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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 강희제의 자손 교육: 120번씩 읽고 외우기

【명혜망 2008년 12월 25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1654-1722)는 자손(子孫)들에 대한 교육을 아주 중시했다. 이는 중국 역대 황제들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강희제는 모두 35명의 아들과 20명의 딸을 두었고 손자들을 모두 합하면 97명에 이르는 대가족이었다.

그렇다면 강희제는 어떻게 자손들을 가르쳤을까? 그의 교육 방식은 아주 다양했으며 말로 전하고 몸으로 가르쳤다. 가령 사냥을 나갈 때나 지방을 순시할 때면 늘 자손들을 데리고 갔고 심지어 전쟁을 치를 때도 대동했다. 강희제는 바로 이렇게 실천 속에서 인재를 배양하는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이외에 가장 중요한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학교 교육이었다.

황자와 황손들이 책을 읽는 곳을 일러 ‘상서방(上書房 역주: 책을 읽고 공부하는 방이란 의미)’이라 했는데 강희제 당시에는 창춘원(暢春園) 무일제(無逸齋)에 있었다. 자손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거나 안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무일제라 한 것인데 한가하게 놀거나 향락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희기거주(康熙起居注)》와 다른 서적에는 황자와 황손들이 공부한 구체적인 상황이 잘 나와 있다.

여기서는 이중 어느 하루를 예로 들어 강희제의 황자, 황손들이 어떻게 학습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황자(皇子)들은 인시(寅時 새벽 3-5시)에 무일제에 들어와 전날 배운 수업을 2시간 동안 복습해야 했다. 당시 황태자의 나이가 13세였는데 새벽 3시가 되면 무일제 서방(書房 도서관)에 도착했다. 당연히 이들의 기상 시간은 이보다 더 빨랐을 것이다.

묘시(卯時 새벽 5-7시)가 되면 사부들이 들어온다. 만주어(滿洲語) 사부 달합탑(達哈塔), 한문(漢文) 사부 탕빈(湯斌) 등이 상서방에 도착한다. 선생님들이 도착하면 먼저 황태자에게 무릎 꿇고 절하는 예절을 올린 후 황자들의 숙제를 검사한다. 황자들에게 책을 외우게 하는데 황자들은 낭랑하게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한다. 그 후 한문 사부가 다음 단락을 지정해주고 이어서 다음 단락을 외운다.

진시(辰時 오전 7-9시)가 되면 학생들은 벌써 4시간 수업을 셈인데 이때 강희제가 아침 조회를 마치고 곧장 무일제로 온다. 황자들은 건물 밖 계단 아래까지 나가 황제를 영접한다. 강희제가 들어와 자리에 앉은 후 아들들에게 책을 외워보게 한다. 황제가 직접 책을 펼쳐 임의로 한 단락을 지정해주면 황자들은 바로 외워야 한다. 끝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운 후 강희제가 말했다. “나는 어릴 때 책을 읽으면 120번 낭독한 후에 120번 암송했다. 완전히 숙달된 후에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한 단락씩 배웠다.”

이때 어떤 대신이 “폐하 100번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묻자 강희제는 반드시 120번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황제는 사부들에게 방금 외운 것이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어떤 사부는 태자가 아주 총명하고 아주 잘 외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강희제는 “당신들은 그를 칭찬하지 말고 그들을 많이 비판해야만 교만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사를 끝낸 후 강희제는 다른 정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가 되면 이미 복날이 가까워져 날씨가 몹시 더웠다. 하지만 황자들이 책을 읽을 때 부채를 지니거나 부채질을 할 수 없으며 바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그날 배운 문장을 100번씩 쓰는 서법(書法) 연습을 한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가 되면 점심을 먹는데 시위(侍衛)들이 식사를 가져오면 황자들은 우선 사부님들에게 양보한다. 사부들은 무릎을 꿇고 식사를 받은 후 각기 자기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황자들도 그 옆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업을 진행한다.

미시(未時 오후 1-3시)가 되면 황자들이 무일제 밖에 있는 정원에 나가 말을 타거나 활쏘기를 연습한다. 한편으로는 휴식을 취하고 체육활동을 하는 동시에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다.

신시(申時 오후 3-5시)가 되면 강희제가 다시 무일제에 와서 황자들이 공부한 것을 다시 검사한다. 이번에는 여러 황자들에게 외우게 한 후 몇몇 황자들이 팀을 이뤄 한 번씩 외우게 한다.

유시(酉時 오후 5-7시)가 되면 무일제 밖에 나가 활쏘기 연습을 하는데 먼저 황자들에게 한발씩 쏘게 한다. 그 후 사부들이 한발씩 쏘고 마지막으로 황제가 직접 활을 쏘는데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강희제는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난다.

즉, 이들은 새벽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단지 하루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이렇게 했으며 춥거나 덥다고 하여 공부를 쉬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보다시피 강희황제는 자손들에 대한 교육이 아주 엄격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강희제의 아들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정치가 타입이다. 옹정(擁正)제나 건륭(乾隆)제처럼 황제가 된 인물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강희의 아들인 옹정은 아주 뛰어난 황제였고 손자인 건륭 역시 훌륭한 황제였다. 하지만 그의 자손들이라고 하여 모두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며 황제는 오직 한명만 가능했다.

그 외 두 번째 유형으로는 학자타입을 들 수 있다. 가령 황삼자(皇三子 황제의 셋째 아들)인 윤지(胤祉)는 아주 뛰어난 과학자이자 저 유명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권의 편집책임자였다. 세 번째 유형은 바로 예술가 타입인데, 서예나 회화에 모두 뛰어난 재능이 있는 황자들도 있었다. 네 번째 유형은 바로 생활형이다. 특히 황자의 모친이 서열이 낮은 경우 황제 자리 경쟁에 참가하기란 불가능했고 이 경우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타입이다. 이렇게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강희제의 황자와 황손들 중에서는 건달이나 한량,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9/1/31/10441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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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발표 : 2008년 12월 25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2/25/19222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