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河北)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때부터 신과 부처의 세계를 동경해 왔는데,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에서 아름다운 보살을 보았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보살은 한 손에는 옥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보살이 그 나뭇가지를 허공에 대고 한번 휙 흔들자 온 방 안에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습니다… 그때 저는 ‘아, 신과 부처가 정말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불교 거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불교 신자들은 심성을 수련하지 않아서 저는 거기서는 수련 성취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몸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법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야만 저도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는 알고 지내던 한 불교 거사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집에서 대법 사부님의 법상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따뜻한 느낌이 들어 ‘나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은 1995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한 직장 동료와 함께 대법 수련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래 저의 일부 수련 체득을 써내 수련생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처음에 저는 수천 년, 수만 년 기다려도 만나기 어려운 수불(修佛) 대법을 얻게 되어 마음이 너무나 벅차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소중한 대법을 고향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연휴여서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공원에 대법 깃발을 걸고 대법 음악을 틀어놓고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인연 있는 사람이 모여들어 공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가구를 마당으로 옮겨서 집을 보도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사람들에게 사부님의 설법 영상과 연공 영상을 틀어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오직 사람들에게 연공 동작을 잘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연공할 때 모기가 달려들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대법을 얻게 하기 위해 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연공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서로 협력해 함께 제고되다
박해 초기, 우리 지역에는 자료점이 없어 다른 지역에서 자료를 구해 와야 했습니다. 더 많은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지역에도 자료점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의 편의를 위해 기술자 수련생을 우리 집으로 불렀습니다. 처음에 7~8명의 수련생이 인쇄기술을 배웠는데, 모두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련생들이어서 저는 그들의 숙식을 모두 돌봐줬습니다.
그 당시 환경은 매우 위험하고 열악했지만 저와 가족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대법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영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매일 그들을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바쁜 것을 보고 저는 시간을 짜내 빨래도 도와주고 인쇄기 소모품도 사다 날랐습니다. 그때 혼자서 프린트용지 열 묶음을 들고 왔는데, 대법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전혀 두렵지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도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제가 이쪽에 정신을 팔면 그들이 기술을 배우는데 전념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법 일이 곧 나의 일이다. 나는 아무 일을 해도 상관없다.’ 그때는 매일 많은 일을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아주 적어 오직 대법을 위해, 중생을 위해, 수련생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늘 수련생들을 안심시키며 말했습니다. “우리집은 곧 여러분의 집입니다. 모두 편하게 지내세요.” 그 때부터 우리집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련생들의 집이 되었고, 그들은 대법제자로서 아주 빨리 성숙해졌습니다. 대법을 지지하는 제 딸과 남편도 나중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일을 했지만 옆에서 계속 보다보니 CD를 굽고 전단지를 출력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출력한 전단지를 들고 나가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니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악한 세력이 대법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줄곧 수련생들과 함께 대형마트에서부터 구멍가게까지 모두 찾아다니며 사부님을 도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숱한 위기를 모두 무사히 넘겼습니다.
경찰 “이런 일로 사람을 감금하면 이 나라는 끝장입니다”
그동안 경찰은 계속 우리집에 찾아와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수련생들을 파출소로 끌고 가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고, 보증서도 쓰지 않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경찰은 저를 또 파출소로 납치해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하게 했습니다. 제가 거부하자 그들은 저를 15일간 불법 구류한 후, 마약중독자 수용소로 보내 2개월 간 불법 감금했습니다. 저는 그 기간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수련하는 파룬따파는 수불수도(修佛修道)하는 것입니다. 수불하는 사람을 박해하면 죄가 정말 큽니다. 경찰관님은 자신과 자손을 위해 악행을 멈춰야 합니다!” 저는 또 그들에게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 등 진상을 알려주면서, 불법(佛法)의 지혜는 무한하니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누구를 보든 모두 진상을 알려, 경찰을 포함한 30여 명을 삼퇴(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시켰습니다. 그들은 진상을 알게 된 후 모두 합장하며 거듭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한 수련생이 진상자료가 담긴 가방을 저에게 전달해 줬는데 그가 떠나가자마자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얼른 소파 뒤에 숨겼습니다. 문을 여니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주민센터 관계자였고, 다른 한 명은 파출소 경찰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좀 얘기할 게 있습니다. 잠깐 가시죠.” 그들은 저를 파출소로 끌고 가 미리 작성해 놓은 문서에 서명하게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그들은 납치해 온 수련생들의 얼굴을 촬영해 사진 기록을 남겼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찍으세요! 저는 범죄자가 아니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며 ‘포륜(抱輪)’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파출소 대장이 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때 한 경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로 사람을 감금하면 이 나라는 끝장입니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신분증은 바로 갖다드릴게요”
2014년 음력 7월 20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골로 향했습니다. 그날 기차역에는 경찰과 특수경찰이 유난히 많았고, 기차에 오르기 전에 신분증까지 검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부부의 신분증을 확인한 후 기차에 탈 수 없다며 한쪽에 억류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면 왜 기차를 못 탑니까? 어디 그런 규정이 있습니까?” 그들은 상급의 명령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경찰은 나쁜 사람은 단속하지 않고 착한 사람만 단속합니다. 우리는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가는 것뿐인데 기차를 못 타게 하네요. 우리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됐습니까? 여러분이 좀 말해 보세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동정하자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중 두 사람이 삼퇴했습니다.
잠시 후, 주민센터 여직원 두 명이 와서 우리를 감시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불법입니다. 두 분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하지 마세요.” 그 후 남자 경찰 두 명이 또 오자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왜 이런 짓을 합니까? 신분증까지 가져가면 어떡합니까?” 그들은 상급의 명령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는 줄행랑을 쳤습니다.
한참 후, 주민센터 당서기가 차를 몰고 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시골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계속해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사실 다 알고 있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상급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서기는 우리를 시어머니 묘지까지 태워주고 제사를 마친 후 다시 집까지 데려다줬습니다.
다음 날, 저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신분증을 돌려달라고 하고, 좀 있다 가지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신분증을 바로 갖다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정말 신분증을 집에 가져다줬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마음, 예를 들면 과시심, 체면, 원망심 같은 집착심들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좋지 않은 마음들은 사실 진정한 자신이 아닙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저는 착실하게 수련하고 법공부를 잘하여, 각종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또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하는 각자(覺者)가 되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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