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명혜망 교류 글에서 중국 일부 지역 수련생들에게 다소 태만한 상황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법공부 팀 감소, 자료점 감소,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 감소 등입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사부님께서 꿈속에서 ‘나가서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가 너무 적다’고 깨우쳐 주셨다고 합니다. 이는 일부 지역 개별 수련생들의 상태일 수 있습니다. 왜 적어진 것일까요? 수련생들도 두려움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박해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험난한 여정을 이렇게 오랜 세월 걸어오면서 대부분 수련생들이 서로 다른 정도의 교란과 박해를 받았기에, 모두 다시는 문제가 생기길 원하지 않고 순탄하게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까지 가고 싶어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따라 박해에 맞서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특히 중국 대법제자들은 시련을 겪으며 중공의 잔혹한 박해에 직면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으로 혹독한 추위와 무더위에도, 비바람에도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양심을 깨웠습니다. 이미 대법의 복음을 수많은 가정과 각 계층, 각 영역에 전파해 많은 생명들이 진상을 분명히 알고 구원받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깊이 진상을 알려야 합니다.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 자신의 수련 경지도 아직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시간은 우리를 성취시키고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절대 태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앞서 언급한 그런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를 저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아래에서는 2000년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후 다시 노력해서 정진했던 한 차례 경험을 이야기하며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그때는 중공 박해가 시작된 2000년이었습니다. 우리 지역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나서서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갔는데, 상당 부분의 수련생들이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갔습니다. 납치돼 불법 구금됐을 때도 대다수 수련생들이 당당하게 구류소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10월에 제가 다시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갈 준비를 할 때는 장애가 생겼습니다. 걱정하는 마음이 생겼고 두려움이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자세히 분석해보니, 제가 두 번째로 구류소에서 나올 때 경찰이 “다시 오지 마라. 다시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직장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족들도 경찰인 동창에게서 당부를 받았습니다. “그를 잘 감시해요. 세 번 들어오면 강제노동입니다.” 당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는데 왜 지금 걱정이 되는 것일까요?
수련생들과 교류해보니 그들도 이런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분석해보니 강제노동이 두려운 것만이 아니라, 가장 주요한 것은 강제노동을 당한 일부 수련생들이 ‘전향(수련 포기)’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매우 큰 압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역시 전향될 것인지 연상하게 됐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베이징에 가지 않고 이 층차에 남아 자료만 배포하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교활한 인간의 생각이고 사람의 관념이며 좋지 않은 것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베이징에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지하게 분석해보니 돌파하지 못하면 이 층차조차 보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고, 돌파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퇴합니다. 어떻게 돌파할까요? 그렇다면 마음을 고요히 해서 법을 배우면 됩니다. 또한 이전 이 시기에 제가 법공부를 적게 했다는 것도 찾아냈습니다.
한 달 가까이 법공부하고 마음을 수련한 후, 저는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각종 관념, 주로 두려움을 제거했습니다. 몸의 압박이 점차 약해지고 머리가 훨씬 맑아졌으며, 정념도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그렇게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다른 지역 수련생 몇 명이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지역을 지나가며 우리 몇 명의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저는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천안문 광장에서 현수막을 걸었는데 경찰에게 잡히지 않자 이어서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어떤 이는 차에 잡혀 올라갔다가 차에서 뛰어내려 경찰이 대법제자를 구타하는 것을 저지하고 대법제자를 보호했는데, 어떻게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그런 자세를 보여주었고, 진정으로 법을 실증했습니다. 대법제자의 그런 높은 경지의 행위는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게 부족한 것이고 제가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법제자로서 법을 얻었으면 마땅히 법을 실증하고 법을 수호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일까요? 두려움, 강제노동에 대한 두려움,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전향될까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오점을 남길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들은 모두 자아에서 나온 것으로 부정적 사고이지 정념이 아니며, 사악이 설치한 관문입니다. 제가 베이징에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은 없었고, 다만 사부님 말씀을 듣고 법을 실증하러 가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것은 분명 늘 한 층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심성을 제고하고 이 관문을 돌파하려 합니다. 일부 수련생이 전향됐다고 해서 이런 부정적 교훈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왜 이런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책임을 생각해보지 않습니까? 생사를 도외시하고 앞에서 쓰러지면 뒤에서 계속 이어가며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가는 그 많은 대법제자들, 그 감동적이고 눈물나게 하는 위대한 행위는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도 울게 합니다!
20여 일간 층층이 분석하고 안으로 찾은 후 저는 그런 부정적 사고를 부정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며 정념으로 자신을 주도했습니다. 다만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러 가고 싶을 뿐입니다. 이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해내기만 하면 되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안배해주신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고, 우회하지도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집착을 벗어버리고 돌파하고 또 돌파해서, 마지막에 ‘확’ 하고 뚫렸습니다. 저는 껍질을 깨고 나온 것 같았고 내심 깊은 곳에서 층층이 돌파한 것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가려고 했고, 어떤 것도 저를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저는 온몸이 가벼워졌고 내심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현수막 두 개를 준비해 소매에 넣었습니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천안문에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온 우주의 생명을 향해 제 마음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당시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가는 것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즐거웠습니다. 현수막을 걸 때는 신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첫 번째 ‘파룬따파하오’ 현수막을 펼쳤는데 경찰에게 빼앗겼습니다. 경찰이 저를 몇 걸음 끌고 가다가 손을 놓았습니다. 저는 또 ‘쩐싼런하오’ 현수막을 펼치고 100m 달리기 속도로 현수막을 높이 들고 사람들 속에서 뛰었습니다. 제 신념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 세간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뛰면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뛰고 또 외쳤습니다! 현수막을 얼마나 오래 펼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서 검은 구두가 보일 때까지 말입니다. 이때 정신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경찰이 제 현수막을 빼앗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찰이 제 목을 걸고 경찰차 방향으로 끌고 갔는데, 언제 경찰이 팔을 놓고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 속에서 나와 뒤돌아보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과정은 또한 마음을 수련하고 제고하는 과정입니다. 이번 돌파는 제가 앞으로 법을 실증하는 데 좋은 수련 기초를 다져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큰 도약을 했고 그와 함께 구세력의 이런 박해에 대한 부정이 따라왔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것은 박해받아서는 안 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도 박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는 사부님의 안배가 아닙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기만 하면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으며, 구세력은 법을 실증하는 데서 어떤 역할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실천에서 저는 여러 번 사부님의 보호 아래 사악한 마수에서 빠져나왔는데, 이 또한 이 점을 실증해주었습니다. 우리 지역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관념을 돌파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갔습니다. 비록 일부 수련생이 잡히기도 했지만 대다수가 정념으로 빠져나왔습니다.
20여 년간 우리 대법제자들은 모두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는 뒤로 돌아가거나 사람 쪽으로 가서는 안 되고, 자신을 보호하려 하거나 문제가 생길까, 잡힐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순탄하게 마지막까지 가고 싶어서 이런 집착과 두려움을 숨기고 이런 두려움이 자신을 따라서 평안하게 마지막까지 가도록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대법제자는 이럴 수 없습니다. 이는 일시적으로 인간의 마음이 떠오른 것일 뿐입니다. 이를 수련해 없애고, 이런 인간의 마음과 관념이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길을 가로막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정진하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사부님을 따라 원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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