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올해는 ‘전법륜(轉法輪)이 출판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서 ‘전법륜’은 저의 20여 년 험난한 여정에서 함께하고 지도해, 저를 공산주의의 안개에서 벗어나 밝은 귀로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제 저는 지난 20여 년간 ‘전법륜’을 배우며 얻은 수확과 체험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는 1960년대에 태어나, 공산당이 주입한 문화 속에서 36년간 생활하고 공부해왔습니다. 그 결과 형성된 인생관·세계관·가치관은 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도(道)를 믿으셨기에 어릴 때부터 신선 이야기나 어머니 본인의 체험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배운 무신론·진화론·유물론을 온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이 모든 귀신에 관한 일을 미신이라 매도하며 맹렬히 비판하던 시절, 저 또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신이나 신선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졌고, 별로 믿지 않게 됐습니다. 인생은 방향을 잃었고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미혹 속에서 인생의 참뜻을 찾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뒤, 저는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가 지도층이 돼 권모술수와 암투를 벌이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남몰래 사람들을 끌어들여 파벌을 만들고, 서로 공격하며, 심지어 사무실에서 맞대고 욕설을 퍼붓는 광경을 보면서 저는 어느 파벌에도 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명예와 이익을 좇고, 어느 한쪽에 붙어야 하나?’ 제 마음은 도무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벌에 들지 않으니 늘 외톨이였고, 직장에서 모범으로 뽑히거나 급여가 오르는 등 좋은 일은 제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걸까?’라는 물음이 늘 가슴속에 맴돌았습니다.
1987년, 직장 동료 중에 기공(氣功) 수련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 보여 따라 해봤지만 몇 년이 지나도 마음을 닦는 방향의 지도는 보이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1990년 직장에서 저를 여름방학을 이용해 쓰촨(四川)의 한 대학에 연수 보내주었습니다. 그 기회에 아미산(峨眉山)·청성산(靑城山)·낙산(樂山) 등 명승지를 여행하며 불교와 도교 관련 경전과 이야기책을 사 왔습니다. 그때 저는 ‘문턱’에 닿은 듯했고, 명예와 이익을 내려놓고 세속의 다툼을 멀리하는 게 옳다는 확신을 얻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 마음을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아계신 진짜 사부님을 찾아 꼭 직접 지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전법륜’을 읽고 비로소 꿈에서 깨어나다
1996년, 기공 친구가 저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는 저를 어떤 기관 간부들의 가족 숙소로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3, 40명가량이 연공하려고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퇴직 간부와 가족들이었고, 서른여섯 살이던 저는 그들 사이에서 젊은 축에 속했습니다. 노인분들이 제가 온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한 노인이 “드디어 젊은 사람이 왔네!”라고 말했습니다. 보도원도 70대 할머니였습니다. 첫날 연공이 끝난 후 저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는 언제 학습반을 여나요? 저도 참가하고 싶어요.” 그분은 “지금은 학습반을 안 열어요. 하지만 우리 집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하신 강의 비디오가 있는데, 그걸 가져가서 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이전 인식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기공학습반에 다녀봤지만 모두 유료였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주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이 파룬궁은 다른 기공과는 정말 다르고, 돈을 벌기 위해 공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제도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벅차오른 채 비디오테이프를 받았고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보물처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보도원의 말대로 하루에 한 강의씩 보기로 했습니다. 매 강의마다 제 마음을 깊이 울렸고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들이 차례로 해소됐습니다. 과거 기공을 하면서 가졌던 잘못된 생각도 바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 여러 층차의 수많은 이치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이 우주의 특성은 진선인(眞·善·忍)’이라는 법리를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이 확 놓였습니다. 그동안 미혹 속에서 막연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이제 저는 대담하게 진선인의 기준으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진선인이 우주에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기에, 저 역시 그 속의 생명으로서 마땅히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섯 번째 강의쯤 봤을 때 제 몸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배 속에서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출산 후 10년 가까이 괴롭히던 변비가 사라져, 이제는 2~3분이면 시원하게 해결됐고, 다시는 30분이나 그 이상 쭈그려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변을 볼 때 출혈도 멎었고 치질도 없어졌습니다.
또 저는 심한 자궁근종이 있어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근종은 해마다 커지고 월경도 불규칙하며 거의 매일 출혈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늘 수술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파룬궁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혈이 멎었고 생리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매년 건강검진 때 의사들은 더 이상 초음파 검사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자궁근종이 사라진 것입니다.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던 자궁근종이 연공한 지 얼마 안 돼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이 어찌 신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법륜’을 배우고서야 대법이 무신론을 타파하는 보물임을 알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전법륜’을 연공장으로 가져왔습니다. 저도 ‘전법륜’ 한 권을 청해 집으로 돌아와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대법은 표현 언어가 깊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심오하고 비할 데 없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풀리지 않는 문제와 설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생명 현상에 대해 해답을 주었습니다. 제 마음은 단번에 사로잡혔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찾아 헤매던 고덕불법(高德佛法)이다. 리훙쯔 사부님이 바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 세상에 살아계신 사부님이시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진화론에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진화 과정에 있는’ 그 거대한 생명 집단을 전혀 볼 수 없어요. 이건 진화론의 관점에 맞지 않아요. 이미 진화가 끝난 이 무리의 생명들이 일제히 진화를 마친 뒤에, 다른 생명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저는 단지 현상만 보고 이 진화론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것을 증명할 과학적 근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법륜’에서 명확한 답을 얻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선사[史前] 문화’를 말씀하시며,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수많은 선사문명의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다윈의 진화론이 얼마나 무지하고 황당한 것인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로써 저는 생명이 ‘창세주’에게서 온 것이며, 생명은 신이 창조한 것이지 원숭이가 변해서 온 것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들려주신 신이나 귀신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머니나 외할머니가 직접 보거나 들으신 실화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큰 외할아버지(외할아버지의 형)는 그 지역에서 요마(妖魔)를 물리치는 법사로 널리 알려져 신기한 일을 많이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물론이나 유심론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심론을 미신이라 몰아붙이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명할 적절한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법륜’에서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제 머리를 강하게 울렸습니다. 순간 저는 놀라 외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이게 진리야! 사부님은 정말 위대하시다!” 그 순간, 중공에 의해 분리됐던 ‘물질’과 ‘정신’의 균열이 제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쳐져 원융되는 듯했습니다. 그때 느낀 투명하고 원융이 되는 감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문제로 내적 갈등을 겪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은 또 당산(唐山) 대지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진 후 한 신문사가 구조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생명이란 단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있으며, 영혼이야말로 생명의 근본임을 알게 됐습니다. 육신은 이 물질세계에서의 운반체일 뿐이고,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다른 공간에서 계속 존재하며 다음 윤회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세상에서 수련을 잘하고 삼계를 벗어나 윤회를 초탈할 수 있다면, 그 생명은 진정한 영생을 얻게 됩니다.
반면 중공의 유물론은 오직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세계만을 믿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자신을 단지 육신이 생명의 전부라고만 여기며, 즉각적인 향락을 누리고 명예와 이익, 정(情)만을 추구하라는 가치관을 따르게 됩니다. “사람은 죽으면 등불이 꺼지는 것과 같아,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본래 지닌, 우주(신명)와 통하는 ‘양심’과 ‘영혼’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 연결을 끊어버리는 사상입니다. 또한 사람이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유심론’이자 ‘미신’이라 부정하며 맹렬히 비판하는 것 또한 그 연장선입니다. 이처럼 중공의 거짓말에 세뇌된 사람은 자신을 ‘확고한 무신론자’라 여기지만, 실은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억압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생명과 육신을 한데 묶어버려 육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인류 파멸의 방식입니까! 공산 악당은 총과 포를 쓰지 않고 ‘악랄하고 비뚤어진 이론과 사악한 말’만으로도 사람을 세뇌해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인류의 결말입니까!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바로 이 십악(十惡)이 가득한 말법·말겁의 시대에 세상에 오시어 법(法)을 전하심으로써, 무신론이 통제하는 노예의 감옥에 갇힌, 양심이 남아있는 선량한 사람들을 구해내고 계십니다.
신앙의 확립
사람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품격은 신용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사람을 망치는 방식은 바로 이 ‘신용’을 파괴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거짓말을 강요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고, 거짓말과 이익을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에 신경 쓰지 않게 됐고, 그렇게 무의식중에 자신의 신의를 무너뜨리며 인간성을 잃고 거짓말이 습관이 돼 버렸습니다. 그렇게 돼 자신이 신용을 잃었을 뿐 아니라 누구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설사 창세주가 와도 믿지 않는데, 이것은 중공이 사람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사람은 신(神)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체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신으로 승화할 수도 있고, 짐승으로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깨뜨리고 아래로 떨어지면, 결국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되고 맙니다. 어떤 언론인이 말했듯이 “나는 당의 개다. 당문 앞에 웅크리고 있다가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문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반면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형성된 거짓말하고 속이는 악습을 바로잡게 하고, 남을 해치는 마음을 바꾸게 하며, 강하게 이기려 하거나 뽐내고 질투하는 등 좋지 않은 마음을 버리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순진하고 순선(純善)하며, 너그럽고 인내하는 마음상태로 돌아가게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본래 가져야 할 상태입니다.
파룬궁의 주요 저작인 ‘전법륜’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반 사람의 책과 완전히 다릅니다. ‘전법륜’은 ‘법(法)’이며, 우주의 축소판입니다.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우주의 층차(層次)와 그 층차 속에 층층이 존재하는 불·도·신(佛·道·神)이 담겨 있습니다. 수련자의 심성이 어느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면, 그의 신체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나며, 사부님의 법신(法身)께서 그의 업력을 소멸시켜 주어 공(功)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수련자 자신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왜 진정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들이 진선인을 금강석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바로 그들은 모두 허황한 설교가 아닌 대법의 진실성과 기적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후 저는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중공에 괴롭힘과 구금,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홍색 공포가 몰아친 광풍 속에서 저도 한때 넘어지고, 심지어는 잘못된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법에 대한 의심 때문에 물러선 것이 아니라, 중공의 비인간적인 잔혹한 고문과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념(正念)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이야말로 제가 전진하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자, 진선인을 지키는 데 있어 내면의 가장 큰 숨은 위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깊이 반성하고, 마음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한 집착 제거의 과정 속에서, 저는 ‘두려움’이란 인간의 마음을 비틀어버리는 강력한 마력임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움’은 생명의 구조와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정적인 물질이며, 사부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미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수련자가 정말로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다면, 왜 실천하지 못하겠습니까? 죽음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설사 중공이 제 생명을 빼앗는다 해도, 그것이 제 신앙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수련자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중공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중공이 결코 신앙을 꺾을 수 없는 근본 원인입니다.
오늘날 중공의 공안·검찰·법원·사법기관, 그리고 각계의 당정 간부들이 왜 중공과 장쩌민의 지시를 따르며 파룬궁 박해에 동참하겠습니까? 왜 대부분의 중국 민중이 중공의 거짓 선전에 속겠습니까? 그것은 모두 중공의 탄압에 질려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치운동 속에서 잘못된 교훈을 얻은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중공과 보조를 맞추며,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연루될까 두려워합니다. 중공에 굴복한 사람들은 모두 두려운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려움이 있으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것이 바로 양심을 잃은 징표입니다. 정의감이 사라지고, 중공이 시키는 일은 가리지 않고 따르며, 선악과 시비를 구별하지 않고, 그저 복종하며 중공의 앞잡이가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피해자를 위해 감히 목소리를 내겠습니까?
저 역시 공직에서 파면당하고, 연금이 삭감되며, 손자가 학교 입학이나 공무원 시험, 군 입대를 할 수 없다는 등의 온갖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의 요구에 따라 명예·이익·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모든 이익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앴습니다. 그러자 제가 두려워하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사부님 법신(法身)의 가지(加持)가 있었고, 수많은 정신(正神)과 호법(護法)들의 보살핌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며, 경찰에게 진상을 담담하게 전했을 때 제 마음은 따뜻했고, 대화도 조화로웠습니다. 제가 경찰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파출소에 들어가 진상 편지를 전했을 때, 그 초연한 마음상태 덕분에 경찰들도 웃으며 맞이하고, 웃으며 배웅했습니다. 대법은 이렇게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법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26년간 이어진 중공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파룬궁은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으로 중공이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사악한 음모를 폭로해왔습니다. 중공이 통제하는 중국 대륙에서, 파룬궁은 인류가 신의 품으로 돌아가고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할 수 있는 불멸의 기치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신앙은 죄가 없으며, 신앙은 무적이고, 신앙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공은 본래 ‘추한 광대’ 역할을 하도록 배치된 존재입니다. 대법제자들의 수련이 성숙하면 중공은 필연적으로 해체됩니다. 중공에게 속고 미혹된 중생들 중 끝내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될 것입니다. 진상을 깨달은 중생들은 차례로 중공을 버리고, 신의 보호 아래로 돌아와, 온 세상이 함께 경축하는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8/50156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18/50156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