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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을 회상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을 말하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자의 마음속에는 감회가 새롭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난 24년간, 밍후이왕은 수련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수련 마당이었다.

내가 밍후이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9년 6월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할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많은 수련생이 밍후이왕에 접속할 여건이 안 되어 밍후이왕 수련생이 중국 수련생을 위해 내부 유통자료와 배포에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수련생이 밍후이왕에서 다운받은 많은 자료를 나에게 줬다. 나는 그것을 읽고 보물을 얻은 것처럼 수련생들에게 나눠줬고 그들이 널리 전할 수 있게 했다. 나도 여러 문장을 선택해 많은 양을 인쇄했는데 모두 파룬궁 탄압의 불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베이징에 있는 모든 중공 주요 기관과 관련 부서에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다. 왜냐하면 체제 내 사람들조차 내막을 잘 몰랐기에 파룬궁의 실제 상황을 알리고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해, 중공의 거짓말 선전에 올바르게 대처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량의 편지가 발송된 후 해당 부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우편으로 보낸 편지 중 약 90통이 지역 경찰로 반송됐고 경찰은 되도록 빨리 발신인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중에 경찰은 이 일에 대해 마지못해 “한 달 넘도록 발신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조사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편지를 읽었고 파룬궁이 단지 진심의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중앙 정부에서 우리 여기 성(省) 소재지까지 많은 사람이 그 자료(당시에는 진상자료라고 부르지 않았음)를 본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사부님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부님 법신이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는 사부님과 매우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밍후이왕도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으며 언제든지 서로 소통할 수 있었기에 중국 수련생은 고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는 정념이 가득 차 있었다.

1999년 7월 20일, 전국 각 성(省)의 파룬궁 보도소장이 한꺼번에 납치됐다. 7월 22일, 성 전역의 많은 수련생이 성 정부에 불법 감금된 수련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날 오전, 수련생들은 모두 성 정부 진입로 사거리에 모여 조용히 성 정부에 들어가 관련 책임자들과 면담하고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선출된 7명의 수련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도 그 수련생들은 나오지 않았고 밖에 있던 경찰은 이미 사람을 납치하기 시작해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마침 출근 시간이었고 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모두 버스에서 내쫓겼으며 그 버스로 수련생들을 납치해 경기장이나 다른 장소로 태워 보냈다.

버스에서 내린 통근자들은 타고 갈 차가 없어서 인도에 우리와 함께 서 있어야 했다. 많은 사람이 말했다. “파룬궁은 좋은데 왜 수련을 못 하게 하죠?”, “어릴 적에 노인들은 공산당이 탄압한 것은 모든 좋은 거라고 했지요”, “제2의 문화대혁명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너무 끔찍해” 등 의견이 분분했다.

곧 버스 몇 대가 우리 앞에 왔다. 한 경찰이 나에게 “버스를 탈 건가요? 안 탈 거면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경찰 말을 듣고 나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 경찰은 내 옆에 있던 수련생에게 버스에 타라고 했다. 나는 그가 내 동생이니 같이 집에 가겠다고 했다. 경찰이 또 내 뒤로 가서 사람마다 물었다. 우리 주변에 서 있던 직장인들은 너무 무서워서 모두 조용히 숨었다. 이때 한 남자 수련생이 와서 “맞은편 수련생도 강제로 차에 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서 나는 “우리 돌아가서 밍후이왕에 올립시다”라고 대답했다.

두 수련생은 동의했다. 우리는 여자 수련생 집에 갔다. 그녀는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막 설치했고 남자 수련생은 마침 직장 컴퓨터실 책임자였다. 우리가 인터넷에 접속하자 한 수련생이 우리를 찾아와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으며 자전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상의한 후 남자 수련생에게 성 정부 앞으로 가서 대법제자를 태운 버스가 몇 대 있는지 알아보고 출발 시간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수련생은 대답하고 서둘러 떠났다.

여자 수련생이 펜과 종이를 가져와서 “이제 글을 쓸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컴퓨터에 바로 입력하세요”라고 말했다. 남자 수련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를 시작했다. 타자가 끝나고 상황을 알아보러 간 수련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남자 수련생에게 “원고가 밍후이왕에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3초라고 대답해 나는 매우 놀랐다. 3초 만에 밍후이 편집부에서 우리의 원고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좋았다. 우리는 모두 매우 기뻐했다.

자전거를 타고 간 수련생이 돌아와서야 우리는 성 정부에 경찰이 더 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기간 18대의 버스가 납치한 수련생을 경기장으로 데려갔고, 몇 시간 만에 1천 명이 넘는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납치됐다. 나중에 경기장에 수련생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자 인근 지역과 현(縣) 학교로 끌고 갔다.

원고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밍후이왕에서 우리가 보낸 원고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우리의 청원은 전국에서 두 번째여서 여러 수련생이 기뻐했다. 시간과 공간은 국내외 수련생을 갈라놓을 수 없었고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는 사부님과 함께하고 밍후이왕과 함께했다.

그 이후로 나는 밍후이왕을 내 수련의 마당으로 삼았다. 집에 있으면 매일 밍후이왕을 보고, 만날 수 없는 각 지역 수련생과 문장으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했다. 밍후이왕에서 나와 수련생은 많은 시리즈 문장을 써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 및 기타 관련 부서의 사악한 박해를 폭로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수련생들의 비참한 처지, 박해받아 사망한 사실, 훌륭한 행적 등에 관해 썼다. 파룬따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감사 등 수십만 자의 문장과 풍부하고 다채로운 그림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한 시대의 역사적 증거를 남겼다.

20여 년간 밍후이왕과 함께하며 사부님의 법리로 끊임없이 지도해 수련 중에서 내 심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경지는 승화됐다. 대법은 성도(聖徒)를 양성했고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와 최고의 영예로 대법제자는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사자(使者)가 됐다.

나는 종종 밍후이왕에서 산에서 가부좌하시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영원히 사부님의 제자이며 정사대전(正邪大戰)의 특파원이다!”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고, 홍마(紅魔)를 태워 금강을 연마하며, 정과를 이뤄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다.

 

원문발표: 2023년 7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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