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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을 따라 ‘대학’에 가다

글/ 중국 대법제자 옥가(玉歌)

[명혜망] 저는 올해 76세입니다. 고서 ‘대학(大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이는 대학의 도는 진리를 추구하고 인격을 건전하게 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학에 진학해서 도덕적 문화 수양을 높일 수 있기를 원했고, 여러 번 꿈속에서 대학 시험장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늘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계속 아쉬워했습니다.

1996년, 저는 다행히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 보서(寶書)를 읽게 됐습니다. 마음이 매우 격동됐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고등학부(대학교, 대학원과 같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 불법(佛法) 수련이구나.’ 그때부터 ‘전법륜’ 보서를 내려놓지 않고 매일 꾸준히 ‘전법륜’ 2강을 배웠으며 틈틈이 베끼고 외웠습니다. 1999년 이전에 ‘전법륜’을 9번 베꼈고, 근래 다시 3번 베꼈으며, 2010년에는 ‘전법륜’을 외웠습니다. 제가 앉아서 법을 베끼고 외울 때마다 내면이 곧바로 고요해졌고, 파룬따파가 저에게 지혜와 안목을 열어주었습니다. 파룬따파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와 우주, 생명의 기원 등등은 저에게 매우 신기하고 현묘하게 느껴졌고, 사부님께서 절 데리고 대학에 다니는 것 같아 대학에 가고 싶었던 제 소망이 이뤄졌다고 느꼈습니다.

1. 파룬따파를 배우니 전화위복이 되다

1996년, 50대의 남편이 중병으로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 역시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을 돌봐야 했습니다. 체중이 작은 제가 매일 힘들게 체중 75kg인 남편을 침대 위아래로 업고, 휠체어에 태워 마당으로 밀고 가 햇볕을 쬐게 해야 했습니다. 이웃집 오빠가 저와 남편의 처지를 매우 안타까워하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 파룬궁을 연마해 보는 게 어때? 파룬궁은 정말 좋아서 내 온몸의 병이 다 나았어.” 안타깝게도 남편은 연공하려면 가부좌를 해야 한다는 말에 아프기 싫어서 수련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웃에게 대법 수련서 ‘전법륜’을 한 권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부터 보서를 내려놓지 못하고 흔들림 없이 사부님을 따라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걸었습니다.

수련 초기에는 더 높은 법리를 깨닫지 못했지만, 법을 많이 배워야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매일 꾸준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따파 수련으로 온몸의 질병이 낫고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때 사부님의 법신(法身)이 보호해 주셔서 전화위복이 되는 걸 몸소 체험했습니다.

어느 해, 우리집 작은 뜰에 가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몇 년 후 나뭇가지 끝이 2층을 넘어 2층 거주자의 햇빛을 가렸습니다. 그해 저는 50대였고 무화과나무의 높은 가지에 올라가 가지를 자르려 했습니다. 한 손에는 큰 가위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줄기를 잡았는데, 제가 잡은 것은 마른 나뭇가지였습니다. ‘딱’ 소리와 함께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저는 균형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졌습니다. 몸이 먼저 1층 시멘트벽에 부딪힌 후 다시 반동으로 뒤로 넘어졌고, ‘퍽’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세게 떨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놀랐지만 이내 ‘나는 연공인이니 사부님의 법신이 보호해주실 거야. 괜찮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딸이 소리를 듣고 방에서 뛰쳐나와 제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는 겁에 질려 울면서 크게 외쳤습니다. “엄마! 괜찮으세요?” 딸이 절 부축해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몸에 묻은 흙을 털면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얘야, 뭘 울어? 엄마는 파룬궁을 연마하니까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 괜찮아!” 정말 괜찮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평범한 사람이 50대의 나이에 2층 높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허리 피부만 약간 검푸르게 멍들었을 뿐, 일하는 데 지장이 없었고 매일 여느 때처럼 마비된 남편을 업고 침대 위아래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부님께서 제 생명을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업장까지 없애주셨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수련 전에는 심한 요통을 앓아서 병이 도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동서양 의학으로도 낫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떨어진 후로는 과거의 빚을 갚았을 뿐만 아니라 요통까지 나았으니, 정말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저와 가족은 파룬따파의 기적과 신기함을 증명했습니다. 그 후 제 딸과 외조카 며느리도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2. 대법이 박해당하자 베이징으로 가서 법을 수호하다

수련한 후 매일 꾸준히 법공부하고 법을 필사하며 점차 정법 수련의 일부 법리를 깨달았고, 대법이 제 생명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저는 법을 위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1999년 ‘7.20’ 이후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 단단한 기초를 닦아주었습니다.

1999년 ‘7.20’, 사악한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박해하면서 거짓말로 세상 사람을 속이고 언론을 통제해 가짜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가 정법임을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떠나기 전 딸에게 쪽지를 남겼습니다. “딸아, 엄마는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간다.” 저는 ‘전법륜’을 갖고 세 개의 현수막을 메고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계속 ‘정부에 대법 사부님의 결백을 되찾아 달라고 요구해야 해!’, ‘대법을 위해 공정한 한마디를 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도착했더니 사방이 삼엄하게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도처에 경찰과 사복 경찰이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천안문광장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는 현수막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순식간에 몇 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저를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 현지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일주일 후 현지 경찰이 저를 데리고 왔습니다. 경찰이 저를 현지 파출소로 데려가 돈을 요구했지만, 제가 돈이 없다고 하자 당일 밤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3. 생사의 고비에서 사부님의 보호를 받다

10년 전, 제가 전동 스쿠터를 타고 수련생에게 진상자료를 전하러 가던 길에, 한 큰 다리에 이르렀는데 차들이 줄지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제가 막 차를 세웠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정면으로 달려왔습니다. 저는 피할 겨를도 없었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됐습니다. 나중에 두 명의 젊은 가해자가 제게 말하길, 당시 제가 정면으로 오던 승용차에 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부딪혀 온 얼굴에 피가 흘렀고, 땅에는 피 웅덩이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후 저는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젊은이들이 120 구급전화를 걸었고 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먼저 붕대로 제 머리의 상처를 감싸고는 들것을 가져와 저를 옮기려 했습니다.

저는 약 10분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둘러싸 있었고, 옆에는 경찰차 한 대와 구급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휴지로 제 얼굴의 핏자국을 닦고 있었는데, 휴지에는 선홍색 피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첫 번째로 ‘나는 대법제자이니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손을 들어 머리의 붕대를 움켜쥐자 젊은이가 얼른 저를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건드리지 마세요. 머리가 깨져서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해요.” 저는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몇 명의 구조대원이 저를 들것에 옮기려 했습니다. 저는 얼른 손을 저으며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가 단호하게 구조가 필요 없다고 하자 움직임이 자유롭고 근육이나 뼈에 상처가 없는 걸 보고는 구급차에 타고 떠났습니다.

그 후 한 교통경찰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당신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까?” 저는 “아니요, 그냥 가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이 가고 구경꾼들도 흩어졌습니다. 저는 두 가해 청년에게 제 자전거를 밀고 앞으로 걸어가 달라고 했습니다. 걸으면서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으며,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과 진상 소책자도 줬습니다. 두 젊은이는 제가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고 그들을 갈취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는 모습에 감동해 계속 두 손을 모으며 “아주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 법에서 저는, 이렇게 큰 난을 만난 건 제가 빚진 업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행히도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몇 번이고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이에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사부님을 따라 중생을 구하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자신이 대법 중의 한 입자이며, 제 사명은 중생을 구하는 것이고, 반드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걸 더욱 명백히 알게 됐습니다.

10여 년 전, 남편이 막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쌍둥이를 얻어 제게 손자 손녀를 돌봐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들은 대도시 부대에서 일했는데, 그는 부대의 고위 간부로 중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도시에 와서 사부님의 배치로 현지 수련생들과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명을 잊지 않고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어떻게 하면 빨리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낮에는 진상 알리기용 지폐를 갖고 거리로 나가 쇼핑을 했는데, 매 지폐에 손으로 직접 진상 표어를 썼습니다. 때로는 손자 손녀를 데리고 놀러 나가면서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손자 몸에서 잉크 냄새가 난다며(새로 인쇄한 진상 자료에서 잉크 냄새가 났음) 불쾌해하면서 잉크 냄새가 아이 몸에 해롭다며 더는 진상 자료를 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언짢아하지 마라.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온몸의 병이 나을 수 있었겠니? 손주들을 돌볼 수 있었겠니?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해. 지금 대법이 박해당하는데 내가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있겠니?”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도 마음속으로는 제가 대법 수련으로 좋아졌다는 걸 알고 있었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결코 시어머니 행세를 하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나 며느리를 위해 생각했으며, 밥을 먹을 때도 좋은 건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주고 저는 남은 걸 먹었습니다. 며느리는 매우 사리에 밝아서 그 후로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밤에는 자주 밖에 나가 진상 자료를 전했는데, 때로는 매우 먼 길을 걸었고 운동화 밑창이 반쯤 닳을 정도였습니다. 기억나는 건 한동안 인근 주택가에서 세 번이나 대법을 모욕하는 화보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정념을 내보내며, 세 번 모두 밤을 틈타 드라이버를 들고 선전함을 열어 화보를 찢어 처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지났고 한여름 어느 날 저는 교차로에서 ‘전 세계가 장쩌민을 공개심판한다’는 스티커를 붙이던 중 옆에 판매원들 속에 사복경찰이 섞여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복경찰은 저를 신고했고 경찰은 저를 납치해 유치장에 25일간 가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며 법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언행을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여러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그중 20여 명이 삼퇴했습니다. 경찰은 제가 유치장에서 나오기 전에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을 배운 후 몸과 마음이 좋아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신들이 쓰라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제 온갖 병이 다 나았고, 20여 년간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으며 병도 전부 없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단호하게 “연공을 못 하게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차를 몰고 와 저를 데리고 바로 식당으로 가서 밥을 사 주며 크게 위로하고 격려해줬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부대에서 이미 어머니 일을 알고 있어요. 부대의 610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 사람이 저를 찾아와 ‘현지 파출소에 연락하지 말고 어머니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라고 했어요. 부대는 특수한 정부 기관이라 이런 일에 대해 요구가 매우 엄격해요.” 아들은 한 번 ‘전법륜’을 봤고, ‘홍음’도 외웠습니다. 그는 계속 조용히 제 수련을 지지해주었습니다. 아들 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저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전심으로 수련생들과 협력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또 몇 년이 지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를 배워 중생을 구하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끌어주셨습니다. 10년이 하루 같이, 매일 저는 새벽 3시에 일어나 5장 공법을 연마합니다. 그리고 반나절은 법공부, 법 필사, 법 암기를 하고, 반나절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며, 밤에도 여전히 법공부, 법 필사, 법 암기를 합니다. 평소 일을 만나면 모두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자신에게 유감을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생에 사부님을 따라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느낍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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