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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중의 문제는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에서 답안을 찾아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한동안 현지 일부 수련생은 수련 중에서 문제에 부딪히면 법공부하거나 안으로 찾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주변에 잘 수련한 수련생을 찾아 문제의 답안을 구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타당하지 않다.

아래는 자신이 몇 년간 부딪힌 이런 상황에서 깨달은 것을 쓴 것으로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않고 횟수만 늘린다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의 형식만 지키면서 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자신의 실제 생활 중의 수련 상황과 대조해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고, 제때 있지 말아야 할 상태를 조절하지 못하며,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자신의 심성에서 두드러진 문제에 부딪히면 흔히 피하면서 생각하지 않고 순간 지나가 버린다.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 횟수를 법공부 목표로 정한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轉法輪)’을 하루에 한 번 보기로 하고 어떤 사람은 밤에 한번 다 보아 교류할 때 여러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문제를 답하실 때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제자: 어떤 사람이, 사부님께서 하루 반 만에 전법륜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느리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사부: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박수) 내가 여러분들로 하여금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보라, 책을 보라 하니, 그는 단번에 그 극단으로 달려갔다. 보고⋅보고⋅보고⋅보고, 목숨 걸고 보니, 매개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당신은 법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법 공부⋅법 공부, 그 공부를 당신은 어디에 놓았는가? 당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당신마저 모르는데, 어떻게 수련한다는 말인가? 당신은 반드시 당신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당신이 읽은 것이 무슨 글자이고 표면상에 어떤 뜻인지를 당신은 모두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찌 법 공부라 하겠는가? 그러려면 그것을 읽어 뭘 하겠는가? 책을 가져다 이렇게 한번 넘기면 끝나지 않는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1]

마음속으로 스스로 사부님의 제자라고 인정한다면 왜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지 않는가? 일부러 몇 번 더 봐서 사부님의 법신이 자신의 어떤 집착심을 제거해 주시기를 바라는가? 만약 이렇지 않으면 착실히 수련하고 진지하게 법공부를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이란 곧 수련이다. 대법은 수련을 제외한 외에 다른 것이 없다.”[2]

2. 사상적으로 기세등등하게 일하는 것만이 대법제자라고 생각하다

어떤 수련생은 몇 년간 기세가 드높지만 개인의 착실한 수련은 중시하거나 주의하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료를 많이 만들고 많이 배포하면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며, 말할 때 다른 사람보다 수련을 잘했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이는 노동교양소와 전향반에서 나온 후 즉시 일하는 데 몰입한다. 이런 상황의 수련생은 흔히 고정적인 틀에 있고 기본 의식이 같다. ‘자료를 많이 만들고 많이 배포하며 심지어 이런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마음속으로 이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인의 허영심에 빠져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평소에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가볍게 본다.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모 방면의 집착심이 건드려지면 언급하지 않고 피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먼저 자신을 잘 닦을 것을 요구하셨고,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야 조사정법의 신성한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자신을 잘 닦아야 조사정법의 사전 서약을 완성할 수 있다.

3. 착실히 수련해야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문제가 생기면 우선 수련생을 찾아 도움을 청하고 최대한 빨리 문제의 답안을 찾아 해결하려 한다. 수련생이 선의적으로 집착심을 지적해주면 구실을 대며 피한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고통을 감당하지 않으려 하고 문제 해결의 지름길만 찾으려 한다.

수련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셔도 직접 문제의 답을 알려주시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착실히 수련하고 침착하게 현실에서 조금씩 집착심을 제거해야 문제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심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든 것을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한 문제를 파악함에 心性(씬씽)에서 찾는다면 어떠한 문제든 모두 해결할 수 있다.”[3]

4. 사부님의 점화를 잘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수련에서 상태가 좋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부님께서는 그 전후로 흔히 각종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어떤 형식을 이용해 제자에 점화해주신다. 하지만 흔히 어떤 수련생은 일상생활에서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지 않고 문제의 표면만 보는 데에 습관이 됐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는다. 사부님의 점화를 발견해도 분명히 사부님의 점화를 알고 있으면서도 간단히 깨닫고 만다. 자신의 현실 수련과 조사정법에 대조해 문제점과 집착심을 찾아 바로잡지 않고, 다음에 더 잘하려 하지 않으며, 여전히 원래의 길을 걷는다. 사실 이것도 사부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가 자신을 대하는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신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점화해주시는 것을 자신 수련에 대한 격려와 문제 해결을 바로 잡는 또 하나의 언어로 알린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정진요지’처럼 시시각각 우리가 수련의 길에서 빗나가지 않게 일깨워주시는 것과 같다.

사부님의 점화는 단지 이것만이 아니며 제자에 대한 은혜와 정진하라는 많은 뜻이 포함돼 있다. 제자에 대해 아쉬워하고 격려해주시는 것을 무시하는가? 정진하라. 정진해야 더욱 깊은 체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표면에서 사부님에 대한 감사와 감지덕지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수련인에 대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다.

글로 써내 주변 수련생에게 알리려 한다. 어느 때든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자신에게 많이 질문하고 자신을 찾으며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사부님의 진수제자인가 아닌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스스로 승인하려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고 에누리가 있으면 안 되며 조사정법에서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마디 법을 기억하기 바란다. “어떠한 마음도 내려놓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하노라면, 모든 것이 곧 그 속에 있다.”[4]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 보도원을 위한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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