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A 수련생이 B 수련생과 심성 마찰이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B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B가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들을 바로잡도록 일깨워줬고, 이는 B가 집착심을 내려놓고 수련에서 돌파해 제고하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B가 저를 만나 A와 있었던 불편한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녀는 A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A의 부족한 점과 단점을 지적했습니다. A는 당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변명했고,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들려준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들으며,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드러낸 여러 사람 마음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사부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제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 얕은 깨달음을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왜 두 수련생 모두 저에게 이런 사소한 일로 심성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고 말했을까요? 근본 원인을 따져보니 제 수련 기초가 탄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법공부를 했지만 법을 얻지 못했고, 법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고층차 법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의식(主意識)의 도량이 좁고 포용력이 작아, 평상인처럼 눈앞의 시비를 따지며 대충대충 넘기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평상인의 층차에서, 평상인의 관념 속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먼저 밖을 향해 봤습니다. 상대방의 이런저런 부족함과 법에 맞지 않는 점들을 보며 수련생을 걱정하고, 빨리 고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녀를 위해서, 그녀를 돕기 위해서, 수련생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으로 지적해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은 고마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만을 표했고,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마음의 균형을 잃었습니다. 원망과 불복, 억울함, 쟁투심, 질투심을 품은 채 제게 속 시원히 털어놓았습니다.
아,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자아’를 지키려는 그 ‘사심’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법 속에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저를 지적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잊지 못하고, 심지어 앙금을 품고 몇 년이 지나서도 때때로 꺼내어 여전히 상대방의 잘못을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서로 좋은 사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집착의 뿌리를 파헤치지 않고, 이런 일이 생겨도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설령 제가 잘못했다는 의식이 있었더라도 그저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끝냈을 뿐, 오랜 세월 계속 이렇게 지나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잘 닦으라고 거듭 말씀하시고,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주셨는데 저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 제고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제자의 제고를 위해 안배하신 사소해 보이는 일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수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일로 인해 오히려 수많은 집착심이 생겼습니다.
무엇이 신사신법(信師信法)입니까? 무엇이 사부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까? 무엇이 법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자신을 잘 닦는 것입니까? 스스로 가늠해보면 자신이 어떻게 수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늘 밖을 향해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법에 맞지 않거나 제 생각과 방식에 맞지 않으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수련생이 틀렸다는 집착을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는 제가 사부님의 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생긴 것입니다.
지금 저는 전법륜(轉法輪) 제2강 ‘천목(天目)에 관한 문제’를 배우며 약간의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즉, 인류사회 전체에서 사람의 두 눈은 단지 일종의 도구 역할에 국한되며, 보는 것은 모두 가상이지 진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보니 잘못 알고 진실이라고 여깁니다. 오직 사부님의 법을 믿는 착실한 수련자만이 법리를 깨달은 후에야 눈으로 보는 것이 가짜임을 압니다.
이 가상은 우리 수련자에게는 또 진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사부님께서 우리가 사람의 눈으로 본 이 가상을 이용해 거꾸로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게 하신 것입니다. 미혹 속에서, 깨달음 속에서, 당신이 본 상대방 전체가 마치 당신 앞에 놓인 거울과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요시공능(遙視功能)’(전법륜)처럼 끊임없이 뒤집고 끊임없이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의 하나하나 표현이 법에 맞지 않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바로 자신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비록 가상을 보지만 수련에 있어서는 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비춰주는 것이며, 수련인이 무엇을 닦는지 한눈에 알게 해줍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듭 당부하셨듯이, 우리 수련의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며, 모두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안배하신 것으로, 모두 제자가 마음을 제거하고 제고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제가 수련생이 제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말이나, 어떤 수련생의 단점과 부족함을 보았을 때,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법에서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주신 ‘법보’를 진정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수련의 길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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