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후회와 자책은 안으로 찾기가 아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적부터 매우 깊은 후회와 자책의 심리상태가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 사유는 제가 매번 관을 넘을 때마다 거대한 교란을 가져다주었고, 때로는 심지어 수련에서 안으로 찾기와 뒤섞여 혼동됐습니다. 현재 제가 의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상황입니다.

첫 번째 상황은 제가 난관을 만났을 때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사람의 관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나는 어디에서 잘못했을까? 만약 일찍 이런 집착심에 주의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바로 이어 후회와 자책의 부정적 정서가 분출되어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데, 이런 부정적 정서는 모두 살아있는 영체(靈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으로 찾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저의 전반 자책의 기점은 이 고통을 감당하기 싫어하고 다시는 이런 결과가 발생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지, 진정으로 이 과정에서 어떤 집착을 찾았는지, 얼마나 바로잡았는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관념은 이기적이고, 축적되는 것은 고통을 피하는 경험입니다.

저는 현재 점차 이런 부정적 사유 방식을 의식해 바꾸고 있습니다. 자신이 난관을 만났을 때 먼저 마음속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나는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법에 부합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더 유리한가. 이 일의 발생으로 난 어디를 바로잡아야 하는가? 내 어떠한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가? 명예인가? 이익인가? 정인가? 아니면 질투, 과시, 환희심인가?’ 관을 넘는 중에 선한 마음으로 참아야 할 것은 참고 잃어야 할 것은 잃으며, 찾은 집착심에 대해 행위에서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갈등을 피할 것인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은 모두 배치가 있고, 난관의 출현은 절대 우연이 아니며, 더욱이 사람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련인의 심성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시험과 난관이 반드시 발생하며, 후회와 자책을 논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수련 중 부단히 착실하게 수련하며 제고하고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 나가는 것뿐입니다. 심성은 계속 제고해야 하기 때문에 따라서 새로운 난관이 또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상황은 가족이 시련을 겪는 것을 볼 때는 한 가지 부정적 사유가 항상 사상 중에 떠오릅니다. ‘내가 잘 수련하지 못해서 가족이 이러한가?’ 가족이 고통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또 자책에 빠져서 부정적 물질의 교란을 받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의 사유 기점이 가족이 좋기만을 바라고 가족이 고통을 감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데, 여전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설마 자신의 가족을 좋게 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인가요? 이것은 수련에 강대한 사상적 부담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지금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족이 시련을 만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으로 찾아 원인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속인의 관념입니다. 업력윤보 중에 일체는 모두 필연이고, 가족도 소업을 해야 하며, 또 이미 정해진 인생의 길이 있고, 생로병사는 일찍이 안배가 있습니다. 가정 시련 중에서도 오직 대법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갈등을 마주하고 가족을 대하며, 동시에 힘껏 교란을 배제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뿐입니다. 가족에게서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아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중시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합니다.

저는 비록 법리적으로는 명백히 알았지만 실제 수련할 때는 오히려 자주 넘어집니다. 하루는 한 속인 친구가 저와 채팅하며 그녀가 만난 인생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너 알아?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신을 바꾸는 사람은 신이고, 다른 사람을 바꾸는 사람은 정신병자래”라고 말하고 나서 하하 웃었습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저를 깨우쳐 주시며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수련하라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모두 신이 배치한 정수(定數)에 따라 걸어가고 있으며, 수련인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이 생명의 본질을 구하는 것이지 인간 세상에서 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14/49534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7/14/495346.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