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5년 4월 25일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4월 25일은 ‘4.25 청원’ 26주년이자, 제가 법을 얻은 지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4주년 째였던 1999년 4월 25일, 세계를 놀라게 한 ‘4.25’ 청원에 참여하여 이 사건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저는 처음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 ‘진선인(真善忍)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구절을 보고 감탄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정말 좋다! 나는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겠다.’ 그러면서 ‘진’과 ‘선’은 실천할 수 있지만, 성격이 급해 ‘인’은 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격을 누르면서 ‘인’을 잘 수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전법륜’을 보다가, ‘천목에 관한 문제’, ‘요시공능’, ‘숙명통 공능’을 읽은 후, 저는 또 감탄하여 두 손으로 보서(寶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이 책은 정말 대단해요, 그동안 답을 얻지 못했던 문제들이 다 해결됐어요!” 그러자 동료들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또 이러시네요.” 저는 법을 얻은 후, 늘 대법이 얼마나 좋은지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연공장은 꽤 커서 많을 때는 500명 넘게 함께 연공했습니다. 1999년 4월 24일 저녁, 연공 음악이 막 울리기 시작했는데, 보도원이 톈진(天津) 수련생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 수련생들도 저녁에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가서 톈진 수련생 석방을 요구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좀 두려워서 망설였습니다. 갔다가 체포되면 직장에서 어떻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저는 스스로 ‘나는 사부님의 진수(眞修) 제자인가?’라고 물었는데,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수련 초기부터 저는 여러 차례 사부님께서 보여주신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신기한 일도 많이 일어났으며, 심신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수련생들이 체포된 지금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이 어떤 공법인지 알리지 않는다면 대법 수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연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결심을 내렸습니다!
저는 제1장 공법을 마치고 바로 출발했는데, 마음이 불안해 집을 나서자마자 계속 보도원을 찾았습니다. 저는 보도원과 함께 가지 못할까 봐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공원에서 몇몇 수련생과 함께 있는 보도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기차표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33살이었는데, 어린아이처럼 뛰어가서 보도원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언니, 절 기다리고 있었군요. 아직 떠나지 않았네요! 같이 갈 수 있게 됐어요, 같이 갈 수 있게 됐어요…”
그날 저녁 9시경, 저는 보도원과 함께 기차를 탔고, 기차에서 다른 수련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몇 개 차량의 승객은 거의 다 수련생들이었는데 통로까지 꽉 찼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우리가 탄 열차는 우리가 대여한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차고지 출발인데 수련생이 천 명 넘게 타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다음 날인 4월 25일 새벽 5시경에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국무원 신방국(信訪局, 청원실)은 푸유(府右) 거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길을 잘 몰라서 어떤 구간은 걷고, 어떤 구간은 버스를 타면서 겨우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 법공부 팀의 한 언니는 제가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알고 제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저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면서 말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게 아닌데 계속 눈물이 나요.” 푸유 거리에 들어서자 신방국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모두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 같았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저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 더 걸어가니 왼쪽 인도에 수련생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는 흥분되고 고무되어, 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방국 대문 주변과 붉은 담벼락 아래에는 수련생들이 많아서 우리는 맞은편 인도로 갔습니다. 거기에도 물론 수련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찾아 3, 4열로 섰습니다. 우리 오른쪽에 서 있던 10여 명 수련생 중 한 아주머니가 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느 성, 어느 시에서 왔다고 대답했는데, 올 때보다 눈물이 더 심하게 흘러 한 단어를 몇 번씩 반복하며 겨우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그 아주머니는 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좀 진정이 되자 다시 말했습니다. “저희는 어제 밤새 기차를 타고 와서, 새벽 5시에 내렸어요.” 아주머니는 감동하면서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멀리서 오셨네요, 정말 대단해요, 우리는 떠나면 안 되겠어요.” 어디서 왔는지 묻자, 그들은 베이징 외곽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일찍부터 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전 내내 움직이지 않고 맨 앞줄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점심이 거의 될 때 맞은편 신방국 대문 앞에 가서 무슨 소식이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때 푸유 거리 양쪽 인도를 가득 메운 수련생들은 계속 그대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대문 앞에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전 8, 9시경, 신방국 담당자의 요구로 수련생 대표가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잠시 후에는 법률을 아는 수련생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일행 20여 명 중에는 법률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계속 조용히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9~10시부터 경찰이 2~3명씩 다니면서 수련생들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여경 2명이 있었는데,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에게 적대감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또 검정색 승용차들이 두세 번 우리를 촬영하며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이중 한 번은 큰 카메라로 공개 촬영했고, 한 번은 차창을 열고 소형 카메라로 몰래 찍었습니다.
또 한참 지난 후, 갑자기 제 오른편에 있던 수련생이 저에게 힘주어 빠르게 말했습니다. “오후 1시에 대법제자들에게 행동을 취한다고 합니다. 아래로 전해주세요.” 저는 즉시 같은 어조로 옆 수련생에게 전했습니다. “오후 1시에 대법제자들에게 행동을 취한다고 합니다! 아래로 전해주세요!” 이 말은 명령처럼 들렸는데, 그렇게 해서 첫 사람부터 계속 아래로 전해졌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찔했습니다! 만약 수련생들에게 행동을 취한다면, 분명 앞줄부터 체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체포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파룬궁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도덕성이 높아집니다. 저는 원래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심할 때는 움직이지도 못했고, 치질과 피부병도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모두 나았습니다. 직장에서 식당을 관리할 때 전 한 푼도 횡령하지 않았습니다. 제 반찬은 집에서 갖고 오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어도 다 제 돈으로 샀습니다. 가스배달 업자는 제게 영수증 숫자를 어떻게 써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다 거절했습니다. 상여금을 적게 받거나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해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고 저만 받지 못했지만 불만이 없었죠. 작업반장이 깜박했다고 하니, 다음에는 잊지 말라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이익을 다투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급해서 뭐든 참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져서 진선인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인데, TV에 나가서 공격하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찰들도 단지 사실을 설명하러 간 수련생들을 왜 체포합니까? 정부가 진정으로 파룬궁이 뭔지 알아보고, 톈진 수련생들을 석방하길 바랍니다. 그들도 파룬궁이 좋은 공법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온 것도 모두 파룬궁이 정법(正法)이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누가 수련하든 혜택을 본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나중에 앞줄 수련생들은 교대로 뒤로 가서 잠깐 쉬었습니다. 전날 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잠을 잘 자지 못한 데다, 오전 내내 서 있었으므로, 나이가 좀 많은 수련생들은 무척 피곤했습니다. 저는 제일 젊었기 때문에 계속 서서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 종일 서 있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면담하러 들어간 수련생들을 기다렸습니다. 저녁 8, 9시경, 한 수련생이 모두 돌아가라고 전했습니다. 정부가 우리의 세 가지 요구(톈진 수련생 석방, 합법적 연공환경 보장, ‘전법륜’ 출판 허용)를 모두 들어주기로 했다고 하면서요. 이에 수련생들은 안도하면서 자진 해산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파룬궁은 지난 30여 년간, 국가, 사회, 민족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었을 뿐 단 한 가지 해로움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외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전해졌고, ‘전법륜’은 50여 종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민족, 다양한 국가의 대중에게 환영받고 있으며, 정치인들도 높은 평가와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4.25 청원’ 26주년을 맞아 이 회고록을 쓰다 보니 잠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것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올랐고, 그때처럼 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난 26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온갖 비바람과 시련을 겪었지만, 사부님께서 거대한 것을 감당해 주신 덕분에 오늘날까지 반본귀진(返本歸眞)과 중생구도(衆生救度)의 길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함께 정진하여 서약에 따라 중생을 구하고,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야 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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