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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베이징사범대학 부교수 ‘4.25’를 회상하다

[밍후이왕] (밍후이기자 화칭 시드니 취재보도)옛수도사범대학 교육과학대학 부교수 리위안화(李元華)와 그의 모친 타오웨팡(陶月芳), 이모 타오웨란(陶月蘭)은 모두 1999년 파룬궁 ‘4.25’ 평화대청원의 증인이다. 15년 전 그 때를 회상하면 감개무량하기가 한결같다.

李元华(右)和母亲陶月芳(左)、阿姨陶月兰(中)都是“四•二五”和平大上访的亲历者

리위안화(오른쪽)와 타오웨팡(왼쪽), 이모 타오웨란(중간)

파룬궁을 수련하니 심신이 건강하고 지혜가 열리다

리위안화는 18살 대학 재학 당시 치료하기 어렵고 전염병인 B형간염에 걸렸다. 당시 이런 병은 감히 소문을 내지 못하고 다만 사처로 치료 방법을 찾아 다녔다. 십몇 년 동안 그는 사처로 의사를 찾아 다녔고 중의학, 서양의학에다 기공까지 다 해 보았지만 치료하지 못했고 점차 정신적인 부담이 심해져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성격도 변했으며 인생의 희망을 잃었다”

리위안화의 모친은 93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한 후 다섯 차례에 걸쳐 사부님 설법을 직접 들었고 일신의 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보배를 얻은 듯 날마다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었다. 리위안화는 말했다. “그 때 저는 모친과 함께 살아서 날마다 법을 들었습니다. 94년 5월 모친과 함께 사부님께서 정의를 위해 용감히 나선 중화기금회 모금을 위한 공을 지닌 설법을 들은 후 집에 오니 다리에서 황색의 물건이 나왔습니다. 95년도 후부터 저는 확실하게 연공장에 가서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맨 처음 연공할 때 내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만 정신이 해방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랬더니 병도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리위안화는 또 파룬궁을 수련하니 그의 사업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저는 86년에 졸업하고 학교에 교수로 남았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고 진정으로 그런 사상가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서술한 문자의 표면의 뜻과 정신 내포를 알지 못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저의 지혜가 열려 업무적으로 질적인 비약이 나타났습니다. 저의 사유는 어느 사상가가 말한 역사가 옳고 그른가를 아주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으므로 역사에 전문가가 되었고 수준에 도달해 학생들이 아주 신뢰했습니다. 저는 또 좋은 사람이 되는 정신을 나의 강의에 용해시켰고 3년 연속 학교우수강연교수로 선정됐습니다.

4.25는 대규모 민중의 평화청원의 본보기를 보여주다

증인으로서 15년 후, 오늘 다시 ‘4.25’를 회상하는 리위안화는 몹시 감개해 마지않았다. 그는 “4.25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공의 폭정통치 하에서 처음으로 대규모적인 국민 평화청원을 시작한 날입니다. 중공에게는 하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 파룬궁 대표가 제출한 세 가지 요구는 만족스런 답변을 얻었고 만 명 군중은 잇따라 흩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큰소리치지 않았고 표어와 구호도 없었습니다. 중공의 여러 차례의 정치운동 및 89년도 6.4 피비린 내나는 탄압을 겪은 후, 4.25 청원은 세인들에게 파룬따파 수련자의 용감한 기개, 선한 자의 흉금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중공의 사악한 본성은 그더러 박해를 선택하게 했으며 이때부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위안화는 회상하면서 말했다. “4.25, 그날 마침 나는 수업이 없었습니다. 모친이 연공장에서 돌아와 나에게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나의 집은 중난하이에서 몇km 떨어져있으므로 나와 모친은 차를 타고 중난하이로 갔습니다. 당시 직접 중난하이에 가지 않은 것은 내신내방 사무실에 가볼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찍 도착했는데 당시 현장은 아주 질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6시경 일찍 푸유가(府右街)로 들어가 푸유가의 한편에 비켜서서 행인들에게 길을 내주었는데 다른 사람의 생활에 영향주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의 당시의 일거일동은 그들이 곳곳마다에서 남을 배려하는 자발성과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루 동안의 청원 과정에 어느 수련생은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웠는데 만 명이 떠나간 거리에는 심지어 종잇조각 하나도 남지 않았고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마저 모두 주웠다고 했다. 리위안화는 또 중공이 일방적으로 파룬궁을 위협하고 가짜를 조작하여 중국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는데 대해 말했다. “중공 경찰은 차를 몰고 촬영하는 사람마다 근거리 촬영을 했는데 소식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추후에 청산한다는 식의 사람을 위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하는 파룬궁수련생은 없었는데 파룬궁수련생은 평화, 이성, 정의롭고 위엄 있는 높은 경지의 정신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 파룬궁수련생은 4.25 청원을 하는 날 전혀 교통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공이 뉴스를 봉쇄하기 위해 경찰들을 시켜 푸유가 양쪽을 봉쇄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해외 매체에서 촬영하여 진실한 소식을 보도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장 인원 외는 4.25 현장의 진상을 아는 사람이 적었고, 베이징 현지 사람마저도 당시 일이 발생한 진실한 상황을 모두 모릅니다. ‘4.25는 이미 15년이 되었고 베이징 사람은 당시에 중공이 조종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됐는데 바로 6.4가 발생한 당시 내가 저장성에서 지식계 인사를 만났을 때 그들은 6.4의 진실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공은 일관적으로 역사를 날조합니다. 진상에 대해 중국 사람은 눈이 있어도 눈이 가려져 제대로 알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해외의 중국 사람은 해외에서 생활하지만 여전히 중국 대륙 인터넷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중공을 멀리하고 중공 악당에 아무런 환상도 품지 말고 진상을 알아야만 비로소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리위안화는 밝혔다. “그러므로 지금 중국 사람이 진상을 알게 하는 것은 지극히 귀중한 일입니다. 지금 중국 동포는 모두 중공을 욕하지만 중공 당문화가 사전에 설치해 놓은 한 세트의 사유방식은 심지어 많은 중국사람의 행위까지 단속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벗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중국 인민은 오직 중공을 버리고 3퇴(중공 당, 단, 대)하는 것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출로입니다.”

문장발표 : 2014년 4월 26일
문장분류 : 해외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26/2905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