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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선(善)의 수확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성화(聖禾)

[밍후이왕]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1년이 됐습니다. 남편이 법을 어겨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저는 실직한데다 세 살배기 아들을 키워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수련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수련인으로서 일에 부딪히면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행동하며, 비관하지 않고 어려움 앞에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고 양가 부모님도 잘 보살펴드리며 열심히 일하고, 바쁘면서도 충실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이 ‘큰 건’을 저지르려는 마음을 내려놓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남편을 보러 감옥에 1년에 두 번 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매번 분유, 건새우, 김국, 햄 소시지 한 상자, 샤오빙(燒餅), 치킨 등 장시간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을 가져갔습니다. 남편에게 음식을 주며 주변 사람과 나눠 먹고, 특히 오랫동안 면회를 못 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매번 당부했습니다. 저의 선량함에 남편은 감동했고 저는 남편에게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8년의 기다림 끝에 남편은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남편 몸의 영양부족과 그를 사회와 가정에 적응시키는 것은 모두 제가 직면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밤마다 남편에게 콩 분유를 타서 영양을 보충해줬고, 느끼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음식을 담백하게 만들었으며, 핸드폰을 사주고 외부 소식을 접하게 했습니다.

약 반년 동안 남편은 석방되는 동료를 마중하러 부단히 감옥에 가며 몇천 위안(수십만 원)을 썼는데 적지 않은 액수였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기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 말리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근검절약해 모은 돈이란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써도 될까?”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 마음을 이해해요.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해야죠. 몸이 좋아지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착실하게 일하세요. 아이도 점점 자라고 있으니까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감옥에 모두 품성이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순간적으로 화를 내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친구의 부추김과 이익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일을 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남편은 이번 교훈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정정당당하게 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의 응보가 있어요. 하늘의 그물은 눈이 굉장히 넓어서 성근 것 같지만 악인은 절대 빠뜨리지 않아요. 사람은 선해야 하고 선을 행해야 덕을 쌓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다시는 법을 어기는 일을 해서는 안 돼요. 인생은 몇십 년밖에 되지 않잖아요!” 남편은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여전히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감옥에서 당신은 내게 다른 사람을 찾아서 살라고 했었어요.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고 윤리 도덕을 파괴하는 일을 하게 하는 거에요. 저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세속을 벗어난 사람이에요. 인간 세상에 집착하겠어요? 제가 마주하는 모든 것은 수련이에요. 나는 당신을 8년이나 기다렸어요. 가장 힘든 길을 택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에요. 당신이 감옥에 갔을 때,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집을 팔아 행복한 생활을 해도 됐겠죠. 하지만 내가 아이를 돌보면 어머님, 아버님도 마음을 놓으시잖아요. 나는 가정의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어요. 이것이 당신의 희망이니까요. 내가 낙관적으로 생활하면 부모님도 스트레스가 좀 덜하시잖아요. 고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예요. 나는 당신이 비바람 뒤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길 거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부처 같아. 나는 당신이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보답하고 싶었어. 그래서 출소하고 ‘큰 건’을 하려고 좀 준비했었지. 감옥 동기가 솜씨가 상당히 뛰어났거든. 그의 기술 앞에서 각종 자물쇠는 장난감에 불과하지. 그들은 나와 사이가 좋으니 ‘큰 건’을 한바탕 해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 당신은 많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날 원망한 적이 없지. 당신은 너무 착해서 난 정말 부끄러워. 앞으로 나도 진선인에 따라 처세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 안심해, 더 이상 그들과 연락하지 않을 거야.”

“숙모도 계셔야 해요”

남편의 조카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일찍이 사회의 나쁜 습성에 물들었습니다. 남편은 조카를 너무나 이뻐해서 조카가 바른길을 가도록 도와주려 했습니다. 2016년, 조카는 다른 사람과 함께 공사 일을 맡았고 또 차를 사 택시도 해서 우리집에서 7만 위안(약 1300만 원)을, 큰아버지에게서 2만 위안을 빌려 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손해를 봤고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조카를 대신해 큰아버지 돈 1만 위안을 갚았습니다.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조카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습니다. 어느 해, 큰아버지 일가가 우리집에 왔다가 우리가 접대하기도 전에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조카가 돈을 갚지 않는 문제로 매우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큰어머니는 조카에게 비이성적으로 “은행을 털어서라도 갚아!”라고 말했습니다. 조카의 아버지는 친구에게서 돈을 빌렸는데 큰아버지 부부가 그들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해 친구 앞에서 체면을 잃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조카가 돈을 많이 가져갔어도 지금까지 갚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조카에게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잖아요. 조카와 많이 대화해 일을 잘하게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방책이죠. 이렇게 하면 우리 모두 걱정을 덜잖아요.” 그렇게 해서 차츰 조카는 변했고 힘들고 더러운 일도 기꺼이 했지만 돈을 갚을 능력은 아직 없었습니다.

2020년, 저는 파룬궁 수련으로 박해를 당했고 남편도 연루되어 불법 구류당해 저는 살 곳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조카는 남편이 구치소에서 맞을까 봐 사람을 찾아 남편을 돌보게 했습니다. 조카가 울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저를 가장 잘 보살펴주셨어요. 꼭 잘 보살펴주셔야 합니다.” 제가 임차한 집은 6층이었고 밤에 조카가 생활용품을 가져다줬습니다. 6층에 올라와 조카가 말했습니다. “숙모가 물건을 정리하세요. 제가 옮겨드릴게요.” 37일 후 남편은 석방됐습니다. 그동안 조카는 저를 위로해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는데 저에게 어떤 원망하는 말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조카가 주저하며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낡은 아파트를 사려고요.” 남편이 듣고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좀 보태줘야겠네.” 조카는 말했습니다. “집 살 돈은 괜찮고요. 저에게 밥차 한 대만 사주세요. 꼬치 튀김과 조리한 음식을 팔려고요.” 남편은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조카는 2만 5천 위안(약 450만 원)이라고 말해서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올바른 일이니 지지해야지.” 조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작은아버지만 계시면 안 되고 숙모도 계셔야 해요.”

조카가 장사를 시작한 후 어떤 떡 파는 사람이 노점을 차릴 곳이 없어 하자 조카가 자신의 밥차 앞에 차리라고 했습니다. 조카의 선행은 복을 받아 그 집에서 아이를 낳게 되자 갖고 있던 노점을 조카에게 넘겨줬습니다. 지금 조카는 장사가 잘돼서 돈을 좀 벌었습니다. 조카는 우리에게 좀 늦게 돈을 갚고 사업을 확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말에 우리가 1만 위안을 보태주어 조카는 사양이 좀 높은 중고차를 샀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상속권을 포기하다

남편이 징역 판결을 받은 해에 저는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2003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05년 제부가 뜻밖의 사고로 사망해 여동생은 어린 조카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깨진 세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2006년 남편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세 가족을 돌보는 중책을 감당했습니다.

어머니는 시력이 몹시 좋지 않아 스스로 생활하실 수 없으셔서 제가 돌봐드려야 했습니다. 우선 어머니 방의 장식품과 용품은 모두 어머니가 아는 위치에 놓아야 합니다. 또 가족들은 어머니가 걸려 넘어지실까 봐 물건을 사용하고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습관을 키웠습니다. 저는 늘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며,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손발톱도 깔끔하게 정리해드렸습니다. 화장실이 밖에 좀 먼 곳에 있어서,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방안에서 볼일을 보시기에 집안 위생을 잘 관리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식욕이 좋으셔서 음식을 특별히 해드릴 필요 없이 우리가 드시는 것을 잘 드십니다. 과일은 껍질을 깎아 작게 썰어 접시에 담아드립니다. 하루에 보통 2~3가지 과일을 준비하고 때로는 배를 삶아 드립니다.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신 후 27년간 병에 걸린 적이 없고 약도 드신 적이 없습니다. 간혹 불편하면 연공을 많이 하시면 좋아지셨습니다. 올해 82세로 심장, 혈압, 위장이 모두 좋으시고, 피부는 희고 부드러워 정말 백발동안이십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낮에 함께 ‘전법륜’을 공부하는데 제가 어머니께 읽어드립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사리에 밝으셔서 제 남편과 모자처럼 지내셔서, 누가 무슨 물건을 주든 남편과 나눠 가집니다. 남편도 시간이 나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마트에 가면 항상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곤 합니다. 우리는 외조카를 자식처럼 대합니다. 우리집에서 무슨 물건을 사면 동생 모녀에게도 같은 것을 사줍니다. 외조카가 학교에 다닐 때 학비를 대주고 계절에 따라 옷도 사줬으며, 에어컨도 설치해주고 태양광도 설치해줬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어머니 집과 여동생 집을 새로 인테리어 해줬습니다. 오빠는 친척과 친구에게 말합니다. “우리집은 아들이 사위보다 못해.”

오빠는 우리가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자 어머니께 집을 우리에게 주라고 건의했습니다. 언니와 여동생도 이견이 없이 모두 상속권을 포기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대가족 속에서 생활해 행복하다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저는 운 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해 진선인의 법광 아래 선(善)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고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수련인이 되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이 승화하는 사다리를 놓아주시고, 광명과 영원함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6/3/4609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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