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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수련자들이 4·25 사건에 대한 소감을 밝히다

[명혜망](토론토 지국) 25년 전인 1999년 4월 25일, 1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베이징 국무원 청원사무실을 찾아, 당국이 이전에 톈진에서 폭력적으로 납치한 파룬궁수련자 4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동시에 파룬궁 서적의 합법적 출판을 허용하고, 파룬궁수련자들에게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간의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청원이 당 매체에 의해 ‘중난하이(中南海, 중공 고위층 집단 거주지역) 포위’로 보도됐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정말로 당 매체가 선전하는 것처럼 행동했을까?

2024년 4월, ‘4·25’ 사건 25주년을 맞이해 파룬궁수련자들의 진실한 모습을 환원하기 위해 캐나다 수련자들은 그들의 수련을 시작하게 된 사연과 ‘4·25’ 평화 청원 사건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진실한 파룬궁수련자들의 모습을 알리고자 한다.

“파룬궁수련자들의 행위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39세의 아르헨티나 출신 파룬궁수련자 호세(Jose)는 의사였다. 현재는 의학계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다.

25년 전, 중공 경찰은 4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을 납치했다. 그 당시 수련자들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했으며, 4월 25일 국무원 청원사무실을 찾아가 정부에 합법적인 요구를 표현했다. ‘4·25’ 사건에 대해 호세는 말했다. “전 세계의 시위 활동에서는 약탈, 교통 방해, 질서 문란, 시민 괴롭힘 등 행위가 자주 동반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청원을 갔던 파룬궁수련자들은 시위조차 하지 않았고, 오직 조용하고 평화롭게 서서 연공을 하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행위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图1:阿根廷裔的法轮功学员何塞'
아르헨티나 출신 파룬궁수련자 호세

자신의 수련 과정을 회고하며 호세 또한 위험한 순간을 겪었지만, 수련인으로서 항상 침착함과 선량함의 원칙을 지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18세 때 호세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원래 저는 동양의 철학과 신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 그는 웃음기가 없고 심지어 부모님께 효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담배를 끊고 표정이 온화해졌으며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형은 3개월 전에 『전법륜(轉法輪)』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의 변화를 목격한 호세도 수련을 시작했다. “저도 이후 달라졌습니다. 언제든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삶에 짓눌리지 않았으며, 불안감도 사라졌습니다.”

몇 년 후 20대 초반의 호세는 납치 사건을 겪었다. “14살 된 남동생이 납치범들에게 끌려갔습니다.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동생의 몸값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절 위협하며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고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호세는 이어서 말했다. “만약 제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당황함과 두려움, 분노로 이성을 잃었을 것이고, 아마도 동생이 생명을 잃었을 겁니다. 당시 나는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타인에게, 심지어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들에게도 선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납치범들의 욕설, 고함, 모욕, 위협에 직면해 저는 대꾸하거나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전 과정에서 저는 화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함을 유지하며 대처 방법을 생각했고, 납치범들에게 계속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평온하게 타일렀습니다.”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호세의 동생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파룬궁은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다”

'图2:约瑟夫是名医生。他想让更多人知道“四·二五”的历史。'
의사 조세프는 더 많은 사람이 ‘4·25’ 사건의 역사를 알기를 바랐다.

32세의 조세프는 의사로, 해밀턴시에서 가정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학생 시절에 처음 파룬궁을 접했다.

“그때 저는 뉴욕에 막 도착해서 척추신경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행복한 가정과 밝은 장래, 적합한 결혼 상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공허하고 방황했습니다. 저는 감정과 물욕에 쉽게 휩싸였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아 내면에서부터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학교에서 조세프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우리 둘은 밤새 인생과 수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는 흥분하며 『전법륜』이라는 책을 꺼내 보여주며, 파룬궁은 매우 인기가 많아서 전 세계에 1억 명 이상이 수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조세프는 인터넷에서 『전법륜』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강의를 읽은 후 그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가 힘들게 찾았던 바른길이 제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조세프는 점차 수련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감정을 통제하고 자제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부모님, 친구들,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전법륜』은 저에게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저는 더 이상 독설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한발 물러서게 됐습니다.“

그는 또한 한 가지 경험에 대해 말했다. “아들이 갓 태어났을 때 기절해서 3일간 깨어나지 않았고, 이어서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1주일을 보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사부님께서 수련에서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결과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가짐을 조정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명석하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은 이 큰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됐고, 막막해하거나 원망하거나 삶의 의욕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지금 제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8개월이 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수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세프는 파룬궁 학습 사이트(LearnFalunGong.com)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미 7만 명이 온라인으로 공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감사의 편지를 하나하나 받았는데, 이를 통해 파룬궁이 그들의 삶에도 빛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어 조세프는 말했다. “여러 해 동안 수련을 통해 중국 전통문화의 심오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파룬궁은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내 수련자들은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 때문에 감금되거나 심지어 살해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이 무언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고 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4·25’ 사건 25주년을 맞이해 조세프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역사를 알기를 바랐다. “저는 여러 차례 다른 수련자들과 함께 토론토, 뉴욕, 로스앤젤레스의 중공 영사관 앞에서 정좌했습니다. 그해 4월 25일처럼, 오랜 세월 동안 수련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구경꾼들은 우리의 언행을 통해 우리가 정직하고 선량하며 굴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밝고 선한 사람이 되다

애슐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카와사호 인근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당해 성격이 날카로워졌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화를 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비시키기 위해 그녀는 약물 중독에 빠졌다.

'图3:法轮功学员艾希莉(Ashley)'
파룬궁수련자 애슐리

7년 전 애슐리는 페이스북에서 고등학교 동창이 파룬궁에 대해 공유한 글을 보고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때 제 인생, 성격, 처지는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마치 어떤 힘이 저를 수렁에서 끌어올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가볍게 밀어 올려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했습니다.”

그 동창은 애슐리에게 자신이 파룬궁수련자라고 말했다. 공법의 요점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의 언행과 생각을 요구하고 규율하는 것이라고 했다. 애슐리는 말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이것이 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련을 하려면 우선 마약부터 끊어야 했는데,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일상생활에서 진선인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션윈(神韻) 공연을 관람한 후에야 애슐리는 수련을 결심했다. “저는 『전법륜』에서 요구하는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마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격상 문제들을 하나씩 바로잡아 나갔습니다.” 수련 후 애슐리는 자신을 학대했던 가족들에 대한 원망을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사부님께서는 선행에는 선과가 있고, 악행에는 악과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밝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저는 증오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애슐리는 말했다. “『전법륜』은 제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혜택을 주었습니다. 25년 전 4월 25일, 파룬궁수련자들은 베이징에 청원을 갔지만 중공에 의해 ‘중난하이 포위’로 매도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원망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치셨는데, 어떻게 수련자들이 정부를 원망하고 포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모든 사람이 명백해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수양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8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18/475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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