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청공(淸空)
[명혜망] 저는 고령의 대법제자입니다. 명혜망 수련생들의 교류 글에서 계발을 받아 오늘 펜을 들어 지난 30년간 수련길의 일부를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의 지도를 청합니다.
1. 대법을 기쁘게 얻어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시다
저는 1994년 7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기쁘게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대법에 들어왔습니다. 그 이전 시대에는 각지에 기공 학습반이 있었고,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각 단위의 노동조합에서 사람들을 조직해 함께 나가서 기공 강좌를 듣게 했습니다. 저도 몇 개의 기공반을 따라 배웠지만 항상 다른 공법들이 바르지 않다고 느꼈고, 한동안 연마한 후에도 제 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지난(濟南)설법》에 참가한 수련생이 파룬궁을 연마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저는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대법을 연마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본 이후로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른 공법들과 비교할 때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느낌은 바로 바르고 친근하다는 것이었고, 저는 마치 돌아갈 곳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이때부터 저는 진정으로 대법 수련의 문에 들어섰습니다.
그 시절 저는 산후병, 두통, 팔 아픔, 자궁근종 등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병증들 때문에 저는 매일 근심에 찬 얼굴로 지냈습니다. 법을 얻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제가 진정으로 법공부하고 연공을 통해 병이 자신도 모르게 모두 나았습니다. 그런 날들에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돌아가는 길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화장실만 찾았습니다”(전법륜) 같은 느낌이었는데, 법공부를 통해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을 정화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서 감당해주신 것이니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그 부분 업력으로 인해 저 자신도 자주 어지럽고 메스껍고, 기침, 치통 등의 증상이 나타났으며, 얼굴이 괴로워서 변형까지 됐습니다. 속인인 가족들은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꼭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 제가 법공부하고 연공을 견지하기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은 제가 이렇게 확고한 것을 보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가지(加持)임을 알았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는데 증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고, 모두들 대법의 신기함을 찬탄했습니다. 큰딸이 제 온몸의 병이 다 나은 것을 보고 그녀도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병이 없는 가뿐한 몸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부터 마음속이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이때부터 제 마음은 반석같이 굳어져 대법 수련에 들어서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 시절에 저희 이곳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협조인이 저를 추천하여 한 연공장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가족들의 지지로 인해 저는 집의 텔레비전, 비디오 플레이어, 녹음기,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를 지정된 장소로 가져가서 수련생들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제 곁의 세 외손자도 모두 대법을 좋아해서 저녁에 저를 따라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그들이 사존의 법상을 보면 자발적으로 합장하며 사부님께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세 아이의 천목이 모두 열려 있어서 아이들이 각각 자신들이 본 수많은 신기한 장면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 4차례 베이징에 올라가 대법을 실증
1999년 7·20(파룬궁 탄압 일) 이후, 사부님과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저는 직장의 대법제자 책임자와 상의하여 베이징에 가서 대법이 무고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 7·20이 발생하기 전날, 저는 수련생과 함께 차를 빌려 베이징에 갔는데, 톈진(天津) 외환도로에 도착했을 때 경찰에게 차단당해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수련생과 시간을 약속하고 다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우리가 정한 그날, 저는 삼륜차를 타고 역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도중에 삼륜차가 뒤집어져 제 몸 위에 깔렸는데, 그때 제 눈앞에 금빛이 번쩍거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악한 것이 제가 가는 것을 막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저를 구해달라고 외쳤으며, 반드시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픔을 참고 정시에 베이징으로 가는 장거리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가 얼마 가지 않았는데 중간에 경찰차에 차단당했습니다. 우리는 각 직장에서 데려가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직장의 진상을 모르는 악당 서기가 저를 강요하여 대법 서적과 사부님의 법상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미리 모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에 매일 사람들이 와서 괴롭히며 저를 위협하여 서명하게 하고, 제가 연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온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치고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일을 할 때 남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저는 이전에 온몸이 병이었는데 지금 모두 나았습니다. 제 외손자가 열이 날 때 저는 그들에게 《전법륜》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조금 땀을 흘리고 나면 낫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인데, 믿지 않으시면 여러분이 직접 《전법륜》을 보시면 파룬궁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일일이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건물 밖에서 저를 방해할 때, 저는 집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보았습니다. 볼수록 마음이 아팠고, 몇 번 울기도 했습니다.
그해 정월 13일, 수련생이 말하길 설날 며칠 동안 명절이라서 역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차를 한 차례 추가했다고 해서, 저는 수련생에게 표를 사달라고 부탁하고 홀몸으로 신분증도 가져가지 않고 베이징에 갔습니다. 기억하기로는 그때 차에 총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에 젊은 연인 한 쌍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의 안배였을 것인데, 베이징 융딩먼(永定門)에 도착해서 그들이 저를 위해 택시를 불러주었습니다. 베이징 운전사가 저에게 경찰이 택시가 천안문광장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금수교(金水橋)에서 내리기로 선택했는데, 막 내리자마자 베이징 경찰에게 발각되어 경찰차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때 차에는 이미 노년 수련생 한 쌍이 있었는데, 그들은 산둥성 자오위안현(招遠縣)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름 모를 곳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은 모두 철창문이었고 안에는 많은 대법제자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농촌에서 온 부녀자들로 아이를 안고 있기도 했고, 초등학생도 있었습니다. 한 경찰이 어린 남자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학교에 가지 않고 여기서 뭘 하러 왔느냐?” 어린 남자아이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호하러 왔고, 경찰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경찰이 흉악하게 우리의 만두를 쳐서 떨어뜨리며 우리가 밥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경찰이 우리의 가방을 검사할 때 가방 안의 생수병 뚜껑을 모두 열어서 모든 사람이 마시게 하여 물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경찰이 가버렸습니다.
그들은 신원을 밝히지 않는 수련생들을 함께 가두고, 신원을 밝힌 수련생들은 직장에 연락해 데려가게 했습니다.
세 번째로 베이징에 갔을 때는 저는 여동생 수련생과 함께 갔습니다. 결과 저희 둘이 막 천안문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게 제지당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사람을 보내어 저희 둘을 현지로 데려갔습니다.
마지막 한 번은 제 남편이 저와 함께 베이징으로 호법(護法)하러 간 것인데, 남편은 제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이 그렇게 확고한 것을 보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가 성공적으로 천안문 성루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성루 위에서 저는 조용히 정념을 발하여 베이징 공간장의 모든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했습니다.
저는 총 네 번 베이징으로 호법하러 갔는데 세 번 잡혀서 돌아왔습니다. 잡혀서 돌아온 날들에 지장에서 두 차례 저를 강제로 반달씩 세뇌시켰습니다. 그리고 10일과 15일 불법구금당했으며, 또한 2천여 위안의 부당한 벌금을 물었습니다.
3. 외손자와 함께 법공부, 연공하고 정념으로 악을 제거
막 법을 얻을 때는 마침 제가 갓 퇴직한 때였습니다. 저는 외손자 세 명이 있는데, 세 명의 사돈 어머니들은 모두 속인이고 외지 사람으로, 자신들의 손자와 손녀를 돌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 딸들이 제가 사는 곳과 가깝고, 게다가 제가 사는 곳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저는 당연히 아이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외손자와 외손녀는 반 년 차이가 나고, 작은 외손자는 그들보다 세 살 어립니다. 어릴 적부터 세 아이는 늘 저와 함께 지냈습니다. 저는 낮에는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돌보았고, 밤에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법을 배우고 연공을 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아직 대법에 정식으로 입문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요리를 할 줄 몰라, 평소 하루 세 끼는 대부분 제가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큰딸이 가끔 도와주긴 했지만 대부분은 밥만 먹고 입을 닦고 그냥 가버려서, 그 뒤 정리는 늘 제 몫이었습니다. 그 5~6년 동안 저는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자녀들의 행동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마음속으로 억울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저는 조용히 사부님의 법 ‘마음고생(苦其心志)’을 외웠습니다. 남편은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가끔 불평하며 안 좋은 말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남편을 타일렀습니다. “수련인은 대법경서에 쓰인 대로 해야 해요.” 그 시절, 아이들은 대법의 은혜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지금부터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신기한 일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남편이 점차 대법에 들어서긴 했지만 《전법륜》만 읽고 사부님의 각지 설법은 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세 외손주들의 천목을 열어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큰 외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너희 할아버지는 왜 각지 설법은 안 보시니?” 큰 외손자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머리 위에 금 자물쇠가 하나 있어요. 할머니, 우리 정념을 발해서 그걸 폭파시켜요.” 제가 “좋아”라고 대답하자, 우리 네 명이 함께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살 된 막내 외손자가 침대에 누워서 손발을 흔들고 있어서 저는 장난치는 줄 알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큰 외손자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동생도 정념 발하고 있어요.” 10분쯤 지난 후, 저는 큰 외손자에게 물었습니다. “그 ‘자물쇠’ 열렸니?” 그는 “아니요”라고 하더니, “할머니, 친구 몇 명을 더 데려올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입으로 몇몇 아이들의 이름을 중얼거렸는데 들어보니 모두 수련생들의 손자, 외손자들이었습니다. 대략 반 시간쯤 지나, 큰 외손자와 외손녀가 정념 발하기를 멈추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머리 위의 자물쇠가 없어졌어요.” 마침 남편이 장을 보고 돌아왔고, 제가 “사부님 새 경문이 나왔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기쁘게 “나 좀 보자”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생리통으로 배가 아파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외손녀에게 물었습니다. “너희 엄마는 왜 배가 아프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배 속에 뱀이 한 마리 있어요.” 그래서 우리 몇 명이 함께 정념을 발해 공능을 둘째 딸의 배 속으로 보내 그 뱀을 제거했습니다. 정념을 세 번 발한 후 딸의 배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또 한 번은 큰 외조카가 이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제가 외손녀에게 물었습니다. “너희 오빠는 왜 이가 아프니?” 외손녀가 말했습니다. “그의 이 위에 쥐가 한 마리 있어요.” 우리는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고 큰 외조카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외손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네 집 아래에 아주 징그러운 두꺼비 한 마리가 있는데, 대법을 파괴하려고 10여년 동안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10여년 전 이곳은 아직 황무지였거든요. 그래서 우리 네 명이 함께 힘을 모아 그 두꺼비를 제거했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가 함께 정념을 발할 때 큰 외손자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지난(濟南)에는 흑수(黑手)랑 난귀(爛鬼)가 많아요. 저 지난에 다녀올게요. 10분 후에 저를 깨워 주세요.” 제가 “좋아”라고 했습니다. 약 10분쯤 지나 제가 큰 외손자를 깨우며 “어떻게 됐니?” 하고 물으니, 그는 “흑수랑 난귀들이 호주로 도망갔어요. 제가 계속 쫓아가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 할머니께도 칼 한 자루 드릴게요”라고 하자, 저는 얼른 칼을 받는 동작을 했습니다. 제거가 끝난 후 저는 세 외손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정념을 발한 일은 아빠 엄마한테 말하지 마. 그들은 믿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 살 된 작은 외손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그는 파룬과 전화기를 그리더니 사부님께 전화를 걸 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전화번호가 뭐냐고 묻자, 그는 “이건 천기라서 말할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그는 우리가 연공할 때 자스민꽃도 함께 연공한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우리가 함께 법을 배우고 있을 때 작은 외손자가 말했습니다. “글자를 틀리게 읽으면 안 되고, 빠뜨려도 안 되고, 더하면 더더욱 안 돼요.”
또 한번은 우리가 함께 ‘션윈(神韻) 신년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스크린이 열리고 여러 신들이 삼계로 내려오는 장면에서, 외손녀가 마지막에 내려오는 사자(使者)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신이 바로 나예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어느 날 작은 외손자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오늘 저한테 물어볼 일이 있으면 지금 물어보세요. 안 그러면 나중엔 기회가 없어요. 사부님이 더 이상 보게 하시지 않아요.”
4.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다
7·20 이전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정진요지》를 열 번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 열 번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열 번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간을 내어 대법을 필사하기 시작했고, 《전법륜》을 열한 번 필사했습니다. 필사한 《전법륜》은 고향의 수련생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전법륜》 수십 권을 구입하여 고향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남편과 함께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이용해 수련생들이 글자를 고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딸의 도움으로 우리 부부는 컴퓨터 사용, 인쇄, CD 굽기, 자료 제작 등 중생을 구하는 항목을 배워 집에서 하나의 ‘작은 꽃’(자료 거점)을 피웠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삼륜차 한 대를 사기로 상의했습니다. 먼저 친인척부터 시작해 친지, 친구, 전우, 동창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대법 자료를 들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외손녀를 톈진으로 학교 보내며 우리 부부도 함께 갔는데, 대법 진상자료,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책과 CD, 소책자 등을 단단히 포장해 여행가방 맨 아래에 넣었습니다. 속인인 딸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톈진에 도착한 뒤 밤에는 주로 진상자료를 베이징 차량 번호판이 달린 자동차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2년 동안 우리 부부는 근처의 거리와 골목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길에서 아찔한 교통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산둥의 펑라이(蓬萊)로, 예로부터 펑라이에는 신선이 수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고향 사람들은 대법을 수련하면 본성으로 돌아가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듣고, 마을 사람들 모두 파룬따파를 특별히 좋아했습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든 대법이 좋다는 말을 전했고, 아이들도 저를 두고 “할머니는 사람 만나면 세 마디 안에 꼭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말해요”라고 했습니다.
5.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난관을 넘게 해주시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졌습니다. 남편이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남편은 며칠 동안 혼미했고, 조금 정신이 들면 설사하고 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사정을 아는 수련생들이 와서 함께 정념을 발했고,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남편은 앉아서 사부님의 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에 연공할 때는 서 있을 수 없어 의자에 앉아서 연공을 했고 끝까지 연공을 마쳤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2024년, 어느 날 큰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마당 대문을 닫으러 나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크게 넘어졌고, 그 순간 오른쪽 다리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사부님께서 내 큰 업을 없애주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어서 방 안으로 돌아와 소파 위로 올라가 앉으려 했지만 다리를 도저히 접을 수 없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며 사부님의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통증이 덜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오른쪽 발목이 부어올랐고 발을 땅에 디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침대 옆에 기대어 땀을 흘리며 통증을 참으며 동공(動功)을 끝까지 연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주 후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정상이 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는 수련하지 않는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우리 노부부는 곧 다시 세 가지 일을 정상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83세 되던 해, 어느 날 집에서 평범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 말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친구는 깜짝 놀라 응급 전화를 걸었습니다. 둘째 딸이 집과 가까워서 가장 먼저 집에 도착해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저도 구급차에 타서 남편의 귀 옆에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계속 외웠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 밖에 앉아 정념을 계속 발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남편을 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응급실에서 일련의 검사를 마치고 가족에게 후유증이 없다고 알렸습니다. 의사들도 이상하게 여겼고, 한 간호사는 집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족은 속인이어서 대법의 신기함을 증명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실명으로 장쩌민(江澤民)을 고발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노년 수련생들과 함께 장쩌민 고소 자료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고소장을 모두 성공적으로 발송하였고, 접수증도 받았습니다.
30년간의 수련에서 저는 아직도 제거하지 못한 많은 사람의 마음이 있습니다. 질투심,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밖으로 보는 마음, 남을 얕보는 마음, 부부정, 자녀정, 공산당 당문화, 입을 단속하지 않는 것 등 많은 좋지 않은 마음이 있는데, 앞으로는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존께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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