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운 좋게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1999년 4.25 평화 청원에 참여했습니다. 1999년 7.20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을 박해한 후,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했고, 여러 차례 경찰에게 가택 수색을 당하고 납치ㆍ구금됐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는 단식과 단수를 하며 박해에 항의했습니다. 그 기간에 아오잉(熬鷹: 장기간의 수면 박탈), 차륜전(車輪戰: 여러 명이 24시간 교대로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는 왜곡된 이론을 주입하는 것), 큰 나무에 묶기, 뺨 때리기 등 박해를 당했습니다. 매일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했는데, 의자에 묶인 채 죄수들이 저를 누르고, 감옥 의사가 긴 플라스틱 관을 제 콧구멍에 집어넣었습니다. 때로는 관을 뽑으면 긴 핏자국이 딸려 나오기도 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진상을 아는 형사범이 갑자기 저에게 “버티면 승리입니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면 마음속에 ‘나는 죽을 수 없어. 아직 젊은데 이렇게 대법에 먹칠을 할 수는 없고 해야 할 일도 많아’라는 강한 소망이 불쑥 일어났습니다. 죽을 고비마다 기적이 일어나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제 곁에서 격려해 주시고, 일깨워 주시며, 가지(加持)와 보호를 해주신 덕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생사고비를 넘을 수 있게 도와주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1. 두려움을 돌파하고 협조의 길에 나서다
2004년, 사부님께서 두 번이나 저에게 정체(整體)를 협조하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사실 저 역시 늘 이런 바람이 있었고, 우리 현의 수련생들을 하나로 뭉쳐 정체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사심이 작용해, 수련생들이 다시 저 때문에 연루될까봐 걱정했습니다. 특히 2003년에는 사악한 전화 감시로 인해 우리 현(縣)의 여러 수련생들이 불법적인 가택 수색, 납치, 고문, 노동수용소 수감 등을 당했고, 유일한 자료점이 파괴됐으며, 수련생들은 납치되고 수용소에 수감됐으며, 돈과 물품이 약탈당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610’(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특별히 설립한 불법 조직), 현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공안국 정보과, 각 향진 파출소와 정부 등 공안·검찰·법원 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법제자들을 함부로 괴롭히고, 임의로 납치·가택수색·전화감청·잠복 감시를 했으며, 늘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이런 홍색 공포 속에서 우리 현의 진상 자료가 매우 부족해 이웃 현에서 조금씩 구해올 수밖에 없었고, 매우 수동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저는 줄곧 중책을 맡을 결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 이웃 현의 수련생들이 정체를 잘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현이 너무 뒤처져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협조의 길에 나섰습니다.
2006년, 막 셋방을 얻어 정착하자마자 현 정법위에서 저를 다시 납치하려 했습니다. 이웃 현의 수련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 저에게 빨리 그곳으로 피신하라고 하며, 집과 일자리도 다 마련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먼저 수련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우리 현에 남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들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봄, 저는 몇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M현의 A 수련생 집에 갔습니다. 자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을 쓸고, 불을 때고, 밥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수련생이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대량으로 인쇄하고, 기계(흑백 레이저 프린터) 수리에 바쁜 것을 보고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삼켰고, 옆에서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제본 등 간단한 보조 일을 도왔습니다. 어느 날, 마을 동쪽 끝에 있는 수련생 집(그곳도 자료점이었음)에 여러 명의 경찰이 들이닥쳤고, A는 저에게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두려움이 생겨 ‘하필 이때 기술을 배우러 와서 또 박해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A는 제 마음을 알아채고 “이 박해는 저와 상관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수련생과의 격차를 느끼며 마음이 점차 안정됐고, 곧바로 발정념을 도왔습니다. A는 또 주변의 대법제자들에게 빠르게 알렸고, 수련생들이 힘을 합쳐 발정념을 하자 경찰에 포위됐던 수련생이 무사히 빠져나왔고,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해졌습니다.
2006년 하반기, 저는 또 여러 차례 다른 시간대에 A의 집을 찾았고, 그녀가 새로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들여와 자료를 아주 예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A에게 부탁해 우리 현에도 캐논 4200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한 대 사달라고 했고, 보물을 얻은 듯 기뻤습니다. 하지만 자료 제작을 배우는 과정에서 초보였던 저는 잉크 카트리지의 작은 마개를 떼지 않은 채 인쇄를 시도했고, 그로 인해 프린터가 고장 나 잉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많이 자책했습니다. A는 “괜찮아요. 제가 쓰던 컬러 프린터를 가져가세요. 그것도 잘 됩니다. 나중에 시내 수련생에게 이 새 기계를 수리해 달라고 할게요. 좀 번거롭겠지만요”라고 위로해줬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동의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내키지 않았습니다. A가 밥을 하는 동안 저는 컬러 프린터와 대화했습니다. ‘컬러 프린터야, 미안해. 내가 초보라서 모든 걸 잘 몰라서 너를 고장 내버렸구나. 용서해주길 바라고 빨리 나아줘. 우리 지역에는 중생을 구하는 자료가 매우 필요해. 내가 너를 가져가면 매일 너에게 대법을 읽어줄게. 우리 함께 잘 협력하자. 어때?’ 그리고 몇 장을 인쇄해 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흥분해서 A를 불러 빨리 와보라고 했습니다. “봐요, 기계가 고쳐졌어요.” 수련생도 감탄하며 “그것이 당신 현으로 가고 싶어 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매우 기뻐하며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가져왔습니다.
이어서 몇 차례 N현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수련생 B는 인터넷이 되는 노트북 컴퓨터를 사주고 시스템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B를 우리 현으로 초대해 다운로드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고, 수련생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고, 특히 아이가 대학에 합격해 부모가 급히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약속했던 두 번의 날짜가 모두 무산됐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멀리서 돌아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이 일은 보름 동안 지연됐습니다. 겨우 다시 날짜를 잡았는데, 새벽 5시, 막 길을 떠나려는데 제 전동 자전거 앞바퀴 타이어가 완전히 펑크 났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타이어를 수리할 곳도 찾을 수 없고, 길도 멀었습니다. 초조한 순간, 저는 자전거와 소통했습니다. ‘자전거야, 너도 법을 위해 온 고층 생명이야. 대법제자는 자료를 만들어 중생을 구해야 해. 이 중요한 순간에 고장 나지 말고, 힘을 내고 용기를 내자, 좋아! 우리 당장 출발하자. 탈수록 더 가볍고 빠르게, 탈수록 더 힘 있게 잘 협력하자.’ 동시에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바라보며 “갑시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B가 “괜찮겠어요?”라고 묻자, 저는 단호하게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로 대법의 신기함이 나타나, 자전거를 탈수록 점점 빨라졌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드렸습니다. 몇 시간 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자전거를 마당에 세워두고 앞바퀴를 만져보니 바람이 가득했습니다(이 자전거는 수년간 저와 함께 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B는 차분하고 참을성 있게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저는 갈망하던 기술을 배워 소원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끈기 있는 ‘작은 꽃’(자료 거점)이 피어났습니다.
사부님의 온갖 보호와 감당 속에서, 대법의 무량한 자비로운 인도 속에서 수련생들은 점차 걸어 나와 정체를 형성했고, 작은 꽃들이 곳곳에서 피어났습니다. 길가의 전봇대, 나무 사이에 큰 글자를 뿌리고 썼으며, 현수막과 전시판을 걸고, 시장, 들판, 마을 곳곳마다 수련생들이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수련생 구출 과정에서는 구치소·유치장·공안국·검찰원·법원·현정부 등에 대법제자들의 성스러운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선한 권유, 진심이 담긴 진상 편지들이 공안·검찰·법원 문으로 날아가 사악한 영체에 묶여 죽음의 선상에 있는 가련한 중생들을 구원했습니다. 2015년, 우리 현 수련생들은 위험을 뚫고 정체적으로 장쩌민을 고소했고, 두 개의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렀습니다.
2. 천서(天書)와 함께하다
14~15년 동안 저는 늘 집을 세내어 살며 8개 지역을 전전했습니다. 젊은 시절, 소림사와 무당산을 동경했지만, 부모님이 연로하신 것을 생각하며 포기했습니다. 줄곧 독신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고, 생선이나 고기는 거의 사지 않았으며, 한 번 밥을 하면 이틀을 먹었습니다. 명절이나 생일도 신경 쓰지 않고 시간을 아껴 대법을 배우고 ‘전법륜(轉法輪)’을 외웠습니다.
우리 현은 지역이 넓고, 수련생이 적으며, 시작이 늦었습니다.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가려면 더욱 힘내야 했고, 각종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시간과 정념,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수련생과 협력도 해야 하고, 생계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시간이 매우 소중했습니다.
저는 자동차가 없고, 먼 길은 전동 스쿠터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충전해야 하기에 백 리(50km) 밖은 자전거를 타고, 도시락을 싸서 다닙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법을 암기하며 지름길로 가면, 조용하고 여유롭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장점이 많습니다. 충전할 필요 없고, 기름 넣을 필요 없고, 번호판 검사를 받지 않으며, 주차가 편리하고, 어디를 가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올 때 늦어지면 핸들에 전조등을 달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법을 암기하고 법에 마음을 두니 매우 즐거웠습니다.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탈수록 더 가볍고 빠르게 느껴져 힘든 느낌이 없었고, 속인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수련생들은 편안함을 추구하고, 고생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을 뿐입니다.
한번은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을 돕기 위해, ‘운전하는 수련생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자전거로 왕복 80여 리를 달렸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항상 순풍이 불고, 신호등도 모두 초록불이라 막힘이 없었습니다. 둘째, 수련생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카드가 없어도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세상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로서,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3. 기술 수련생의 부담을 덜어주다
2022년 여름, 저는 기술 수련생 K의 집에 갔는데, 그가 맡은 항목이 많고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는 대법 서적을 만드는 레이저 프린터, 토너, 칼 등 소모품을 제 집으로 옮겼습니다.
K는 말수가 적었습니다. 우연히 프린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방에 프린터 다섯 대가 있는데 그중 컬러 프린터 세 대는 모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두 대는 다른 수련생이 가져다 놓은 고장 난 기계였고(K는 체면을 중시해 거절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부담을 느꼈습니다), 나머지 한 대는 수련생 W가 최근에 사온 새 기계였지만, 이유를 알 수 없이 인쇄가 안 됐습니다. 또 레이저 프린터 한 대는 멀쩡했지만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수리점을 소개하자 K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 거리에 가게가 많고, 감시카메라가 많다고 걱정했습니다. 대법제자도 사람이 수련하고 있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고 남의 장점을 많이 봐야 합니다. 오래전, 이 수련생은 4년 반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계속해 네트워크 시스템 기술을 연구하며 다시 자료점을 세워 한 영역을 지탱하고 있으니 이미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전거 뒷좌석에 나무판 두 개를 묶어, 멀쩡한 레이저 프린터를 현지 수련생 R에게 전달했습니다. 쓸 수 없는 세 대의 컬러 프린터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50리 길을 세 번 오가며 우리집으로 옮겼고, 그리고 한 대씩 60리 길을 달려 현 소재지의 여러 수리점으로 보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새 기계는 수련생 G가 시내 소모품 시장으로 가져가 수리했고, 정말 수리할 가치가 없는 한 대는 버렸습니다. 이는 대법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기계들이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역할을 다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특히 K의 안전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캐논 6780 컬러 프린터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세 번이나 수리점에 가져갔지만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두 기술 수련생과 여러 수리점에서 모두 폐기하라고 했지만 저는 늘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반복되는 오류 메시지를 통해 제 집착을 찾아보고, 프린터와 소통한 끝에 기적적으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2만 8천 장 넘게 인쇄하며, 명혜망에서 다운로드한 주간지, 달력, 책자, 전단 단면지, 진상 지폐, 호신부(護身符) 등 다양한 자료를 훌륭하게 인쇄했고, 색깔도 아주 예뻤습니다. 1년 넘게 저와 함께하다가 수명을 다했습니다.
처음 시내 수리점을 찾을 때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한 가게 사장이 동쪽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세요. 저 청년은 뭐든 다 해결해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그곳으로 갔고, 그때부터 그 가게 사장과 좋은 인연을 맺었습니다(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알려주신 착한 가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지혜롭게 가게 사장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권유했는데, 그는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탈퇴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당신이 오자마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렇게 많은 기계를 가지고 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시내 수리점을 여러 번 오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간식차의 천막에 “우리 모두를 성취시키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사부님의 격려에 감사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제자는 사부님과 우주 대법에 무한한 감사를 드릴 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 것은 전적으로 ‘전법륜’과 사부님의 무한한 보호 덕분입니다.
정법의 길에서 저 역시 여러 번 넘어지고, 수련생들과 심성 충돌과 간격도 많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제가 도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잔존한 공산당 당문화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려 하며, 공을 탐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며 지지 않으려는 마음, 우월감,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태도, 말이 거칠어 남을 불편하게 하며, 허영, 과시, 질투, 드러냄,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등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궁(大穹)의 깊은 곳에서 와서, 여러 시대를 윤회하며 다양한 역할을 맡았고, 이는 모두 구세력이 오만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함부로 배치한 것입니다. 수련생들 간의 온갖 혼란과 원한은 모두 우연이 아니며, 구세력이 오늘을 위해 역사의 복선을 깔아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서로를 내적으로 소모해야 할까요?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우리는 인간 세상에서 심성을 수련해야 합니다. 천체의 누락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데, 우리의 상태는 우리 자신의 체계에 상응합니다. 상태가 아름다우면, 우리가 상응하는 우주 체계가 성스럽고 빛나며 영원히 상서롭습니다. 누락이 있으면 우리 자신의 궁체는 어둡고 빛이 없으며 불완전합니다.
얼마나 큰 억울함을 겪더라도 담담히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랜 역사에서 빚진 업을 갚는 것이거나, 다른 공간에서 흰 덕이 날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잃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얻는 것은 무사무아(無私無我)입니다.
19년간의 협조 길에서 저 역시 모욕, 수치, 비웃음, 무례, 자극, 험담 등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는 모두 큰 복이며, 역사 속의 온갖 원한을 갚은 것입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의 이전 잘못을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쓰라린 실패의 교훈을 정리하고, 좋은 성공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련생 사이의 바른 길입니다. 휴대폰을 연동하지 않고, 남 탓이나 원망을 하지 않으며, 뒷담화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고, 소모품을 쌓아두지 않으며, 서로 돕고, 간극을 해소하고, 수련생의 장점을 많이 보고, 법학습 소그룹을 많이 만들고, 명혜망과 단선 연락망을 더 많이 구축하며, 기술 인재와 협조인 수련생을 더 많이 양성하고, 법을 많이 외우고 배우며, 발정념을 많이 하고, 연공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수련생들이 함께 사부님께서 주신 신성한 세 가지 일을 잘하여 큰 소원을 이행하고 중생을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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