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수련의 길에서 느슨하지 않아야 한다

글/ 내몽고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내 몸은 질병이 매우 많았다. 위장병, 부인과 질환, 경추병 등이었고 특히 비염으로 늘 코가 아프고 콧물이 났다. 콧속은 궤양으로 부어서 숨 쉬기 힘들었다. 늘 저녁에 잠을 못 자고 낮에 출근하면 정신이 없고 각종 방법으로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다.

1997년 봄, 나는 친척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아주 빨리 나의 병 일부가 나았고 일부는 증상이 가벼워졌는데 파룬따파에 대해 비할 바 없이 감격했다.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든 단호하게 수련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느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9년, 나는 한 차례 큰 병업 고비가 왔고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고 심지어 화장실에 쓰러졌다. 머리는 마침 난방 철관에 부딪쳤는데 매우 심했다. 화장실에 10여 분 누워있었고 의식이 없었다. 천천히 나는 아주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고 먼저 잘 들리지 않다가 그 소리가 갈수록 커졌는데 의식을 찾고 깨어났다. 원래 딸이 옆에서 울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아주 신기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딸이 말했다. “저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방안에서 ‘탕’ 소리가 들려서 급히 달려왔어요. 엄마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머리가 난방 철관에 기대어 있었어요. 반나절 불렀는데 이제야 깨어나신 거예요!”

나는 넘어진 후 피를 토하고 혈변도 계속 지속됐으며 철관에 부딪힌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스러웠고 하늘땅이 빙빙 돌았다. 이번에는 사악한 구세력이 내 목숨을 노리고 온 것이다. 가족은 나보고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나는 가지 않았고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 나는 법공부, 연공을 통해 몸이 처음처럼 회복됐다. 만약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걸어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파룬따파 수련에 대한 신념을 더욱 단호히 했다. 비록 1999년 7·20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 박해를 시작한 후 대법을 모함하고 먹칠했지만, 나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박해 이전에 수련생들은 모두 연공장 혹은 법공부 장소에서 만나고 교류했고 서로 간에 연락 방식이 없었다. 심지어 이름도 모르고 집 주소도 몰랐다. 박해 후 모두들 단번에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었고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각자가 할 일을 했다. 나는 TV에서 사부님을 모함하고 대법을 먹칠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팠다. 만약 우리 대법제자들이 조금도 대응하지 않는다면 묵인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수련의 길은 느슨히 할 수 없다! 나는 대법을 위해 일을 하고 싶었고 비록 지식과 능력이 제한되고 힘이 닿지 못했지만 나도 힘 닿는 대로 일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 나는 원고지에 진상자료를 적고 한 번에 4, 5장 진상 내용을 적었다. 10, 20개를 적은 후 나는 나가서 집집마다 배포했고 가끔은 붓으로 붉은 종이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등 표어를 적어서 밖에 붙였다. 이런 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 지속했다.

천천히 예전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았고 그들은 나와 같이 사부님 신경문을 받지 못하고 진상자료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나처럼 조급하게 대법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했고, 진상자료를 공급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도와달라고 요청드렸고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을 찾아달라고 청을 올렸다. 바로 이렇게 사부님의 배치하에 나는 진상자료를 얻을 수 있는 수련생을 알게 됐고, 이 수련생은 나에게 일부 자료를 주었으며 나는 매우 기뻤다. 그러나 내가 매번 얻은 자료는 아주 적었고 여러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스스로 자료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이런 한 가지 소원이 있자 사부님께서는 내가 한 수련생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녀는 조건이 아주 좋았으며 자료를 만들려는 수련생을 후원해서 자료점을 설립해줄 의향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자료점 ‘작은 꽃’이 설립됐다. 나는 소형 복사기와 복사에 필요한 자료를 구매했고 이는 여러 수련생들이 자료를 배포하고 싶어도 자료가 없는 난제를 해결해줬다. 그러나 ‘명혜주간’은 매번 겨우 한 개였다. 모두들 돌려서 읽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마지막 수련생한테 돌아갔기에 아주 불편했다. 나는 또 스스로 온라인에 접속해서 다운받고 인쇄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없었고 우선 해결할 부분은 누군가에게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기술수련생을 찾는가? 나는 이 생각을 딸한테 알려줬고 딸은 안전을 고려하여 찬성하지 않았다. 그때 중공 악당은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들을 집중적으로 납치했고 나도 다소 어려워서 잠시 포기했다.

이렇게 내려놓으니 2, 3년이 금세 지나갔다. 어느 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람을 구하는데 진상자료가 급히 필요했고, 수련생들은 모두 내가 사이트에 접속해 기술을 배우는 것을 격려해줬다. 나도 생각을 정리했으며 어떻게 하든 마땅히 대법을 제1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개인 안위로 인해 대법의 일을 영향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하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젊은 기술수련생을 알게 해주셨고 그는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을 꺼려하지 않았고,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진짜로 컴퓨터를 설치해줬고 아울러 컴퓨터 기본사용기능을 가르쳐줬다. 어떻게 컴퓨터를 켜고 끄고, 사이트에 접속하고 다운받고 인쇄하며, 온라인에서 삼퇴 명단을 올리는 등 일부 기본 조작을 가르쳐줬다. 시간은 길지 않았고 나는 또 CD 굽는 것을 배웠는데 그때 진상CD 수요량은 매우 컸다. 바로 이렇게 나는 자료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때 진상자료의 수요량이 무척 컸고 또 농촌 일부 지역과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필요해 공급량이 많았다. 매일 할 일이 끊이지 않았지만 자료를 만들기 시작하면 특별히 활력이 있었고, 늘 저녁 11시, 12시에 발정념을 하고 잠을 잤다. 더욱이 CD 스티커를 인쇄하면 펼쳐서 말린 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저녁에 진행하면 갑자기 사람들이 노크하고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때 정말 피곤함을 몰랐고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자료를 만들어야 구원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다. 이렇게 해야 대법제자의 사명에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2020년 전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됐고 수련생들 사이에 자료를 유통하는 경로가 막혔으며 아파트단지를 드나드는 것이 난제였다. 수련생들은 자료를 받으러 올 수도 없고 나도 나갈 수 없었는데 진짜로 매우 조급했다. “수련의 길에서 느슨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내가 그때 수련 중에서 서약한 것이다. 자료를 만드는 것은 대법의 수요이고 수련생의 수요이고 또한 중생구도의 수요다. 전염병이 있다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수련생들이 주간을 보는 것을 지체하면 안 되며, 수련생들 사이의 교류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 장기간 지속되면 대법제자는 대법의 정체 형세를 이탈할 것이고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걸으라고 한 수련의 길이 아니었다.

나는 사부님께 지혜를 열어달라고 청을 올렸으며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각종 방법을 다해 수련생들과 연락했다. 아파트단지를 지키는 경비원들을 피해 주간을 수련생들에게 보내줬다. 예를 들어 모든 아파트단지 출입카드가 한 면의 색상이 비슷하고 크기도 거의 같다는 점을 이용했다. 매 아파트단지를 들어갈 때 카드의 유사한 면을 손의 바깥쪽으로 들고서 대범하게 들어갔다. 나의 당당한 모습에 그들은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고 상관하지 않았으며 나는 이 방법으로 여러 번 통과했다. 이후 전염병이 점점 심해졌고 아파트단지 관리도 더욱 엄격해졌다. 나는 사전에 수련생들과 시간, 장소를 약속했고 어느 담벼락 틈, 문틈으로 자료를 건넸으며 이 방법으로 그 특수한 시기를 지나왔다.

여러 해 동안 자료를 만드는 과정 중에 나도 많은 교란과 저지를 당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인터넷 접속 제한 때문에 시간 낭비가 심했다. 매주 주간, 음성자료는 모두 고정적인 발송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내가 다운받지 않으면 수련생들이 첫 시간대에 받지 못하게 된다. 이 몇 년 동안 중공 악당이 만든 온라인 봉쇄는 많은 번거로움을 줬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가끔 어렵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접속에 성공하고 자료도 거의 다 받고 있는데 갑자기 접속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너무나 괴로웠다. 또 컴퓨터를 켜고 접속해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사이트가 열리지 않을 때가 있었으며 하루 이틀 계속 사이트에 접속이 안 되기도 했다. 이 문제는 나에게 조급해하는 마음이 나오게 했고, 오로지 묵묵히 감당해야 했으며 이를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 중생을 위해 감당했던 각 방면의 압력과 고달픔을 떠올렸다. 나의 이 작은 곤란이 무엇인가! 이런 어려움을 사실 또한 나에 대한 시험이고 내가 이런 상황에서 또 이 책임을 감당하려고 하는지 시험하고 있었다. 수련의 길에서 느슨히 할 수 없다! 사악에게 틈을 타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곤란을 이토록 넘기 어려운 것으로 보는 것 자체가 바로 구세력과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번잡할수록 자신의 심성에 누락이 생긴 것이 아닌지 찾아야 한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찾아보니 많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이 관념이 있었고(사실 수련인은 나이 제한이 없다) 조급함, 안일함, 게으름, 번거로움을 두려워하고 고생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마음을 안으로 찾아내고 이 책임을 계속 감당하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또 수련생 한 분을 배치해주셨다. 이 수련생은 수련상태가 안정적이고 기술이 높고 심성이 높았으며 나의 온라인상의 어려운 문제점들을 해결해줬으며 나는 한 번 또 한 번 중공 악당의 온라인 봉쇄를 돌파했다. 지금 나는 인터넷 접속 문제에서 끝내 정상을 회복했다.

이 자료점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매번 문제점에 부딪힐 때 마음이 안정적이고 대법의 수요에 부합되고 자신의 목표가 명확하면 사부님께서는 모두 능력 있는 수련생을 배치해 날 도와주셨다. 이 일체는 모두 대법의 기적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해내게 하신 것이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세심한 보호와 가르침에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의 몸소 가르침에 감사드리고 기술 게시판 수련생들의 기술 개발에 감사드린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6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6/22/496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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