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2월에 저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 저는 교차로에서 녹색 신호에 직진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갑자기 한 차량이 좌회전했고 저는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결국 충돌했습니다. 당시 충격음이 매우 컸고 두 차량 모두 파손됐으나,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충격으로 제 차의 에어백이 모두 터질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사고는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상대방의 책임이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니 실은 제가 오랫동안 쌓아온 문제들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분명히 사부님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제고시키고,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지금 수련 체험을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하니, 여러분께서 저를 반면교사로 삼아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1. 당문화(黨文化)를 근절하는 문제에 관하여
이번 교통사고를 수련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구세력이 배치한 목숨을 앗아가는 큰 고비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로 목숨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에서 반드시 반성해야 하며, 이런 일이 헛되이 발생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법제자의 목숨 빚이 꼭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갚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업을 갚는 방식은 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 사이의 갈등 속에서 심성을 제고하면서 동시에 업력을 제거하는 것이지, 실제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성해보니 저는 운전할 때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많았습니다. 이는 뼛속에 뿌리 박힌 당문화(공산당 문화) 관념이 초래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제가 대법제자이고 제 시간이 가장 귀중하며 제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자주 속인사회의 규정을 무시하고 교통규칙을 준수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황색 신호를 무시했고, 안전거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급하게 좌회전했으며, 보행자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보행자보다 먼저 지나가려 했습니다. 정지 표지판에서 충분히 정차하지 않고, 빨간 신호등에 멈췄을 때는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으며, 교차로에서 주변 상황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가 교차로를 지나면서 맞은편 차량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면, 아마도 이번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운전했을 때, 저는 미국인들이 매우 양보를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운전자들이 자주 길을 양보할 뿐 아니라, 보행자들도 정지 표지판에서 손짓으로 저를 먼저 가게 했는데, 이는 중국 상황과 완전히 달라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품위를 배우기는커녕(사실 이건 단순한 품위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사고방식과 습관입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이런 양보를 누렸습니다. 나중에 길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저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불평하며 “요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라고 말했지만, 상황이 변한 것이 제 탓인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저는 운전 문제에 있어 한 번도 안으로 찾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도로에서는 심성 문제가 존재하지 않고, 반성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도로에서 전혀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차를 급하게 몰 때는 항상 안전거리를 확보하려 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면 분명히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게 됩니다. 특히 보행자들에게요. 수련인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항상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데,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왜 도로에서도 선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2. 큰 뜻을 품으면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 대법제자의 길을 바르게 걷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사부님께서는 이미 교통규칙 준수에 관한 문제를 일깨워 주셨고, 가족(수련생)도 길에서 자주 “빨리 가지 마! 빨리 가지 마!”라고 일러주었지만, 저는 항상 “시간이 부족해”라고 변명하며 계속 제 방식대로 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속인사회의 규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제가 하는 일은 모두 올바른 일이므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약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 저는 연속으로 두 번이나 황색 신호등을 통과하려다 실패해 적색 신호를 위반했습니다. 첫 번째는 벌금을 내고 온라인으로 운전학교 수업을 들었지만, 수업 중에도 진지하게 듣지 않고 꾀를 부려 만점으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당연히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했고, 몇 개월 후 다시 한번 황색 신호등을 통과하려다 실패해 신호를 위반했습니다. 경찰서에 벌금을 내러 갔을 때, 두 번째 딱지는 시스템에서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경찰은 포기하고 발부되지 않은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나중에야 12개월 내에 4점이 감점되면 면허가 6개월간 정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제야 사부님께서 두 번째 딱지를 없애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면허가 정지되어 운전할 수 없게 됐을 것이고, 정말로 제 생활과 일,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자가 의지가 약해 이런 잘못을 저질렀는데, 사부님께서 바쁘신 중에도 저를 위해 신경 써서 벌금 딱지를 취소해 주셔야 했으니까요! 더 부끄러운 것은, 그 후에 저는 황색 신호등만 더 주의하게 됐을 뿐, 근본적으로 제 운전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항상 제 시간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이었고, 도로에서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정진요지-성자(聖者)]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한 번도 자신을 수련하지 않아 결국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 많은 일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속인사회의 규칙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속인사회도 한 층의 법이 체현되는 곳이니까요!
이번 사건 후 저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사부님께 약속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를 용서해주십시오. 이번에 제자는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어디서든 대법제자의 칭호에 먹칠하지 않겠습니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운전할 때 규칙에 주의하기 시작한 이후,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저에게 양보하기 시작했음을 발견했습니다. 정말로 ‘상유심생(相由心生)’(각지 설법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입니다!
3.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여러 집착심 중에서, 저는 항상 질투심, 원망심, 색욕심 같은 수련인의 큰 금기를 수련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제게 이익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목이나 진상을 알리는 일에 투입할 때 비용이나 대가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속인사회에서는 영리하고 계산적이어서, 예를 들어 쇼핑할 때 서로 다른 신용카드로 다른 종류의 물건을 사서 최대 포인트를 얻거나, 상점의 할인쿠폰을 사용하거나, 부모님을 위해 노인 복지를 받기도 했지만, 이전에는 이것이 이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속인사회의 자원을 제 손에 가져오면 그것이 대법 자원이 된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안에는 이익심이 숨겨져 있었고, 더불어 속인사회에 대한 일종의 대립적인 심리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찰은 상대방의 보험 정보가 경찰 보고서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이틀 후에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상대방에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죽을 고비를 넘긴’ 느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경찰 보고서가 소식이 없자 저는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보험 정보를 얻지 못하면 사고 차량을 처리할 수 없는데, 차가 경찰서 주차장에 있으면 매일 높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또한 만약 상대방이 보험이 없다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인을 고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또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사부님의 ‘전법륜’ 중 한 단락의 법이 갑자기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한(羅漢) 그 층차에 도달하면 어떤 일과 마주쳐도 다 마음에 두지 않고, 속인 중의 모든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한의 초급과위에 도달한 것이다.”(전법륜)
그런 다음 이 단락의 법이 제 뇌속에서 자동으로 여러 번 암송됐고, 저는 즉시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저에게 요구하는 것이며, 저는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반드시 이 표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불편한 감정은 전혀 제가 아니며, 그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과 집착, 이익심입니다. 그것은 손해 보는 것이 두려워 불편해하는 것이지, 그것은 제가 아니므로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것을 인식하고 원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불편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가 수련하려고 할 때, 그 집착심은 대법 속에서 이렇게 빨리 제거됐습니다!
4. 성급한 마음이라는 나쁜 습관을 고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저는 또한 성급한 마음 문제를 수련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항상 성급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지식인의 표면적 수양으로 가려져 있어 대부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쇼핑 계산대에서 줄 설 때 저는 계속해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줄을 찾아 왔다 갔다 했는데, 종종 제가 어떤 줄로 바꾸자마자 그 줄이 가장 느려지곤 했습니다. 도로에서도 자주 차량 속도가 가장 빠른 차선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 보고서를 오랫동안 받지 못해 성급해지기 시작했고, 전화로 문의할 때 때론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습니다. 20일째 되는 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어떤 이유도 설명해주지 못했고 보고서는 여전히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정말 약간 초조해져서 우리 학부모 중 한 분의 남편이 은퇴한 고위 경찰관인데,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 경찰서에 물어봐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사부님의 ‘전법륜’ 중 또 다른 구절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가 이렇게 약은 것은 바로 개인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다. “누가 널 괴롭히면 너는 그의 선생님을 찾고 그의 부모를 찾아라.”, “돈을 보거든 주워라.” 바로 이렇게 그를 가르친다.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이 어린이는 받아들이는 것이 많아 그는 속인사회 중에서 서서히 이기적 심리가 갈수록 커져서, 그는 부당한 이익을 점유할 것이며, 그는 德(더)를 잃어갈 것이다.” 저는 결국 이해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이렇게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마침 발정념 시간이 됐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고 게다가 정법시기 대법제자인데, 어떻게 이런 인간 세상의 사소한 일로 초조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이 조급하고 평화롭지 못한 상태가 어떻게 내 진정한 상태일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히 가짜 나이며,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 업력으로 구성된 후천적으로 형성된 가짜 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저는 앞의 5분 동안 이 가짜 자아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불편한 감정이 사라졌음을 느꼈으며, 이어지는 10분 동안 정상적으로 사악을 제거했습니다.
발정념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바로 경찰서에서였습니다. 경찰 보고서가 나왔으니 곧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경찰 보고서가 지연된 것은 제 수련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보고서가 20일 후에 나오지 않았다면, 저는 틀림없이 이런 뿌리 깊은 사람마음의 관념과 집착을 파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마음을 도려내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수련 과정이었습니다.
경찰 보고서는 명확하게 상대방 운전자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명시했고, 저는 이를 상대방의 보험 회사에 전달했습니다. 회사 직원이 연락해 즉시 보상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했으며, 그들은 그 운전자가 사실을 완전히 진술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줄이려 했던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지만, 경찰 보고서를 기준으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제 수련에 대한 또 다른 주의이자 환기로, 제가 ‘진(眞)’을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문제를 설명할 때 제 이해나 의도에 따라 진술하는 경우가 있는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 사실을 피하는 상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을 잘 반성해 보게 했습니다.
사실 지난 여러 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인간 세상의 어떤 일에도 사람 마음으로 걱정하거나, 추구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어야 합니다. 단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고 마음을 수련에 쓰며, 일을 만났을 때 법으로 대조하고 가늠하며,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고, 그런 다음 발정념으로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를 부정하면, 최종 결과는 사부님께서 반드시 가장 좋은 배치를 해주실 것입니다.
법난(法難)의 중요한 시기에, 제자가 진정한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수록 사악을 더 잘 제거하고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더 잘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하는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와 보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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