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2022년 4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일본 명혜망에 게재된 기사는 122편이며 그중 12편(10%)이 중국어 명혜망에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됐습니다.
헤드라인 기사 중에는 2024년 ‘7·20 관서 퍼레이드’가 있습니다. ‘7·20’ 퍼레이드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며 세계 각지에서 퍼레이드에 관한 글을 투고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두 7·20 퍼레이드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퍼레이드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된 요인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인 1: 일본 수련생들의 노력의 결정체
2024년 12월 세계 인권의 날 ‘증언 집회’ 기사도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됐습니다. 세계 인권의 날 행사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며 세계 각지에서 글을 투고했습니다.
수많은 투고 중에서 일본이 투고한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됐고 아울러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로 전파됐습니다.
이 ‘증언 집회’ 기사는 제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기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그 기자의 글쓰기 실력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증언 집회’에서 수련생들의 진실한 목소리가 박해의 진상을 진실하게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는 ‘증언 집회’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된 것은 일본의 활동이 인정받았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인 2: 항목 팀의 팀워크
일본의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된 요인은 ‘기자의 실력’이 아니라 ‘항목 팀의 팀워크’입니다. 아래에 이를 체현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후쿠오카 퍼레이드’ 당시 저는 ‘신칸센 운행 중단’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가 당시 발했던 정념은 ‘난 반드시 제시간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터뷰를 성공시켜야 한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부님께 ‘부디 취재가 성공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했고 협조하는 수련생들에게 정념을 발했습니다.
당시의 인터뷰 기사는 중문망에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됐습니다. 이는 기사의 도입 문장을 담당한 수련생, 사진을 담당한 수련생, 협력한 수련생 등 모두의 공동 노력의 성과였습니다.
제 당시 상황은 원래 집합 시간보다 2시간 30분 늦게 인터뷰에 참가해 퍼레이드 마지막 30분만 취재했습니다.
‘후쿠오카 퍼레이드’ 취재 당시 저는 “제가 취재하겠습니다”라고 성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30분만 인터뷰에 참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수련생들이 취득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기사로 만들었기에 처음에는 모두 ‘제가 인터뷰한 기사’가 헤드라인 기사로 선정됐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도입 문장을 담당한 수련생, 사진을 담당한 수련생, 협력한 수련생이 팀워크를 통해 실현한 헤드라인 기사입니다.
인터뷰 활동은 현재의 코디네이터 이래 분담이 명확해졌습니다. 도입 문장을 담당하는 수련생은 그 문장만으로도 기사가 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글을 작성합니다.
그다음 도입 문장을 바탕으로 사진 담당자가 촬영한 사진을 더하고, 아래에 제가 인터뷰한 일반 시민의 코멘트와 사진을 게재합니다.
인터뷰 기사는 물론 먼저 일본 수련생들의 활동이 있어야 작성할 수 있지만 기사 제작 과정에서 ‘팀워크’가 거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자로서의 수련 체험
1) ‘반드시 사람을 구하겠다’는 강한 정념
올해 1월 1일 도쿄 구단시타(九段下)에서 서명 활동을 취재할 때 3시간 만에 1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해 1월 나고야에서 ‘춘절제(春節祭)’를 취재할 때는 하루 반이 걸려 7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도대체 어떤 요인으로 생긴 것일까요? 구단시타에 신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수련생들은 구단시타역 ‘1번 출구’에서 활동합니다. 1번 출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신사 참배를 목적으로 합니다.
즉 1번 출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모두 일치합니다. 또한 신사에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1월 1일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신사에 참배하러 옵니다. 게다가 신사에 참배하러 올 때마다 수련생들이 1번 출구에서 활동하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구단시타에 신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나고야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 중에도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행인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구단시타에 신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과 달리 나고야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의 목적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쇼핑, 식사, 오락 등 개인적인 향락을 위해서이므로 국제 인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구단시타 ‘1번 출구’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모두 신년 참배이며 신년 참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가치관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파룬궁의 호소에 공감하기 쉽습니다.
반면 나고야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의 목적은 쇼핑, 식사, 오락 등 다양하며 파룬궁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구단시타 서명 활동 3시간 만에 10명 인터뷰’, ‘나고야 하루 반 만에 7명 인터뷰’의 요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원인일까요? 만약 원인을 이런 ‘외부 요인’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밖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올해 ‘춘절제’는 나고야 수련생들이 기사를 작성했고 인터뷰 내용도 상당히 풍부했습니다.
이 점에서 ‘나고야에서 하루 반이 걸려 7명을 인터뷰한’ 요인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작년에 저와 수련생이 함께 가나자와의 ‘햐쿠만고쿠 축제(百萬石祭)’를 취재할 때 수련생들은 차량이 통제된 차도에서 걸으며 춤을 추고 있었고 우리는 인도로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인도에서 차도의 춤을 보고 있었고 우리는 관객 뒤에서만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터뷰하지?’라고 막막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인터뷰 대상을 찾아 데려온 사람은 수련생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수련생의 ‘반드시 사람을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력’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부족한 것은 바로 ‘반드시 사람을 구하려는 강한 의지력’입니다.
저는 이제 인터뷰할 때 자신의 ‘인터뷰 기술’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념’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상황에 타협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다
‘중국대사관 앞 발정념(發正念)’을 취재할 때 일반 민중을 인터뷰하기는 난도가 매우 높습니다.
대사관 앞에서 행인에게 말을 걸면 경찰의 경고를 받기 때문에 일반 시민을 인터뷰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수련생들의 대기 장소 부근 공원에는 낮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여성이 많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에게 말을 걸면 매우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에게 말을 걸다 만일 신고라도 당하면 큰일이므로 공원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을 인터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일반 민중을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가끔 일하는 틈틈이 공원 벤치에서 쉬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대사관 앞 발정념’을 취재할 때는 이럴 때만 일반 민중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2024년 섣달그믐날 밤에 ‘중국대사관 앞 발정념’을 취재할 때는 공원 벤치에 수련생들만 앉아 있었습니다.
‘12월 31일 섣달그믐날 밤에 일하다 틈틈이 공원 벤치에서 쉬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저는 먼저 수련생들의 연공 사진을 찍고 수련생 한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후 혹시 일반 시민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줄곧 기다렸습니다.
저는 인터뷰할 때 앉지 않습니다. 인터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임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저는 인터뷰할 때 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저는 줄곧 서서 임전 상태로 섣달그믐날 밤에 일반 민중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연공 음악이 울리자 연공하기 위해 벤치에 앉아 있던 수련생들이 모두 일어서서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 일어서지 않고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다가가 보니 그는 네팔에서 온 일반인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박해의 진상을 설명하고 코멘트를 받았으며 사진을 찍고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다음 그에게 “섣달그믐날 밤에 왜 공원에 왔나요?”라고 묻자 그는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섣달그믐날 밤에도 출근 전에 공원에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또한 만약 제가 인터뷰 임전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오늘은 일반 시민을 인터뷰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저는 이번 인터뷰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저는 ‘상황에 타협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배치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적절한 답변 준비
인터뷰할 때 1분 안에 박해의 진상을 전할 수 있도록 저는 설명 내용을 조정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이 박해받는 것은 파룬궁이 무슨 나쁜 일을 했기 때문이겠죠’라는 반박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사전에 반박에 대한 답을 ‘설명 내용’에 포함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반 시민에게 박해의 진상을 전해도 거의 반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가끔 ‘인터넷에서 직접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만이 제 설명 내용에 반박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래와 같이 반박했습니다. 반박 1: 파룬궁 사람과 일반 사람이 뭐가 다른가요? 내장? 반박 2: 당신은 어떻게 중국에서 장기적출이 일어난 걸 알았습니까? 반박 3: 장기를 적출당한 사람도 돈을 벌 수 있지 않나요? 반박 4: 당신은 장기적출로 돈을 번다고 하지만 얼마나 벌 수 있나요? 사업이나 발명으로 버는 돈과 비교하면 장기 팔아 버는 돈의 절대 금액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요? 반박 5: 지금까지 친형제자매 사이에 간을 이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요? 반박 6: 파룬궁수련생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파룬궁과 중국공산당(중공) 사이에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가요? 단순히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 수가 증가한 것이라면 그것은 종교적인 것이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요? 반박 7: 장쩌민(江澤民)이 제멋대로 파룬궁이 정부의 통치력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 박해를 시작했지만 파룬궁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장쩌민이 그렇게 생각한 것 아닐까요?
그 사람은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저는 반박당할 줄 몰랐기에 당시 이런 반박에 충분히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반박을 받은 후 저는 녹음기에 녹음된 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이 반박들에 대한 답변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시 같은 반박을 만나도 적절하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앞으로 저는 헤드라인 기사 게재 비율을 한층 더 높이기를 희망합니다.
‘헤드라인 기사 게재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일본의 활동이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일본 수련생들의 활동이 일본과 나아가 세계에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는 중요한 한 걸음이며 그 배후에는 일본 수련생들의 착실한 노력과 팀워크가 체현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5년 일본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26/50169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26/50169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