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철저하게 관념을 바꿔 매사에 안으로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 신필(神筆)을 주시다

저는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학교 다닐 때 작문 실력도 형편없었습니다. 비록 지식 수준이 낮고 글쓰기 능력에 한계가 있지만, 법 속에서 깨달은 것은 이것 역시 관념이며 어려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교류 글을 쓰고자 하는 소망을 보시고 가지(加持)해 주셔서, 글을 쓸 때 사고가 명확해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말해준 수련 이야기를 휴대폰에 녹음한 뒤 집에 돌아와서 다시 들으며 글로 정리하고 수정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수정할 때는 문장이 장황하지 않고 독자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며, 문장이 매끄럽고 간결하며 정확하고 과장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한 편 한 편 훌륭하고 감동적인 수련 이야기들이 완성되어 명혜망에 전해졌고, 그 중 일부 글은 ‘수련교류’와 ‘각 회 대법법회’에서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 하에 제 글쓰기 수준이 대폭 향상되어, 이제는 더 이상 녹음하고 발췌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수련생이 구술하는 것을 듣고 요점을 필기로 기록하거나, 수련생들의 글을 정리하는 일도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게다가 글쓰기 속도도 점점 빨라져서, 빠를 때는 두 시간 만에 나이 드신 수련생이 구술하는 교류 글 한 편을 정리할 수 있게 됐고, 수련생들이 보고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신 것이며, 모든 것이 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뜨거운 감자

10여 년 전, 우리 지역의 각 대법 항목들은 모두 많은 자금을 필요로 했기에, 담당 수련생들 손에는 모두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사람 구원 자금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다른 원인들로 인해 항목에 필요한 돈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수련생들 손에 남은 돈은 되돌려줄 곳이 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우리 지역에는 자금 방면에서 잘못을 저질러 병업으로 세상을 떠난 수련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모두 대법 자금에서 잘못을 범할까 봐 두려워하며 손에 공금을 보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서로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몇 건의 자금이 차례로 모두 제게 집중되었습니다. 수련인은 돈을 저축하지 않고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다고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비교적 엄격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저 역시 항상 대법 자금에서 잘못을 범해 개인 수련에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다른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대법 항목 자금을 보관하려 하지 않았고, 제 눈에는 공금이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보였으며, 그것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들 모두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저는 여전히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맡게 됐습니다.

법에 대조하여 안으로 찾아보니, 대법 자원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 없으며, 제가 돈을 보관하기 싫어한 것은 주로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잘못을 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곤경에 처하고 원망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수련에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등등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사심이었습니다. 대법 자원은 얻기 어려운 것인데, 비록 어느 항목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사용할지 모르고 둘 곳도 없지만, 사부님께서 그 돈을 제게 안배하신 이상 제가 수련해야 할 마음이 있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제 마음과 생각이 명확해진 후,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 하에서 저는 대법 자원을 잘 보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금이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됐습니다. 사부님의 신묘한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완전히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전환

구세력에 관해서는, 구세력의 표현이 사사로움을 위한 강제적인 것이고, 신의 심태는 이타적이고 관용적인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인이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에 도달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인이 자녀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여 그들의 생활을 안배하고 좌우하거나, 혹은 수련생들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다투며 수련생들이 자신의 인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모두 구세력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신우주에 진입하지 못한 것입니다. 각 수련자는 서로 다른 층차에서 법에 대해 각자의 이해를 갖고 있는데, 법 위에 있기만 하면 모두 옳은 것이며, 수련인은 오직 자신을 수련할 몫만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관리 통제하려 하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심이 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신은 평생 어떤 법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여 수행인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관념을 바꿔 일이 있으면 완전히 자신을 찾았으며, 비록 겉보기에는 상대방이 틀린 것 같아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니, 점차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최대한 자신에게 요구하여 누구에게든 똑같이 대하며 구별심이 없고, 자신의 이해를 내려놓고 타인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므로 자신을 수련할 수 있고 또한 원망이 없어져서 내심이 청정하고 평화로워졌는데, 이것이 아마도 자비의 감각일 것입니다. 수구(修口)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게 됐고, 오늘 가부좌할 때도 고요해질 수 있었으며 저는 수련의 현묘함을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보호와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6/20/4959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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