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스승으로 삼아 심성 수련을 배우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베트남의 현재 수련 환경을 논할 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부님께서 베트남 수련자들의 수련과 진상 알리기 방식에 대해 이미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대상성이 있는 안배를 하셨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모호한 여지도 없다. 만약 누군가 이를 ‘개인 체득에 따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법을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사부님께서는 베트남 수련자들을 위해 특별히 경문 ‘베트남 수련생들에게’를 발표하셨다. 그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명확히 지적하셨다.

“그런 까닭에 이 비상시기에 수련생들은 냉정해야 하는바, 지금은 대형 진상 알리기 활동을 개최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대항해서는 안 된다. 수련은 본래 자아를 수련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므로, 이 기간 개인 법공부와 연공을 위주로 하며, 대형의 법공부와 연공 활동을 조직하지 말라. 매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든, 모두 냉정해야 하며, 격화되지 말라. 조용히 관찰해 보라. 누가 사태를 선동하면 누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디 명심하라.”

이 단락의 법은 베트남 수련자들이 현재 처해 있는 구체적인 정치, 사회와 수련 환경에서 따라야 할 지도 원칙이 직접적으로 제시됐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단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적하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해야 할 것’도 분명히 밝히셨다. 즉 개인 수련으로 돌아가 냉정과 이성을 유지하며, 전체 환경의 안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이 경문이 지닌 현실적 지도 의미를 희석하거나 심지어 부정하려 시도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형세가 달라졌다”라고 주장하거나, “시간이 많지 않아 예전 방식대로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심지어 “이것은 내가 법에서 얻은 체득이다”라는 이유로 경문의 요구와 상반되는 행동을 공공연히 하는 경우도 있다. 수련인에게 이러한 언행은 매우 위험하다.

우선 이른바 ‘형세가 변했다’는 주장은, 사부님께서 법에서 명확히 지적하고 새롭게 안배하신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사부님께서 이미 내린 지시를 부정하거나 수정할 자격이 없다. ‘형세 변화’를 이유로 경문을 부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판단으로 법의 기준을 대체하는 것이다.

둘째, 경문 요구를 따르지 않는 것을 ‘층차가 다르다’거나 ‘체득이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수련에서 매우 엄숙한 경계를 혼동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체득은 반드시 법을 위배하지 않는 전제하에서만 성립된다. 만약 이른바 ‘체득’이 사부님의 명확한 요구와 충돌한다면, 그 체득은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에는 사오(邪悟, 삿된 깨달음)거나 외부의 교란일 수도 있다.

또한 베트남 수련 환경은 매우 특수하고 취약한 성격을 지닌다. 사부님께서 경문에서 이미 명확히 지적하셨듯이, 중국공산당(중공) 세력이 박해 압력을 다른 나라로 전가하려 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바로 이러한 민감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나치게 눈에 띄거나 규모가 큰 활동, 쉽게 ‘대항’이나 ‘정치 활동’으로 규정될 수 있는 행동은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전체 수련자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중생에게까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베트남 수련자들에게 ‘베트남 수련생들에게’의 요구를 엄격히 따르는 것은, 정진 여부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부님과 법을 진정으로 믿는지(신사신법), 법의 편에 서 있는지의 문제다.

아무리 그럴듯한 구실이라 해도 사부님의 명확한 안배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이를 듣는 사람은 반드시 냉정하게 법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런 행동이 과연 법을 실증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 것인가? 내게 이 일을 보여준 것은 나에게 무엇을 수련하라는 것인가? 내가 어떤 점에서 제고될 필요가 있는가?’

오직 사부님의 안배를 따른다는 근본 전제에서 맑은 정신을 유지할 때, 비로소 베트남 수련 환경을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며, 수련자들이 안정되고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다. 또한 특수한 시기에 한순간의 생각 차이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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