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뉴질랜드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중국에 있을 때, 저의 한 친척은 수년 동안 파룬궁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아 저는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그녀는 자신이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관광지에서 파룬궁수련생의 전시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전 세계에 그렇게 많은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중국공산당(중공)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해 진선인(眞·善·忍)을 따르는 이 단체를 박해했다는 사실도 듣게 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 상황을 아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그날 저는 아주 쉽게 그녀를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생각이 바뀐 것에 놀라웠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힘과 대법이 사람을 구하는 위력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만약 내가 해외에 갈 수 있다면 나도 관광지에 나가 진상을 알리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그 소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저는 뉴질랜드에 오게 됐습니다. 집이 없어 생존을 위해 도시를 전전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진상 거점에 나가는 일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는 우리가 중공의 박해를 받을 때 손을 내밀어 우리를 받아준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에 감사해야 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 그들도 대법의 보호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몇 년간 우리는 줄곧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약을 실천하며 사명을 이행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우리는 주로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뉴질랜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관광지로 세계 각국과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고 현지 시민들이 쉬러 오는 관광지를 선택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의 전시판은 그림이 눈에 띄고 글씨도 선명해 멀리서도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진상을 알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기쁨이 그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삼퇴를 선택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말한 뒤 진심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하는 모습은 지금도 제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중공 바이러스가 발생해 전 세계가 큰 타격을 받았고 뉴질랜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관광 산업은 전례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진상 거점을 유동 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 광장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은 상업·시정·식당·오락 시설이 있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집결지입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진상 거점을 지나며 점차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상 전시판을 보고 스스로 서명하며 박해 반대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SNS를 통해 우리를 알고 있다며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근처 식당과 상가의 중국인들은 우리와 친구가 돼 지나갈 때마다 새로 나온 진상 책자를 가져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체격이 크고 온화한 분위기의 중년 서양인이 지나갔습니다. 그는 오른손에 두꺼운 책을 몇 권 들고 있었고, 태연한 모습이 학자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미소를 지으며 진상 자료를 건넸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 다시 돌아와 다소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아시나요? 인터넷에서는 장기적출의 진실 여부와 관련해 논란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저는 “저는 중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례하게 “왜 여기 있습니까? 왜 당신 나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라고 연달아 물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중공의 만행을 알기를 바라며, 20년 넘게 이어져 온 중국에서의 파룬궁 박해를 멈추기 위해 우리와 함께해 달라고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거짓말이야! 정말로 박해를 받는다면 어떻게 해외에 나올 수 있었겠어?”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서방 국가들과 해외의 정의로운 인사들, 그리고 파룬궁수련생들이 오랜 세월 중공의 박해를 폭로하고 규탄해 왔기 때문에 중공이 어느 정도 수위를 낮춘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수차례 말로 할 수 없는 잔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이야기입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그리고 제 경험이 담긴 자료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꼼꼼히 읽은 뒤 제 눈을 바라보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고 평온한 마음으로 왼쪽 콧구멍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이것이 중공의 음식물 강제주입 고문이 남긴 증거입니다.” 그는 제 텅 빈 콧속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제 손에서 전단지를 받아 들고 천천히 돌아서서 떠났습니다. 그 순간, 진상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강하게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사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진상이 그의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광장에는 종종 기독교 신자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 있곤 했습니다. 저는 먼저 인사를 건넸고 대부분은 전단지를 받았으며, 즉석에서 파룬궁수련생의 박해를 반대하며 서명해 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 중 한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현지인으로 약간의 중국어를 할 줄 알았고, 아내는 중국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서명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는지 먼저 대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파룬궁 관련 내용을 본 적은 있지만 깊이 알고 있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법을 얻은 경험, 수련 후 신체의 변화와 심성의 향상, 저와 수련생들이 수련 후 겪은 기적, 그리고 제가 중국에서 겪은 박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수차례 중공에 불법 구금돼 수많은 비인간적 고문을 겪었음에도 사부님을 배신한 적이 없으며, 이것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보편적인 상황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남편은 들을수록 더 관심을 보였고, 아내는 계속해서 통역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건넨 모든 대법 진상 자료를 받아갔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즉시 저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선의에 매우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미 사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주신 발정념이란 신통 법력을 사용해 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위대함에 놀라워했고, 대법제자들의 굳건한 신념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이야기했고, 그의 아내는 계속해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제 의견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기독교인이 스스로 ‘END CCP(중국공산당 종식)’ 서명 전시판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중공은 악마입니다. 중공을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목을 스윽 베는 동작을 했습니다. 우리는 웃으며 “맞습니다”라고 답했고, 그는 즉시 탄원서에 서명하며 중공이 하루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진상 장소에 도착했을 때, 서양 남성 두 명이 광장 한가운데에서 말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전시판과 자료를 정리하자 그들이 곧장 다가와 서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친구에게서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 듣고, 그래서 오늘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명한 뒤 그들의 표정은 한층 더 후련해 보였고 마치 인생의 큰일 하나를 막 끝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광장에는 늘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평소처럼 광장에서 서명을 받았고, 남편은 분수대 근처 벤치에서 ‘신통가치법’을 연공하고 있었습니다. 서른 살 정도 돼 보이는 서양인 남자가 제 곁을 지나가길래 제가 진상 자료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는 느닷없이 큰 소리로 “꺼져!”라고 외쳤습니다. 왼손에는 독한 술병을 들고 있었고, 오른손을 꽉 쥐며 저를 때릴 듯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때 서양 남녀 한 쌍이 지나가다가 그 남자를 제 쪽에서 밀어냈고, 여자는 두 팔을 벌려 저를 뒤에서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백인 경비원이 매장에서 뛰쳐나왔고, 한 명이 그에게 당장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고 계속 고함을 질렀습니다. “여기는 뉴질랜드다!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돌아가라!”
근처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모두 멈춰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곧 경비 책임자도 뛰어와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서둘러 떠나갔습니다. 그동안 그 여자는 계속 저를 달랬습니다. 저는 웃으며 가볍게 말했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아요. 제 남편이 저기 있습니다.” 제가 연공하고 있는 남편 수련생을 가리키며 안심시키고, 이어 그들에게 진상을 전했습니다. 그들도 저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이후 우리가 다시 진상 장소에 가면 경찰들이 종종 찾아와 우리를 살피고 방해받는 일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떠나곤 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저와 남편은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바로 진상 장소로 오는 길에 우리 부부는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운전하면서 길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가 시간을 낭비하고 기름도 소모한다고 탓했습니다. 그는 제가 잔소리가 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서로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찾고 반성해보니, 자신을 잘 닦는 것이 근본이며, 수련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온갖 사람 마음에 쉽게 교란당하고 휘둘리며, 우리 공간장의 사물도 마음 따라 변화해 구세력이 그 틈을 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란하려는 중국인 유학생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진상 전시판과 삼퇴 정보를 보자마자 우리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젊은 생명이 중공 악당의 독에 물들어 자유 사회에 와서도 여전히 독재국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에게 지금 진상을 알려주지 않으면 도태될 위험에 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를 구해야 한다는 선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의 표면적인 욕설을 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를 구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구원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휴대폰으로 촬영했고, 그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욕을 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학생은 새로 온 유학생이지요? 방금 학생이 한 행동은 뉴질랜드에서는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나는 이미 학생이 우리를 괴롭힌 영상도 찍었어요. 지금 이 영상을 경찰에 넘긴다면 학생의 앞길은 끝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나는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학생은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이성을 잃은 것이니까. 여기는 민주 국가이지, 중공이 다스리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랍니다. 이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꼭 읽어 보세요. 중공의 본질이 매우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돼 있으니까요. 학생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학생을 이곳에 공부시키기 위해 부모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그분들을 걱정하게 하지 마세요.”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 ‘9평’과 다른 진상 자료를 받아 들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얼마 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지난번 왜 그렇게 흥분했나요?”라고 묻자 그는 말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거의 모두 중공 당원입니다. 여기서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는 걸 보니, 우리 집안을 모두 멸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방학 때 돌아가서 진상을 전하고, 그들이 중공에서 탈퇴하면 안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료를 읽고 나서 이제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 시기 저는 법공부를 비교적 잘하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교란 앞에서도 법으로 헤아릴 수 있었고, 대법에서 닦은 선(善)으로 그의 뒤에 있는 사악함을 해체해 그가 진상을 깨닫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 법에서 승화하고 향상됐습니다.
최근에 우리 지역의 협조인이 단체 법공부 교류 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진상을 전했는데, 한 의원이 “이미 여기서 서명도 했고 진상 자료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협조인은 “우리가 밖에서 한 모든 일이 헛되지 않았고, 모두 작용을 하고 있었다”라고 감격했습니다.
우리는 수년간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며 진상을 전해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매번 진상하는 곳에 설 때마다, 마치 정(正)과 사(邪)의 대전(大戰)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제 수련의 길을 돌아보면,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가지(加持), 그리고 수련생들과의 서로에 대한 격려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부족한 제게 비범한 용기와 초범적인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 위대한 시대에 사부님을 따라 중생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천상의 변화에 따르고, 하늘의 뜻을 따를 뿐이며, 진정으로 중생을 구하시는 분은 사부님이십니다.
매번 중생이 구원된 후 그 얼굴에 빛나는 성스러운 광채와 진심 어린 기쁨을 볼 때마다, 저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 솟아오릅니다. 정법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더욱 많이 법공부하고, 많이 발정념하고, 자신을 잘 닦아,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은 저의 교류이며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 뉴질랜드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6/50219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6/50219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