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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25주년, 뉴욕 수련자들 중공영사관 앞에서 촛불 추모식

[명혜망] 4월 21일 저녁, 4·25 평화청원 25주년을 맞이해 뉴욕 지역에서 온 수백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맨해튼 중공영사관 앞에서 촛불 추모식을 열고 지난 25년간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동문 제자를 추모했다.

4월 21일 저녁, 4·25 평화청원 25주년을 맞이해 수백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맨해튼 중공영사관 앞에서 촛불 추모식을 열고 지난 25년간 중공의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수련자들을 추모했다.

1999년 4월 25일, 1만 명 이상의 파룬궁수련자들이 자발적으로 베이징 청원사무실로 가서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호소했다. 그러나 중공은 이를 빌미로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소멸성 박해를 시작했다. 이 잔혹한 박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올해로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자유로운 하늘 아래, 비행기가 거대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달고 영사관 옆 허드슨강 상공을 날았다. 이 대형 현수막은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중국어와 영어로 각각 ‘法輪大法好’와 ‘FALUN DAFA IS GOOD’라고 쓰여 있었고, 약 10km 높이에서 펼쳐졌는데 매우 눈에 띄었다.

“무조건 천징후이를 석방하라”

53세의 천징위(陳敬宇)는 중국 지린성 창춘시 출신으로, 원래 전 창춘시 제5회계감사사무소 직원이었으며 1997년 여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심신에 수혜를 받았다.

“저는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하고 병이 많아 위염과 신경쇠약을 앓았는데, 수련 후에는 심신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기 전 이미 대법(파룬궁)을 얻은 저는 질병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매일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일할 수 있었으며 마음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천징위는 수련 후 파룬따파의 법리로 자신을 바로잡아 더 이상 직장에서 뇌물을 받거나 남의 이익을 차지하는 악습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남편은 잇달아 중공의 압박으로 실직당했고 중국을 탈출해 미국으로 왔다.

촛불 추모식에서 천징위와 남편은 전단지를 들고 중공에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불법 납치된 자매 천징후이(陳敬輝)와 다른 수련자들을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천징후이는 원래 회계사였으며 천징위보다 두 살 많다. 그녀는 2011년 파룬궁을 반년 수련한 후 자궁근종이 없어졌고 성격도 많이 좋아졌다. 올해 3월 중순, 천징후이는 창춘시 차오양구 창주로 파출소에 의해 불법 납치됐고 집에 있던 80대 노부모는 갑자기 돌볼 사람이 없게 됐다. 그전에도 천징후이는 수년간 공안의 상시 방문으로 괴롭힘을 당해왔다.

“저의 부모님은 이미 80대 노인인데 언니는 부모님을 돌보던 중 7명의 경찰에 의해 납치되고 불법 수색을 당했습니다. 지금 두 분은 돌봐줄 사람이 없고 저도 언니의 안위가 매우 걱정됩니다.” 천징위는 목이 메어 말했다. “저도 중공에 의해 불법 감금된 적이 있어서 감금이 정신과 육체에 주는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압니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5년 중공의 박해로 목숨을 잃은 신원이 확인된 파룬궁수련자는 5,057명이다. 2023년에는 1,188명의 수련자가 오직 믿음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중공에 의해 징역형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연로한 수련자는 89세였다.

파룬궁 수련자 스쿤(石堃)은 말했다. “우리가 이 촛불 추모식에 참가하는 것은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수련생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25년의 박해를 견디며 확고부동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자 관롄타오(關連濤)는 “저는 25년간 지속된 파룬궁 박해가 하루빨리 끝나길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진상을 알게 된 중국인

안후이성 출신의 청년 궁카이(宮凱)는 작년 6월 중국을 탈출해 미국으로 왔다. 그는 당일 정오에 파룬궁수련자들이 개최한 4·25 기념 퍼레이드와 집회에 참가한 후 수련자들의 선량함을 느껴 저녁의 촛불 추모식 현장에도 왔다.

궁카이는 말했다. “사실 한 사람으로서 어떤 신앙도 없다면 매우 쉽게 도덕적 한계선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신앙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파룬궁의 연공 동작과 가르침을 통해 제 몸속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씻기는 느낌입니다.”

뉴욕시 파룬궁수련자들이 주최한 4·25 평화청원 2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전, 궁카이는 중국 호적지 소재 공안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거듭 파룬궁 수련단체의 활동에 참석하지 말라고 암시했다.

당시 궁카이는 중공의 한 자녀 정책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만약 제 어머니가 저를 낳기 전 경찰에게 붙잡혔다면 출산 예정일까지 단 하루 남았더라도 저는 낙태를 당했을 겁니다.”

손자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해 궁카이의 할머니는 그를 데리고 중국 곳곳을 떠돌며 기거했다. 8살이 되어서야 궁카이는 친부모와 재회할 수 있었다. 떠돌이 생활 기간 궁카이의 할머니는 파룬궁 수련을 배웠다. 달빛 아래서 할머니가 연공하는 모습이 어린 궁카이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여 년 후의 촛불 야간 추모 현장에서 궁카이는 파룬궁의 진상과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알게 됐고, 그도 뉴욕 중공영사관 밖에 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연공 대열에 합류해 아직 중국에서 잔혹한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자들을 성원하고,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을 해체하고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호소했다.

밤이 깊어가자 수련자들은 촛불에 불을 붙여 ‘진선인’ 글자 모양을 만들었고, 손에 든 수많은 연등은 4·25 청원 사건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이 보여준 평화로움과 선량함을 기리고, 25년간 믿음을 지키다 박해로 목숨을 잃은 수련자들을 추모했다.

한 뉴욕 시민은 말했다. “이 중국인들이 겪은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일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현장을 지나던 한 시민은 말했다. “모두가 여기서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는 것을 봤는데 이는 평화로움을 보여줍니다. 확성기도 없고 한마디 말도 없네요. 저는 여기 있는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4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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