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랜 수련 과정에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들과 널리 만나며 직접 진상 알리기
저는 한 의료기기 회사에서 영업 일을 했습니다. 저는 업무상 자주 출장을 가는 기회를 활용해, 일을 마친 후 시간이 나면 예전 동창, 동료, 상사, 지인, 친척들을 방문하거나 만나곤 했습니다. 함께 모여 안부를 나눈 뒤, 저는 기회를 찾아 직접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를 권했습니다. 연락이 닿는 거의 모든 예전 지인들을 다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제가 대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삼퇴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조용히 저에게 탈당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고마워하며 마치 이날을 기다려온 것처럼 자신이 즉시 탈당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대신 탈당시키려 했는데, 저는 반드시 본인이 진심으로 동의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공 악당에서 탈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여러 측면에서 최선을 다해 진상을 설명했고, 그들은 제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원장, 주임의사, 과장, 대표, 일반 직원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진상을 비교적 잘 받아들였습니다. 저와 그들은 서로 친숙한 관계였고 예전에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저를 매우 신뢰했습니다.
회사 업무가 진전됨에 따라 사장이 제게 배정한 담당 지역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출장 때 시외버스, 기차, 비행기 등 무엇을 타든 저는 최대한 옆 사람과 대화를 시작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이동 시간이 길면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천천히 화제를 찾아가며 대법 진상을 알리고, ‘천안문 분신자살’이 세기의 사기극임을 설명하고, 구이저우의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평소에도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많이 읽고,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보며, 또한 전국을 누비며 출장을 다니면서 각지의 민속문화 등을 접했기에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화제를 찾기도 쉬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평소 차를 타면 절대 남과 말을 섞지 않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정말 헛되지 않은 대화였어요”라며 기쁘게 삼퇴하고는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여러 번 접촉한 인연 있는 사람 중에는 진상을 듣고 나서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헤어질 때 아쉬워하며 “당신이 가면 어떻게 하죠?”라고 하면, 저는 사부님 설법 녹음이 들어있는 플레이어를 선물로 줬습니다.
업무 과정에서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나 동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함께 있을 기회를 찾아 먼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일을 완성했습니다. 첫째, 기회는 놓치면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꺼내기 어렵고 적절한 기회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먼저 사람을 구하는 이 중요한 일을 완성하면, 나중에 함께 일할 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동료와 상사들은 진상을 들을 수 있었고, 진상을 받아들여 이해한 후 모두 삼퇴했습니다.
처음에 설득하지 못한 경우에는 기회를 찾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군병원 주임이 있었는데, 이전에 다른 수련생이 《9평 공산당》을 줘서 기초가 닦여 있었습니다. 드물게 함께 출장을 가게 됐을 때, 제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즉시 《9평》을 본 적이 있다며 중공 역사에 대해 쓴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중공 악당 조직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 아들, 며느리까지 대신 탈당시켰는데, 매우 진지하게 그들의 가명을 정해서 제 업무 수첩에 적어 건네줬습니다. 떠날 때 이 일을 절대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집에 돌아가서도 반드시 가족들에게 탈퇴하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객이나 대리상을 대할 때, 전국적으로 명망 있는 전문가 교수든 대표든, 기회만 있으면 최대한 진상을 알렸습니다. 단독으로 함께 있을 기회를 찾지 못하면 식사하며 담소를 나눌 때나 함께 차를 탈 때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두려움이나 체면 때문에 공개적으로 삼퇴를 표명하지는 못했지만,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고 알게 된 것은 분명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유명 인사나 전문가 학자들은 사실 대법제자를 접하기가 더 어렵고, 대법제자와 단독으로 충분히 진상을 알아볼 기회가 더욱 적습니다. 첫째, 그들은 업무가 매우 바빠서 활동 범위가 좁고 업무 외의 내용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어도 혼자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변에 항상 수행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셋째, 대부분 중공 악당 당원으로서 악당의 거짓말에 깊이 중독돼 있고, 중공 대변 언론의 거짓말과 무신론 당(黨)문화의 독에 중독돼 있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합니다. 넷째, 체면, 자존심, 기득권, 권위, 직위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상을 진지하게 알아보려 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우 정직한 한 원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몇 번 직접 진상을 알려도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진상 자료와 대법 서적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호텔에 머물면서 휴대폰을 꺼놓고 방해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분신자살은 사기극’이라는 진상 CD와 사부님의 다른 설법 책 한 권을 줬습니다. 이틀 후 떠날 때 그는 “파룬궁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원장이라 아직 탈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해도 업무와 직위에는 영향이 없으며, 단지 악령에게 했던 독한 맹세를 지우는 것으로, 장래에 신의 보호를 받아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삼퇴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매번 출장 때마다 저는 인연 있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스스로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었고, 누군가 신고할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며, 오직 사부님 말씀대로 사람을 구하고 많이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만약 어느 때 심성이 부족해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면, 돌아올 때 늘 마음이 허전하고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오직 사람을 구했을 때만 마음속에 진정한 기쁨과 충실함,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진상 자료를 만들어 널리 진상 전하기
1999년 7월 20일 중공과 장쩌민 집단이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하면서 하늘을 덮는 거짓말이 무수한 세인을 해쳤습니다. 중생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게 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진상 자료를 구할 곳이 없었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진상 전단을 주웠습니다. 읽고 나서 여러 장 복사해야겠다고 생각해 복사 가게를 찾았습니다. 가게의 여직원은 전단 내용을 보고 파룬궁인 것을 알고는 “며칠 전에도 한 할머니가 이런 내용을 가져와서 한 봉지 가득 복사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한 뭉치를 복사했습니다. 가게의 다른 남직원은 대법 내용인 것을 보고는 복사를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 그런 환경에서 그 여직원은 대법을 지지하는 선택을 했고, 복을 받아 명문대 출신의 학력 높은 남자친구를 만나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느 날 저도 컴퓨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하자, 그는 즉시 당시 가장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노트북을 사줬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예전 직장에서 알던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수련생이었습니다. 수련생이 CD 한 장을 줬는데, 그 안에는 명혜망 몇 년치 교류 문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저는 프린터도 사고 싶어졌고, 남편은 즉시 저를 데리고 가서 최고 브랜드의 레이저 프린터를 사줬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장비에 대해 전혀 몰랐고, 자료를 어떻게 인쇄하는지는 더더욱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연이어 몇 차례, 외지에서 제게 편지가 왔는데, 사부님이 발표하신 새 경문도 있고, 인쇄된 진상 소책자와 인쇄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이상했습니다. 이사한 새집 주소를 아는 사람이 없고, 편지를 보낸 곳에도 저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매번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남편이 우편함에서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제게 건네며 “이 글씨는 어쩜 이렇게 예쁘게 쓰였을까!”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안배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컴퓨터로 명혜망에 접속하는 법을 배웠고, 곧 각종 진상 자료를 인쇄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나중에는 컬러 인쇄, CD 굽기, 진상 지폐 인쇄, 진상 도장 새기기 등도 배웠습니다.
저는 업무상 유리한 조건으로 인맥이 넓어 많은 연락처와 연락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달 각 지역에서 대·중·소형 학술회의가 있고, 매년 몇 차례 전국 대형 전시회가 있는데, 참가자 명단과 기업 전시 부스의 명함, 그리고 대리상 회사에서 보내온 해당 지역 학술회의 연락 명단, 때로는 업무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일들의 명단까지도 제 업무 이메일로 전달됐습니다. 또 때로는 무심코 어떤 기관, 학교, 시스템의 전화 연락부를 얻게 되기도 해서 이렇게 제게 모인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위에는 주소, 직장, 휴대폰 번호, 사무실 번호, 이메일 등 매우 상세한 구체적인 연락처가 있어서 더 많은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는 데 편리했습니다.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대면해서 진상을 알릴 수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은 접촉할 수 없기에 저는 얻은 연락 명단과 방법을 활용해 진상 자료를 우편으로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일반 우편은 어떤 기관에서 받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대부분 우체국에서 특급우편 EMS로 발송했습니다. 나중에는 안전을 고려해서 일반 우편으로 발송했는데, 받은 피드백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 아버지는 마음속으로는 중공 악당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아무리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고, 제가 아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일반 우편으로 ‘○○ 기관 기숙사 단지, ○○ 수신’이라고 주소를 적었습니다. 그곳은 현급 도시였는데, 편지를 보내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 보니 아버지의 사상이 계속 변하고 있었습니다. 몰래 서랍을 열어보니 제가 보낸 편지를 뜯어서 읽었더군요. 아버지는 또 “시간 나면 ○○를 찾아가 봐라”고 당부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예전 친구가 보낸 편지라고 생각했고, 제가 보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몇 달마다 다른 내용의 진상 자료를 한 통씩 보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사상이 완전히 바뀌어서 제가 직접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고, 아버지도 악당을 크게 욕하며 중공 악당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데 동의하셨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는 《9평 공산당》 동영상을 보고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셨습니다. 때로는 침대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보시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산에서 부주의로 굴러떨어졌는데, 즉시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웠더니 아무 상처도 없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출장 기회를 이용해 타지에서 다른 지역의 같은 업계 사람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우체국에서 우표와 봉투를 사고, 다른 지역 우체국에서 발송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진상 편지를 보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편지를 받고 읽는 기회가 줄었지만, 우체국이라는 기구가 존재하고 이 방식이 있는 한, 이것은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저는 두 명의 수련생을 더 알게 됐는데, 그들은 제게 전용 휴대폰으로 문자를 발송해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세 대의 전용 휴대폰을 줘서 자동으로 진상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하는 방식을 알려줬습니다. 저는 이미 가지고 있는 진실하고 상세한 연락처를 충분히 활용해, 휴대폰 번호를 문서로 순서대로 편집해서 휴대폰 메모리 카드에 넣고, 하나씩 진상 문자를 발송하고 자동으로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때로는 수신자의 피드백 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다시 상황에 따라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 진상을 더욱 명확히 알렸습니다. 저는 또 선별한 휴대폰 번호, 유선전화 번호, 이메일을 정리해서 명혜망에 보내 해외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때로는 딸을 태우고 진상 전화를 거는 휴대폰을 가지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꺼지고 배터리를 빼낼 때쯤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늘 가방에 진상 소책자, 진상 전단, 진상 스티커를 넣고 다니며, 외출해서 일을 볼 때 어디를 가든 기회가 맞으면 순조롭게 배포했습니다. 타지로 출장 갈 때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봉한 진상 편지 외에 소량의 진상 자료나 진상 스티커만 가지고 갔는데, 차를 타거나 비행기 보안 검색 때 모두 정념을 발해 순조롭게 통과했습니다.
출장이 없을 때는 자주 현지나 인근 현과 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고, 때로는 딸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4, 5학년 때부터 저는 자주 함께 법공부를 하고 함께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우연히 다른 수련생이 붙인 진상을 보면 우리는 모두 감동하고 고무됐습니다.
진상 소책자와 전단을 배포할 때, 저는 일반적으로 진상 자료를 비닐봉지에 넣고, 겉은 컬러 비닐봉지나 예쁜 포장지 봉투를 사용해 직접 문고리에 걸거나 자전거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복도 벽에 우편함이 있으면 먼저 우편함에 넣었고, 설날 기간이면 ‘복(福)’ 자가 있는 빨간 봉투에 진상 전단을 넣었습니다. 배포할 때 마음속으로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잘 보기를 바랍니다’라는 일념을 냈습니다.
제가 진상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는데, 계속 정념을 발해 제거했고, 몇 차례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셔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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