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0여 년 전, 제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저는 ‘작은 꽃’(제조 제작소) 하나를 피웠습니다. 주로 진상을 알리는 지폐를 인쇄하는 일이었죠. A 수련생이 프린터 사용법을 가르쳐 준 후, 저는 혼자서도 인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수련생이 필요한 양만큼 제가 인쇄했고, 오후에 가게 문을 좀 일찍 닫고 인쇄를 마친 후 수련생에게 전달해줬습니다.
2015년에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이후, 우리 지역의 몇몇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저도 두려운 마음이 생겨 2017년에 가게를 넘기고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진상 지폐를 수련생들에게 전달한 후, 그들이 나눠 사용하고 나서야 돈을 저에게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한번은 담당 수련생이 “5위안권 진상 지폐 한 묶음에서 26장이 부족하네요”라고 말했고, 저는 그걸 그냥 보충해 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그 수련생의 집에 갔을 때, 그녀가 저에게 돈을 줬는데 1,000위안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금액이 맞지 않아요”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원래 이게 다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남편(수련생)에게 “그녀가 1,000위안을 적게 줬어요”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그건 당신이 이익심이 있기 때문이야. 아니라면 그 일을 다시 꺼내지도 않았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잔돈을 바꾸는 것도 수월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한 곳을 찾아냈는데, 거기서는 1위안 지폐를 많이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제가 출력한 진상 지폐를 다른 수련생들이 다 사용하지 못할 때면, 남편이 채소가게나 마트 같은 곳에 가서 직접 전달하곤 했습니다. 그런 상인들은 의외로 그런 돈을 받는 데 꽤 호의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폐를 아주 꼼꼼히 세어봤지만, 나중에는 1위안 지폐는 아예 검사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마트에 잔돈을 줄 때, 만약 전부가 진상 지폐라면 혹시나 거부당할까봐, 저희 부부는 상태가 좀 안 좋은 일반 지폐와 진상 지폐를 일정 비율로 섞어서 줬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작업량도 매우 많았습니다. 마트에서도 다 소화하지 못하면, 남편은 그 잔돈을 출장지로 가져가서, 길거리 상인들과 바꿨습니다. 설날 즈음에는 특히 많은 양을 바꿀 수 있었고, 비록 힘들고 고단했지만 마음은 매우 보람차고 충만했습니다.
진상 지폐는 잘 배포됐고, 작업량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크고 작은 자루에 잔돈을 가득 들고 올 때마다 저는 막막해졌습니다. 잔돈 분류 작업은 우선 종류별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더러워진 지폐, 상태가 양호한 진상 지폐, 찢어지거나 손상된 지폐 등으로 구분하고, 손상된 것들은 반드시 수선해야 했죠. 잔돈 교환 횟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저는 5위안, 10위안, 20위안짜리 중 찢어진 것들을 모두 테이프로 정성껏 붙여 최대한 사용 가능한 상태로 복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량이 늘어나 허리가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벽에 등을 기대며 끝까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가장 다루기 까다로웠던 것은 두부 공장에서 교환해온 잔돈과 은행에서 받은 훼손 지폐들이었는데, 이 지폐들은 모두 특별한 처리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정성껏 수고를 들인 끝에, 결국 거의 모든 지폐를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21년, 저의 아버지가 중병으로 투병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버지 곁에 오랜 시간 함께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정성껏 읽어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그날 오전, 저는 현지 수련생들을 위해 진상 지폐를 출력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급히 전화해 빨리 오라고 했지만, 인쇄 작업에 집중하느라 핸드폰을 창가에 두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남편에게도 연락했지만, 남편은 직장에서 바빠 집에 올 수 없었고 전화 연결도 안 됐습니다. 결국 점심 무렵 퇴근한 아이가 와서 저를 데려갔을 때는, 이미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요. 그래도 아버지께서 진상을 알고 계셨고, 삼퇴(三退)도 하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 믿으며 제 마음도 위로를 얻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출장을 앞두고 6~7만 위안어치의 잔돈을 교환하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와 아이는 시내에 계신 어머니 댁에서 이틀 정도 머물려고 갔습니다. 큰언니 집이 어머니 댁과 가까워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우리 지역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외조카가 술을 조금 마신 상태에서 저에게 귀띔했습니다. “이모, 차 안이나 차고에 물건 넣어두지 마세요.” 식사를 마치고 보니 밤이 깊었고, 갑자기 제 마음속에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요즘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집 차량 안에 잔돈 자루를 두었는데, 다음날 남편이 그 돈을 교환하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화로는 상황 설명이 여의치 않아, 저는 아이에게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밤 11시에 가까웠고, 아이도 술을 마신 상태였지만, 우리는 합승 택시를 타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잔돈 교환 계획을 잠시 미루기로 했으며, 차에 있던 잔돈은 현지 수련생 집에 안전하게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남편이 우리를 다시 시내로 데려다줬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외조카가 공안국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저는 그가 미리 알려줄 것이라는 ‘의존심’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의 집착이 그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번은, 잔돈 보관 장소를 단층집으로 옮기게 됐는데, 그 집에는 울타리가 없어 보안이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한 수련생과 상의하여 잠시 그녀 집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흔쾌히 도움을 줬고, 이후에 저는 그 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의 따뜻한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내 진상 지폐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들었고, 자연히 제 작업량도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제 내면의 많은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두려운 마음, 말하기 꺼리는 마음, 일에 집착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투쟁하려는 마음, 자만심,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공로를 탐하는 마음,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마치 저와 남편만의 공로인 양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까지 말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저희 부부는 그저 손과 입을 조금 움직였을 뿐입니다. 이러한 집착들을 모두 제거하고 완전히 해체하여 소멸시키겠습니다.
예전에는 가정 경제를 전부 제가 관리했었습니다. 남편이 월급을 받으면 모두 저에게 맡겼지요. 그런데 가게를 넘긴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편의상 가정 생활비와 진상 활동 자금 모두를 남편이 관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돈을 관리하지 않으니 마치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생각, 사람의 정(情)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이 사부님께서 제 안의 사람의 마음—자아, 독단, 우월감, 이익에 대한 집착, 질투심 등을 제거해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런 마음들은 진정한 제 본성이 아니므로, 저의 공간에서 철저히 제거하겠습니다.
설날 전후로 겪은 시련으로 제 마음 상태가 불안정했습니다. 어느 날 진상 지폐를 인쇄하는데, 프린터가 8~9장을 출력하고 멈추어 복구 버튼을 눌러야 했고, 10~15장을 더 인쇄한 후에도 또다시 멈춰 다시 복구 버튼을 눌러야 했습니다. 이 상황을 보자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원래도 일이 많지 않은데, 이러다간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릴까?’ 그때 안으로 찾아보니, 임무 완수에 대한 집착, 조급함,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쇄 작업을 계속하면서 조급한 마음, 두려운 마음, 안일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으려 노력했습니다. 3~4번 더 인쇄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프린터를 교체해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 프린터는 여러 해 동안 함께했고, 나름의 영성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깊이 안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8~9장 인쇄하고 멈추는 것은 프린터가 일하기를 꺼린다는 신호였고, 이는 제 마음가짐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매번 진상 지폐를 인쇄할 때, 저는 능동적으로 작업에 임하지 않고 항상 남편의 지시를 기다려 수동적으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린터와 진심으로 소통했습니다. 프린터의 신호에 감사하며, 앞으로는 남편과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프린터야, 네가 우리집에 온 이유는 우리가 함께 협력하여 양질의 진상 지폐를 인쇄하고,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여 법이 인간 세상을 바로잡는 그날까지 함께하기 위함이란다.” 이렇게 대화한 후 다시 인쇄를 시작하니 상황이 훨씬 개선됐고 다음번에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많은 사람마음이 남아 있어 대법의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남편과 수련생으로서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도울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마음을 수련할 기회에 감사드리며, 이 만고에 단 한 번뿐인 기회와 인연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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