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생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자신을 제고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7년,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오늘날까지 평온하게 걸어왔습니다. 아래에서는 지난 1년여 동안 오빠(수련생)와 함께 병업관을 돌파한 수련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중에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오빠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대법을 얻었습니다. 그는 화물차로 사람들의 짐을 나르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일이 바빴기에 돈 버는 데 치중하고 수련은 소홀히 했습니다. 그 스스로 “법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오빠와 올케언니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들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2018년 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는 기본적으로 그들과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 6월 30일 저녁 5시쯤, 올케언니가 제 남편(수련하지 않음)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친정에 갔는데, 오빠가 혼자 집에 온종일 누워 있다며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이 오빠 집에 갔을 때 조카의 친구도 차를 몰고 왔습니다. 저는 오빠의 그 모습을 보고 그 스스로 수련의 신심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병원에 가고자 했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CT를 찍자 뇌출혈과 뇌경색이라고 하면서 현지 병원에선 받지 않으니 성(省) 소재지 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했습니다. 조카가 남쪽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전화로 울면서 제 남편에게 아버지를 모시고 성 소재지 병원에 가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바쁘게 돈을 마련하고 병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때 오빠가 정신을 차리고 “뇌출혈이라고? 네가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가 결정할 순 없어, 오빠 스스로 결정해야 해”라고 하자 오빠는 수술은 하고 싶지 않고 보존적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책을 보고 대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이 점에서 그가 그리 확고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 친척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성 소재지 병원에 가서 치료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들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오빠와 함께 성 소재지 병원에 갔습니다. 올케언니와 두 아이도 모두 달려왔습니다. 오빠는 며칠간 링거를 맞았고, 병원에선 5만 위안(한화 약 9백만 원)을 내고 수술하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오빠에게 수술을 원치 않는 이 생각이 있어서였는지, 조카가 휴대폰으로 병원에 돈을 보내려 할 때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올케언니는 두 아이와 상의해 오빠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관리하고 계신 것으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계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시련 속에서 완전히 사부님과 법을 믿었다면, 이 며칠 동안 병원에 누워 링거를 맞는 게 아니라 집에서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했을 텐데, 그랬다면 얼마나 빨리 회복됐겠습니까!

집에 돌아온 후, 오빠는 수련에서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대량으로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장시간 발정념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간장을 깨끗이 했습니다. 저는 ‘명혜주간’에 관련된 녹음을 다운로드해 오빠에게 들려줬습니다. 저는 자주 와서 교류하고 격려했으며, 오빠의 정념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오빠는 밖에 나가 산책할 때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줬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의사는 오빠에게 매일 혈압을 재고 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수련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병에 대한 관념을 돌파해야 합니다. 저는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오빠는 병이 없어, 이건 사부님께서 오빠의 업을 없애주고 계신 거야. 사부님께선 소업(消業)하는 것과 약 먹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어. 사부님께서 오빠의 병업을 몸에서 밀어내려 하시는데, 만약 오빠가 약을 먹는다면 병업을 다시 눌러 넣는 거야.” 그러나 오빠는 이 문제에 대해 바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은 두려움을 서서히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오빠는 며칠 약을 먹었는데, 법공부를 마친 후 약 먹는 게 잘못됐다고 느껴 먹지 않았습니다. 며칠 쉬었는데, 걸을 때 흔들거려 마음에 확신이 없어 다시 약을 먹었습니다. 며칠 먹고 나서 약을 먹지 않을 때의 상태만 못하다고 느껴 다시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날씨가 더워지자 또 혈압이 높아질까 봐 다시 약을 먹었고, 매일 혈압도 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빠가 매일 혈압을 재면 마음이 그것에 이끌리잖아. 모두 사부님께 맡기면 얼마나 좋아. 혈압을 잴 필요 없이 마음을 오로지 수련에만 집중하면 사부님께서 관리해주실 텐데, 얼마나 좋아!” 오빠는 서서히 내려놓고 약도 먹지 않고 혈압도 재지 않았지만 상태는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가 그런 병을 앓았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오빠는 세 차례 더 관을 넘었습니다. 한번은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방역 통제가 막 풀렸을 때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확진됐습니다. 어느 날 올케언니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가 정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이 갔는데, 오빠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제가 말을 걸자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올케언니는 병원에 가면 코로나에 전염될까 봐 오빠를 병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오빠의 상황이 심각해지거나 어떻게 될지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오빠의 코에서 피가 많이 났고, 다음 날 아침까지 약간의 피가 더 났는데, 그러고는 괜찮아졌고 완전히 정신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계속 오빠를 보호하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 응고된 피가 코로 흘러나오지 않고 뇌에 고였다면 끝장났을 겁니다. 오빠의 이 증상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재발했을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괜찮아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빨리 좋아졌습니다! 대법은 정말 너무나 신기합니다!

또 두 번째는 화장실에 갔을 때 오빠가 기절했는데, 어디에도 부딪혀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난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모두 안으로 찾아보고 어떤 사람의 마음이 초래한 건지 찾아야 합니다. 오빠는 자신의 이익심, 색욕심, 환희심, 두려움 등을 찾아내 서서히 이런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했습니다. 저도 왜 이런 일들을 보고 듣게 되는지 자신을 찾아보니 제게도 역시 이런 사람마음이 있었기에 찾아내 그것을 닦아 버렸습니다.

지난 1년여 동안 오빠와 함께 병업 고비를 넘으면서 저는 오빠 부부에 대한 깊은 원한을 없앴고, 진정으로 수련인의 각도에서 우리 사이에 나타난 갈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건 그들이 제 수련을 도와주고 저를 제고시켜 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제가 해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생활상 그들을 도우며, 수련 중에 어려운 고비를 만나면 그들과 법에서 토론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제고하자,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수련의 아름다움과 신성함, 사부님의 자비, 대법의 신기함을 느꼈고, 동시에 대법 수련의 엄숙함도 깊이 느꼈습니다! 정법 수련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지금, 자신을 잘 수련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합시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3/27/47420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3/27/4742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