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을 다시 제거하다

글/ 아일랜드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이 글을 쓸 때 나는 좀 힘들었다. 이 추한 마음들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것이 체면임을 발견했으니 그럼 덤으로 체면도 제거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고 수련생들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내게 용감하게 자신을 해부하고 그것들을 폭로할 용기를 주었다.

나는 어릴 때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어서 늘 혼자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나의 질투심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가족(수련생)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면 나는 매우 불쾌해하며 다른 사람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압박과 가족이 나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내가 거의 3년 연속 학년 상위 3등을 차지하며 꽃과 레드카펫과 상장과 박수갈채를 받았기 때문에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들어섰다. 진정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선 후 나는 비로소 내가 이렇게 형편없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집착심 중에서 질투심은 가장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줄곧 생각했다. ‘왜 질투심은 이렇게 제거하기 어려운가?’ 예전에는 늘 내가 질투심을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지나면 어떤 촉발점이 있으면 또 질투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잘 수련된 한 몫을 분리하여”(북미 제1기 법회설법).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 질투심은 나에게 일반적인 집착심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강렬하므로 나는 깊이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더 이성적으로 그것을 인식해야 더 철저히 제거할 수 있을까.’

질투심에 대한 인식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밖에 사람이 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은데 ‘나는 왜 질투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나는 절대 신동을 질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신동이 아니고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몸매와 외모가 나보다 좋은 사람도 질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투심이 가장 쉽게 나오는 때가 두 가지 상황임을 발견했다. 첫째 비교해보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약간 뛰어날 때, 즉 비교적 작은 차이일 때다. 둘째 이 작은 차이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을 때다. 나는 신동을 질투하지 않지만 같은 반 동급생은 질투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실력이 대체로 비슷해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성적이 나보다 좋거나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받는 경우다.

어느 날 나는 한 글에서 이렇게 쓴 것을 봤다. 페이톈(飛天)학교에서 한 학생이 동작 요령을 파악한 후 즉시 동료를 불러 자신이 터득한 기교를 모두 알려줘 모든 동료가 동작을 구름 흐르듯 아름답고 깔끔하게 할 수 있게 했다. 일반인 학교는 이렇지 않다. 특히 중국에서는 어떤 동급생은 분명히 한 문제를 풀 줄 알면서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나도 몰라”라고 한 마디 던진다.

비교해보면 ‘나는 어째서 페이톈학교처럼 좋은 환경이 없을까?’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이것 자체가 바로 질투다. 나는 페이톈학교 학생들의 환경을 질투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 한 걸음 물러서면 바다와 하늘이 넓어진다. 각자의 환경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주신 수련의 장이다. 넓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은 본래 천차만별이고 각자 장점이 있어야 생명의 풍부함과 우주의 번영을 이룬다.

수련 중에 질투심을 닦아내다

우리는 법공부 팀이 하나 있는데 매일 아침 법공부를 견지한다. 나중에 동년배인 J 수련생이 우리 팀에 가입했다. 그녀가 법을 읽는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어서 나처럼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더듬거리고 때로는 잘못 읽는 것과 달랐다. 가족 수련생이 우리 사이의 상태 대비를 나에게 지적했을 때 나도 질투했다. 나는 몰래 그녀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누가 법공부 팀에 더 많이 참가하는지, 누가 더 시간을 잘 지키는지 비교했고, 심지어 그녀가 법공부에 오지 않았을 때 나는 약간의 기쁨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는 반성했다. ‘나는 수련생과 이런 표면적인 것들을 비교해서 뭐하나?’ 이것은 절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비교는 질투에서 나온 것이며 기점 자체가 잘못됐다.

나와 J는 이전에 어떤 교류도 없었으며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거의 그녀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녀를 만났더라도 그녀를 질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인은 능력과 조건을 중시하는데 속인 각도에서 보면 그녀는 정말 내가 질투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여전히 질투심이 일어날까?’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질투한 것을 말씀하셨다. ‘신공표는 왜 강자아를 질투했을까?’ 신공표는 매우 대단했고 강자아는 늙고 능력도 없었는데 봉신(封神)의 영광은 강자아에게 주어졌다.

‘내가 정말 수련생을 질투하고 싶은가? 조금도 그렇지 않다.’ 질투심이 나온 후 정말로 나를 매우 괴롭게 한다. ‘그렇다면 진아(眞我)가 질투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질투심으로 이루어진 가아(假我, 거짓 자아)이며 그것이 수련생을 질투하는 것이다. 이런 질투는 신공표가 강자아를 질투한 것,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질투하는 것과 얼마나 비슷한가! 나는 즉시 이 마음을 붙잡아 그것을 진아와 분리시켰다. 나는 한 생각을 발했다. ‘너는 내가 아니며 나는 반드시 너를 제거하겠다.’

처음에 나는 속인을 질투했다. 한동안 지나자 주변의 속인들이 하나같이 뛰어났지만 나는 전혀 질투하지 않게 됐다. 나중에 나는 수련생을 질투했고 다시 수련생도 질투하지 않게 됐다. 이것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마음 닦는 과정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전법륜) 사부님께서 질투심을 따로 떼어내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이다. 이 점을 기억하며 질투심이 아직 얼마나 남아 있든 튀어나오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그것을 제거할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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