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관건적 순간에 법을 생각하니 정념의 위력이 신통을 드러냈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서 이 길을 29년 동안 걸어왔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통해 생명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우주대법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여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고 진(眞)으로 돌아가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 수련 중의 몇 가지 작은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재촉해 연공장에 가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온몸이 병투성이였습니다. 특히 강직성 척추염, 류머티즘성 관절염, 신경성 근육위축, 심장병 등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였습니다. 의사는 강직성 척추염은 죽지 않는 암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수면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몇 병을 준비한 후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일어날 수 없게 되면 한 번에 끝내자.’

1995년 12월 어느 날, 한 동료가 제가 주사 맞으러 가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질병 치료에 놀라운 효과가 있는 공법이 있는데, 한번 시도해보시겠어요?” 저는 서둘러 무슨 공법이냐고 물었습니다. 동료는 파룬궁이라고 하며 파룬궁 공법을 소개해줬습니다. 저는 가부좌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말했습니다. “안 돼요, 저는 연공할 수가 없어요. 앉으면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면 앉을 수 없어서 연공할 방법이 없어요!” 동료가 또 말했습니다. “책도 있으니까, 그럼 먼저 책을 보세요.”

다음 날, 동료가 『전법륜(轉法輪)』을 가져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쳤는데, 첫 눈에 본 것이 사부님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구, 이 분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서둘러 책을 들고 이웃집으로 달려가 이웃에게 물었습니다. “이 분이 낯익지 않나요?” 이웃이 말했습니다. “음, 낯이 익네요, 꽤 젊어 보이고요.” 나중에 그녀도 『전법륜』 한 권을 청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후, 저는 그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이 책을 저에게 주세요, 얼마든지 제가 드릴게요.” 동료는 책이 두 권 더 있고, 한 권은 『파룬궁』이고 한 권은 수련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 갖고 싶어요, 저에게도 가져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와 아들이 번갈아 가며 이 책들을 모두 한 번씩 봤는데, 보면서도 서로 책이 정말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법륜』을 본 그날부터 모르는 사이에 몸이 가벼워졌고 허리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으며, 약도 끊었습니다. 전에는 병으로 괴로워 툭하면 화를 냈고 화가 나면 등이 아팠습니다. 법 얻은 후부터 다시는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주사 맞고 약 먹지 않았고 성격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때 아들은 막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방과 후 집에 돌아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진짜예요.” 이어서 세 가지 일을 말해줬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걷다가 누군가 그를 밀쳤다고 느꼈는데, 그가 길가로 밀려났고, 이때 자동차 한 대가 그의 곁으로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길가로 비켜서지 않았다면 부딪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날 친구가 자전거로 그를 태우고 과학관으로 가던 도중에 그의 발이 바퀴살에 끼었는데, 바퀴살이 6개나 부러졌지만 그의 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제 발이 아빠 자전거 바퀴살에 끼었을 때를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흉터가 남아있어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거예요! 아마 친구가 저를 태워주면 안 됐을 거예요, 이건 일반인의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라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들은 이어서 세 번째 일을 말해줬는데, 바로 그날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늘 쉬는 시간에 저는 한 친구에게 가서 그의 의자에 앉으려고 했는데, 뒤에 있던 친구가 의자를 확 빼버려서 제가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친구들이 모두 하하 웃었어요. 저도 웃으면서 그를 보고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말했죠. ‘우리가 웃는데 너도 웃다니, 너 바보야?’ 저는 마음속으로 ‘저는 바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이때 사부님이 말씀하신 진선인과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가 생각나 마음속으로 조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엄마,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수업 종이 울리고 우리 모두 자리에 앉았는데, 10분도 안 되어서 제 의자를 빼낸 그 친구가 ‘퍽’ 하고 역시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가 앉은 그 의자 다리가 부러진 거예요, 그것도 철 의자였는데 부러진 거예요! 학교에서 8위안을 배상하라고 했어요. 이게 사부님이 말씀하신 인과응보 아닌가요?”

아들이 간절히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빨리 연공장에 가서 연공해요. 토요일, 일요일 쉬니까 제가 엄마와 함께 갈게요.”

이렇게 해서 저는 대법 수련에 진정으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저는 아이가 부축해서 연공하러 가는 것에서 시작해 곧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가부좌도 10분, 20분, 30분에서 몇 개월 안 되어 한 시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번은 큰 눈이 와서 버스가 없었는데, 저는 연공장에서 5~6 정거장을 걸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연공장의 수련생들이 제 심신의 변화를 보고 모두 크게 격려받았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도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경찰이 사람을 시켜 대법을 비방하는 표어를 없애다

1999년 7·20 장쩌민(江澤民) 악마가 파룬궁 박해를 명령한 후, 남편은 두려워 저에게 당분간 연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포기하더라도 저는 포기할 수 없어요. 당신도 알잖아요, 제 목숨은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거예요. 저는 또 정부에 가서 분명히 말할 거예요. 진선인이 뭐가 잘못됐나요?! 왜 연공하지 못하게 하나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우리 나이 또래들은 다 알잖아. 당신이 그것(중공을 가리킴)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 그것이 당신 말을 들을까? 당신이 그들을 이길 수 있어?” 저는 말했습니다. “저도 그것과 싸우지 않아요, 그냥 상황을 반영하러 가는 거예요.” 남편이 또 좋지 않은 말을 했는데, 저는 매우 엄숙하게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한테 말해두는데, 전 세계에 단 한 사람도 연공하지 않더라도 나는 계속 연공할 거예요. 나를 설득하려는 생각은 버리세요.” 남편이 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나가서 대법을 위해 정의를 되찾고, 각종 방식으로 진상을 밝히며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제가 천천히 남편에게 진상을 알려주면서 그도 점차 우리를 이해하게 됐고, 따라서 힘닿는 데까지 대법을 지지하는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불법 판결을 받았고, 남편도 연루돼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습니다. 일련의 박해를 겪은 후, 남편은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그가 저에게 말하기를, 젊을 때 직장에서 일을 잘해서 지도자가 그에게 입당하라고 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절대로 입당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그의 아버지는 ‘문화대혁명’ 중에 박해를 받았음). 그런데 직장 지도자가 계속 찾아와서 어쩔 수 없이 입당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는 말을 안 듣는구나, 조만간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 과연 그렇습니다. 결국 중공은 그의 밥그릇까지 깨뜨렸잖습니다! 탈당 대조류가 시작된 후, 그는 단호하게 공산당이라는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한번은 경찰이 대법을 비방하는 현수막과 표어를 우리집 문 앞에 붙였습니다. 제가 보니 너무 높이 붙여서 남편과 상의했습니다. “밤에 우리 둘이 그것을 떼어내요.” 마침 우리집에 스프레이 페인트가 있었는데, 벽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새기는 데 쓰던 것이었습니다. 밤에 우리 둘이 나가서 스프레이 페인트로 사악한 표어를 모두 덮어버렸고, 또 현수막을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다음 날 경찰이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한 거죠?” 저는 반문했습니다. “우리집 문 앞에 표어를 붙인 것은 당신이 한 거죠? 다음에 또 그런다면 나도 붙일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신이 붙인 것 위에 붙일 거예요. 당신이 붙일 수 있다면 나도 붙일 수 있으니까요. 맞지 않나요? 만약에 당신이 한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내일 가서 없애버리세요.” 다음 날 아침 제가 나가보니,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이 세 사람을 데리고 표어를 없애고 있었습니다.

정념의 위력이 신통을 나타내다

여러 해 전 제가 구치소에 납치됐을 때, 경찰이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신체검사를 하게 하고 수갑을 채웠습니다. 돌아올 때 경찰이 열쇠로 수갑을 열 수가 없어서 다른 열쇠를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난 이 수갑을 차지 말아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서 저는 손을 수갑에서 빼냈습니다. 경찰들이 보고는 놀랐는데 그 이후로 그들은 저를 많이 존중했고 다시는 수갑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악인들이 저를 세뇌반에 끌고 가서 강제 ‘전향’시키려고 했습니다. 세뇌반은 한 호텔 안에 있었는데, 매일 밤 두 사람이 제가 자는 것을 지켰고, 그중 한 사람은 침대를 문 앞에 받쳐놓고 문을 막아서 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려줬는데, 처음에는 듣지 않다가 점차 누군가가 조금씩 듣게 됐지만, 그녀들은 두려워서 작은 소리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임무예요,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9일째 되는 날, 저는 진상도 거의 다 알렸고, 할 말도 다 했으니 이곳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오에 전 세계 대법제자가 정념을 발할 때, 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모두 잠들게 하려는 일념을 발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에는 점심식사가 12시에 시작했는데, 그날 점심은 뜻밖에도 일찍 나왔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저는 한 생각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빨리 잠들게 하자!’ 그 결과 그들이 정말 모두 잠들었습니다. 제가 보니 밖의 사람들도 모두 방에 들어가 잠이 들어서, 저는 또 한 생각을 보냈습니다. ‘로비에도 사람이 없게 하자.’ 그래서 저는 방을 나와 로비에 와봤더니 접수대에 정말 사람이 없었고, 대문도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 저는 순조롭게 저를 가둔 호텔(세뇌반)을 빠져 나왔습니다.

또 정념으로 병업 고비를 돌파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 다리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아파서 결국 걸을 수 없게 됐습니다. 대퇴부 밑부분에 큰 혹이 두 개가 생겼고, 서서히 두 다리에 모두 혹이 생겼습니다. 일반인의 말로는 림프 부종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나는 세세생생 지은 업이 너무 많았고, 수련의 길에서 잘못한 것도 있고 넘어진 적도 있었으니 이것은 아마 소업하는 것 같다’라며 그냥 소극적으로 감당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법공부하는 중에 저는 갑자기 깨달았는데, 자신의 많은 집착을 찾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두려운 마음, 공을 탐하는 마음, 과시심, 쟁투심, 환희심 등등입니다. 저는 인식했습니다. 구세력이 제 집착과 잘못한 곳을 붙잡고 소위 ‘시험’하여 저를 교란하고, 저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대법제자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여, 결국 저를 망치려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승인할 수 없고 반드시 부정해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다리의 큰 혹이 없어졌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 말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9년 동안 대법은 저를 너무나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저는 마침내 펜을 들어 한 번에 이를 써서 제 체험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24/497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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