기 가서 밥 먹고 나면 접견 시간이 되겠네요.” 가는 길에 수련생은 변호사에게 파룬궁 수련이 위법이 아니라는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진상을 들은 적이 있었고 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삼퇴)도 했습니다. 구치소 옆에 도착해 우리는 음식점을 찾아 앉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수련생과 나가서 변호사를 만날 때 수련생이 진상을 잘 알리고 아주 적절하게 해서 저는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마침 제가 변호사 옆이라 제가 좀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제가 박해받는 수련생 이야기가 되자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납치된 이 수련생과 일면식도 없어요. 그녀가 구치소에 갇힌 걸 알고는 어제 아침 7시부터 나와서 그 먼 길을 운전해 그녀 집에 갔고, 물건을 사고 돈을 주며 그녀 어머니와 남편을 보살폈고, 또 참을성 있게 그녀 가족에게 위임 서명을 하라고 권했지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걸 보고 변호사 위임 비용도 가족에게 내라고 하지 않았고요. 오늘 접견을 마치면 우리는 또 그녀 집에 가서 소식을 전해줘야 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대가 없이 헌신할까요? 바로 우리가 같은 대법을 수련하고 서로 가족과 같기 때문입니다. 명예와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진선인의 경지는 바로 남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 수련생은 각자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변호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공감했습니다. 그 젊은 여성 변호사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이 공법을 배우는 데 조건이 있나요?” 제가 말했습니다. “담배 피우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도박하지 않고 살생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고, 진선인 표준에 따라 사람이 되면 됩니다.” 그녀는 듣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좋네요, 이 공법은 분명 좋아요.” 그리고 기쁘게 삼퇴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시어 이 여성 변호사가 진상을 듣고 구원받도록 배치하신 것입니다. 접견 시간이 되자 두 변호사는 순조롭게 수련생을 접견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납치됐는데 가족이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해 공안국에 가서 접견을 요구했으나,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경찰이 태도가 횡포하여 접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변호사는 검찰원에 가서 고소했고 검찰원에서는 상황을 좀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는 12389 신고 전화(경찰 비리 신고 센터)를 걸어 말했습니다. “저는 ○○ 변호사입니다. 저는 모든 증명서가 다 갖춰져 있는데 공안국에서 피고인 접견을 불허하는 것은 변호사 접견법 위반입니다. 저는 지금 바로 구치소로 접견하러 가겠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공손하게 접견하게 해주었습니다. 변호사는 억류된 수련생을 만나 말했습니다. “정념을 가지세요. 제가 당신을 위해 무죄 변론을 하겠습니다.” 이런 변호사들은 모두 수련생이 평소 끊임없이 진상을 알려주었기에 오늘날 그들의 정의로운 행동이 있게 된 것입니다.

6. 갈등 속에서 집착을 찾아내다

어떤 사람은 우리 산골 대법제자들이 분명 단체로 환생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말 마음이 잘 맞고 똘똘 뭉칩니다. 그렇습니다. 대법의 성연(聖緣)이 우리를 이곳에 함께 태어나게 했고,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길에서 줄곧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실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할 때 정체를 이루지만 협력하는 데 있어 때로는 갈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수련 중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 세상에 머물 수 있도록 충분한 사람 마음을 남겨주셨습니다.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라 닦아 없애지 못한 사람 마음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때로는 우리가 일 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근래 우리 수련생 사이에 나타난 갈등 중 다수는 질투심, 일 욕심, 명예욕, 자아에 대한 집착, 수구(修口)하지 않아서 조성된 것임을 보았습니다. 사악은 바로 우리가 닦아 없애지 못한 관념과 집착을 이용해 일을 벌이고, 협력하여 일을 하는 중에 오해, 가상, 의심, 원망을 조성합니다. 이런 일이 때때로 나타납니다. 저에게도 이런 마음이 다 존재합니다. 법공부 중에 저는 안으로 찾아야 하며 눈을 남에게 고정하지 말고 자신을 수련해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제거되지 못한 마음이 있기에 늘 일이 나타나는데, 자기가 잘못이 없다고 느낄수록 귀에 거슬리는 말이 더 잘 들립니다. 한 가지 일을 그가 그녀에게 전하고, 관념을 갖고 전하고 또 전하다 보니 진실을 잃게 되고 간격을 조성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중시하게 됐는데, 만약 장기적으로 이렇다면 이런 불협화음 요소는 다른 공간에서 부정적인 장(場)을 형성해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교란할 것입니다. 우리 지역은 원래 협력이 가장 잘되는 정체였는데 지금은 왜 이런지, 일은 잔뜩 벌려 놓고 그렇게 많은 사람 마음이 섞여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저는 최근 발생한 갈등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왜 항상 저와 관련이 있는지 생각했고 그중에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보았는데, 늘 사람의 이치에 따라 자신이 잘못 없음을 강조하고 변명하는 것은 강렬한 자아이며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지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자신의 이름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설령 무엇을 보고 듣더라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인데, 마음에 두지 않으면 그 물건이 당신에게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는 원망하지 않기로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원망은 바로 질투인데 이 물건이 다시 나오면 저는 그것을 꽉 잡을 것입니다.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爲神)’에서 송광명이 질투심을 일으키자 그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무수한 중생이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의 동향을 지켜보며 인식하면 바로 고칩니다. 제게 있는 마음속 매듭을 반드시 풀어내고 그것을 닦아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수련생들은 모두 매우 좋고 다들 안으로 찾을 줄 알며 법을 실증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갈등이 나타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모두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를 원융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개인의 정서 때문에 정체가 법을 실증하는 일에 영향을 준 적이 없습니다. 최근 또 꽤 마음을 건드리는 듯한 일이 몇 건 있었지만 저는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온했습니다. 저는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진실하게 느꼈습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제가 옷장을 열자 큰 짐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최근 우리가 어떤 일을 협력하는 중에 저는 정법 노정이 비할 바 없이 빠름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가운데 마음가짐이 순수하고 기점을 바르게 하며, 자아를 내려놓고 타인을 원융하니 사부님께서 길을 다 닦아 놓으셔서 결과가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봉신연의(封神演義)’를 보며 저는 깨달은 바가 좀 있었습니다. 신공표(申公豹)는 질투심 때문에 스스로 망쳤고, 강자아(姜子牙)는 비록 신공표보다 재주는 없었지만, 원시천존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을 맡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 수련 중에 제거하기 어렵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질투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법 중에서 중점적으로 질투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자신을 찾고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표면의 옳고 그름은 정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수련생의 귀한 점, 훌륭한 정념정행(正念正行)이 보였고, 수련생들이 이뤄낸 성적에 대해 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찬탄했습니다. 수련생들을 보면 더없이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장이 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매번 마음을 건드리는 기회를 잡을 것인데 그것은 자신을 순수하게 하고 승화하는 아주 좋은 일입니다.

맺음말

예전에는 글을 좀 쓰려고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별로 매끄럽지 않고 사고가 아주 명석하지 않음을 느꼈는데, 분명 마음이 아직 그다지 맑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이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자신의 심경과 대응하는데, 저는 또 자신에게 아직 순수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깊은 층에 아직 집착이 숨겨져 있는데, 제가 점차 진선인에 동화될 때 이런 물질은 따라서 해체될 것입니다.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할 것입니다.

지난날을 회상해 봅니다. 대법이 널리 전해져 우리는 산간 마을에서 잇따라 법을 얻었고 단체 법공부하고 단체 연공했습니다. 대법이 탄압당하자 우리는 일찍이 함께 생사를 내려놓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했습니다. 중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찍이 함께 밤낮없이 진상을 방방곡곡에 뿌렸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하며 한 편 한 편의 고소장은 우리의 호연지기(浩然正氣)의 위업을 남겼습니다. 박해에 반대하여 우리는 함께 발정념했고, 진상, 법률, 자비로 공안·검찰·법원의 기고만장함을 제지하고 그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25년의 정법 길, 우리는 온갖 고생을 다 겪었지만 사부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걸어올 수 있었으니 우리는 소중히 여기고 또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저는 도시의 시끄러움을 적응하지 못하고 깊은 산속의 고요함을 좋아합니다. 깊은 산속의 환경이 저를 단련시켰고 저와 수련생은 서로 돕는 가운데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깊은 산속 대법제자의 결속력은 금강불파(金剛不破)의 보루입니다.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관용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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