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민감한 날’에 다시 생각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생이 보내준 정보에 10월 1일이면 중공 악당이 또 교란하고 박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고 쓰여 있었는데, 어떤 수련생은 마음이 흔들렸을지 모른다. 나는 예전에 장쩌민을 고소했던 경험이 떠올라 여기서 글로 써서 함께 제고하려 한다.

10년 전, 나는 장쩌민을 고소할 준비를 했다.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 당시 전국적으로 고소 건이 몇백 건밖에 없던 때였다. 나는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심리가 불안정해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라 계속 직원에게 물었고 직원의 주의를 끌게 됐다. 다 적고 직원에게 주자 영수증을 받고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수련생이 내게 문자를 보냈는데, 내 고소장이 보내지지 않았고 송장 번호가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한 뒤 나는 우체국을 바꿔 다시 우편물을 부쳤다. 이번에는 심리가 안정됐고 정념도 충만했다. 그 후 최고검찰원에서도 영수증을 보내줬다. 이어서 우리 지역 수련생들도 모두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했고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고소장을 최고법원으로 보냈다.

얼마 후 많은 지역 수련생의 고소장이 잘 보내지지 않았는데, 우리 지역은 계속 우편을 부칠 수 있었다. 이웃 현 수련생들이 고소장을 우리에게 가져왔고 우리가 수련생들을 위해 우편을 보냈다. 그 기간에 나는 리커창(李克强)에게 진상 편지를 써서 보냈고, 진실함을 나타내기 위해 내 신분증 복사본도 첨부했다.

어느 날 내가 회사에 있는데 수련생에게 전화가 와서 “빨리 정념을 보내세요. 파출소에서 제 고소 건을 조사하고 있대요”라고 말했다. 나는 즉시 수련생 집에 가서 함께 정념을 보냈다. 정념을 보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 마을 촌 서기가 건 전화였다. 그는 “마을 회관으로 좀 오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장쩌민을 고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마침 잘 됐다,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즉시 갔다. 촌 서기가 나를 보자 말했다. “당신들 장쩌민 고소했어요?” 나는 정념 가득하게 말했다. “네, 고소했어요. 그가 우리를 박해하는데 그를 고소하지 않고 누굴 고소하겠어요.” 서기가 말했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이 오려고 했는데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말했다. “촌 서기님 덕분이네요, 만약 국보 대장이 왔으면 제가 그에게 한판 붙었을 겁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촌 서기가 나의 택배를 들고 말했다. “당신의 택배 안에 고소장 여덟 통이 있었어요.” 향(鄕)에서 택배 고소장을 마을 회관으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나는 “네, 제가 부친 겁니다”라고 말했다. 서기는 회계에게 말했다. “그의 신분증을 확인해 봐요.” 나는 “그럴 필요 없어요, 이미 택배 안에 신분증 복사본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웃었다. 그때 서기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서기는 아무개 국보 대장이 모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기가 말했다. “마을에 있는 연공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주세요. 제가 그들을 다 만났다고요(윗사람들 비위 맞추려고).”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 번 민감한 날이 다가왔을 때 촌 서기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마을 회관에서 당신에게 2천 위안을 줄게요.” 베이징에 가지 말라고 암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돈은 깨끗하지 않으니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기는 내가 정말 받지 않자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당신이 받지 않더라도 이 돈으로 진상 자료를 인쇄할 순 없나요?” 이 말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마을 회계가 또 2천 위안을 가져왔는데 나는 역시 받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중에야 이 돈을 받아서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면 서기에게도 공덕을 쌓게 해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기는 모든 연공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을의 어떤 수련생에게는 상당히 흉악하게 대했다. 나는 두 번 베이징에 간 적이 있고 구치소에 몇 번 들어갔다 나왔기에 그들은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 후, 진(鎭) 파출소 소장이 아는 사람을 통해 나에게 연락해, 파출소에 쇠창살을 용접해달라고 부탁했고 일당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목적이 나를 감시해 베이징에 못 가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것은 좋은 일이다,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장에게 말했다. “제발 파룬궁을 박해하는 일을 하지 마세요, 이것은 불법입니다.” 소장이 말했다. “당신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나 붙여놓은 진상 자료에 저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소장님은 분명히 복을 받을 겁니다.” 나중에 소장이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며칠 동안 내가 파출소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마을과 향(鄕)에서는 안심할 수 없었는지, 향에서 마을을 담당하는 간부와 이장이 파출소에 용무가 있는 것처럼 와서 나와 잠시 담소를 나눴다. 나는 그 며칠 동안 파출소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진상을 말했는데, 경찰들은 듣기만 하고 간섭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날이든, 중공 악당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든 우리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라는 말씀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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