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플로리다주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 지난 2년간의 수련 체험을 보고드리려 하니, 문득 사부님께서 지금 저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자비롭지만 엄숙한 표정이실 것 같습니다. 사부님의 법상을 바라보니 정말 그러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은 멈추지 않았지만, 최근 제 몸에서 너무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수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겉핥기식으로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착을 발견해도 스스로 변명을 늘어놓아 집착심을 버리는 속도가 매우 더뎠습니다. 정진하는 많은 수련생과 비교하면 여전히 차이가 있음을 느낍니다. 지난 2년간 여기저기 적어둔 기록을 뒤적이며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많은 깨달음과 이해가 있었지만, 정법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는 지금, 사부님께서는 제가 무엇보다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고 그것을 드러내 제거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표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종합성이 매우 강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 기술은 물론 일정한 사교 능력도 필요하고 출장도 자주 다녀야 해서 정신적·체력적 요구가 모두 큽니다. 미국 동부에서 하와이로 출장 갔을 때는 시차가 6시간이나 되는데, 처음 그곳에 출장 갔을 때는 13시간 비행 후 시차 적응은커녕 방에 짐을 풀 시간도 없이 곧바로 회의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또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6시간 비행과 7시간 운전으로 세 도시를 다녀왔습니다. 그런 강도 높은 일정 속에서도 일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므로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사명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수련 방식은 속인 중에서 하는 것이므로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최대한 속인의 형식에 부합하도록 수련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인 사회와 동떨어져서는 안 되며, 반드시 속인의 생활 속에서 수련해 나와야 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생활 외의 대부분 여가 시간은 수련과 대법 일을 하는 데 써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사회 환경에 바쁜 직업을 가진 저는 시간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려면 반드시 효율적이어야만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수와 수학적 추리를 좋아했고 사교도 좋아했으며 물건을 살 때는 상인과 흥정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법을 배운 후에는 이것이 집착임을 알게 됐고 재물도 아주 담담하게 여기게 됐으며, 동시에 이런 특징들을 학업과 일에 잘 활용해 몇 가지 작은 성과도 거뒀습니다. 미국에 온 뒤 수련에서 점점 성숙해지면서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서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열어주신 시간과 환경임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용맹정진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원래 좋아했던 ‘계산’하는 습성이 시간을 아끼는 데 발휘됐습니다. 저는 생활의 아주 사소한 세부적인 부분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많이 찾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단순히 층수 버튼만 누르고 자동으로 문이 닫힌 뒤 작동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닫힘 버튼을 누르면 몇 초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마자 닫힘 버튼을 먼저 누르고 층수 버튼을 누르는 것이 반대로 하는 것보다 적어도 2초는 빠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습관만으로도 단순히 층수 버튼만 누르는 사람들보다 최소 10초는 빨라집니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가득합니다. 컴퓨터가 켜지기를 기다리고, 웹사이트가 원하는 화면으로 넘어가기를 기다리며, 빨간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줄 서서 물건 사기를 기다리며, 휴가를 기다리고, 월급날을 기다리며, 날이 밝고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박해가 끝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바라는 것을 기대하고, 그 바람이 기한 내에 이뤄지지 못했을 때는 실망의 맛을 진하게 느낍니다. 저는 헛되이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할 때는 동시에 다른 일을 함께 진행하려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무언가를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즐기고 있을 때 저는 인생의 다음 걸음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무엇을 미리 해둘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단계에 시간을 좀 더 남겨두려는 것입니다. 주말이나 휴일에 남들이 쉬고 있을 때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와 연공을 합니다. 평소 속인 생활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단 몇 분이라도 틈틈이 법공부와 연공을 하려고 모든 시간을 활용합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능력을 주셔서 항상 맑고 민첩한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일의 효율도 높아 종종 사반공배(事半功倍)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비록 1~2분밖에 안 되더라도 그 시간에 ‘홍음(洪吟)’ 한 수를 외웁니다. 집이나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10분이 있으면 10분간 연공하고, 30분이 있으면 빠오룬(抱輪)을 연마합니다. 만약 한 시간이나 그 이상이 확보되면 그만큼 법공부를 하거나 연공을 합니다.
저는 시간을 아끼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므로 일과 수련, 대법 항목, 그리고 속인의 생활을 비교적 잘 균형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행동이 다른 사람과 연관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조급한 마음도 생기게 됐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요구했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낭비조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제 시간을 낭비하면 매우 불쾌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외출할 때, 처음에는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 차례 강하게 요구하자 부모님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서 차가 멈추자마자 바로 내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너무 느리고 일할 때 시간 개념도 없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리거나 문제가 많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면 곧바로 짜증을 냈습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보통 계산하려면 줄을 한참 서야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일을 정리하는 법을 이미 배우셔서 그날 “네가 먼저 줄 서 있어, 내가 가서 빵을 사올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줄이 짧아 곧바로 제 차례가 됐는데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급해졌습니다. ‘겨우 십여 초 걸릴 일인데 왜 아버지는 1분 넘게 걸리시는 걸까? 내 뒤에 있던 두 사람이 이미 계산을 끝냈는데도 아직 안 오시잖아.’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굼뜨고 어디를 가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시는구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이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화가 치밀면 남을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볼 수 없고, 고집스럽게 자신만 옳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날은 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었는데 왜 아버지께 조금 더 인내심을 보이지 못했을까요? 하루는 몇몇 수련생들이 집에 왔는데, 그중 한 분이 “인(忍)을 수련하기가 참 어렵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정말 쉽게 조급해지고 때로는 너무 서둘러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인내심을 보이지 못합니다. 누군가 제가 기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혀 모르면서 문제를 논의하려 할 때, 제 마음속에서는 강한 반감이 일어나고 깔보는 태도로 상대를 대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 말고 정말로 긴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나도 더 뛰어나질 수 있다’는 관념을 형성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뛰어남이란 고상한 덕성과 지혜, 재능을 갖춘 사람을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겨왔습니다. 덕이 없거나 지혜와 재능이 없는 사람은 깔보고 멀리하려 했습니다. 이런 관념의 영향으로 저는 어려서부터 자율적이고 고상하고 수준 높은 것을 동경하며 제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멀리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늘 성심껏 노력했기에 인생길에서도 몇 가지 작은 성취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취가 제 자신감을 키워주긴 했으나 속인 중에서 드러난 그 자신감은 잘 파악하지 못하면 오만과 자만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온 뒤 제 생활은 줄곧 매우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학업에 바빴고 취업을 준비해야 했으며 동시에 생활도 스스로 돌봐야 했습니다. 그 뒤 어머니께서 오셔서 이곳 환경에 적응하시도록 돕고 신분증도 만들어드렸습니다. 생활과 일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도 오셨는데 역시 각종 생활 문제가 있었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제가 직접 하나하나 처리해야 했습니다. 속인 생활과 일 속에서 단련돼 저는 독립심을 키웠고, 대법 수련 속에서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내면을 더욱 견고하고 강인하게 만들었으며 직장과 생활 속에서도 홀로 감당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수련이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적지 않은 집착심도 생기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의견을 말씀하실 때, 때로는 몇 마디만 하셔도 저는 ‘어머니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시거나 하시는 말씀이 옳지 않거나 내 생각과는 정반대구나’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말을 끊어버리고 더 말씀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제 반응이 직접적이고 강압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깔봤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 뒤 저는 첫 번째 관리직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관리자는 일정한 기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남들이 저를 따르도록 해야 하고 은혜와 위엄을 함께 써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졸업한 뒤 저는 점차 직장에서 관리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회사가 투자한 항목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투자자였기 때문에 수많은 회사의 큰 고객이었습니다. 이 회사들은 저희와 거래하기 위해 저희를 알려 했고 친구가 되기를 원했으며 저희의 요구를 아주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직장에서 배운 것은 어떻게 남을 맞추고 고객을 만족시켜 자기 실적을 쌓는가 하는 것인데, 제 일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저는 남들이 저에게 맞추는 대상이었고 제가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관리팀을 구성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게 뭐가 어렵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서방 주류 사회에서 제 외모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여겨지기 쉬웠습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아시아의 젊은 여성이 무슨 능력이 있겠느냐고 여기고, 제가 배치한 업무나 구체적인 요구를 진지하게 실행하지 않고 갖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제 일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점차 저는 어떻게 팀의 구성원들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최대한 예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함과 동시에 적절한 때에는 제가 자본을 쥔 ‘큰손’이고 제가 말한 대로 해야 한다는 카드를 내보였습니다. 제 상사가 가르쳐준 것처럼 “ABCD가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의 제안이 아무리 좋아도 네가 말한 것이 옳은 것이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한다. 한 팀에는 오직 하나의 보스만 있을 수 있고, 보스는 의견을 들을 수는 있으나 최종 결정은 반드시 보스가 혼자 내려야 하며 그 위험도 보스가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저는 직장에서 필요한 자신감과 배짱을 점차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하고 강한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키우게 됐습니다.
2023년부터 저는 플로리다주 NTD TV 션윈 순회공연의 인터뷰 기자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NTD TV에서는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요구사항이 명확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저는 인터뷰 대상자와 전혀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없는 관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안팎으로 명백한 차이가 있는 것을 분명히 발견했습니다. 대상자들에게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대상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마음속으로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생각하며 웃어주는 것도 아까워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를 받은 관객들에게도 그런 ‘쓰고 버리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션윈 홍보 과정에서도 이런 마음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제 자료를 받거나 션윈에 대해 문의하거나 표를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화기애애하게 대하고 매우 열정적이며 인내심을 보였지만, 저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당신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 또는 ‘당신은 자격이 없어’ 등 좋지 않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은 수련자의 선함과 흉금이 없는 것이고, 더욱이 수련자가 인간 세상의 어떤 일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경지도 없는 것입니다. 션윈을 보러 오는 모든 중생은 소중합니다. 저는 그들이 제 인터뷰에 쓸모없다고 해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이런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을 의식한 후, 이후 션윈 홍보와 공연 기간에 마음가짐을 크게 바꿔 수시로 자신에게 수련자의 선함과 자비로 중생들을 대해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저를 나쁘게 대한다 해도 어쩌면 우리 사이의 빚을 청산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만나는 것 자체가 인연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제가 상대방에게 미래에 구원받을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수련자는 속인에게 어떤 좋지 않은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매번 션윈 공연 인터뷰는 기자에게 큰 압박을 줍니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적합한 인터뷰 대상자를 찾아 깊이 있는 인터뷰를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인터뷰 수량도 요구됩니다. 다행히 수련생들의 큰 도움이 있어서 압박이 있고 전문 기자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기본 임무는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한 관객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제가 원하는 인터뷰 대상자였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에게 관객을 데려오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이 농담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네요. 유명 기자의 풍모가 있어요.” 비록 수련생은 아주 가볍게 한 말이고 격려하는 말투였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제가 무의식중에 사람들에게 거만한 인상을 줬는지 깨닫게 해줬습니다.
또 한번은 집에서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말했는데 어머니가 농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 어쩌면 말하는 게 지도자가 업무를 배치하는 것 같니.” 비록 이런 언행 뒤에는 제가 자아를 표현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이런 피드백은 제가 이미 강압적이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한번은 상사가 한담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저를 한 자루의 총이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도 한 사장님이 제가 하나의 무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평가를 듣고 저는 언어 내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칭찬인지 비판인지 몰라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를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제 일도 잘 아는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이것이 절대적인 칭찬이라고 말했습니다. “××씨는 일에서 정말로 빠르고 정확해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자로서 이런 평가에서 자신의 집착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선을 수련하는 것이며 선함과 자비를 표현해야 합니다. 만약 속인의 눈에 제가 살상력을 가진 무기 같다면, 그럼 저는 무지 중에 얼마나 많은 업을 지었을까요?
2024년 션윈 서유기 프로그램에서 우마왕이 등장할 때 거만하고 유아독존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날뛰는 기세를 가졌습니다. 이 이미지는 자신을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제가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는 것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이것은 요괴의 기세이지 신의 모습이 전혀 아닙니다. 예전의 자신을 생각해보니 때로는 정말 자신이 꽤 밉살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것도 제고한 후에야 보고 느낀 것일 겁니다.
줄곧 자신의 일부 특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능력, 집중력, 기억력 등입니다. 이런 능력은 모든 사람이 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 같지만 각자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은 다릅니다. 저는 속인 관념으로 한 사람과 일을 대해서는 안 되며, 특히 수련생들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는 것 같아서 편파적으로 이 사람이 게으르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분이 게으른 것도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그분이 어떤 방면에서 업력의 장애가 비교적 클 수도 있어서 정념이 조금만 강하지 않아도 수련에서 정진하는 데 심각한 교란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수련자로서 자신이 어떤 방면의 능력이나 특징은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얻게 된 것은 수련의 복덕 때문이고 더욱이 정법과 사람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공을 탐할 수 없고 더욱이 이것 때문에 업을 짓거나 속인의 어떤 관념과 집착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미국에 온 지 11년이 됐는데, 이 11년은 제가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한 11년입니다. 한번은 제가 수련생에게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노자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상사(上士)가 도(道)를 들음에 근면히 행하고,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下士)가 도를 들음에 대소(大笑)하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데 아주 쉬운 것으로서, 무슨 너무 높아서 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여기에 자리한 많은 노수련생과 오지 않은 노수련생은 이미 상당히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다.”(전법륜) 저는 우리 대법제자는 분명히 하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제가 중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수련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여전히 속인의 생활과 아름답고 낭만적인 청춘 시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인생에 대한 기대와 환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대법 중에서 착실하게 수련한 후 저는 자신이 상사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이 환골탈태의 변화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이번 생에 어떤 경우든 대법과 수련, 그리고 사부님께서 제게 부여하신 사명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됐습니다. 정상적인 속인 생활을 제외하고 절대다수의 여가 시간은 모두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음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를 읽었을 때 마음이 순간 텅 비었습니다. 아, 저는 여전히 하사와 중사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사(上士)는 난(難)을 만나면 웃음으로 풀어내고”(홍음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를 해내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냉정하게 자신을 심사해볼 때, 비록 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법공부와 발정념에서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로는 법공부할 때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발정념할 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끊임없이 자신에게 명리정(名·利·情)을 담담하게 내려놓으라고 상기시키고 있지만, 업무의 각종 상황과 속인들과의 접촉에서 또다시 원래 평온했던 제 마음을 교란시킵니다. 그러고는 또 수련 중에서 다시 담담해지다가 또 한 번 일어나고 다시 담담해지면서 왔다 갔다 반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매번의 경험은 모두 천천히 수련하고 제고하는 과정입니다.
끝으로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저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 시간을 잘 이용해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고 역사와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우리의 서약을 실현해 평온하게 역사의 말세를 지나 사부님을 따라 신기원에 진입하기를 희망합니다.
(2025년 미국 플로리다주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8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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