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河北)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 1월 1일,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수련하기 전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두통, 빈혈, 자궁근종으로 인한 극심한 복통 등 증상이 법을 얻은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걸을 때마다 몸이 가볍고 매우 편안했으며, 매일 많은 일을 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무병일신경(無病一身輕, 병이 없고 온몸이 가뿐함)’의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비록 사부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겪은 초월적인 신체 변화를 통해 나는 사부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신다고 믿게 됐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지난 26년간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박해라는 험난한 여정을 굳건하게 걸어왔다. 26년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나의 수련 여정을 되돌아보니 모든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 글을 통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혹시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1. 굳건한 수련
내가 처음 연공을 시작했을 때는 그저 병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아침에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정도였을 뿐 수련에 대해서는 별다른 개념이 없었다. 1999년 4·25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으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사악한 박해가 온 세상을 뒤덮듯 몰아쳤다. 22일, 나는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청원했다. 막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이 가로막고 가방을 뒤졌다. 이어서 떠밀고 밀쳐 경찰차에 태웠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를 멀지 않은 곳으로 끌고 가 감금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대법제자가 갇혀 있었다.
한밤중에 우리는 다시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졌다. 경찰차 사이렌이 줄곧 울부짖으며 아주 멀리 간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우리를 한 넓은 마당으로 끌고 갔다. 마당에는 이미 수많은 대법제자가 있었고 경찰차는 계속해서 한 차 가득 대법제자를 실어 날랐다. 마당 주변에는 완전무장한 경찰들이 많이 서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그날은 태양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마당에는 나무 한 그루도 없었지만 더위에 지친 경찰과 관계자들은 계속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끊임없이 교대 근무를 했다. 그런데 우리 대법제자들은 물 한 모금, 음식 한 점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 있었음에도 더위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늘 시원한 바람이 몸에 불어 마치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와 모든 수련생은 오색찬란하고 크고 작은 파룬(法輪)이 하늘에서 회전하는 것을 실제로 보았고, 사부님의 법신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으며, 태양에서 쏘아져 나오는 칼날처럼 눈부신 밝은 빛을 보았다. 이는 위대한 불법(佛法)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었으며,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격려하시는 것이었다.
대법제자들은 질서정연하고 조용히 마당에 앉아 있었다. 때때로 어떤 수련생이 일어나 모두를 이끌고 사부님의 《홍음(洪吟)》을 낭송했다. 대법제자들의 그 질서정연하고 우렁찬 소리는 긴 하늘을 갈라 천지를 진동시키고 산하를 감동시키며 사악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하늘을 뒤흔드는 한 장면은 반드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장면과 대법제자들의 풍모, 그리고 고상한 행위의 품격을 우리를 관리하던 관계자들과 무장경찰들도 눈과 마음에 똑똑히 새겼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녁이 되자 완전무장한 무장경찰들이 마당 양쪽에 서서 각 지역의 경찰차가 현지 대법제자들을 찾아갔다. 우리는 각자 살던 곳으로 압송됐다. 현지 파출소는 우리를 집으로 보내주지 않고 가도(街道)사무소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는 연공하지 않고 베이징에 청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하고 손도장을 찍도록 강요했다. 파출소장의 위협과 공갈 속에서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고 숨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수련하는 이 법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 중공 악당의 거짓 선전처럼 그런 것인가?’ 이때 나는 대법이 수련자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마음을 수련해 선(善)을 행하며 자신의 도덕을 승화시키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것은 틀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병을 깨끗이 정화해주셨기에 나는 사부님의 생명을 살려주신 은혜를 몸소 체험했다. ‘틀리지 않았다!’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나는 굳건하게 수련하고 영원히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나는 세 차례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입증하고 정념(正念)을 보내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2. 단체 법공부 견지
중공의 박해로 우리는 원래의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게 됐다.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 주신 수련해 신이 되는 길이다. 나는 스스로 대법제자로서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때 한 수련생이 떠올랐다. 이 수련생은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안쪽 방에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나는 그 수련생을 찾아가 단체 법공부에 대해 상의했고, 수련생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 다섯 명의 수련생이 하나의 법공부 팀을 구성했다. 나중에 계속해서 수련생들이 합류해 장소가 비좁아지자 한 수련생이 더 넓은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 법공부 팀은 많을 때는 14명에 달했고 적을 때도 7~8명은 됐다. 혹한이나 혹서, 눈보라나 비바람이 몰아쳐도 단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사악의 박해나 소위 ‘민감한 날’ 또는 ‘상황이 또 긴박해졌다’는 등의 말에 어떤 생각도 흔들리지 않았다. 모두 정념이 매우 강해 마음속으로 그런 말들에 동요하지 않았다.
법공부 과정에서 때로는 효과를 중시하지 않고 양과 속도만 추구하거나, 와서 법공부하고는 바로 가버려 교류가 많지 않고, 상태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 법공부 팀은 천둥이 쳐도 흔들리지 않고 부술 수 없는 팀이었으며, 시종일관 굳건히 정법(正法) 수련의 길을 걸었고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3. 진상을 알리다
사악의 박해가 온 세상을 뒤덮는 상황에서 내게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내가 여전히 연공을 굳건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 파룬궁이 탄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나는 수련이 무엇인지에 대해 초보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파룬궁이 단순히 사람에게 몸을 단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 외에 더 깊은 내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층차를 높이려면 반드시 착실하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수련의 엄숙성도 인식하게 됐다.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나는 또한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평범한 사람의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명은 바로 사람들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고, 거짓말에 가려진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세인을 구하는 거대한 흐름에 합류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때는 아직 진상자료가 없어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렸다. 먼저 나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 이웃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의 아름다움과 내가 직접 얻은 도움, 즉 진실한 사실을 알려 사람들에게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 대법제자의 선량함, 중공 악당의 본질과 거짓 박해, 그리고 장쩌민(江澤民)의 질투심을 이해하도록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내가 여전히 파룬궁을 연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상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말했다. “원래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군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과 같지 않네요. 중공의 본질은 바로 거짓을 만들고 속임수를 써서 우리 국민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뭐랬어요? 만약 좋지 않다면 누가 또 연공하겠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수련법을 연공하는데 분명히 그만한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중공은 늘 운동을 벌여 국민을 탄압하고 우롱합니다. 이 당은 조만간 무너질 것입니다.”
4. 진상자료 배포
우리 지역 수련생들의 공동 노력 덕분에 비교적 큰 자료점이 설립됐다. 정말 좋았다. 사람을 구하는 진상자료가 생겨 진상을 알리기도 훨씬 편리해졌다. 수련생이 매주 내가 사는 곳으로 대량의 진상자료를 가져다줬다. 나는 크고 작은 비닐봉지를 사고, 우유를 담았던 빈 종이상자도 많이 모았다. 나는 자료를 정리해 매 부의 자료를 비닐봉지에 넣고 종이상자에 질서정연하게 쌓아두었다. 수련생들과 시간을 약속했더니 그들은 모두 빈 상자를 가져와 가득 찬 상자를 가지고 갔다.
그 기간, 나는 거의 매일 밤 수백 장의 진상자료를 들고 시내의 각 주거 단지에 가서 배포했다. 기본적으로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입원한 친척이나 친구를 문병할 때는 진상자료를 병원에 배포했고, 농촌에 친척을 만나러 갈 때는 진상자료를 마을에 배포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자료를 그들에게 주었고, 직장 은퇴자 모임에서는 한 사람당 한 부씩 손에 건네주었다. 혹한이나 혹서, 비바람과 눈밭에서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남쪽에서 북쪽까지 배포했다. 거의 시내 전체를 다 다녔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좋지 않은 사람마음과 두려움이 많이 제거됐고, 단련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을 느꼈다. 사람들이 많고 큰 아파트 단지에서 진상자료를 모두 배포한 후, 내 자전거를 찾지 못하거나 출입구를 찾지 못했던 때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사부님께서 내 앞에 회전하는 거대한 파룬을 나타내 보이셔서 나를 이끌어 자전거나 출입구를 찾게 해 주셨다. 또 몇 번이나 밤에 진상자료를 모두 배포한 후 집으로 돌아갈 길을 몰랐을 때, 파룬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이를 통해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자비롭게 제자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됐다.
5. 진상 표어 붙이기
온 세상을 뒤덮는 박해 속에서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이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큰 자료점이 파괴돼 한때 진상자료가 부족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지체할 수 없었기에 우리 법공부 팀 수련생들은 교류를 통해 먼저 임시로 손으로 쓴 진상 표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접착제 종이, 빨간색과 녹색 종이, 붓과 먹물을 샀다. 내가 글씨 쓰는 것을 맡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썼다. 많이 쓴 후에는 다른 법공부 팀 수련생들에게도 나누어 주어 가서 붙이게 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웠지만 위험하지 않았던 경험도 있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시내의 전봇대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달려와 수련생의 팔을 잡고 물었다. “붙이는 게 뭡니까?” 수련생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직접 보세요. 좋은 것입니다.” 수련생은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그를 제압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즉시 수련생을 놓아주었고 수련생은 곧바로 성큼성큼 걸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수련생이 한참을 걸어 나온 후 돌아보니 그 남자는 여전히 전봇대를 향해 서 있었다. 수련생은 진정으로 사부님이 바로 곁에 계시며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6. 진상 현수막 걸기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 우리 5명의 수련생이 의논해 진상 현수막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하기로 마음먹자 바로 행동에 옮겼다. 우리 5명은 역할을 분담했다. 내가 원재료를 구매하고 글씨를 쓰는 것을 맡고, 두 명은 오토바이 한 대를 타고(한 명은 뒤에 타고) 시골에 가서 현수막을 걸었다. 한 명은 시내에서 현수막을 걸고, 한 명은 한적한 곳에 가서 벽돌을 찾아 도끼로 크고 작은 조각들로 깼다.
역할 분담 후 나는 즉시 행동에 돌입했다. 빨간색, 노란색, 흰색, 녹색 네 가지 색깔의 니트 비단을 사고,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세 가지 색깔의 굵은 그림붓을 샀다. 우리는 비단을 길게 잘라 빨간색 천에는 노란색 붓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썼다. 노란색 천에는 빨간색 붓으로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썼고, 연한 녹색 천에는 빨간색 붓으로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썼으며, 흰색 천에는 검은색 붓으로 ‘장쩌민을 엄벌하라’고 썼다.
현수막의 위아래에는 구멍이 큰 바늘로 밧줄을 꿰었다. 현수막 위쪽에는 큰 벽돌 조각을 매달고, 아래쪽에는 작은 벽돌 조각을 매달았다. 이렇게 위쪽의 큰 벽돌 조각을 잡고 나뭇가지에 던지면 매우 순조롭게 진상 현수막이 펼쳐졌다. 현수막에 밧줄과 벽돌 조각이 매달려 있어 서로 엉키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현수막을 하나씩 비닐봉지에 넣었다. 빨간색, 노란색, 흰색, 녹색의 진상 현수막이 시골 나무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한 줄기 아름다운 풍경 같았다. 마을 주민들과 행인들이 구경하며 앞다투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장쩌민을 엄벌하라”고 소리 내어 읽었다. 많은 마을 주민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제자를 지지해 사악을 강력하게 제압했다.
하지만 때로는 미혹된 마을 주민도 있었다. 한번은 수련생이 시골에서 현수막을 다 걸고 오토바이를 막 시동 걸려는데, 한 미혹된 마을 주민이 오토바이를 잡고 못 가게 하며 촌위원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줘도 듣지 않았다. 이때 오토바이 뒤에 앉은 수련생이 앞의 수련생의 등을 세게 한 번 쳤다. 수련생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오토바이가 ‘쌩!’ 하고 그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 앉은 수련생이 돌아보니 그 미혹된 마을 주민이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우리 수련생들을 가리키며 무력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7. 진상 편지 우편 발송
1999년 7·20 사악한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텔레비전의 거짓말과 조작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사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그때부터 나는 진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파룬궁 소개와 다섯 세트의 연공 동작, 그리고 내가 짧은 시간 동안 겪은 심신의 변화를 모두 상세히 서술했다. 그때 나는 정부 부서에 많은 편지를 썼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2000년 하반기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내가 진상 전단을 우편으로 지역 전체에 한 번씩 뿌린 일이다. 나는 지역 전화번호부의 주소에 따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각 기관의 사무실로 우편 발송했다.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시내의 모든 우체통에 수십 통의 진상 편지를 넣었다. 편지가 압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매일 한 우체통에는 최대 5통만 넣었다. 나중에 동료와 아는 사람이 나를 만났을 때 놀라며 말했다. “우리 기관 사무실에서 당신들 파룬궁수련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우리가 모두 봤습니다.” 이를 통해 나는 그 편지들이 모두 잘 전달됐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지역의 모든 기관이 진상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파룬궁이 평반(平反, 누명을 벗겨 명예를 회복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집 이웃도 나에게 말했다. 그들 기관 사무실에서 파룬궁 편지를 받았는데, 책임자가 그 편지를 직원들 앞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다 읽어줬다고 했다. 직원들은 논의하며 “파룬궁이 평반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사악의 오만한 기세를 강력하게 타격했다.
8. 진상 지폐 사용
진상 지폐가 생긴 후,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는 일이 정말 사반공배(事半功倍, 절반의 노력으로 두 배의 효과를 얻음)였다. 때로는 내가 겨우 두 마디 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말했다. “돈에서 봤는데 어떻게 탈퇴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당신을 만났으니 저를 탈퇴시켜 주세요.” 이때 나는 그에게 가명을 지어주고 진상자료 한 부와 정교한 호신부(護身符)를 선물하면 모두 매우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기억에 깊이 남는 한 번은 내가 슈퍼마켓에서 직장 동료를 만났는데, 내가 막 진상을 알려주려 하자 그 동료가 즉시 배낭에서 지갑을 꺼내 1위안짜리 지폐를 꺼내 나에게 보여줬다. 그 위에는 “중공을 멸하라, 탈당해 목숨을 보전하라, 《9평 공산당》을 빨리 보라”고 인쇄돼 있었다. 지폐 아래쪽에는 또 “진상 지폐를 쓰면 복이 있다”고 인쇄돼 있었다. 동료가 말했다. “제가 이 글자가 있는 돈을 받고는 아까워서 줄곧 쓰지 못했어요. 매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심심할 때 꺼내 봐요. 돈에 ‘진상 지폐를 쓰면 복이 있다’고 쓰여 있으니, 제가 한 번 봐도 복이 있겠죠. 이런 돈이 나오는 것을 보니 장래에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보존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나는 매일의 소비를 모두 진상 지폐로 하는데 이미 습관이 됐다.
박해에 반대한 26년의 여정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데는 고생도 있고 즐거움도 있었으며, 사람을 구하는 즐거움과 신기함을 느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이해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으며, 삼퇴를 선택해 심신이 도움을 얻고 복을 받고 있다. 사부님의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반드시 마지막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사명을 완수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27/4987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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