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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포(季布)의 일락천금(一諾千金) 고사(故事)

글/스칭(史清) 정리

언약을 잘 지키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적인 미덕이다. 노자가 말했다. “가벼운 승낙은 반드시 믿기 어렵고, 수월함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움도 많다(輕諾必寡信,多易必多難).” 공자도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언약을 지키고 말에 신용이 있어야 함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준칙이자 조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이다.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는 ‘일락천금(一諾千金)’ 고사는, 선인들이 약속과 신용을 중히 여겼음을 뜻하며, 또 어떤 물질이나 금전도 사람의 고상한 인격과 성실한 미덕과는 비할 수 없다는 이치를 설명한다. ‘일락천금’은 사마천의《사기(史記), 계포내포열전(季布来布列傳)》에서 유래되었다. 진나라 말, 초(楚)나라 땅에 계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정이 정직하고 의리가 있어 다른 사람을 즐겨 도왔다. 그는 언약을 잘 지키는 것으로 초나라 지역에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사람들은 격언처럼 말했다. “황금 백 근을 얻는 것 보다, 계포의 약속 하나를 얻는 게 낫다.” 뜻인즉 계포의 한 마디가 황금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이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 계포는 항우의 수하로 있어서 여러 차례 병사를 이끌고 유방의 군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항우가 오강(烏江)에서 패한 후 유방이 천하를 호령했다. 그는 계포를 잡는 자에게 천금을 내릴 것이나, 만약 계포를 숨기는 자는 3족을 멸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계포를 존경했기에 복양(濮陽) 지방의 주(周)씨 일가는 그를 잠시 집에 머물게 했다. 주씨가 말했다. “한(漢) 왕조는 장군님을 하루빨리 잡으려고 합니다. 머지않아 우리 집까지 추적해 올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제 말을 믿는다면 계책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먼저 자결할 것입니다.” 계포는 믿는다고 했다. 주씨는 계포의 머리카락을 자른 후 철 테를 목에 씌우고 헌옷을 입혀 주씨의 종들과 함께 노나라의 유명한 협객 주(朱)씨에게 팔았다. 주(朱)씨는 계포를 알아보고 계포와 노복을 다 사들여 자신의 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당부했다. “밭일은 모두 이 노복의 지시에 따라 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주(朱)씨는 낙양에 가서 등공(縢公)[여음후(汝陰侯) 하우영(夏侯婴)]을 배알했다. 등공은 주(朱)씨를 며칠간 묵게 했다. 주(朱)씨는 기회를 보아 등공에게 말했다. “계포가 무슨 대죄를 지었기에 황제께서 급히 그를 체포하라 하십니까?” 등공이 말했다. “계포는 여러 차례 항우를 도와 황제를 곤궁에 빠뜨렸기에 황제는 그에게 원한을 갖고 있네. 황제는 반드시 그를 잡아야 시름을 놓을 것 같네.” 주(朱)씨가 말했다. “등공께서는 계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공이 말했다. “그는 현자(賢者)네.” 주(朱)씨가 말했다. “신하는 그 황제에게 부름을 받은 것이니 계포 또한 항우 밑에서 책임을 다했을 뿐 아닙니까. 항우의 수하라면 전부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현재 황제는 갓 천하를 얻었는데 개인적인 원한으로 그를 체포한다면 천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릇이 작음을 드러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계포는 현명하고 유능하기에, 한(漢) 왕조가 이처럼 급히 그를 잡으려 한다면 그는 북쪽의 흉노로 도망가거나 남쪽의 월나라로 갈 것입니다. 이렇듯 장사(壯士)를 질투하고 미워하여 적군을 돕게 하는 것은, 오자서(伍子胥)가 초평왕(楚平王)의 사체에다 채찍질을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등공께서는 왜 황제에게 그런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까?” 등공은 주(朱)씨가 대 협객임을 알고, 또 계포가 주(朱)씨 집에 숨어 있는 것임을 짐작하고 황제에게 이야기하겠다고 언약했다. 등공은 정말로 주(朱)씨의 뜻에 따라 황제에게 직언하여 황제는 계포를 사면했다. 주(朱)씨는 이로써 당시에 이름을 날렸다. 나중에 계포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며, 황제는 계포를 낭중(郎中)에 임명했다.

한(漢) 혜제(惠帝) 때 계포는 중랑장(中郞將)으로 있었다. 당시 흉노왕 선우가 편지를 보내 여후(吕后)를 모욕한 적이 있었다. 여후는 화가 나서 뭇 장군을 불러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했다. 그러자 상장군 번쾌가 말했다. “소신이 군사 십만을 이끌고 가 흉노를 쓸어버리겠습니다.” 여러 장군들 모두 여후의 뜻에 따라 일제히 동조했다. 그러나 계포는 이렇게 말했다. “번쾌의 목을 잘라야겠다! 당년 한고조(漢高祖)께서 40만 대군을 거느렸어도 평성(平城)에 갇혔다. 그런데 어찌 번쾌가 십만 군사로 흉노를 쓸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즉흥적으로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秦)나라는 흉노와 전쟁을 하다가 진승(陳勝) 등의 반란을 유발시켰고, 지금까지 그 상처가 남아있다. 지금 번쾌가 아첨하고 있지만 실상은 천하에 분란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순식간에 장군들은 놀라워했고 여후는 말없이 퇴청한 뒤 더 이상 흉노에 대한 일을 제기하지 않았다.

문장발표: 2010년 2월22일
문장분류: 신전문화(神傳文化)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2/22/2186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