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중국의 한 평범한 대법제자로서 대만 대파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인터넷에서 수련자들의 이에 관한 교류 문장을 보고 저도 대만 수련자들과 제 생각을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대만은 작은 땅덩어리로서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양면 책략에 직면해 있고, 사실 각 방면에서 이미 중공에 심각하게 침투당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안정적으로 올 수 있었던 점에서 정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만이 중공사당에게 통일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들이 가장 관심 갖는 것이 이 일 아닌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복분을 그것에 주지 않았다.”(각지 설법15-2019년 뉴욕법회 설법)
하지만 신의 보호가 있다고 해서 대만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당신을 보호하고 복을 주는 전제는 당신이 선량한 사람, 시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파면이 보여준 것은 당파 싸움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신께서는 대만 사람들에게 중공 악당을 어떻게 대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셨고, 이는 그들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원은 자기 선거구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어 의원이 됐지만, 국회에서는 대만을 중공에 팔아넘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선택할까요? 돈을 중시해 이 사람을 지지할까요? 아니면 대의를 선택해 그를 파면할까요? 이것이 바로 대만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시험입니다.
중공 대리인들에 대해 우리는 당연히 자비를 가져야 하지만, 그들이 있는 국회의 권력은 매우 중요하며 대만의 안위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법제자가 일반 유권자로서 그들의 파면에 동의하는 것이 자비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국회에 있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서 대만을 중공에 넘기는 일을 한다면, 그들의 결말이야말로 비참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각성하라(驚醒)』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교적 엄중한 것은 또 일부 사람들이 늘 정부 정계요인에 대해 개인 공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지 적을 만들러 온 것이 아니다. 사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람일지라도[이미 죽은 중공의 강(江)대마두는 제외] 모두 개인 공격은 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미국 양당의 정계요인들에 대해서이다. 사람은 모두 이 법을 위해서 왔으며, 사람은 모두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에 대한 공격은 쉽게 원한을 조성한다. 일단 원한을 맺으면 풀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럼 어떻게 사람을 구하겠는가? 아울러 쉽게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방면의 교훈이 아직도 적다는 말인가?”
그래서 대만 대법제자로서 당파 싸움에 빠져서는 안 되고, 개인 공격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파면하려는 것은 중공의 대리인이지, 어느 당이나 어느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친중공적이고 대만의 안위를 해치는 일을 했다면 나는 당신의 파면에 동의하지만, 나중에 태도를 바꾼다면 다시 선출할 수도 있습니다. 파면 대상으로 지명된 의원에 대해 우리 미디어는 객관적으로 사실만 진술하면 됩니다. 사실 앞에서 그가 중공 대리인인지 아닌지는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것입니다. 대법제자의 이름으로 직접 개인을 비난하면 원한을 불러일으켜 사람을 대법의 반대편으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대만 대법제자들도 대만에서 진상을 알리고 악당을 폭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합니다. 대만 국민들이 모두 중공의 사악함을 분명히 알고, 대만에 대한 심각한 침투 위협을 인식한다면, 중공 대리인들은 자연히 발붙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말하면 대법제자야말로 진정한 주역입니다. 대만에서 세인들이 중공의 본질을 알게 하는 일에 냉담한 마음을 품고 있는 수련자들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마땅히 잘해야 할 중공 악당 폭로와 진상 알리기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이 일에 너무 집착하는 수련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자신이 속인 사회의 표면적 득실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마음을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두어, 법의 요구에 따라 구원의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고 주역을 잘 해낼 것인가입니다.
7월 대파면의 실패는 저에게 민주주의와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말법시기에는 모든 것이 부패했고, 부정적인 것이 우세를 차지한다면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민주적으로 선출됐다 해도 반드시 올바르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자유가 끝없이 모든 것을 포용한다면 사악한 것도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대만의 진정한 생명의 근본은 중화민족의 전통적 도덕관과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이지, 중공의 당문화가 더 많은 대만 사람들을 끌어내리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대만의 안위를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계속 최후의 종결 시간을 연장하시며 대법제자와 세인들에게 거듭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대만은 물론이고 지금 온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모릅니다. 미국의 회귀와 부흥은 중공을 해체하고 사악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업력이 이렇게 크니 천재지변이 갈수록 많아질 수 있고, 부패한 생명은 마땅한 응보를 받을 것입니다. 하늘이 사람을 선택하고 있으니,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잘 이용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진상을 잘 알려야 합니다. 이래야만 우리와 중생을 위한 사부님의 거대한 희생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개인적인 생각이며,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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