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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진언’인가 ‘9자 진언’인가?

글/ 일언(一言)

[명혜망] 어떤 현상은 우리가 습관처럼 여기고 있지만, 습관처럼 여긴다고 해서 반드시 법에 부합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수련생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일부 방법과 표현, 그리고 ‘9자 진언’과 같은 용어다.

나는 수년 동안 대법제자뿐만 아니라 많은 속인도 ‘9자 진언’이라는 표현에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9자 진언’이란 용어가 사용하기에 매우 편리하고, 사부님도 공개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으셨지만, 사부님의 설법에서는 오직 ‘3자 진언'[“세 글자 진언은 이치가 분명하고 언어가 명백하나니(三字真言 理白言明)”(홍음2-대법행)]만을 언급하셨다는 점이다. 이렇게 계속된다면 세인들은 ‘9자 진언’만 알게 되고 ‘3자 진언’은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수련 중인 수련생들이 한 말은 법이 아니며 법의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항상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용어에는 열중하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3자 진언’ 같은 것은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보다 ‘더 낫다’고 느낀다면, 이런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를 잘못 배치한 것은 아닌지, 속인의 관념과 좋지 않은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의 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첫 번째 생각이 자아를 보호하고 고집하기보다 용감하게 자신의 내심을 직시해야만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자아’는 많은 경우 ‘진정한 자아’가 아닐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가 ‘3자 진언’을 소개하면 속인들은 ‘진선인(真·善·忍)’이라는 세 글자와 법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가 문턱을 낮추어 말하려 할 때는 직접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이 아홉 글자를 기억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속인들이 직접 기억하는 것은 아홉 글자뿐이지, 우리 스스로 만든 그런 용어가 아니다.

선의로 제안하는 바이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참고하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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