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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우담바라와 내 수련 이야기

글/ 랴오닝성 수련생 영련(瑛蓮)

[밍후이왕] 저는 54세 여성이고 운 좋게도 2010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중국공산당에 속아

저는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자랐고 20대가 될 때까지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문도 구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타인과의 접촉이 제한된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파룬따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제가 파룬따파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2000년 설날 전야였습니다. 국영 언론이 조작된 천안문 분신 사건을 방송했습니다. 분신자살 혐의자들 가운데 어린 소녀가 있는 걸 보고 저는 아이 엄마라서 특히 더 두려웠습니다. 언론이 대중을 속이기 위해 거짓 선전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파룬궁수련생을 피하고 그들이 주는 자료를 거부했습니다. 문 앞에서 그들의 자료를 발견하면 바로 버렸습니다.

그동안 저는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해 다소 어리석은 견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해외에서 전화가 와서 우리 성(省)의 쑤자툰(蘇家屯) 혈전증 병원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대상으로 중국공산당(중공)이 생체 장기적출을 자행하고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30분간 들었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습니다. 파룬궁이 권력 때문에 중공과 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담바라 꽃과 나

저는 신의 존재를 믿었고 항상 불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불교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말법시기에 그의 가르침은 더는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우담바라 꽃이 필 때 미륵 부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륵 부처님이 500년 후에 올 것이라고 나름 결론지었습니다.

‘50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륵과 함께 환생하게 될까’라며 깊이 생각하다가 희망이 보이지 않아 불교에 대한 관심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불교 관련 글을 읽으면서 위안을 찾았고, 사회의 난잡한 것보다 불교 문장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 저는 인터넷에서 불교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우담바라 사진을 처음 봤습니다. 저는 1992년 5월 집에서 이 꽃을 보았는데 그것이 우담바라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특별한 꽃은 계속 인상에 남았습니다. 우담바라 사진을 더 많이 보면서 1992년에 제가 봤던 것과 같은 종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1992년 5월은 파룬따파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시기였습니다. 1992년 5월 중순, 우리 가족이 벼 모종에 물을 주던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거울에 비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창가로 걸어갔는데 창틀, 삽과 낫의 손잡이, 그리고 다른 많은 곳에서 우담바라를 봤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것들이 축축한 곰팡이라고 생각하고 걸레로 닦아 봤습니다. 그러나 닦이지 않았고 닦은 후에 곧게 펴졌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냥 두었습니다.

2000년에 다시 우담바라 꽃 사진을 보고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미래의 법이 법륜(法輪, 파룬)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법륜성왕’과 ‘전륜성왕’에 대해 언급한 많은 불교 경전이 생각나면서 미륵 부처님이 오셨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마음에 뿌리내린 파룬따파에 대한 비방 때문에 그 생각을 빨리 일축해버렸습니다.

비참한 삶

세상 사람들처럼 저도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다른 여자와 대놓고 동거했습니다. 저는 건강도 좋지 않았고 절망감도 컸습니다. 계속 살아가는 유일한 동력은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쉽게 피로해졌습니다. 저는 남편을 차갑게 대했고 그래서 남편은 집에 있기를 더욱 꺼렸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자주 병에 걸렸습니다. 저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남편의 지원에 생계를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혼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저는 남편에 대해 여러 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고 그것이 건강에 더욱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2009년,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 교사와의 갈등으로 자퇴했습니다. 가족과 친척들의 질책이 아들의 우울함을 더 키웠습니다. 아들은 자신을 고립시켰고 누구와도 만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며 보냈습니다. 그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종종 새벽 3~4시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수 없어서 다른 학교로 전학 가도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저와도 대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었고 아들을 도울 방법도 몰랐습니다. 저는 공황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항상 가슴이 답답해 몸을 구부려 불편함을 해소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미타불’을 염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파룬따파하오’가 날 구하다

어느 날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에는 파룬궁에 대한 부정적인 선전 때문에 그녀를 피했지만 어떻게든 손을 내밀어 연락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 그녀는 제 상태를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밥을 사주고 파룬궁에 대한 진실을 말해줬습니다. 그녀는 제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9자진언(九字真言)을 외우라며, 이 말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저는 그녀를 믿었고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그 친구는 제게 대법 호신부(護身符)를 주면서 즉시 9자진언을 외우라고 재촉했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신부를 손에 쥐고 9자진언을 한번 염해보려고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를 속으로 한 번 외우자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굽은 등이 곧게 펴졌습니다. 공황장애가 즉시 기적적으로 사라지면서 안도감과 행복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에 압도됐고 주변 환경의 변화도 느꼈습니다. 웃음과 즐거운 목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이전에는 진정으로 본 적 없는 행복한 얼굴과 활기찬 푸른 하늘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멋져 보였습니다. ‘파룬따파하오’를 말하는 순간 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 바로 호신부를 줬습니다. 제가 호신부를 내려놓는 순간 그는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자려는지 묻자 아들은 화를 내며 답했습니다. “자냐고요? 한밤중에도 저는 못 자요!” 그러나 아들은 곧 잠이 들었습니다. 겨우 오후 6시였습니다. 아들은 밤새 자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들 몸에서 더러운 물질이 많이 빠져나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아들을 도우셨고 그의 고난을 해결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 9자진언을 외웠을 때 사부님께서 제게도 똑같이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부터 저와 아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학교로 돌아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다

저와 아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계속해 9자진언을 외웠습니다.

일주일 후 친구는 저에게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을 줬고 다른 파룬따파 설법 파일도 줬습니다. 저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이 책들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파룬따파는 중공이 퍼뜨리는 선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5가지 공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남을 먼저 생각하면서 파룬따파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랫동안 절 괴롭혔던 몇 가지 질병이 연공을 시작하고 며칠 만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푹 잤고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젊고 빛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제가 겪은 모든 고통이 전생의 업력 때문임을 이해했습니다. 고통은 업을 갚는 길이기 때문에 더는 삶에 대한 원망을 품지 않게 됐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저는 잠시 제가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과거의 고통이 떠올라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괴로움은 제가 지금 대법을 연마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날 때까지 몇 분간 지속됐지만 그 괴로움은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흐르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비록 제가 대법을 연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미 여러 차례 제 곁에서 사부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남편이 집에 왔을 때 저는 전혀 다른 태도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그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면서 제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파룬따파를 배웠다고 말하고 중공이 퍼뜨린 비방 선전에 대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는 제 변화를 목격하고 대법을 존중하게 됐습니다. 결국 남편은 중공 조직인 공청단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부님께서 미래에 사람을 제도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줬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예전에 대법 진상을 알지 못하고 파룬궁수련생들이 진정으로 사람을 제도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걸 깊이 후회합니다. 저는 SNS그룹에서 불교 친구들에게 대법을 소개하려고 시도했지만 추방당했습니다. 여전히 중공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을 보니 슬펐습니다.

저는 이제 일자리를 찾았고 새롭고 즐거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대법 진상을 알고 좋은 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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