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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잘 배우고 발정념을 잘해야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할 수 있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우주에서 가장 행운의 생명인 파룬따파 제자로서, 오래전부터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기로 서약했기에, 우리는 항상 진상을 알리는 일을 중시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정법이 오늘날까지 연장된 것은 모두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 때문이며, 더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순간마다 중생들을 위해 감당하고 계신다. 사부님께서는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에 이어 연속 세 편의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발표하셨다. 우리 모두는 대법 수련의 엄숙함과 시간의 긴박함을 느꼈고, 중생과 대법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심도 느꼈다. 아래에서 수련과정 및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첫째,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련이 찾아온다

나는 오랫동안 법공부를 할 때 법리를 깨닫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마음이 매우 괴로웠고 의문이 들었다. 이를 위해 앞뒤로 곰곰이 생각하며 많은 수련생이 나눈 체득을 읽어보며 수련생들의 법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크게 개선되거나 개변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밖으로 추구하며 내 문제를 내면에서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나는 무슨 일을 해도 순조롭지 않았는데, 속인의 일, 아이 교육, RTC 플랫폼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 등이 모두 그랬다.

사부님께서는 내 고민과 괴로움을 아시는 듯 암시를 해주셨다. 어느 날 해외에 있는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예전에는 매번 통화할 때면 대부분 집안일과 아이 얘기를 했지만 이번에 그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요즘 법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이해가 되나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그가 계속 말했다. “나는 법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그날은 그 단락을 반복해서 읽어보며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고, 시간 날 때마다 다시 읽어요.” 듣고 나는 매우 충격을 받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가 너무 형편없이 수련했다고 느꼈다. 당시 남편은 ‘전법륜’을 막 한 번 다 읽은 참이었고, 나는 이미 3년 넘게 수련했건만 오성이 그렇게 낮았다.

나는 즉시 법공부와 연공 과정을 반성했는데, 내가 습관적으로 법을 빨리 읽으며 최대한 빨리 읽으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질보다는 양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속인의 관념이 있었다. 매일 각종 일을 시간에 맞춰 잘 배치했기에 정해진 시간표를 완수하려면 빨리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관념 때문에 법공부를 해도 법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도 계속해서 아이의 학습 상황을 상기시켜 주었는데 “아이가 수업 내용을 집중하지 못하고 배운 것도 잊어버립니다” 등등이었다. 나는 마침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다. 아이의 상태는 내 수련 상태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나는 법을 빨리 읽어서 다음 문장을 읽으면 앞 문장은 잊어버리고, 심지어 다 읽고 나서도 한 편의 소제목도 기억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많은 동료가 나에게 “요즘 왜 계속 멍해요? 상사가 당신이 낸 보고서가 매우 너저분하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 보고서는 당신 혼자만 알아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일은 RTC 플랫폼에서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것도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전화할 때 선하지 않은 중생을 많이 만나 그들을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시키기 매우 어려웠다.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의 문제였다.

나는 법공부 상태를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좀 더 천천히 읽으면서 양에 연연하지 않고 사부님 말씀에 집중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는 다소 개선됐으나, 이후에 또 법을 읽을 때 졸음이 오는 문제에 부딪혔다.

평소 나는 연공을 마치고 법공부할 때 아주 또렷했는데, 지금은 책을 펴자마자 ‘논어’도 다 읽기 전에 잠들어 버린다. 많은 경우 2, 3분 지나서야 깜짝 놀라 깨어났고, 계속 읽으면 또 졸기 시작하는데, 심할 때는 한 시간에 겨우 5쪽밖에 읽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날 매우 괴롭혔고, 나는 속인의 방법으로 커피를 마셔 해결하려 했다. 처음에는 작은 커피 봉지 하나를 마시니 그래도 괜찮았고, 가끔 졸려도 금방 깨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커피양을 늘려 한 봉지 반을 마셨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히려 더 졸렸다. 나는 수면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휴식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거나,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졸릴 거라고 여겼는데, 이는 모두 속인의 인식과 관념이었다. 그 관념은 ‘졸림’이란 물질과 부합되고 구세력의 이치와 부합되므로, 그것이 와서 당신을 관리하게 된다. 당신이 사상 중에서 ‘졸림’을 생각하면, 다른 공간의 신체에서 ‘졸림’의 물질이 생겨나고, 그것은 당신의 졸린 감각을 강화하고 확대시켜, 당신이 진짜로 졸린 건지 가짜로 졸린 건지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한동안 방법을 찾고 안으로 찾은 후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다. 내가 중문을 배울 때, 특히 2023년 초에 6개월간 중국어를 배운 후 나는 ‘전법륜’의 많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됐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중문 ‘전법륜’을 자주 읽었다. 중문으로 법을 읽을 때는 졸리지 않고 오히려 아주 또렷했는데, 그것은 내가 한자를 기억하는 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졸음의 원인이 ‘법 안에 있지 않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단락의 법은 이미 기억하고 있어서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머릿속으로는 법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해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정법 기간에, 우주 중의 모든 정부(正負) 생명은 다 이번 정법 중에서 구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최고의 층층의 무량하고 거대한 신, 특히 그것의 그런 세계의 중생을 포함해서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세간과 삼계 내에 발 하나를 들여놓았는데, 그것들이 이 만겁(萬劫)에도 만날 수 없는 목숨을 구할 기회를 놓치려 하겠는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표현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구해 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줄곧 엄격히 자신에게 요구했다. 시간, 설비, 인터넷 연결, 개인 상태 등 각 방면의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숙하게 대해야 하며, 나는 통화 담당 수련생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항상 법공부를 잘하고 연공을 잘하려 노력한다. 바쁘면 저녁에 연공을 하고, 좀 적게 자거나 약속이나 속인 일을 내려놓고 전념해 수련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연공하니 온몸이 가벼워져 하룻밤 자지 않아도 피곤한 감이 없고, 온몸에 힘이 솟는다고 말할 뿐이다. 하루 일을 끝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이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말하거나 혹은 기타 구실로 나와서 연공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모두가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고 정진(精進)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정말 그렇다. 나는 매일 겨우 3시간 남짓 자지만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머리가 늘 아주 또렷하다. 이것이 속인과 수련인의 차이다. 진상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연결할 때 소리에 문제가 생기면, 이 문제는 우리도 여러 번 만났는데, 매번 이럴 때마다 나는 통화 담당 수련생과 함께 발정념을 하고, 대량의 교란에 부딪혀 발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면 함께 안으로 찾는다. 이렇게 하고 나면 효과가 아주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념을 발할 때 다른 공간에서 난귀(爛鬼)를 보았고, 또 나와 아주 닮은 두 사람이 연결선 처리 때문에 다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한 사람은 뽑아내고 다른 사람은 다시 꽂았는데, 내가 ‘멸(滅)’이란 일념을 발하자 그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정념을 다 발한 후에 우리는 정상적으로 전화를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안으로 찾아보니 전화 연결을 교란한 그 두 사람이 왜 나와 닮았는지에 대해 조금 깨달았다. 구세력의 배치는 이렇게 치밀하다. 그것은 내 집착심을 틀어쥐고 있었는데 내게 쟁투심이 있어서였다. 요 며칠간 법공부와 연공할 때 모두 쟁투심을 띠고 있었는데, 전화를 연결할 때도 내 수련 상태가 반영됐던 것이었다.

체험을 쓰면서 나는 자신의 수련상태가 매우 부끄러웠고, 수련생 여러분도 나처럼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만약 어떤 집착심이 있음을 발견하면 즉시 정념으로 그것을 부정해야지, 구세력이 사람마음을 확대시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가부좌할 때 나는 고요한 상태에 도달했는데, 그날 연결할 때 모든 중생이 전화를 받고 삼퇴하기로 동의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내 마음을 보셨기에 좋은 통화 담당 수련생을 배치해주어 함께 협력하게 하신 것 같다. 지금은 매일 삼퇴 인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연결할 때 가끔은 상태가 고요해져서 통화하는 수련생이 전화를 끝내기도 전에 중생이 탈퇴하는지 안 하는지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통화 수련생은 매번 연결을 마친 후 늘 나에게 “우리 둘 다 중생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나는 정말 신기하다고 느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계속 격려해주시고, 나에게 이렇게 신성한 항목에 참가할 기회를 배치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통화 과정 또한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며, 깊이 감춰진 속인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계속 날 일깨워주셔서 내가 깨닫고 철저히 버릴 수 있게 하신다. 나는 진실로 사부님의 위대함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음을 느낀다. 나는 사부님께 존경과 감사를 표할 말을 모르겠다. 중생을 구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환경을 배치해주셔서 착실히 수련하고 서약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는 함께 노력하고 공동정진해 수련하며, 힘써 진상을 알려 더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돕고, 배우고, 수련하기를 바라며, 다시는 미혹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하늘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이며, 거기에는 우리 가족들이 우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모두 시간을 다그쳐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요구하신 일을 잘하자. 오직 이래야만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상은 내가 수련과정 중에서 깨달은 것이다. 만약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관용해주시고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수련생 여러분의 용맹정진을 바란다! 감사합니다!

(2024년 RTC 플랫폼 연례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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