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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제자가 되어 각종 집착과 유혹을 근절하다

글/ 유럽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헝가리에서 공부하는 20세 대학생입니다. 2018년, 어머니의 소개로 저는 처음 ‘전법륜’을 읽었고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을 읽으면서 저는 진선인(真·善·忍)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보편적 원리에 감명받아 사부님 말씀대로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록 가족들이 동시에 법을 접했지만 저와 어머니만이 수련을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쌍둥이 동생은 견지하지 못했어도 모두 대법을 이해했기에 저는 제가 이상적인 수련환경에서 태어난 것에 감격했습니다. 비록 수련의 길이 평탄하지 않았지만 저는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어떤 함정(난)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저에게 수련하라는 것임을 뚜렷이 느꼈고 그것을 이용해 더 정진하려 했습니다. 여러분께 제 수련 과정 중의 체득을 교류하려 합니다.

몸을 보기 좋게 만들려는 집착을 버리다

3년 전,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저에게도 많은 추구와 집착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 건강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래들보다 우수함을 증명하고 자랑하려는 생각이 들어 17살 때부터 헬스를 시작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꾸준히 헬스장에서 보냈고 많은 건강식품을 먹었습니다. 결국 과도한 훈련으로 심한 요통이 왔고, 근육이 뻣뻣해져 한동안 밤이면 몸의 근육이 떨려 잠을 자지 못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과도한 헬스로 인한 부작용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명(名)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줄곧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연공하고 나면 이런 현상이 금방 사라졌고 저는 잠을 잘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몸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개변하는 과정 중에 사람의 세포가 점차적으로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될 때 노쇠를 늦출 수 있다. 신체는 젊은 사람 방향으로 되돌아감이 나타나며, 점차적으로 되돌아가고, 점차적으로 전화(轉化)하여 최후에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됐을 때면, 이 사람의 신체는 이미 다른 물질신체로 완전히 전화된 것이다. 그러한 신체는 곧바로 내가 말한, 오행을 벗어났고 오행 중에 있지 않으며, 그의 신체는 곧 불괴(不壞) 신체다.”[1]

이 단락 법을 공부하고 저는 사람은 많이 단련할수록 몸의 신진대사를 강화해 노화를 가속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방법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상반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법리를 이해하자 훈련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깨달음이 아직 부족해 여전히 헬스장에 다녔습니다. 1년간 저는 두 척의 배에 발을 딛어 아무런 소득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근육은 더 늘어나지 않았고 또 이것이 제 수련을 저애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이 걸을 길을 반드시 선택해야 했습니다.

제 과시심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지려는 생각은 모두 속인의 집착임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외에 속인은 반드시 생로병사를 거쳐야 하는데 제 이 몸과 생명은 지금이나 장래나 영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저는 수련을 선택해 원래의 진짜 자신을 찾으려 했고 속인의 물질 신체에 공을 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헬스장 이용 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 저는 헬스장에 가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운동 감각이 예전과 달라졌고 전처럼 흥분되지 않아 저는 ‘이렇게 운동하는 것은 시간만 낭비하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시간에 진상을 알리거나 법공부를 하면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저는 헬스에 대한 집착을 쉽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끊으려고 생각하면 보증코 당신은 끊을 수 있으며, 당신이 또다시 담배를 들고 피운다 해도 제맛이 아니다. 당신이 책을 봄에 이 한 강의를 보아도 이런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물론 당신이 수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내 생각에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끊어버려야 한다.”[1]

병업관을 돌파하면서 수련에서 더 성숙해지다

지난해 7월경, 저는 코 주위 피부가 붓고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제가 매우 정진하고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소업해주신다는 생각만하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에 전념한다면 이런 난은 금방 지나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문제가 더 심각해져 피부 가려움이 심해지고 점점 더 부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었고 나중엔 더 참을 수 없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점차 의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때 저는 표면으로만 수련했고 모순에 부딪히면 거의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자신이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고 수련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태였기에 제 난을 구세력의 박해라고 생각해 구세력에 대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구세력이 제게 난을 가중시켰다며 몹시 미워했고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소멸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일부러 한 시간을 이용해 이 일을 했습니다. 제 생각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제게 사부님 설법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 우리는 정념으로 구세력을 제어할 수 있습니까?

사부: 구세력, 당신은 오직 그것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들이 이 한 세트 시스템을 배치했는데, 당신은 움직이지 못한다. 사부는 움직일 수 있지만, 역시 움직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 일보에 이르러, 일단 부수기만 하면 전부 다 부서져 버리고, 모든 일체가 다 부서져 버리기 때문이다. 장계취계라, 바로 장계취계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그것들이 움직일 수 없기에, 대법제자로 말하자면, 당신은 곧 당신의 정념을 견정히 하고, 당신의 일을 잘해야 하는데, 당신이 이 세 방면을 정말로 아주 잘한다면 누구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2]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보고 나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외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세력이 배치했거나, 사부님께서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셔도 좋고 저는 자신이 관을 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이런 난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과 고생은 공정한 것으로 모두 저를 제고시키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버리자 한 수련자의 각도에서 저의 난을 보게 됐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한 시간 동안 구세력의 교란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발정념으로 제 소극적인 생각을 바로잡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구세력에 대한 원망과 비슷하게 저에게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수련인으로 말하면 이는 바르지 않은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수련하기 전, 저는 아버지처럼 피부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제가 받아야 할 난임을 모르고 그 원인을 아버지께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바르지 않기에 이런 강렬한 원망심을 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즉각 사부님께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드렸고 원망하는 이 부분이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제게 알려줬습니다. 비록 표면적으로 제 난은 유전성 피부병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여전히 제가 소업해야 할 업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제 피부는 전혀 좋아지지 않아 저는 계속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는 조급하게 이 난관을 끝내려는 생각이 바로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헬스장에 가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외모에 대한 근본 집착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병업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저는 늘 거울을 보면서 더 완벽한 얼굴이 있기를 갈망했었는데 이런 생각은 속인들이 자신의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고생을 겪는 것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고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3]라는 사부님 말씀을 읽었을 때 이번 난이 이 정도까지 확산된 원인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난의 존재는 한 가지 기회로서 저에게 진정으로 근본 집착을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외모에 대해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쇠약해지고 늙을 때가 있다. 지금 내 외모가 아무리 아릅답다고 해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내재적 미, 나의 심성(心性)이다.’ 제가 이런 근본 집착을 제거하자 제 피부도 변하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는 수련의 큰 장애물

수련 초기에 저는 자신이 정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저는 매일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법공부할 수 있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4개월이 되자,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고 6개월 이내에 저는 사부님의 모든 경문을 한 번 읽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듬해에 이르러 원래의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는 욕망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일에 집착했고 속인의 거센 흐름 속에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흥분하게 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으며,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빠져 점차 속인과 같아졌는데 사부님의 안배와 점차 멀어졌습니다.

속인의 것은 볼수록 더 보고 싶어져 저는 속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했고 수련을 첫째에 놓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수련 중에 떨어져도 괜찮아, 난 매우 빨리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지’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수련 중에 굽은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여긴 저는 색심, 야망, 경쟁심, 과시심 등 사람 마음으로 제 사상과 행동을 통제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무리 법공부를 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더 높은 층차의 법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점차 연공, 법공부, 발정념을 할 때 저는 늘 졸았고, 많은 부정적 정보들이 들어와 저를 교란했습니다. 연속 3개월간, 저는 배가 아파 견디기 어려웠었는데 이것은 구세력이 안배한 것으로 제가 계속 수련할 수 있는지 시험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집착을 버리기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고 수련이 매우 어려워 원만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대법으로 가늠하라. 사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은 모두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곧 뚜렷이 분간할 수 있다. 오, 이 사상은 좋지 않으니 마땅히 없애버려야 하고 제거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자체가 바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 [4]

저는 이런 바르지 않은 생각은 제 생각이 아니고 구세력이 안배한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당장 버리려 했습니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 저는 이 문제를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할까? 내가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 본인이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다니. 창세주를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변이된 속인이 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사부님께 실망을 끼쳐 드렸는가? 사부님께서 날 위해 해주신 모든 것은 헛된 것인가? 이곳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오직 미혹되기 위한 것이고 최후에 훼멸되기 위한 것인가? 난 얼마나 용감하게 이곳으로 왔던가, 중생을 구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사명을 지니고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렇게 변해 있다니….’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매우 후회되어 가련한 자신과 중생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는 소셜미디어에 빠지지 않고 변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노트북에 있는 ‘자아 공제(Self Control)’라는 앱을 이용해 제가 늘 방문하는 사이트를 차단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단속하지 못해 이런 사이트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저는 정념이 나왔고 복통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자신의 매 사상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또 한 주가 지나자 저는 사상 중에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근래에 이전의 습관이 회복되어 나쁜 사상과 복통 등 부정적인 것들이 또다시 절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이런 집착을 제거하려면 반드시 안에서 찾아야 하고 자신에 의거해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는 앱의 통제를 받아서 가는 것이 아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2016년에 하신 설법을 읽고 매우 놀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떻든 간에, 대법제자로 말하면, 나는 바로 당신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데, 당신들은 당신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아야 하며, 정말로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이 일은 이미 최후에 이르렀고, 나마저도 너무나 조급한데, 당신들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러나 최후에는 울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세간의 일체는 모두 목적 있게 배치된 것으로, 사람의 집착을 불러일으켜 당신으로 하여금 구도 받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당신은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고 따라가려는가?! 당신은 중생의 희망이고, 당신은 그 지역 생명의 희망이다!”[5]

저는 수련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은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 세계의 수많은 중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번 난을 겪으면서 저는 수련의 엄숙성을 보았고 편안함과 안일함을 추구하는 집착심의 위험성을 보았습니다. 이런 집착은 내가 소셜미디어에 대한 의존심을 가중시킨 것입니다. 저는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한가지 오락형식으로 보던 관념을 철저히 바꿔 이것들이 바로 우리들 수련 노정에서의 큰 장애물임을 알게 됐습니다.

진수(眞修)란 근본적으로 각종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수련에 더 정진해 더 바른 길,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을 걸을 것을 결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은 약간의 개인 수련체득이므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동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021년 청년대법제자 온라인 법회)

 

원문발표: 2021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9/429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