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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개척해 사람들을 구한 의사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6년 초, 동료가 내게 파룬따파를 소개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면서 더는 거짓말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기로 했다. 긴장된 인간관계에서 남의 결점을 보지 않고 내 언행을 살펴봤다. 주위에 웃는 얼굴이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가족, 동료들과 편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을 더욱 열정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더욱 신기한 것은 천식, 비염 등 만성질환이 약 없이도 나았다는 것이다.

1. 업무 중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다

1977년 봄 어느 날, 병원 재무과장이 나에게 말했다. “어제 한 할머니가 원장님을 찾아와 선생님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깜짝 놀라 “어느 환자가 제 진료에 불만을 신고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는 선생님이 그녀에게 돈을 주어 수술받게 하신 것을 원장님께 칭송했습니다.”라고 재무과장이 말했다.

농촌에서 온 이 60대 할머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자궁경부 양성종양 진단이 나와 작은 수술로 제거해야 했는데 할머니는 울면서 하소연했다. 이들 노부부는 40대에 자식을 낳아 농사를 지어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는데 매우 가난해 친척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 자신의 병을 치료할 돈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비용을 받지 않고 수술해줄 수 있었다. 그때 의사가 친척, 친구에게 진료해주고 비용을 받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 가르침이 떠올랐다. “무릇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자는 엄격하게 각기 자국의 법률과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어떠한 사람이든 국가 정책과 법규를 위반하는 행위는 모두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공덕이 용납할 수 없다. 위반으로 인한 일체 후과는 모두 당사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1]

병원에는 명확한 비용 기준이 있으니 지켜야 했다. 나는 지갑에서 60위안이 채 안 되는 돈을 꺼내 주며 그녀에게 수술비, 약제비를 외래 수납처에 내라고 했다. 내가 비용 영수증을 챙겨 할머니를 데리고 담당 의사를 찾아가 엑스레이 검사를 받을 때 이 의사는 말했다. “병원 직원들이 모두 선생님처럼 한다면 병원에서 비용 누락을 관리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1998년도에 과장이 나에게 의국장(치프 레지던트)을 하라고 했는데, 과(科) 내에서 의무과, 원감과(병원감염관리과)와 관련된 일부 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레지던트와 주치의를 1년씩 돌아가며 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다. 의사가 적었기에 나는 다른 레지던트들과 마찬가지로 9개 병상을 관리하게 됐다. 이 추가 업무로 나는 늘 잔업을 해야 했다. 특히 월말이 되면 각종 업무량을 통계하고 각종 분석을 해야 했다. 나는 항상 아침 5~6시에 과에 가서 잔업을 했고 저녁 8~9시가 되어야 주간 근무가 끝났다.

나는 의국장 일을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은 나의 그 생각을 단념하도록 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2]

내가 1년 의국장 업무를 마친 후 과장은 인수자를 아예 찾지 못해 결국 나 혼자 추가로 한 일을 세 명의 의사에게 나눠줬다.

1998년 어느 날, 외래 진료하러 출근하던 중, 응급실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집에서 출산하다가 출혈이 몹시 심해 혈압이 제로가 된 산모를 응급 처치하러 갔다. 그녀는 농촌에서 한 조산원이 데리고 왔다. 나는 즉시 이 산모에게 대량의 링거를 고속으로 투여했다. 이후 즉각 수혈과 각종 혈액 검사를 준비했다. 혈액의 정상 여부 체크가 필요한 항목이 있었는데 산모는 가족이 없고 조산원도 돈이 없어 혈액채취를 한사코 거부했다.

‘시간이 곧 생명’인 이 위급한 순간에 나는 즉시 수혈비용을 보증하겠다며 내 팔을 내밀었다. 검사과 의사는 내 피를 뽑는 것을 거절하고 환자를 구하는 데 전념하라고 했다. 나는 “빨리, 사람 구하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때는 돈이 없으면 수혈해주지 않았고 환자 가족이 달아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만약 돈을 갚지 않으면 보증인이 임금에서 공제해야 했다. 나는 말했다. “이 돈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됩니다.”

2. 환경을 개척해 사람을 구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악당은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법을 위해 상경해 세 차례 청원했으며, 가는 곳마다 대법 진상을 알렸다. 시시각각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고, 대법 실증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내가 병원에 출근한 후 진상을 알게 된 경찰, 정부 간부와 일반인들은 나를 차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날 더욱 신임했다. 나는 믿을만한 의사의 모범이 됐다. 뒷거래, 사례비, 선물 등 날로 나빠지는 의료 환경에서도 여러 사람은 내 의술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의덕(醫德)은 더욱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여러 경찰의 아내, 어머니, 딸 등에게 수술과 진료를 해줬고 아이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말단 관리, 경찰들이 중공 당국에 의해 박해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대법제자는 모름지기 사람을 구하는 것이니 그들을 대립적으로 보지 말고 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그들의 처지는 매우 가련하다. 당시에는 나도 박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더는 생각하지 않고 정념으로 대할 것이다.’

현지 신문 편집장은 내 병원 부원장을 통해 아내를 데리고 특별히 날 찾아 진찰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연회에서 나를 만나 주빈으로서 잔을 들어 나에게 건배를 했다. 그리고 중학교 교장, 부교수, 간호부장 등 모든 손님 앞에서 내 의덕과 의술을 칭송했다. 나는 이렇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실증했다.

2003년 어느 날, 나는 파룬궁 진상을 말하다가 내 직속상관(과장)으로부터 악의적인 모함을 받았다. 그녀와 원장은 직접 나를 공안국과 위생국에 신고했다. 공안국 반사교과 여러 명 경찰이 병원에 와서 조사했다. 조사를 통해 경찰은 내 의술과 인품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존재가 과장에게 위협이 되자 그녀는 내가 파룬궁 수련한다는 빌미로 날 쓰러뜨리려 모함했던 것이다.

병원의 한 임원이 말했다. “당신이 이 병원에 처음 왔을 때 저는 당신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났는데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 친척이 아이를 낳을 때 한밤중에도 당신을 찾아야 안심이 됐지요. 다른 의사들은 모두 제왕절개 수술을 했는데 당신을 찾게 되어서 그녀는 순산했습니다. 당신 직속상관이 당신을 질투합니다. 저는 시내에 가서 회의를 열 때마다 파룬궁 박해 문건을 받았지만 서랍의 맨 안쪽에 숨겨두고는 다시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부님 법에 비추어 자신의 쟁투심, 질투심, 자신을 실증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등을 찾았다.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제거했다. 원장이 날 박해한 이상 그녀에게 진상을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최근 3년간 이 병원에 와서 과장에게 당한 일과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면서 한 행동,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나는 파룬궁 진상을 말하고 대법제자의 경지를 보여주며 중공의 박해를 폭로했다.

나는 의료사고가 나지 않도록 휴무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과장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나는 서신 방식으로 6부씩 각 관리 사무실에 보냈다. 며칠 후 원장이 남편을 찾아와 말했다. “그녀가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 특별히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그녀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세요!”

돌아온 후에야 나는 내가 ‘여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시에서 어떤 중요 회의를 열어야 했는데, 대법제자의 청원이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약 한 달 후 몇 건의 악성 의료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날 박해한 과장과 원장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결국 상급시(市) 의사회에서 1급 책임 사고로 배상하게 했고, 그 두 사람은 각각 정직과 강직 처분을 받았다.

그 당시 공안국에서 40여 명의 경찰을 데리고 병원에 온 책임자는 원장에게 “그때 왜 A의사(날 지칭함)를 찾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현장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후임 원장이 직접 말해준 것이다. 그 후로 난 병원에서 진상을 알릴 때 개인적으로 조용히 사람을 구했다.

2011년 겨울 어느 날, 저녁 8시가 지났을 때 남편이 전화로 610 사무실 주임이 날 찾는다고 했다. 내가 차를 타고 만나러 가자 그 주임은 혼자 내 차에 올라 “오늘 오전 출근하니 내 책상 위에 당신이 수배 중인 모 지역 파룬궁수련생과 접촉했다는 보고가 있었소”라고 말했다. 나는 정념을 발하면서 들었다.

나는 그가 계속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일찍이 당신에게 이 ‘죽음의 직위’를 떠나라고 일깨워 드렸습니다. 당신은 대법제자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당신 아내와 아이는 아직도 당신이 좋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눈앞에 파룬궁을 박해해 죗값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세요.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난 당신의 딸을 보호하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위세를 부릴 기회를 주지 않고 줄곧 인과응보를 말하며 그에게 악행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는 결국 설득돼 “내가 당신 두 모녀를 보호할 테니 당신은 나를 보호해야 하오!”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잘했으니 나중에 청산하면 제가 반드시 나서서 당신에게 증인이 되어 드릴게요.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 그가 우리 집에 가보자고 해서 남편과 내 친척과 함께 갔다.

집에 도착한 후에 나는 몇 가지 반찬을 준비했는데, 그들은 거실에서 캔 맥주를 마셨다. 그는 우리 집에서 인터넷 하는 곳을 찾았다. 남편은 “그 인터넷은 딸과 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그는 나에게 대법 진상 호신부를 달라고 했고 또 대법 진상CD도 달라고 했다. 이번 박해는 자비로우신 사부님 보호 아래, 내 정념으로 무산됐다.

3.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다

20여 년간의 박해 속에서 중공 각급 관리들은 한 차례씩 바뀌었다. 내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도 바뀌었지만, 나 자신을 잘 수련하고 박해를 반대하며 중생을 구하는 수련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장기적으로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고 법에서 닦아낸 지혜로 끊임없이 정념을 발하며 세 가지 일을 확고하게 하고 있다. 나는 자신이 사람을 구하는 몫만 있을 뿐 누구도 대립적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다.

2015년 6월, 나는 장쩌민 고소에 참여했다. 그때 나는 부서가 바뀌어 가벼운 관리직을 맡았다. 10월에 과장이 계면쩍게 서류를 꺼내더니 정공과(政工科: 정치사상 및 당무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서명받는 것이라고 했다. 보니 나에게 ‘고소를 남발했다’는 내용을 작성하라는 것이라서 바로 찢어버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일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녀는 “저는 선생님 일에 매우 만족합니다. 우리는 매우 잘 협조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됐습니다. 과장으로서 당신은 자신의 일만 하시면 됩니다. 8시간 이외의 일은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함부로 고소를 남발한 적이 없습니다. 법에 따라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중국 시민으로서 저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정공과에서 누가 절 찾으려고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 자신이 오라고 하세요.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아니면 보응을 받을 겁니다. 저도 다음에는 저를 박해한 사람을 장쩌민과 함께 고소할 겁니다.”

이어서 정공과 노조위원장이 나를 사무실로 오라고 불러서 표를 작성하라고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고 파룬궁 진상을 말해주어서 그녀는 진작부터 진상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파룬궁이 좋은지 아직 모르시나요?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17년이나 됐습니다. 저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됐는데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까? 저는 그를 고소할 겁니다. 저는 반드시 그를 고소해 쓰러뜨릴 것입니다. 누가 저를 박해합니까? 저는 다음에 장쩌민과 함께 그를 고소하겠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서 나에게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좋습니다!”

그 후 병원에서 나는 길을 걸으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렸다. 실습하고 연수하는 의사, 간호사, 노동자, 물자관리 직원부터 크고 작은 관리까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대법 진상을 말하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다.

나는 매일 차림새를 중시하고 승용차를 몰고 출퇴근한다. 남편을 따라 각종 모임에 참석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길이 비교적 평온하다. 대법 진상을 아는 한 간호부장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우리 병원 파룬궁수련생들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건강이 좋을 뿐 아니라 남편들도 모두 그녀들에게 잘해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여러 장소에서 대법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유하며 세상 사람들이 가명으로 장쩌민을 고발하도록 이끌었다.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의논해 몇 번이나 함께 고발하기도 했다.

나는 법조계 사람들의 단체 회식 자리에서도 진상을 알렸다. 법률 차원에서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위법성을 폭로하고 삼퇴를 권했다. 그중 두 사람은 모두 나를 박해하는 데 참여한 적이 있었다. 전 과정에서 나는 대범하고 여유롭고 지혜로우며 근거 있게 이야기했다. 내가 말할 때 그들 대부분이 진지하게 들었다. 여섯 명이 삼퇴했는데 그중에 부국장 한 명, 과장 한 명, 로펌 소장 한 명, 부교수 한 명, 세무서 간부 한 명이 있었다.

2018년 여름, 남편은 친구들과 밖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한담을 나눴다. 9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아 전화로 그를 찾았다. 그들이 바로 우리 집 옆 야외 바비큐 노점에 있었기에 남편은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좀 하라고 했다. 나는 곱고 밝게 차려입고 방금 산 비싼 원피스를 입고 갔다. 모두 일어나서 나를 맞이했다. 남편이 일일이 나에게 소개할 때 나는 1999년 4·25 이후 현지 방송국에서 날 인터뷰했던 그 젊은이를 알아봤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 진실을 왜곡해 파룬따파를 비방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책임자가 됐다. 나는 “우리 둘은 만났던 적이 있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그들이 나에게 술을 권해서 나는 차로 대신 인사하고 덕담한 후에 내가 그와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줄곧 “그때는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 진상을 다 알린 후 “당신은 정말 나쁜 일을 했는데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신도 피해자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당시 처지를 이해하고 박해에 참여한 결과를 알려주며 공산당의 사악함을 지적했다. 그에게 보완할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더니 그는 즉시 삼퇴에 동의하고 대법 진상 호신부와 진상CD를 흔쾌히 받으면서 여러 차례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4. 진상을 아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한 아주머니는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글자 진언(眞言)을 읽는다. 2008년경 이 아주머니는 대퇴골 종양에 걸렸다. 상급 병원 전문의는 이 병의 99% 이상이 악성이라고 했다. 수술 후 가장 좋은 결과가 절뚝이면서라도 걷는 것인데, 두 다리를 똑같은 길이로 맞추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양은 양성이었고 수술 후 아주머니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술 후 6년째 이 아주머니는 매일 개와 함께 산책했다. 나를 만나자 그녀가 물었다. “동생, 나 복 받은 거 아니야?” 나는 “정말로 복을 받으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도록 격려했다. 한 번은 친구 회식 자리에서 교장 부인인 그녀가 매일 ‘9자 진언’을 읽은 신기한 경험을 솔직하게 말했다. 현장에 있던 관리 부인들은 일제히 칭찬하며 모두 삼퇴하기를 원했다.

이 아주머니는 온 가족이 모두 삼퇴했다. 그녀는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잘 성장해 노부부는 매우 행복했고, 둘째 아들이 두 아이를 낳아 꿈에 그리던 손자를 안아보게 됐다.

한 여의사는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됐다. 그녀는 방광 내 종양이 99.9% 악성 가능성이 있었지만 삼퇴 후 기적적으로 양성으로 확진됐다.

한 간호부장의 딸은 그해 여섯 살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뇌전증으로 자주 경련을 일으켰지만 치료 약이 없었다. 간호부장이 진상을 명백히 알고 난 후 아이에게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가르쳐 9자 진언을 매일 읽었고, 진상 호신부를 집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뒀다. 이후 딸의 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건강하고 활발한 딸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 과장은 이전에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약골이라 늘 링거를 맞았다.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 진상 소책자를 자주 보고 진상지폐를 즐겨 사용한다. 지금 그녀는 건강할 뿐만 아니라 딸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딸이 결혼하기 전 그녀가 직접 예비부부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를 권하자 이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 남편도 파룬궁 진상자료를 보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가져온 진상자료를 보고 또 새로운 것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이전에 여러 차례 자신의 문틈에 있는 진상자료를 가져다 보았는데, 이로써 3년 전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위험한 경제조사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대법 진상을 알고 복을 받은 사람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대법 수련을 실증하는 마지막 길에서 나는 사명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나는 주위 수련생과 함께 정체(整體) 협조를 계속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 길을 잘 걷겠다.

만약 적절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부록’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2/4262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