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10년 전 한 친구가 내게 산후도우미 일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솔직히 나는 아이를 돌보거나 남의 시중을 들었던 경험이 없었고 산후도우미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수련생에겐 우연한 일이 없으니 아마 이것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인 것 같았다. 집에서도 내가 일을 해야 할 상황이어서 자연스럽게 산후도우미 교육을 받았고 나는 수년간 분식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 교육받는 데 도움이 됐다.
나는 진지하고 부지런한 학습을 통해 산후도우미의 기본 업무를 아주 빨리 습득했다. 나와 함께 교육받은 사람들은 나보다 빠르게 배우지 못했다.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지혜를 열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후 나는 산후도우미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산후도우미는 소득이 높은 편이지만 근무시간이 길고 책임을 다해야 하며 흔히 돈 많은 중·고위층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대법제자인 나는 항상 사람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다. 사부님께서 이 수련의 길을 안배해주셨기에 이 일을 통해 나와 인연 있고 일반인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간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통해 닦은 선한 마음과 지혜로 많은 사람에게 생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줬다. 많은 사례 중 몇 가지 이야기를 공유하겠다.
부유한 대학 총장의 집
도우미 회사에서 나를 한 대학 총장의 집에 배치했는데 그의 며느리가 출산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총장 집에 가서 집안 환경과 가족 상황을 살폈다. 이 총장은 공산당 문화에 깊이 물들어 집에서도 독단적으로 행동했고 가족에게도 학교에서처럼 그가 추천한 시를 공부하게 하고 체득 등을 쓰게 했다. 반면에 그의 부인은 대학교 학부장으로 상냥하고 착했으며 산모는 공무원이었고 총장의 아들은 법원에서 근무했다.
일정한 지위가 있는 고객을 대할 때 나는 비굴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나는 요리, 국, 분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들었다. 산모를 위한 음식을 만들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산모에게 “무엇을 먹고 싶어요?”라고 묻지만, 나는 “무엇을 싫어하셔요?”라고 물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음식을 제외한 다른 음식을 만들면 선택 범위가 넓고 내 요리와 분식을 만드는 기능도 잘 발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셀러리를 볶을 때 나는 뜨거운 팬에 먼저 간장을 넣어 요리의 향이 깊게 해서 산모의 입맛을 돋웠다. 꽃빵을 만들 때 반죽에 시금치와 용과(龍果) 즙을 추가해 녹색과 자주색으로 만들었고 달걀노른자를 넣어 노란색으로 만들었다. 내가 색, 향, 맛을 모두 지닌 맛있는 음식을 밥상에 가져다 놓자 그녀는 보면서 “아주머니, 제가 황제가 된 기분이에요!”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했다.
내가 만드는 매끼의 음식은 일반적으로 중복되지 않고 합리적인 영양 균형, 고기와 채소, 색상 등을 적절하게 배합했는데 나는 이렇게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다. 고객을 위해 생각하고 그들 마음을 헤아리며 꼭 선하게 대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통상적으로 두 가지 요리와 국 하나(고기류, 채소, 국)를 만들고 좁쌀죽, 채색 꽃빵 혹은 삼색 국수, 물만두나 훈툰 등을 별도로 만들었다.
처음엔 내가 주방이나 빨래방에서 일하는 것을 산모의 시어머니(학부장)가 늘 지켜봤다. 아직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요즘 중국공산당(중공) 통치 사회에서는 사람 사이에 서로 믿지 못하며 고객은 일반적으로 산후도우미의 일하는 태도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돈을 써서 날 고용했으니 착실한 서비스를 원하며 책임감 없는 산후도우미는 원치 않을 것이다.
사실 수련생인 나는 그녀가 날 주시하든 않든 한결같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즐겁게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마음에 든 그녀는 더는 내가 하는 일을 감독하지 않았다.
점점 우리는 서로 익숙해졌다. 더 편하게 지내기 위해 나는 엄숙한 총장과 이야기 나눴고 농담도 했다. “할아버지가 되신 것을 축하해요. 사람들이 집을 따뜻한 항구라고 하는데, 총장님은 학교에서 하던 방법을 그대로 집에 적용하셨어요. 집은 몸과 마음이 편하게 지내는 곳인데 가족에게 시를 외우고 체득을 쓰라고 하시니 너무 긴장하게 지내는 건 아닐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총장도 웃었고 더는 가족에게 체득을 쓰라고 하지 않았다.
산모가 내게 수술 부위 통증을 하소연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도 16년간 다리 통증으로 고생했던 관절염 환자였는데 파룬따파를 수련한 덕분에 온몸이 무병으로 홀가분하며 현재 매우 건강해져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녀에게 말했다.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파돼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를 지지하고 존중합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파룬궁을 모함한 것이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대법이 모욕당했으며 마음을 수련하고 선을 지향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은 박해받았습니다. 중공은 꼭 천벌을 받을 것이고 당신이 그것의 일원이니 만약 탈퇴하지 않으면 장차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현재 사람들이 당원, 단원, 소선대 조직을 탈퇴해 평안을 보장하고 있으니 당신도 탈퇴해 그것에 연루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녀는 매우 순조롭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다. 내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 이 ‘9자진언(九字真言)’을 늘 염하면 통증이 완화될 것이고 몸도 좋아진다고 알려주자 그녀는 공감을 표했다.
모두 어머니여서 나와 총장 부인은 일상을 얘기하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녀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게 됐고 내 평소 행위는 그녀에겐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내 언행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파룬궁을 모독하는 중공의 거짓말을 스스로 간파했다.
총장 집에서 일하던 마지막 날, 나는 총장과 파룬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물었다. “당원, 단원, 소선대 조직을 탈퇴한다는 일을 들으신 적이 있나요?” 그는 솔직하게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濟南)에 사는 동창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러 갔을 때 한 친구가 사람이 많은 술자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래서 탈당하셨나요?”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시지 못하셨네요.”라고 말하며 구이저우(貴州)성 핑탕(平塘)현에 있는 ‘장자석(藏字石)’이 알려주는 천기를 자세히 알려줬다. 강철로 만들어진 강산은 없고 만만세 황제도 없으며 소련 공산당은 하룻밤에 해체됐다고 말했다. 그가 당시 선서하면서 목숨을 중공에 바치겠다고 했기에 그것의 일원이 된 것이니 하늘에서 그것을 소멸할 때 재앙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총장님은 돈도 많고 지위도 있으며 원하는 것이 다 있어요. 하지만 ‘평안’이 부족하니 ‘탈당’해야만 진정하게 평안할 수 있어요.” 그는 듣고 나서 흔쾌히 “당신이 탈퇴를 도와주시오!”라고 말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부인도 찬성했다. 총장은 성은 ‘저우(周)’여서 ‘저우핑(周平)’으로, 부인은 ‘스(史)’여서 ‘스안(史安)’이라고 각각 가명을 지어 탈당하게 했다. 내가 “두 사람 이름을 합치면 ‘평안’이에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즐겁게 웃었다.
총장은 기뻐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제가 한턱 낼 테니 당신이 가지 말고 음식을 한 상 가득 준비해 이야기를 나눕시다.” 내가 음식 준비를 마치자 총장의 장모와 처남이 초대받아 왔고 사부님께서 마땅히 구원받아야 할 인연 있는 사람을 내 곁으로 보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눴고 나는 총장 장모에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이에요. 제가 꼭 드려야 할 말이 있는데 말씀드리지 않으면 유감으로 남을 수 있어요. 그것은 삼퇴를 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일인데, 왜 탈퇴해야 하는지요? 현재 재난이 이렇게 많고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했기에 꼭 천벌을 받을 거예요. 만약 그것의 일원이면 함께 재앙을 당하게 되고 그것 조직을 탈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전에 총장의 장모가 외손자를 보러 왔을 때 내가 진상을 알린 적이 있어 즉시 단원과 소선대 조직을 탈퇴했다. 총장의 처남은 처음 만났지만, 총장의 장모가 식사를 마친 후 그에게 나를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안배에 감사드렸고 차에서 순조롭게 그에게 말했다. “젊은이, 요즘 재앙이 이렇게 많은 것은 모두 중공이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초래한 것이고 그것에 연루되지 않으려면 가입했던 단원을 탈퇴하세요.” 그는 흔쾌히 동의하며 말했다. “네! 아주머니.”
나는 이 가족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공안국장 집에 산후 도우미로 두 번 가다
어느 해 회사에서 나를 며느리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딸을 출산한 공안국장 집에 보냈다. 나중에 아이가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우울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꼭 이 가족을 구해야겠어.’라고 생각했다. 산후 도우미로 일하지 않았으면 일반인은 그들과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집에 갈 때마다 경비소를 세 곳이나 지나야 했다.
매일 아침, 내가 그의 집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웃으며 아기에게 인사하는 것이었다. “아가야, 햇빛이 엉덩이를 비추고 있으니 빨리 일어나자!” 이어서 물로 씻은 물티슈로(만약 물티슈를 물로 씻지 않으면 묻어 있던 알코올이 아기의 연약한 피부를 자극할 수 있음) 아기의 얼굴과 귀를 부드럽게 닦아주고 면봉으로 꼼꼼히 눈가, 코 옆 등을 닦아줬다. 아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산모와 육아 경험을 교류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내가 아기 귓가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염하면 아기는 작은 얼굴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장 가족이 파룬궁 진상을 모르기에 그들에게 적절한 기회에 진상을 알려야 하고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됐다.
산모의 기분이 좋지 않기에 나는 최대한 타일렀다. 그녀와 선의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가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병이 난 것은 두렵지 않고 두려운 것은 신과 부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파룬따파 수련인입니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성심성의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염하세요.”
나는 사부님의 대법 “쩐싼런(真善忍) 세 글자 성언(聖言) 법력(法力)이 무한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진정으로 외면 만겁(萬劫)이 즉시 바뀌네”[1]를 외워 그녀에게 들려줬다. 내가 “당신이 진심으로 염하면 아이의 병이 꼭 나아질 것이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렸어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아이를 위해 저는 믿어요!” 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과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진상 및 중공의 사악함을 알렸다. 내가 말했다. “중공이 나쁜 짓을 일삼아 하늘에서 소멸하려 하니 우린 그것에 연루돼선 안 돼요. 당신이 단원을 탈퇴하면 앞으로 남게 될 사람이 돼요.” 그녀는 즉시 단원과 소선대 조직을 탈퇴했다.
그녀가 아이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염해달라고 부탁하자 나는 말했다. “제가 염할 수는 있지만, 아이 어머니인 당신이 염하는 게 가장 좋아요.” 그녀는 바로 염하기 시작했다. 내가 “당신 시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시아버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꼭 그를 믿게 하고 구해야겠어’라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국장 부인은 늘 내게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16년간 발병했던 관절염이 파룬궁 수련을 통해 완쾌된 사실과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내 일거일동을 통해 그녀는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이해했고 파룬궁의 건강 효과가 좋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9자진언(九字真言)’을 염하라고 하자 동의하며 순조롭게 삼퇴했다.
그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국장의 장모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알고 나서 장모의 환자용 음식과 산모의 음식을 함께 만들었다. 장모를 위해 비교적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다양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달걀을 넣은 수제 국수, 물만두, 훈툰, 곰탕, 좁쌀죽 등이다. 10여 일간 장모를 위해 퇴원할 때까지 음식을 정성껏 만들었다.
그래서 장모는 감동해 퇴원 후 우리 회사에 내가 사심 없이 한 것에 대한 감사 편지를 한 통 보내왔는데, 나중에 회사에서 날 불러서야 알게 됐다. 회사는 나를 ‘최우수 산후 도우미’로 선정했고 노임을 인상해줬다. 나는 파룬따파의 가르침 없이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아이가 곧 만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나는 공안국장에게 대법 진상을 알릴 기회가 아직 없어서 좀 초조했다. 내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신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안배하셨다. 그 집에서 일을 마치기 전에 국장은 사전에 그의 기사에게 날 집까지 데려다주게 했는데, 그날 기사가 일이 생겨 올 수 없어서 공안국장이 직접 차를 운전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안배에 감사드렸다. 가는 길에 내가 국장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모두 알았다고 했지만 탈당하라고 하자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국장님, 이 직위에서는 파룬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조처하시나요?”라고 묻자 그는 “상부의 지시에 따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말했다. “상부의 지시는 국장님을 해치는 거예요. 공산당은 늘 필요할 때는 이용하다가 다 이용하고 나면 죽여 버려요. 중공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일한 베이징 공안국장 류촨신(劉傳新)은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죄가 두려워 자살했고, 상부의 명령을 집행한 경찰 700여 명과 군인 간부 17명이 윈난(雲南)에 끌려가 비밀리에 총살당한 후 그들 가족에게 공무로 순직했다는 통지서를 보냈어요.” 또 파룬궁은 불법(佛法)이고 중공과 함께 재앙을 당하지 말라고 권했지만, 그는 웃기만 하고 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그의 집에서 처음 경험한 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안국장을 구하지 못했다.
몇 년 후 국장의 며느리가 둘째를 출산했다. 나는 또 산후 도우미로 초청받았고 이번엔 국장이 꼭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국장의 집에 들어서자 나는 거실에서 대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깡충깡충 뛰는 건강한 모습을 봤고 아이는 “할머니!”라고 달콤하게 불렀다. 내가 전에 돌봤던 아이였다. 일하면서 국장 부인에게 탈퇴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국장을 서둘러 탈당하게 하라고 알렸고 천멸중공(天滅中共)은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탈퇴하게 권할게요.”라고 말했다.
이튿날 내가 갔을 때 국장 부인은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남편이 탈퇴에 동의했고 가명을 직접 지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 가슴을 짓누르던 돌이 사라졌고 국장을 구할 수 있게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내게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나는 도덕이 타락하고 세상 기풍이 날로 나빠지는 사회에서 대법 덕분에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을 견지할 수 있었다. 또 돈과 명예를 중히 여기지 않고 시대 조류에 따르지 않으며 혼탁한 속세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기능으로 더 많은 가족이 복을 받게 했으며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4-대련(對聯)’
원문발표: 2022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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