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청년 수련생, 수련생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각종 집착심을 닦아버리다

글/ 미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래는 최근에 내가 수련에서 깨달은 일부 심득으로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련생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다

나는 한 매체에 참여해 여러 수련생과 협조해야 했고, 이 기간에 종래로 없었던 심성 고험을 겪었다. 처음에는 모순이 아주 커 여러 수련생을 볼 때 뭐든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말 1분이라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전에는 스스로 자신을 유순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남과 논쟁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밖에서 지인들도 모두 내가 아주 상냥하다고 얘기했기에 이 항목에서 이와 같은 심성 충돌을 겪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몇 번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각종 형식으로 나를 점화해주시면서 이것이 여태껏 없던 제고의 기회라고 알려주셨다. 가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서 거의 누구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으니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지, 누가 관심을 가질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사실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이 항목을 하고 싶어 한다고 점화해주셨다. 매일 법공부 중에 사부님께서는 기회가 소중하다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일하는 장소로 가면 각종 불만과 시끄러운 일들이 또 한꺼번에 몰려와 모순 속에서 자신이 마치 주전자 속 물이 끓는 것처럼 속이 부글부글 극에 달했다. 이런 일이 계속 쌓이고 또 다른 수련생들이 나를 질책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점점 시끄러워지고 갈수록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느 날, 사부님의 한 단락 말씀이 떠올랐다. “복잡한 환경은, 내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좋은 일로서, 복잡할수록 고인(高人)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래야만 가장 착실하게 닦는 것이다.”[1]

만약 환경이 좋지 않다면 마침 수련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아닌가? 만약 이 항목의 환경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이라면 왜 떠나려고 하는가? 나는 가장 복잡한 항목 환경에서 닦아낼 것이고, 이 항목이 나를 어느 정도까지 시험하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다른 항목으로 넘어간다 해도 여기에서 닦아낸 후 다시 생각해보겠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 아직 여기에서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들끓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차츰 수련생 사이의 모순이 정말 그렇게 많지 않았고 내 환경도 비교적 정상적이고 느슨한 상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난관들이 있고, 어느 수련생에게 불만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또 트집을 잡았는데 딱 봐도 내가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이 과정이 확실히 수련이었다.

어느 한 번, 다른 수련생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을 보고 다시 내 것을 보니 정말 너무 차이가 났다. 하지만 순간 일부 생명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기뻐하고, 이런 진상 알리기 항목을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기쁜 기분은 표면 공간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온 것도 있었다. 마음이 감동되어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겉으로 보기에 좋고 나쁜 걸 떠나 매 수련생의 성과는 모두 존재해야 할 원인이 있었다. 물론 더 잘하면 분명히 효과가 더 좋겠지만 가끔은 정말 사람의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가 내 작품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 끊임없이 다툴 때도 있는데 사실 어떤 성과가 나오든지 구도 받기를 기다리는 중생에게는 다 효과가 있고 가치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고, 나를 이 항목에 보내신 것도, 분명 가장 좋은 배치일 것이다. 내 개인감정 때문에 사부님의 배치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진일보 안으로 찾아보니 예전에 수련생을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온화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화를 냈고, 일부 일들이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아주 이기적으로 됐다. 알고 보니 오랫동안 명(名)을 구하는 마음을 닦아버리지 못했고, 밖에서 완벽한 이미지를 수호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아직 진정으로 닦아버리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느슨해질 때, 그리고 가족 앞에서 표현되고, 이 항목에서 전면적으로 충격을 받았을 때 표현됐다. 이미지가 손상되면 발작했고, 쟁투심,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들이 올라왔다. 게다가 의심, 남을 얕보는 질투심도 아주 강해 수련생과 관계가 틀어져 얼굴을 붉힐 정도에 이르렀다. 수련이 얼마나 부족한가. 수련생은 내가 제고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법을 얻었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다. 다만 외부인에게 표면적으로 다정했을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내 표면을 볼 뿐 내심을 보지 못했다. 수많은 문제가 감춰져서 폭로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으면서 수련생들이 이런 형식으로 내가 제고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땅히 고마워해야 하고 이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렇게 일부 문제들이 실제상황에서 차츰 담담해졌고, 나도 더는 끓는 물 주전자 같지 않았다. 이 항목에서의 연마를 통해 결국 예전보다 더 착실해졌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내 제고를 도와준 수련생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계속해 자신을 제고하고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잘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겠다.

수련생과 연락하면서 질투심을 닦아버리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으면서 수련생과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실제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비록 예전처럼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끔 법에 부합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한번은, 나와 모순이 생겼던 수련생이 온라인 교류에서 다른 수련생이 그녀를 얼마나 나쁘게 대했다며 한참을 말했다. 그 자리에 나도 있었는데 두 마디 듣고는 더는 듣기 싫어 떠나 법공부하고 싶었다. 속으로 ‘이 수련생은 전에 나를 어찌어찌 대했는데 지금 그녀도 골탕을 먹고 있구나! 이건 그녀를 제고하라는 것인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맨날 나만 제고할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그녀도 제고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사부님 사진을 보니 표정이 그토록 엄숙하셨다.

그제야 나에게 집착이 있고,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을 아직 없애지 못했다는 걸 발견했다. 남을 얕보는 질투심이 그토록 엄중하고 심지어 수련생이 시끄러움에 맞닥뜨린 것을 기뻐하고 고소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잘 대해줬다는 마음으로 집착을 덮어 감추었으니 얼마나 간사하고 허위적인가! 대법제자는 진선인(真·善·忍)을 닦고 있는데 이 문제에서 나는 전혀 진선인을 행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좌불안석이 되어 다시 돌아가 남은 교류를 다 들었다.

고비를 넘을 때, 여러 번 법공부 중에 사부님의 아래 말씀에 주의했다.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1]

수련생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하는 것은 아마 전생에 내가 그를 이렇게 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금생에 운 좋게 대법을 얻었는데도 잘 수련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수포가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수련생은 거울로서 나는 그녀가 기가 세고, 일하는 방식이 나에게 충격을 줬다고 여기며 속으로 그녀와 맞서 싸웠다. 사실 나도 기가 세고, 예의를 갖춰 양보하거나 그녀를 위해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이렇게 보니 반영해 나온 집착들이 그녀보다 더 많았다. 가끔 자신이 수련생보다 착실하게 수련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복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속인의 비폭력, 비협조 방식을 택했는데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마땅히 자신을 낮추고, 수련생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협조해 잘하는 것이다. 항목에 폐를 끼치지 말고 함께 협력해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안일한 마음을 닦아버리다

몇 년 동안 나에게는 줄곧 이러한 관념이 있었다. 수면이 부족하면 이튿날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적게 자면 일할 때 아주 힘들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루 네 번 전 세계 동시 발정념 때 미국 서부 지역은 그중 한 번이 겨울 새벽 2시(또는 여름 새벽 3시)여서 보통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그때 발정념하지 않으면 아침에 지저분한 꿈들을 꾸었다. 내 공간장이 깨끗하게 청리(清理)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줄곧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수면시간에 집착하는 문제는 최근에 새로운 개선을 가져왔다. 이건 예전에 생각지 못한 것으로 지금 나는 이런 상태에 들어갔다. 어느 한 번, 항목 일이 바쁘지 않은 틈을 타서 오후에 세 시간 낮잠을 푹 잔 적이 있다. 일어나고 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법공부와 연공을 아직 못했기에 허둥지둥 시작했다. 최근에 나는 날마다 제2장 공법을 한 시간 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견지했다. 그날 깨어난 후, 아직 법공부를 못했기에 먼저 다그쳐 법공부를 했고, 밤 12시가 넘은 후에도 제2장 공법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휴식해야 하니 제2장 공법을 반 시간만 하자고 생각했다. 너무 늦게 자면 내일 피곤할 것 같았다.

이렇게 반 시간 연공을 했다. 보기에 다섯 가지 공법도 다 하고, 법공부도 완성했으니 임무를 완성한 것 같아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고 마음이 좀 괴로웠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평안하지 못한 것 같았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마땅히 제2장 공법을 모두 연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 누워있는 것이 결국 시간 낭비라는 걸 발견하고는 어쩔 수 없이 제2장 공법을 한 시간 더 연마한 후 새벽 발정념까지 마쳤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발생했는데 만약 연공을 마치지 못하면 누웠을 때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정말 거의 연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점점 더 빠듯해지기에 서둘러 이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또한, 만약 낮에 한 시간 더 잔다면 저녁에 분명히 한 시간 덜 자게 된다. 마치 하루에 몇 시간 자는 것도 균형된 숫자로 고정된 것 같았다. 수면시간이 전보다 줄어들어도 낮에 피곤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조절해주신 후에 나타난 상태이다. 법에서 수련하고, 과거의 낡은 관념들을 잡고 있지 않다면 사부님께서는 수련자를 도와 가장 좋은 상태로 조절해주실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의 일부 체득이며, 수련생들이 다그쳐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도록 순정한 플랫폼을 제공해준 밍후이왕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새해에 우리 모두 더욱더 정진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31/43595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2/31/4359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