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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화로 가족들이 대법을 확신하게 되다

글/ 둥베이 대법제자 위슈 구술, 동료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저는 올해 67세인 농촌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입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한 개인적인 경험과 체험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실증하려고 합니다.

저는 대법(大法)을 수련하기 전에는 신경증, 비염, 기관지염, 신경쇠약, 흉막염, 인두염, 쓸개염, 관절염, 치질, 불면증 등 온갖 질병으로 1년 내내 앓았습니다. 1년 4계절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 현지에서는 유명한 ‘약탕기’였고, 남편이 번 돈은 저의 병을 치료하기에도 부족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단골’이라고 농담을 했으며, 이웃 사람들은 저를 ‘폐차될 차’라고 불렀습니다. 한의와 양의를 다 해보았지만, 제 병은 고치질 못했습니다.

1. 고난의 전반생

저는 다섯 살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우리를 잘 돌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고생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머리에 이가 많아 너무 가려워 긁어서 두피에서 피가 났으며, 나중에는 종기가 생겼고 고름이 흘러도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를 가엾게 여긴 이웃이 ‘류류펀(六六粉)’약을 써보라고 알려줘, 나중에 좋아졌습니다. 저는 학교를 2년만 다닐 수 있었는데, 집안일을 하고 남동생을 돌볼 사람이 있어야 해서 아버지는 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언니 세 명이 시집간 후, 저는 집안의 ‘기둥(주 노동력)’이 됐습니다. 열대여섯 살 때부터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때는 도르래 두레박을 사용했고, 겨울은 몹시 추웠습니다. 퍼낸 물이 뿌려져 우물 주변엔 두꺼운 얼음이 얼어 있었고, 미끄러워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우물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마을 대대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남에게 지지 않으려 했고 또 잘했으며 야간반까지 해서, 저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30세가 넘어서는, 온갖 병이 속속 생겨나고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관지염이 더 심각해지고 폐가 좋지 않았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안에는 작은 솜바지, 겉에는 큰 솜바지를 껴입고 머리엔 수건을 두르고 모자를 써도 감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기관지염이 재발해 가래가 끓었고 숨을 쉴 수 없어 바로 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주사를 맞아 숨만 쉴 수 있으면 주사를 더 맞지 못했습니다.​​ 하루건너 이 병이 재발하지 않으면 저 병이 재발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와 발이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걸 보는 저의 마음은 너무 아팠습니다. 고통이 끝이 없는 것 같았고, ‘뭘 먹으면 죽을 수 있을까? 살아서 무슨 낙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곱씹었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아! 죽을 수 없다. 아직 나이 어린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나도 다섯 살 때 엄마가 없어 얼마나 힘들었던가! 내 아이들도 나처럼 어려서부터 엄마 없이 자라게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괴로워도 참아 내자!’라고 마음을 다시 먹었습니다. 저의 전반 생은 들판에서 자라는 씀바귀처럼 썼습니다.

2. 불광이 널리 비치니 고진감래라

1997년 어느 하루 길을 가고 있는데, 조카가 저를 멈춰 세우고 “셋째 숙모님, 건강이 안 좋으신데 파룬궁이 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데요. 숙모님도 수련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아 “파룬궁이 병을 고친다면, 병원은 뭘 하나!”라고 말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카가 저를 가로막고 “셋째 숙모님, 가보세요. 가서 한번 연습해 보세요!”라고 연거푸 권했습니다. 저녁 식사 때 제가 남편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우리 동네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찾아가 어떤지 알아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남편과 같이 가서 여러 수련생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모두 파룬궁이 좋고 병이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다음날은 큰 도시 병원의 의사에게 예약이 돼 있어, 저녁에 그 도시로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 큰딸이 버스를 예약해 놨고, 돈이 부족하면 돼지(설에 잡으려던 것)를 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마치자, 저는 연공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큰딸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큰딸 모르게 집을 나와 연공장에 갔습니다. 장거리 버스가 도착했을 때 제가 보이지 않자 큰딸은 애를 태우며 불안해했습니다. “연공을 해서 병이 나을 수 있데요? 치료가 늦어지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 의외로 수련한지 삼 일째 되던 날, 수년간 저를 괴롭혔던 비염이 나았습니다. 예전에는 입을 벌리고 잤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입이 너무 건조해 침을 몇 번 삼켜야 했는데, 이제는 코가 뚫린 것입니다. 제가 재빨리 대법의 신기함을 알리자, 남편은 기뻐하며 “그럼 열심히 수련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모든 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고, 온 가족은 저의 파룬궁 수련을 강력히 지지해주었습니다.

3. 자동차가 전복된 후의 기적

대법(大法)을 수련한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해 삼복 날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열 살 넘은 둘째와 셋째 딸과 함께 사륜차를 타고 황무지를 개간하러 갔습니다. 땅 위에는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1㎡ 정도 드러나 있었고, 남편은 도끼로 엉켜있는 나무뿌리를 모두 잘라 냈습니다. 땅속에 깊이 묻혀있는 굵직한 뿌리가 남았습니다. 남편은 밧줄의 한쪽 끝을 뿌리에 묶고 다른 쪽 끝을 사륜차에 묶은 후 저에게 차를 몰게 했는데 뿌리가 조금 뽑혀 나오면 남편이 도끼로 자르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막 운전을 배워 아직 서툴렀는데 차에 오른 후 가속페달을 밟아버렸고 차는 튀어 나갔습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사륜차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나무뿌리는 뽑히지 않았고 차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차바퀴 4개는 앞을 향했습니다. 그러고는 ‘쿵!’ 하고 차가 뒤집혀서 저는 차 밑에 깔렸고, 핸들은 제 왼쪽 가슴을 쳤습니다.

그들 셋은 깜짝 놀랐고, 두 딸은 ‘우리 엄마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남편이 달려와 황급히 “어때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차 밑에서 “괜찮아요. 차를 들면 제가 기어나가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틈 사이로 기어 나왔을 때, 세 사람은 겁에 질려 다리 힘이 빠져 바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핸들에 박힌 왼쪽 가슴은 사륜차의 큰 전구처럼 부풀어 올랐고, 너무 아파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법을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남편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바로 가부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쪽 다리만 올리고 다른 쪽 다리는 너무 아파서 올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인(結印)하고 두 눈을 살며시 감았습니다.

이윽고 무너진 왼쪽 갈비뼈에서 ‘딸깍’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륜차의 핸들이 부러지고, 배기관도 떨어졌으며, 의자 널판도 부서졌습니다. 신기한 건, 제가 기어 나온 후 라디에이터의 뜨거운 물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 뜨거운 물이 저에게 직접 쏟아졌다면, 상상하기도 무서운 일입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다른 차를 얻어 저를 집까지 데려왔습니다. 제가 저녁에 연공장에 가려고 하자, 남편은 걱정스러워하며 두 딸에게 저와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연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동료 수련생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리 와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보자마자 놀라며 어찌 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저는 흥분해서 “차가 뒤집혔어요. 사부님께서 제 목숨을 구해 주셨어요.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남편이 조금씩 도와줬습니다. 왼팔이 너무 아파서 들 수가 없었고, 왼쪽 가슴에는 커다란 보라색 ​​반점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다친 곳에 염증이 생길까 두려워 병원에 가자고 계속 저를 설득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법공부하고 연공하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시아주버님은 옆에서 말했습니다. “고집부리지 마세요. 이대로 병원에 안 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저는 “못 믿겠으면, 그냥 지켜보세요. 저는 반드시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근육과 뼈를 다치면 100일 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한 달이 넘어 다 나았습니다. 저는 다 나은 후, 시아주버님께 말했습니다. “보세요. 병원에 안 가고, 약도 안 먹고, 주사도 안 맞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다 나았어요. 다 나았을 뿐만 아니라, 더 좋아지고 더 건강해졌어요! 이 대법이 신기하지 않나요?” 그는 완전히 승복했는데, 눈을 껌뻑이면서 말없이 담배만 피웠습니다.

4. 법을 공부한 후에 심신에 혜택을 보다

저는 곧 70세가 되지만, 남편과 함께 90kg이 되는 옥수수 가마니를 계속 6~7개를 날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저는 일할 때 힘이 솟아납니다. 가족들도 모두 탄복합니다. 한번은 물이 절반 넘게 담긴 큰 물통을 담장 밖에 있는 큰 조카에게 넘겨줬습니다. 큰 조카는 제가 이렇게 힘이 센 것을 보고 놀라서 “숙모님, 이 공을 계속 연마하셔야 해요! 이 공을 계속 연마하셔야 해요!”라고 연거푸 말했습니다. 질부와 남편은 옆에서 허허 웃었습니다.

저는 법을 공부한 후 엄격하게 ‘진선인(真·善·忍)’ 기준에 따라 행동했기에, 몸이 건강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졌습니다. 특히 욕을 잘하는 버릇을 단번에 고쳤습니다. 예전에 저는 욕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욕이 아니면 할 말이 없었기에 누구도 감히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바깥사돈과 이야기하다가 제가 어디에서 말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바깥사돈은 “또 욕하려 하시네.”라고 말하면서 급히 달아났습니다.

또 이전에 남편과 싸울 때, 제게 잘못이 있어도 남편이 굴복하지 않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그를 욕했으나 지금은 그가 저를 욕하는데, 저는 화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욕하지 말라고 그를 설득합니다. 저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곳곳에서 남을 위해 생각하고 선(善)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가는 길이 진흙 길이어서 비가 오면 많이 불편했습니다. 마침 우리 집 마당을 포장하려고 놔둔 자갈이 있으니 그 자갈을 작은 가게로 가는 길에 깔자고 남편과 상의했습니다. 남편이 작은 차로 자갈을 밀면 제가 평평하게 깔았습니다. 여름에는 잡초를 깨끗이 뽑아, 모두가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이웃의 누구 집에 무슨 크고 작은 일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가서 돕습니다. 이것은 파룬따파를 수련해서 저의 심성이 제고되었기에, 곳곳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5. 우리 가족은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해서 복을 받다

파룬궁은 세상에 전해지면서 7년 만에 파룬궁 수련자는 1억이 넘었지만, 공산당은 6, 7천만에 불과했습니다.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대법과 사부님을 질투한 장쩌민은 1999년 ‘7월 20일’ 이후, 파룬궁에 누명을 씌우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사부님을 비방하며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 파룬궁 제자들에게 누명을 씌우도록 전국 언론에 지시했습니다. 국민이 거짓에 속지 않게 하려고 대법제자들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했고, 저는 자료를 받으면 전하러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지지해주었고 가끔은 저와 함께 배포하러 나갔습니다.

큰딸은 저를 가장 많이 도와주었고, 종종 진상 소책자를 배포했습니다. 폭설이 내리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밤에 나가 눈에 빠지면서도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가끔은 진상 자료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직접 제작하고 싶었지만, 문화 지식이 높지 않고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큰딸이 글 쓰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때론 커다란 판지에 진상을 적어 길가의 눈더미에 꽂아 모두가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때로 제가 옆 마을에 자료를 배포하려고 하면 큰딸은 제가 힘들다며 가지 못하게 하고, 딸과 사위가 오토바이를 타고 그 마을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어느 해, 큰딸의 목구멍 양쪽에 용종이 생겼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용종이 커져서 목이 막힐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지만, 딸은 수술을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했습니다. 큰딸은 제가 말한 대로 했고, 5, 6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재작년에는 사위와 딸이 함께 외지에 나가 닭 농장에서 닭을 먹이고 부화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 닭 농장에는 6~7쌍의 부부 직원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어 모두 해고되었고 큰딸 부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들이 대법을 지지해 복을 받은 것입니다.

20년이 넘는 저의 수련의 길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고난의 바다에서 저를 구해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사부님의 은혜는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기념하는 즈음에, 저는 위대하신 사부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선한 사람들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고, 대법을 지지하고, 재난을 안전하게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1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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