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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명작 신해(新解) (3)

글/홍진

【명혜망 2008년 1월 7일】(계속)

2. 4대 명작의 특수한 사명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전반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변화는 일치하는 것으로 모두 규칙적이다. 이번 기 인류 문명의 역사는 이미 산생, 발전, 흥성, 쇠퇴의 전 과정을 지나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말법시기에 전륜성왕(轉輪聖王)께서 세상에 내려와 법을 바로잡고 사람을 구도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적으로 누적된 일체 문화는 모두 정법을 전하기 위하여 기초를 다진 것이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수하신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불법’은 입자(粒子)∙분자(分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더욱 작은 것에서 더욱 큰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 오묘한 비밀[奧秘]을 꿰뚫어보는 것으로서,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린 것이 없다. 그는 우주의 특성 ‘眞(쩐)∙善(싼)∙忍(런)’의 부동(不同)한 층차의 부동한 논술로서, 다시 말해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법(法)’이다.”(『전법룬』「논어」)

파룬따파가 드러낸 우주법리는 오늘날 대법제자들의 수련 실천을 통해 검증되고 있다.

우리 다시 처음 화제로 돌아가 보자. 사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 왜 지금이 바로 ‘말법(末法)’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가? 이것은 수련계의 공통적인 인식으로, 불교, 도교, 기독교를 막론하며, 또 어떠한 수련방법이나 각 민족의 자기 민족의 기원에 관한 전설을 포함해 모두 공통적인 의미를 표현한다. 바로 사람은 천상에서 온 것으로, 자신의 죄업(罪業)이 인간세상에서 고생을 겪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종교와 많고 많은 수련방법이 있는데, 사람이 생사윤회를 뛰어넘어 천국세계로 되돌아간다는 이것은 모든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이자 최고 인생목표이다.

(1)드높은 의리와 바른 믿음으로 우주를 진감

‘삼국’ 이야기는 이미 천오백년 가량 지났지만 나관중(羅貫中)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으로 완성되었다. 의론이 분분하던 백년 ‘의(義)’가 어찌 이다지도 왕성한 생명력이 있는가? 사실 전해지는 과정 중에서 곧 ‘의’를 인간 세상에 전파한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인들의 ‘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다른 어떠한 국가의 사람들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신주(神州)’ 땅에서 발생한 특정한 내포가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은 모두 등한시 할 수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모두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 역시 원인이 있다. 중화민족의 전성시기를 말하자면 물론 대당(大唐)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국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 풍속, 사회적인 통치는 물론 세계적인 영향 등을 종합적 정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청나라와 중화민국(中華民國) 혹은 중공(中共)이 정권을 장악한 이 몇 십 년을 보면 중화대지에 어째서 사람들이 칭찬하는 ‘의’에 관한 인물이나 이야기가 없는가? 설사 있다 해도 사람들은 ‘삼국’ 이야기와 같이 그렇게 유전(流傳)해 내려가진 않을 것이다. 인생의 냉막함 역시 전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오늘까지 퇴화된 것이다. 오늘날 매체는 세계 각지에 동시에 뉴스를 전파할 순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이상 영웅의 공간은 사라졌고 또 점차적으로 ‘의’의 표준을 낮췄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도덕 수준이 완전히 떨어진 것이다. 인성의 자사(自私)는 이미 사람의 ‘의’를 훼멸시켰다. 특히 중공이 정권을 장악한 몇 십 년 동안 사람의 일체는 모두 중공에게 농단되어 중국인들의 사상 깊은 곳에 있는 전통적 ‘의’에 대한 가치는 중공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청나라 말기의 거지인 무훈(武訓)이 구걸해서 모은 돈으로 학교를 만든 ‘의’거 조차도 공격 당했으니 또 무슨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의’는 갈수록 단지 하나의 글자로 변해버렸고 그것이 마땅히 갖춰야 할 내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의’는 필경 역사상 중국인들에게 일종 특유한 문화적 특질로 존재해왔다. 나관중은 ‘연(演)’‘의(義)’한 동시에 ‘의’에 대해 전면적이고 투철하게 표현했다. 또 후인들을 위해 ‘의’의 가치를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에 대한 이해가 강제로 제거되긴 했지만 아직도 사상 깊은 곳에는 ‘의’에 대한 특유한 이해가 남아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인이 중국인이 될 수 있는 원인이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현대 중국어로 파룬따파를 전하신 것은 중국인 특유한 문화적인 내포를 투철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도덕이 미끄러져 내겨가긴 했지만 사람들이 일단 진정한 불법(佛法)을 접촉하게 되면 마음속 깊이 감춰져 있던 불성(佛性)이 깨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법의 홍대(洪大)함과 정심(精深)함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들의 도덕의식의 자아가 소생하는 것도 날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대법이 부당하게 박해를 받을 때, 대법제자들은 대법에 대한 존경과 확고한 믿음으로 수시로 일체를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걸어 나왔다. 이런 ‘의(義)’거(擧)는 전무후무한 것으로 우주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한 페이지의 역사가 지나간 후 사람들은 오늘날 대법제자들은 확실히 그들이 할 일을 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의’라는 글자로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한 장거(壯擧)를 형용한다면 도리어 너무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명의 본원에서 우러나온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의한 것으로 한 생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고 또 아무런 이유도 필요하지 않으며 모두 그것을 위해 일체를 버린 본성의 체현이다.

왜냐하면 ‘대법(大法)’은 일체 생명의 근본이며 생명의 일체 근본이기 때문이다!

(2)자고로 ‘정법(正法)은 만나기 어려우니’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자

『서유기』는 하나의 완전한 수련이야기를 쓴 것으로 이 중에 가장 의미 있는 한마디는 “무릇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쉽지 않으며, 정법은 만나기 힘들다. 이 세 가지를 구비한 사람은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제 64회에 나온다)그런데 이 구절은 앞뒤 단락과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작가가 삼장법사의 입을 빌려 이 한 마디를 한 것은 바로 이 책을 서술한 진심을 토로한 것이니 정말이지 작가의 고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중토(중국)에 태어난 사람들이여, ‘정법’이 널리 전해지는 때에 이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자! 분명한 것은 삼장법사 시기에는 ‘정법’이 없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가 굳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파룬따파의 모든 수련자들은 진정한 ‘정법’은 곧 파룬따파임을 단 한 사람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이 바로 ‘정법’의 시기이다. 마치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유유한 만사는 눈앞에 지나가는 구름에 불과하나 속인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망망한 천지는 어찌하여 생겼는고 중생의 지혜를 무력하게 하노라.”(『홍음』「대법은 미혹을 파하노라」)

파룬따파는 92년부터 전해지기 시작했다. 짧디 짧은 7년 동안 수련인의 수가 1억을 넘어 신속히 발전했다. 또 완전히 현대적인 매체 선전에 의지하지 않고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다.” 중공이 탄압한 8년 동안 파룬따파는 도리어 이 기간에 전 세계를 풍미했다. 지금까지 『전법륜』은 이미 20여종의 문자로 세계 80여개 국가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럼 왜 파룬따파는 이렇게 큰 생명력이 있는가? 대법제자들은 모두 아주 똑똑히 알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생생세세 찾아 헤맸던 진정한 ‘정법’ㅡ파룬따파를 얻었다. 파룬따파는 우주의 특성으로 수련인의 일체를 지도하며 수련인은 우주의 연화원리에 따라 연마한다. 파룬따파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일체를 완벽히 해석했고 전반 인류역사의 기원과 그 본질을 밝혔다. 일체를 포용하며, 일체에 제한되지 않는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법리는 바로 수련자들에 의해 실천하고 있다. 파룬따파는 확실히 인류, 물질이 존재하는 각개 공간, 생명 및 전반 우주를 원만하고도 똑똑히 설명한다.

(계속)

문장발표 : 2008년 1월 7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7/169640p.html