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정신 이상 할머니가 20년 만에 기억을 되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후 나는 박해를 피해 떠돌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A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70대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우리는 하루씩 번갈아 가며 24시간 그 할머니를 돌봤는데, 매일 아침 혈압과 혈당을 재고 식사 전에 인슐린을 주사해 드렸다.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아들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원래 건설 하도급 업체 사장이었는데, 돈이 좀 생기자 바람을 피우면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어요. 그때 저랑 여동생은 아직 어렸는데 말이에요. 몇 년 뒤 아버지는 공사장 건물에서 떨어진 건자재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람피우는 걸 알고부터 매일 울다가 정신이 이상해지셨어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예뻐해 주던 제 여동생조차 알아보시지 못했죠. 또 자주 집 밖으로 뛰쳐나가서 저랑 아내가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어요. 정말 말릴 수 없었어요. 그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재작년부터는 그래도 저랑 제 아내를 알아보시긴 했는데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에요.”

처음에 이 할머니는 밤낮 없이 다른 사람을 욕했는데, 너무 시끄러워 이웃들도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 주무세요. 욕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겁이 나서 안방으로 도망가서 방문을 잠갔다. 하지만 할머니가 사고를 칠까 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바깥을 살폈고, 할머니가 욕하다가 지쳐서 잠들면 살금살금 다가가서 이불을 덮어드렸다.

할머니는 혈당이 높아 식사량을 줄여야 했는데 밥을 적게 주면 화를 내셨다. 한번은 식사 때 할머니가 밥그릇으로 내 머리를 치려고 했다. 나는 피해서 어깨를 맞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주먹으로 때리며 말했다. “여긴 우리집이야. 날 굶겨 죽일 거야? 당장 나가!” 나는 억울했지만 할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맡기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이랬다. 우선, 진상을 알려 할머니 가족을 구하라는 것이고, 다음은 나의 숙식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며, 마지막은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을 싫어하고, 누가 지적하면 바로 폭발하는 버릇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질투심과 쟁투심이 심해서 틀려도 내가 옳다고 우길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늘 나를 욕하고 때렸는데, 나에게 이 일을 통해 입을 닫고 안으로 찾으며 잘 수련하라는 뜻이었다.

“너는 내 엄마야”

나는 나와 함께 그 할머니를 돌보는 A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법에 대한 인식을 교류하며 말했다. “우리는 마음이 넓어야 하고 모든 중생을 자비롭게 대해야 해요. 그러니 그 할머니와 가족에게 더 잘해야 해요.” 그녀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할머니는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해 걸을 때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에게 닭고기, 계란 등 당이 적은 음식을 사서 대접했다. 내가 당번일 때는 기숙하는 수련생 집에서 할머니에게 갈비, 만두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갔다. 할머니의 아들은 우리 셋의 생활비로 매달 400위안(약 7만 원) 정도 줬고, 우리 둘의 월급은 총 1,500위안이었다.

나는 또 할머니를 친언니네 집으로 자주 모시고 가 색다른 음식도 해드리고, 가는 길에 행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진상을 알릴 때 할머니는 옆에서 웃으면서 조용히 들었고 방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름엔 더워서 얼굴에서 땀이 흘렀지만 항상 얌전히 서서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진상을 깨닫고 떠나면 나는 할머니에게 땀을 닦아드리며 물었다. “할머니, 제 얘기가 좋으세요?” 그러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내 얘기를 이해하는 걸 보니 정말 기뻤다. 언니네 가족도 할머니를 가족처럼 대했다.

나중에 할머니의 아들이 내가 할머니를 언니네 집에 모시고 간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했다. “어머니가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뒤져보고 가져갈 수도 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바람도 쐬고 하니 너무 좋아하세요. 그러면 됐죠.” 나는 할머니를 가족처럼 대하며 모든 걸 맞춰드렸고, 숨바꼭질도 하고 이야기도 자주 나눴다. 집안일을 할 때는 할머니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함께 외웠다. 할머니는 다리 힘도 키울 겸 거실에서 걸으면서 외웠다.

언니는 추석날 나와 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했는데, 할머니는 나 몰래 드시려고 잠자기 전에 월병 다섯 개를 이불 속에 숨겨뒀다. 할머니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오늘은 반개만 드시고, 나머지 네 개 반은 내일 아침에 드릴게요, 많이 드시면 또 인슐린을 맞으셔야 해요.”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처럼 우물쭈물하며 월병을 넘겨줬다.

내가 할머니를 잘 이해해 주고 바깥에 데리고 나가 바람도 쐬게 하자, 할머니는 기뻐하며 내 팔을 꼭 끼고 말했다. “너는 내 엄마야.”

20여 년 만에 기억을 되찾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거실에서 ‘전법륜’을 읽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의자를 가져다 옆에 앉고는 좀 크게 읽으라고 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다. “나도 그 책을 보고 싶어.” 내가 말했다. “다른 책은 어때요?”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 난 그 책이 보고 싶어. 손 좀 씻고 올게.”

내가 두 손으로 책을 할머니에게 건네자, 할머니는 두 손으로 받아서 펼쳐 봤다. 할머니는 사부님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1천 년 넘게 기다렸어!” 나는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할머니는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 읽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얼굴이 상기되고 두 눈이 반짝거렸다. 읽다가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나에게 물었고, 내가 알려주면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다시 써본 후 계속 읽었다. 나중에 할머니는 책을 덮고 말했다. “나에게도 ‘전법륜’ 한 권 주면 안 돼? 나도 배우고 싶어.” 그 후 할머니는 내가 ‘전법륜’을 읽을 때마다 손을 씻고 옆에서 함께 읽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는 데 집중했다.

할머니의 혈압은 점차 내려갔고, 혈당도 5.6 정도로 안정됐다. 4~5일간 혈당 수치가 변하지 않아 나는 인슐린 주사를 멈췄다. 주사를 멈춘 후에도 할머니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가 갈수록 건강해지자 무척 기뻐했다. 나는 A와 함께 할머니의 아들 부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비범함을 인정하고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할머니의 딸과 사위는 베이징의 한 과학연구기관에서 일했고, 둘 다 간부였다. 할머니의 딸은 오빠가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주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설날에 딸은 새 옷과 맛있는 음식을 사서 어머니를 보러왔다. 할머니의 딸과 사위가 집에 들어서자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분들이 누군지 알겠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말했다. “내 딸이야! 내 딸!” 그들 모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딸은 말했다. “엄마, 이제야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딸은 두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감싸안고 입을 맞췄다. 할머니는 딸에게 물었다. “손주는 왜 안 왔니?” 딸은 말했다. “할머니 댁에 갔어요.”

할머니의 딸은 나에게 말했다. “20년이 넘었는데, 엄마가 드디어 정신이 돌아오셨네요.” 딸은 오른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나는 말했다. “제가 수고한 게 아니에요. 대법 사부님께서 수고하신 거예요. 사부님 덕분에 어머니의 몸이 회복되셨어요.”

그러자 그녀는 ‘전법륜’을 펼쳐봤다. 내가 말했다. “할머니, 따님에게 법을 한 단락 읽어드리세요.” 할머니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읽었다. 딸은 말했다. “엄마, 언니랑 함께 대법을 열심히 배우세요.” 딸은 또 말했다. “전 베이징에 있으면서 계속 집에 못 왔어요.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셨거든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전 설날만 되면 울면서 엄마가 나아지기를 바랐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이젠 시간 나면 자주 올게요.”

나는 내가 왜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됐는지,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할머니의 딸과 사위에게 이야기해 줬다. 또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의 진상과 파룬따파가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전해진 사실도 알려줬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할머니의 딸과 사위는 어머니를 통해 대법의 기적을 직접 목격했다!

베이징에서 일하는 할머니의 손자와 손자며느리도 설에 돌아와 할머니의 변화를 보았고, 진상을 들은 후 역시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1년 후 손자며느리가 아들을 낳아 할머니는 증손자까지 봤다.

할머니의 사돈도 집이 가까워 할머니를 보러 왔다. 나는 사돈을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분이 누구예요?”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 며느리의 친정엄마야.” 사돈은 놀라면서 말했다. “그동안 계속 못 알아보더니 이게 웬일인가요. 이제 정신이 돌아왔네요.” 사돈은 나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다시는 때리시면 안 돼요. 정말 잘해주잖아요. 또 그러면 보러 오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는 내 팔을 붙잡고 아이처럼 말했다. “가면 안 돼. 네가 가면 난 끝장이야. 다시는 안 때릴게, 욕도 안 할게.” 사돈은 웃었다. 할머니의 사돈은 내가 알린 진상을 듣고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나는 며느리의 오빠가 수도관을 고쳐주러 오자 그에게도 진상을 알려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다. 나는 또 방충망 설치해주러 온 사람, 대문 키를 교체해주러 온 사람에게도 진상을 알려 모두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시켰다.

‘610사무실’ 직원이 진상을 알고 삼퇴하다

할머니는 해마다 연말이면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으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할머니의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에게 혹시 다른 병은 없는지 알고 싶어요.” 병실에는 침대가 네 개 있었는데 우리가 두 개를 썼고 나머지 두 개는 인근 소도시에서 온 공무원 2명이 사용했다. 나와 A는 할머니를 돌보는 외 병실 청소도 자주 했다.

할머니는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 앉아 계속 혼잣말을 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 이제 얼른 주무세요. 다른 분들도 검진을 받으러 오셨는데 시끄러우면 다들 잠을 잘 수 없어요. 우리 대법을 배운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돼야 하잖아요. 뭘 하든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얼른 주무세요.”

새벽에는 간호사가 채혈하러 왔고 아침에는 할머니를 데리고 소변 검사 결과를 찾으러 갔다. 그렇게 며칠을 힘들게 검사해서 최종 결과가 나왔는데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의사는 할머니의 아들에게 물었다. “어머니께서 무슨 약 드셨길래 이렇게 건강하세요?” 할머니의 아들은 말했다. “약은 딱히 드신 게 없고, 저 두 분이 잘 돌봐드렸어요.”

병원에 며칠 있는 동안, 옆 침대에 있던 두 사람이 A에게 물었다. “이 할머니랑 무슨 사이예요?” 그 수련생이 “돈 받고 어르신을 돌봐드리는 사람이에요”라고 하자, 2번 침대 사람이 말했다. “나는 딸이랑 며느리인 줄 알았어요. 두 분이 어르신을 정말 잘 돌보네요. 깔끔하게 잘 챙기고.” 그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는 파룬궁 수련자예요. 무슨 일이든 남을 먼저 생각하죠. 삼퇴(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하고 평안을 보장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보셨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잡는 사람(610사무실 요원)이에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다음 날 A가 이 일을 이야기하자 나는 말했다. “오늘 집에 가서 우리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발정념도 더 많이 해요. 제가 기회 봐서 그 사람에게 다시 진상을 알릴게요.”

어느 날 할머니와 함께 밖에 나갔다가 병실로 돌아오니 2번 침대의 사람이 말했다. “방금 할머니 아들이 다녀갔어요. 아들 분하고 두 분 얘기를 했어요. 할머니를 너무 잘 돌봐드려서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봤어요. 어르신의 일상생활을 꼼꼼하게 챙겨드리고. 화내지 않게 조심하고, 기분이 우울해하면 웃게 해드리는 게, 정말 자기 부모님 모시듯이 정성껏 챙겨드린다고 했어요. 식사도 끼마다 뭘 드시고 싶으신지 물어보고 바로 사 온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들이 맞다면서 본인은 신경 쓸 게 전혀 없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옆 침대 두 사람이 링거를 맞을 때도 화장실까지 부축해 주고, 점심에 밥을 사다 주거나 뜨거운 물을 떠다 줬다. 병실 청소도 원래 병원 직원이 해야 했지만 나와 A가 했다. 어느 날 2번 침대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신네 파룬궁 수련생들은 정말 착하네요. 내 친구 중에 회계사가 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다가 잡혀갔어요. 내가 보증서만 쓰면 풀어준다고 해도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8~9년 형을 선고받았어요. 왜 가정까지 버리면서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 그 친구가 가정을 버린 게 아니고, 공산당이 그녀의 가정을 파괴한 거예요. 친구분이 도대체 무슨 법을 어겼나요? 파룬궁 수련했는데 왜 감옥에 갇혀야 하나요? 신앙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어요. 해외 100여 개 나라에 파룬궁 수련생이 있지만 분신자살 같은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수련생들은 그냥 건강하게 살고 가정과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할 뿐이에요.”

나는 이어서 말했다. “1998년 초에 제가 길에서 주운 돈 240여 위안을 파출소 소장에게 직접 가져다준 적이 있는데, 소장은 처음에 정신 나간 사람인 줄 알았대요. 항상 칼부림해서 돈을 뺏는 사람들만 봤지 이런 일은 10년간 한 번도 못 봤대요. 그래서 제가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사실을 알려줬어요. 그러자 소장은 장모님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면서 참 좋은 공법이니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공산당이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을 박해했지만, 그 소장은 우리 지역 수련생을 한 명도 잡아가지 않았어요. 우리가 모두 좋은 사람인 걸 알고 있으니까요.”

“언니, 우리 파룬궁 수련생을 한두 명 접촉해 본 게 아니죠? 이 세상에 술 마시고 도박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파룬궁 수련생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이 사회가 착한 사람을 못 받아주는 거예요. 저도 공안국에 잡혀간 적이 있어요. 보세요. 손목에 아직도 수갑 자국이 있어요. 전 단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4시간 매달려 있었어요. 그 경찰은 포상금 받으려고 미친 듯이 저를 때렸어요. 삽으로 제 배를 찍고 얼굴이랑 몸이랑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때려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때 입안에 피가 가득 차고, 앞니 두 대가 흔들릴 정도로 때려서 기절했는데, 경찰은 그제야 절 내려주고 보증서를 쓰면 풀어주겠다고 했어요. 전 당연히 쓰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구치소에 데려가려고 강제로 건강검진을 받게 했어요. 의사가 제 몸 상태가 심각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도 경찰은 억지로 저를 구치소로 끌고 갔어요.”

“구치소에 있는 7개월간 저는 자주 혈변을 보고 심장이 좋지 않았어요. 경찰이 저를 병원에 데려가 심장병약을 받아왔죠. 저는 구치소에서 세 번이나 쓰러져 응급조치로 수혈까지 받았어요. 구치소 경찰은 제가 안에서 죽을까 봐 겁이 나서 제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보증서를 베껴 쓰게 했어요. 제 아들은 그러면 정말 풀어주고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경찰은 저를 보석 처리하고 법원 통지를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들은 진실한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진 걸 봤다. 나는 계속 말했다. “언니, 우리 사회에 좋은 사람이 많으면 좋지 않아요? 보증서, 전향서를 쓰라는 건 우리를 나쁜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저는 대법 사부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전법륜’을 읽고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라고 하면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언니 친구가 보증서를 안 쓴 건 언니를 위해서예요. 언니가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해서 좋은 미래가 있게 한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이에요.”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언니, 예전에 선서하고 가입했던 공산당 조직에서 다 탈퇴하세요.” 그녀가 망설이자 나는 다시 말했다. “‘공산당 선언’ 첫 구절에 공산당은 ‘서방에서 온 유령’이라고 했잖아요. 유령이 몸에 붙으면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돌아가서 대법제자들을 잘 대해주고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면 평안할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알았어요, 탈퇴할게요.” 나는 그녀에게 가명을 지어주고 공산당 조직 탈퇴를 도와줬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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